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84화 (84/250)

제24장. 유대 (1)

던전을 나오자마자 박 PD가 카메라감독을 찾았다.

“황 감독, 아까 촬영한 거 있잖아요. 태오 씨가 정령들한테 노래 불러 주는 장면. 그거, 잘 나왔죠?”

“한번 보시겠습니까?”

말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봤자 무슨 소용일까.

그냥 눈으로 한번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어깨 너머로 촬영팀이 찍은 영상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아까 그 장면을 찍기 위해서 일부러 촬영팀을 데리고 정령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초록색 새들이 한곳에 모여 날갯짓을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잘 나왔네요.”

박 PD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태오 씨, 이거 저희가 방송으로 내보내도 되나요?”

“네, 그렇게 해 달라는 뜻으로 보여 드렸던 겁니다.”

정령은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까 무서워할 필요도, 먼저 정령에게 적대감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이걸 시청자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아까도 그랬지만, 설명을 해 줘도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 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혹여나 이 세계에 아직 잔류하고 있을지 모를 정령을 만나면, 무서워하지 말라고 꼭 알려 주고 싶었다.

물론 박 PD에게도 이런 내 의도를 그대로 전달했다.

박 PD는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이렇게 어깨가 무거운 영상 편집은 처음이네요.”

“그래도 중요한 일이니까요.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태오 씨 덕분에 마지막에 인상적인 장면 하나 건졌는데. 제가 최대한 잘 살려서 방송으로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협회 측에서는…… 허락하겠죠?”

협회와 정부가 허락한 것은 어디까지나 던전 내부 촬영이다.

정령의 모습까지 촬영하라고 한 적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던전을 촬영하다가 ‘우연히’ 찍혔다고 하면 되니까요. 그래도 안 된다고 한다면, 그때는 제가 협회장에게 직접 연락하겠습니다.”

그러면 웬만하면 다 해결될 것이다.

내 말을 들은 박 PD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태오 씨만 믿겠습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마지막에 촬영한 그 장면이 나가야 나도 2박 3일 동안 이곳에서 먹고 자고 한 보람을 느낄 것 같다.

어디.

이번에는 또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 내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게 될지.

한번 지켜봐야겠다.

* * *

검수를 위해서 ‘던전 탐험대’ 1회분 최종 편집본을 전달받은 나는 집 한쪽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TV를 통해서 영상을 계속해서 돌려 봤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가장 임팩트가 있었다.

“전문가가 촬영해서 그런지, 영상 퀄리티가 보통이 아니네.”

편집도 잘되었다.

게다가 저 장면이 촬영 막바지에 나왔으니까.

극적인 타이밍에 정령들이 우리를 도와준 셈이었다.

‘그나저나 몬스터 말고도 정령들도 아직 이 세계에 남아 있었구나.’

협회 측에는 ‘던전 탐험대’ 1화 녹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보고를 해 뒀다.

협회장도 내가 알려 준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랐다.

하지만 몬스터가 다시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반응이 약했다.

정령이 인간에게 먼저 해를 주는 존재는 아니니까.

그리고 정령들은 가끔씩 우리가 몬스터와 전투를 펼칠 때 인간의 편을 들어 주기도 했었다.

나와 잠깐 통화의 시간을 가진 협회장이 지난번에 내가 알려 준 정령 이야기를 다시 거론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미로 던전을 샅샅이 조사할 걸 그랬군. 설마 눈속임용 벽이 있었을 줄이야.

“던전 크기가 좀 큰 게 아니니까요. 아무리 사람들을 많이 투입했어도 구석구석 다 조사하진 못했을 겁니다.”

-그래도 위험할 뻔했어. 만약에 거기에 정령이 아니라 성질 더러운 몬스터가 대신 숨어 있었다면,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잖아. 뭐…… 태오, 네가 같이 있었으니까 큰 사고가 일어나진 않았을 테지만, 일반인들이었다면 대참사가 일어났을 거다.

나도 이 말에는 동의한다.

-혹시 모르니까, 이번 기회에 다른 던전들도 다시 한번 조사해 봐야겠군. 아무튼 고맙다, 태오야. 네 덕분에 경각심이 좀 든다.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요, 뭘. 근데 던전들 다시 다 조사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요? 인력도 많이 필요할 텐데.”

-헌터들이 있잖아. 어차피 요즘 몬스터도 별로 안 나오고 생계가 아슬아슬한 헌터들도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우리가 취직이라도 시켜 줘야지.

취직이라.

좋은 아이디어다.

던전을 재조사한다고 하면, 정부에서도 당연히 이에 대한 지원책이 마련될 테고.

숨어 있는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을 하면, 각국의 정부는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협회 측에 무조건 협조하려 할 것이다.

몬스터의 존재를 놓쳐서 민간인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그 화살은 무조건 국가에게 향할 것이니까 말이다.

평화의 시대인 만큼 ‘안전하다’라는 걸 강조해야 한다.

협회장의 주장은 잘 통할 것이다.

-그리고 태오야.

“네, 협회장님.”

