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85화 (85/250)

제24장. 유대 (2)

내가 헌터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 막 1년째가 되던 해였을 것이다.

헌터 양성소에서 훈련을 받고, 정식으로 훈련 과정을 수료한 이후에 바로 현장으로 투입된 나는 처음엔 영 적응이 안 된 탓에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다.

1년째가 되던 날.

그때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지금이야 독보적인 강함으로 레이드 시대를 종결시키고,

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원래 개구리에게도 올챙이 시절이 있는 법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찌어찌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펼쳐 가고 있던 그날.

갑자기 하늘에 보라색 게이트가 열렸다.

평소보다도 유독 작은, 그런 규모의 게이트.

그래서 나를 포함해서 그 자리에 있던 헌터들은 안심했다.

보통은 게이트의 크기에 따라서 재해 난이도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크기가 작다? 그 말은 즉 잡몹 몇 마리만 넘어오고 끝난다. 이런 뜻으로 해석되던 때였다.

하지만 이 법칙이 그날 깨졌다.

그 작은 게이트에 의해서 말이다.

“거기서 넘어온 녀석이 네크로맨서, 그 자식이었죠.”

“그래, 나도 기억이 나네.”

연 대표가 내 회상에 공감하듯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하늘에서 떨어진 네크로맨서.

녀석은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몬스터 사체들을 보고 씨익 웃었다.

전부 다 우리가 처리한 놈들의 흔적들이었다.

이제 겨우 마무리를 짓나 싶었는데.

네크로맨서에 의해 모든 게 망가졌다.

녀석의 손에서 격한 마나의 기류가 형성되더니.

그것들이 갑자기 죽은 몬스터들을 되살렸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되살린 게 아니다.

시체를 언데드화시켜서 조종하기 시작한 거였다.

살아 있는 녀석들은 차라리 상대하기가 편하다.

머리나 심장 같은 급소를 노리면 죽긴 하니까.

하지만 이미 한번 죽은 녀석들은 머리를 터뜨려도, 심장을 도려내도, 그게 무슨 대수냐며 계속해서 움직여 댔다.

그날, 많은 헌터들이 내 눈앞에서 죽임을 당했다.

최악의 게이트 사건 탑 3 안에 꼽힐 정도였으니까.

거기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협회장이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시에 네가 없었더라면, 아마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 네크로맨서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를 거야.”

협회장의 말대로다.

네크로맨서를 죽인 사람이 바로 나다.

헌터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빈틈을 노려서 네크로맨서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덕분에 언데드와의 전투가 종료되었고. 우리 인류는 또 한 번 거친 파도를 넘어서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승리에 취하기 전에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녀석의 시체, 당시에는 발견 못 했죠?”

내 물음에 협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가 끝난 후에 협회 측에서 파견한 인력들이 몬스터 사체들을 정리했다.

그러나 그 틈새 속에서 네크로맨서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네크로맨서의 흔적도 같이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에 그 녀석의 짓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민간인들이 꽤 많이 희생된 모양인가 봐. 중국 정부는 쉬쉬하는 분위기였지만, 내부 직원을 통해서 정보를 들어 보니까, 사상자가 꽤 나왔어. 대략 200~300명 정도.”

“…….”

평화의 시대가 열린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 기록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정말로 그게 네크로맨서의 짓으로 밝혀졌나요?”

“아직까지는 모르지. 근데 죽은 자들을 언데드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아직까진 네크로맨서가 유일했으니까. 그래서 놈이 숨어 있다가 다시 나타난 게 아닐까 하고 추측만 하고 있는 거야.”

만약에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확실하게 알았을 것이다.

이게 네크로맨서가 벌인 일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현장 조사는요?”

“하고는 있는데. 중국 쪽이 제대로 협조를 해 줄지 모르겠네.”

“지금은 안 해 주겠죠. 근데 나중에 가면 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어떻게?”

“네크로맨서가 이 짓을 또 벌일 텐데, 그때도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내 추측을 듣고 협회장과 연 대표는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 * *

다시 회사로 돌아왔을 때.

나보다 먼저 내 사무실 앞을 지키고 있던 인물이 있었다.

“데이브, 거기서 뭐 하냐?”

“너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일단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한테 할 말이 있으니까 여기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겠지.

오자마자 일단 자리부터 먼저 잡은 데이브가 내게 방금 전에 있었던 일에 관해서 물었다.

“네크로맨서가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이냐?”

“나도 몰라.”

“왜, 그거 때문에 연수하 대표하고 협회장 보러 간 거 아니었냐?”

“맞는데. 아직 현장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해서 네크로맨서의 소행인지 아닌지 단언하기가 힘들대.”

혹시 모르지 않은가.

네크로맨서 말고 언데드 몬스터를 다룰 수 있는 다른 존재가 있을 수도.

게이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전부 다 밝혀진 게 거의 없는 수수께끼투성이라서 무엇 하나 확실하게 단정 짓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협회장도, 연 대표도, 누구 하나 섣불리 ‘이건 네크로맨서의 소행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도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단지, 그 확률이 매우 높을 뿐.

“아무튼 이 건은 협회 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우리는 우리 할 일이나 하자고.”

“겨우 노래나 부르는 거?”

“‘겨우 노래’ 따위가 아니야. 우리가 좀 더 퀄리티 있는 노래를 부를수록, 헌터들에게 더 확실하게 버프를 줄 수 있게 될 테니까.”

“…….”

데이브도 잘 알 것이다.

