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86화 (86/250)

제24장. 유대 (3)

안무 연습실로 향하자, 희미하게 음악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서 안무 연습실 입구 근처까지 도착했다.

준서, 니암, 딜런. 셋 다 나보다 한참 랭크가 낮은 탓에 내가 이렇게 작정하고 기척을 죽이면 아무리 헌터라도 전혀 눈치를 못 챌 것이다.

내 예상대로 내가 문을 살짝 열고 지켜보고 있는데도 셋은 안무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딜런이 손뼉을 세 차례 짝짝짝 마주치면서 짧은 휴식을 알렸다.

“15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해 보자.”

“네, 형!”

“오케이.”

댄서 출신답게 안무 연습을 할 때에는 딜런이 주도적으로 연습생들을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였다.

의자가 있는 곳까지 갈 것도 없이.

철푸덕!

셋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그 자리에서 바로 휴식을 취했다.

이때, 니암이 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엇, 이사님!”

니암의 말에 딜런과 준서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제 오셨어요?”

“형! 왜 안 들어오고 거기에 서서 멀뚱멀뚱 보고만 계시는 거예요?”

“아니, 그냥.”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연습 잘하고 있나, 슬쩍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이다.

바로 휴식을 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최 프로듀서한테 헌터보이즈 데뷔곡 작업 현황 듣고 왔는데, 알려 줄까?”

“네!”

처음에는 본인들이 정말로 데뷔해서 가수로 활동할 수 있을지 긴가민가한 태도를 보였지만.

계속하다 보니 재미를 붙여서일까, 세 사람의 눈동자에 의욕과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번 달 말에 바로 레코딩 들어갈 거라고 그러더라.”

“곡 나왔어요?”

“어. 아마 조만간 최 프로듀서가 너희 부를 거야. 그때 한번 들어 봐.”

“형은 이미 들어 보신 거예요?”

“나? 뭐, 그렇지.”

가이드곡은 들어 봤다.

소감을 한마디로 줄여 보자면.

“노래 좋더라. 기대해도 좋을 거 같아.”

세 사람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이제 저희 노래하고 저희 안무로 연습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 그때부터는 나도 연습에 계속 참여할 거고.”

지금까지는 멤버들의 보컬, 댄스 실력을 데뷔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연습 과정에 불과했다.

이거 때문에 멤버들은 한동안 우리 소속사와 헌터 훈련소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처음에는 보컬, 댄스 실력을 키우는데 왜 고강도의 헌터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의아해했던 멤버들.

하지만 실제로 효과를 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잡아 준 훈련 가이드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레코딩 끝나면, 그날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갈까? 내가 살게.”

고생한 멤버들을 위해서 사기를 충전시켜 줄 생각이었다.

이때, 니암이 내게 어떤 질문 하나를 건넸다.

“이사님,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어, 뭔데?”

“데이브 선배님 데뷔는 잘 진행되고 있을까요?”

니암이 데이브에게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다.

데이브 이야기가 나오자, 준서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데이브와 가장 의견 충돌이 잦았던 사람이 바로 준서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니암은 데이브와 갈라진 일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서로 다들 분위기가 좋았으니까.

하지만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지금은 미련을 접은 듯해 보였다.

그래도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약간 슬럼프가 온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데이브니까 잘 해낼 거야.”

“하긴, 데이브 선배님은 헌터로 활동할 때부터 줄곧 혼자서 잘해 오셨으니까요. 저희가 없어도 그러실 거 같습니다.”

니암의 말에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흘리고 말았다.

“딱히 그렇진 않을지도.”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나는 화두를 재빨리 다른 쪽으로 돌렸다.

“자 자! 실력이 얼마나 늘었나, 내가 직접 확인해 볼 테니까 다들 그만 쉬고 일어서. 어서!”

준서가 입술을 삐쭉 내밀면서 작은 불만을 토로했다.

“아직 15분 안 됐는데…….”

“한 번 하고 또 쉬게 해 줄게, 요 녀석아.”

융통성이 없구만.

왠지 데이브를 닮았다.

사실은 둘이 은근히 잘 어울렸던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 * *

어두컴컴한 어느 시골의 새벽.

잠이 안 오는 모양인지, 한 노인이 집 밖으로 나와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익!

담배 연기가 새벽하늘에 흩어질 무렵.

노인이 가로등 아래를 유심히 살폈다.

“뭐여, 저거?”

처음에는 산에서 배고픔에 굶주린 멧돼지라도 내려온 줄 알았다.

그러나 멧돼지라고 보기에는 사람의 형상과 너무나도 가까웠다.

다만, 평범한 체형은 아니었다.

팔과 다리가 유독 길고.

키는 거의 2미터에 육박했다.

낡아 떨어진 천으로 몸을 덮은 남자가 터벅터벅, 시골길을 따라 이동했다.

노인이 다급히 마당으로 나와 외쳤다.

“그, 그쪽으로 가면 아무것도 없는디?”

사람인지, 귀신인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말을 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자가 향하려는 곳을 따라 쭉 이동하면, 얼마 전에 구제역으로 인해 돼지들을 단체로 살처분시킨 곳이 나온다.

사람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는 곳.

그럼에도 남자는 노인의 말을 무시한 채 그저 앞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

“거기는 가면 안 된다니까!”

노인이 남자에게 다가가려고 한 순간.

남자가 걸음을 멈추더니 노인 쪽으로 고개를 훽 돌렸다.

순간,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창백한 얼굴.

붉게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를 지닌 남성의 얼굴은 살점이 거의 반절이나 떨어져 있었다.

“……나에게 신경 꺼라.”