우리들이 부르는 노래가 이 판도를 단숨에 뒤바꿀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낸 두 개의 앨범. 그리고 최근에 활동을 개시한 헌터걸스까지.

“너희도 빨리 데뷔해야지.”

“데뷔라…….”

데이브답지 않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녀석은 내 앞에서 약한 모습을 절대로 보여 주지 않는 놈이다.

그 이전에 고민하는 것조차도 숨기려고 한다.

그런 데이브가 내 앞에서 이런 한숨을 내쉬는 걸 보니, 세상이나 헌터협회의 용도뿐만 아니라 데이브도 점점 변해 가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모르겠다.”

“모르겠다니? 뭐를?”

“그냥. 왠지 노래하고 춤추는 게 재미가 없어졌어.”

이 녀석은.

최 프로듀서와 스태프들이 데이브의 이 말을 들었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눈물을 쏟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 하려고?”

“아니, 하긴 할 거야. 단지 벌써부터 슬럼프가 온 거 같아서 좀 그럴 뿐이지.”

“그래, 자기가 분명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것에 직업이 되고, 그렇게 빡세게 준비하다 보면 오히려 환멸을 느낄 때도 있으니까.”

나도 연습생 시절 때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매일 같은 안무를 반복하고.

내가 데뷔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혹시나 무의미한 짓을 계속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아마 데이브도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내가 너는 무조건 데뷔시켜 줄 테니까 한번 열심히 해 봐.”

데이브는 무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고민 상담은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데이브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준서랑 애들 쪽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냐?”

“신경 쓰이나 보네?”

“그냥, 어쩌다 보니 생각나서 물어본 것뿐이야.”

하여간 이 츤데레는.

“그러면 굳이 나 안 거쳐도 네가 직접 물어봐도 되잖아. 어차피 소속사도 같고.”

“걔들이 나를 어려워한다는 거 잘 아는데, 먼저 말 붙이기 좀 그렇더라.”

자리에서 일어난 데이브는 다시 연습하러 가겠다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네크로맨서 건, 이야기 들어오면 나한테도 알려 줘라. 나도 녀석한테 갚아야 할 게 많으니까.”

“그래, 알았어.”

내가 싫다고 해도 알아서 데이브의 귀에도 네크로맨서에 관한 소식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드래곤만큼 위험한 존재는 아니지만, 네크로맨서도 요주의 인물이니까 말이다.

동원할 수 있는 헌터들의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야 한다.

아마 나도 현장으로 출동하게 될 것 같다.

‘데이브도 그렇겠지.’

방금 전, 데이브가 나간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데이브는 헌터로 활동할 때부터 거의 팀을 이루지 않은 채 주로 혼자서 작전을 펼쳐 왔었다.

혼자가 더 편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나도 혼자가 더 편하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헌터들과 팀 작전을 수행하는 일에 큰 반감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데이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혼자 행동하려는 이유.

나는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데이브가 네크로맨서에게 갚아 줘야 할 게 있다고 말했던 것과 연관이 있다.

‘이번만큼은 데이브한테 협조해 줘야겠네.’

복수할 기회는 줘야지.

* * *

‘던전 탐험대’ 1회가 방영된 날.

인터넷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특히 마지막에 나왔던, 내가 정령들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장면은 시청자들로부터 레전드 장면이라 불리고 있었다.

어떤 화려한 CG도 ‘던전 탐험대’ 1화 마지막 컷은 재연해 내지 못할 거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시에 일반인들에게 정령이라는 존재가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다.

헌터협회도 이에 힘입어 정령과 만나게 되면 당황하지 말고 일단 협회 측에 먼저 연락해 달라는 안내 문구를 더했다.

이렇게 일반인들에게도 우리가 아는 지식들을 차츰차츰 알려 줘야 한다.

그래야 몬스터 제보가 더 많이 들어올 테고. 설령 몬스터에게 습격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몬스터의 습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대응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래서 나는 예전부터 몬스터에 관련된 정보를 민간인들에게도 풀고 교육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레이드 시대가 끝나고 난 다음에야 시행되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뭐,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며칠 전에 ‘던전 탐험대’ 2회 분량을 촬영하기 위해 다른 던전을 방문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1회만큼의 임팩트 있는 장면은 없었다.

그래도 1화가 너무 레전드여서 그랬지, 2화도 나름 쓸 만한 컷들은 많았다.

대신에 던전 내부가 너무 더워서, 출연진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다 같이 고생을 했었다.

다음 촬영지가 정해지기 전까지, 나는 잠시 대기하기로 했다.

내 예능 촬영은 그렇다 치고.

헌터보이즈의 데뷔 프로젝트 진행 과정이 궁금해졌다.

“최 프로듀서님, 애들, 연습실에 있죠?”

-예, 안무 연습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저도 간만에 연습 좀 해야겠네요.”

-이사님도요?

“네, 저도 헌터보이즈 소속이니까요.”

데이브가 나감으로 인해서 헌터보이즈의 평균 MML 수치는 1.3으로 뚝 떨어지게 되었다.

데이브가 있고 없고, 0.2 차이에 불과했지만, 헌터들에게는 꽤나 크게 체감될 것이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초창기부터 헌터보이즈에 나도 같이 재데뷔를 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조만간 애들이랑 같이 데뷔곡 녹음도 따야 하고.

‘정신없이 바쁘겠구만.’

헌터걸스만큼 결과가 잘 나오면 좋겠는데.

애들하고 열심히 파이팅 좀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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