남자는 그렇게 짧은 한마디를 남긴 채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얼마 안 갔을 텐데도 불구하고 남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노인은 여러 차례 눈을 꿈뻑였다.

그사이, 노인의 아내가 나와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이 양반이 길바닥에서 뭐 하고 있댜!”

“시, 시방 방금 그거 봤는감?”

“뭐를? 아무것도 없잖여.”

“내가 방금 봤는디…….”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열심히 손으로 가리켜 봤지만.

그의 아내 눈에는 가로등 불빛이 꺼진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상한 말 그만하고 후딱 들어와. 다시 자게.”

“…….”

노인은 어쩔 수 없이 마누라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노인은 자신이 본 남자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분명 살아 있는 사람처럼 걷고, 정상적으로 말도 하고 그랬는데.

“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였어.”

* * *

헌터보이즈 멤버들에게 데뷔곡을 들려주기 위해 최 프로듀서가 우리를 자신의 녹음실로 초대했다.

“지금 들려드리는 건 이사님이 저번에 들었던 가이드곡에서 약간 변형된 버전입니다. 후렴구가 심심한 거 같아서, 2절 파트에 고음으로 시원하게 내지르는 부분을 추가시켰어요. 여기서 메인 보컬이…….”

멤버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라는데요?”

오늘 처음 들었지만 말이다.

멤버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해야지, 뭐.

최 프로듀서도 내가 메인 보컬 포지션을 맡는 것에 대해서 동의하는 듯한 눈치였다.

“이사님이 이 중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되었으니까요.”

“헌터 말하는 건 아니죠?”

“당연히 가수 경력이죠.”

내가 많은 곡을 발표한 건 아니지만, 이제 막 데뷔하려는 멤버들과 비교하면 내가 상대적 대선배로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보컬 실력만 봐도 이사님이 제일 좋고요.”

“최 프로듀서님한테 칭찬 듣는 거, 오랜만인 기분이네요.”

“그러게요. 제가 요즘 이사님한테 칭찬하는 거에 너무 인색했죠? 이제부터는 자주 하겠습니다.”

내 농담도 여유롭게 받아 주는 최 프로듀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침내 우리 데뷔곡이 될 노래를 들을 차례가 왔다.

“제목은 아직 미정이고요. 이사님하고 멤버들끼리 한번 이야기해 보시고 결정하면 될 거 같습니다. 가이드곡 듣다가 중간에 ‘워우워’같이 추임새가 반복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는 아직 가사가 안 들어가서 그런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일단은 멜로디만 집중해서 들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플레이하겠습니다.”

노래를 재생시키자, 녹음실에 설치되어 있는 다수의 스피커에서 우리의 데뷔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한번 들었던 가이드곡이었기 때문에 멤버들만큼의 큰 감흥은 없었다.

반대로, 멤버들은 한 음 한 음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면서 청취에 집중했다.

4분이 조금 넘어가는 곡이 끝나자, 멤버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최곱니다! 제가 지금까지 들었던 노래 중에 가장 좋았어요! 형들도 그렇죠?”

딜런도, 니암도.

모두가 다 준서와 같은 반응이었다.

역시, 우리 최 프로듀서의 능력은 대단하다.

“최 프로듀서님이 가요계에서 벌어들이는 노래 저작권이 어마어마할 정도거든. 그만큼 히트곡을 많이 만들어 냈다는 뜻이지.”

당시 최 프로듀서를 우리 회사로 데려오기 위해 꽤나 많은 공을 들였던 걸로 기억한다.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대신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네요.”

“아쉬운 점이요?”

“원래 이거, 다섯 명이 부르는 걸 기본 전제로 작곡했던 곡이거든요. 그런데 중간에 데이브 씨가 빠져서, 손을 다시 봤습니다.”

이미 파트별로 분배까지 다 마쳐 뒀던 최 프로듀서.

데이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멤버들의 분위기가 다시 우중충해졌다.

최 프로듀서가 당황하며 말했다.

“제가 괜한 말을 했나 보네요. 그럼 노래 다시 한번 들어 보시고, 정리되는 대로 한 명씩 파트별로 불러 봅시다.”

“네, 그렇게 하죠.”

괜히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전에 나도 최 프로듀서의 말에 힘을 보탰다.

* * *

최 프로듀서의 주도하에 멤버별로 레코딩 연습이 이루어지는 동안, 나는 협회장한테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야외 휴게실로 나왔다.

“조사 결과는 나왔습니까?”

-어, 네크로맨서의 짓이야.

“확실한가요?”

-그때 녀석이 보였던 마법의 흔적하고 100퍼센트 일치하는 소환 표식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어.

만약에 내가 흡연자였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줄담배를 피웠을 것이다.

네크로맨서라.

어떤 의미에서 드래곤보다 더 보기 싫은 녀석이 설마 여태껏 몰래 숨어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어떤 겁니까?”

-네크로맨서로 추정되는 존재를 목격한 사람이 있다나 봐. 야밤에 봐서 기억은 잘 안 난다는데, 살처분된 돼지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갔었대.

“그래서요.”

-다음 날에 보니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돼지들의 사체가 싹 다 사라져 있었다고 하더군.

“네크로맨서 짓, 맞네요.”

녀석의 힘의 원천은 바로 사체다.

그것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군단을 만든다.

-근데 이번에는 왜 바로 난동을 안 부리는 걸까?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뻔하지 않습니까.”

나는 보인다, 네크로맨서의 머릿속이.

“우리한테 복수하려고 계속 힘을 키우려는 겁니다.”

복수 대상은 아마 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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