-시간 되면, 잠깐 협회로 좀 올 수 있냐? 연 대표도 같이.

나와 연 대표를 부른다는 건, 뭔가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는 뜻이다.

설마 저번처럼 내 앨범 한정판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이렇게 따로 호출하진 않을 테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연수하 대표하고 시간 맞춰 보겠습니다.”

통화를 끊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 대표한테서 전화가 왔다.

“네, 대표님. 안 그래도 제가 전화하려고 했었는데.”

-협회장님한테 연락받아서 그런 거지?

“잘 아시네요.”

-나한테도 오늘 아침에 연락이 왔었거든. 너하고 같이 협회 한번 가 봐야 할 거 같은데. 시간 언제 돼?

“오늘은 일정이 비어 있으니까, 지금 당장 가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HT 엔터테인먼트에서 3시에 보도록 하자. 나도 그 시간에 맞춰서 갈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3시라.

어차피 집에 있어 봤자 할 것도 없고.

‘미리 가 있을까?’

늦는 것보단 그래도 미리 가 있는 게 더 좋을 테니까 말이다.

* * *

헌터걸스의 성공 이후, HT 엔터테인먼트는 또다시 새로운 그룹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누구보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바쁜 사람은 단연 최 프로듀서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5인 그룹의 데뷔곡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데이브 씨를 솔로로 전향시키자고 해서 만들어야 할 곡이 배로 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일찍 온 김에 잠시 최 프로듀서의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반쯤 죽어 가는 얼굴로 내게 본인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알려 줬다.

데이브와 멤버들의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나는 최 프로듀서를 비롯해서 헌터보이즈 데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던 직원들을 전부 소집했다.

물론 데이브를 포함한 당사자들까지 전부 다.

이 자리에서 나는 헌터보이즈 멤버들의 의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데이브는 솔로로, 그리고 나와 헌터보이즈 멤버 세 명은 그룹으로.

최종적으로 이렇게 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마음 안 맞는 멤버들을 억지로 같은 그룹으로 넣어서 데뷔시켜 봤자 도움되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운 마음이 없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포함해서 이 다섯이 한꺼번에 데뷔를 해야 좋은 그림이 나올 텐데.’

최 프로듀서도 나와 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구성원은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쉽네요.”

“그러게요. 그럼 헌터보이즈 단체곡은 기존에 연습하던 거 그대로 사용한다 치고. 데이브 솔로곡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일단은 오늘 데이브 씨하고 같이 곡 작업할 스태프들 모아서 회의 한번 가져 볼 생각입니다. 데이브 씨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먼저 생각을 해 보고, 차츰차츰 조율해 나가려고요.”

만반의 준비를 갖추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최 프로듀서.

열정이 가득하다는 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프로듀서님.”

“네? 왜요?”

최 프로듀서에게 꼭 알려 주고 싶은 주의 사항이 몇 개 있었다.

“데이브 녀석은 프라이드가 엄청 높거든요. 그 프라이드 살살 긁는 말 같은 건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아…… 그건 다른 사람들한테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들은 내용들이라서 나름 각오하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다면 다행이네요.”

이러다가 최 프로듀서조차 데이브하고 같이 일 못 하겠다고 하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 * *

연수하 대표와 함께 협회로 향했다.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헌터협회의 모습도 헌터 훈련소처럼 점점 바뀌어 가고 있었다.

뭐랄까, 이전에는 확실히 작전 본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요즘은 잘나가는 기업체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워낙 규모가 큰 조직이다 보니, 한꺼번에 해산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세계 각국 정상들이 모여서 이 헌터협회가 가진 영향력과 인프라를 최대한 다른 분야로 활용하게끔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요즘 협회장이 정치권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다니는 거였다.

연 대표와 함께 협회장이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어, 일찍 왔구만.”

협회장의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깔려 있었다.

“요즘 많이 바쁘신가 보네요, 협회장님.”

“나?”

“볼 때마다 몰골이 초췌하신 거 같아요.”

“아…… 그거 때문이냐.”

협회장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먼저 손님맞이용으로 마련한 소파에 앉았다.

“어제도 새벽 늦게까지 술자리가 있어서. 아직도 술이 덜 깬 기분이야.”

“그러면 좀 쉬셨다가 컨디션 괜찮을 때 저희를 부르셨어도 됐을 텐데.”

내가 오늘‘도’ 괜찮다고 말을 했지, 오늘‘만’ 가능하다고 말한 건 아니었다.

약속 시간 같은 건 언제든 다시 조율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장은 오늘을 강조했다.

“너하고 연 대표한테 꼭 말해 둘 게 생겨서.”

연 대표가 먼저 자신의 추측을 들려줬다.

“몬스터에 관련된 일입니까?”

“연 대표는 최근에 뭐 들은 게 있나 보구만.”

“예, 중국에서 이상한 현상이 목격되었다는 소문을 얼핏 들었습니다.”

이상한 현상?

내가 2박 3일 동안 미로 던전에 가서 서바이벌 아닌 서바이벌 촬영을 하고 오는 동안 무슨 일이 발생하기라도 했나 보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갑자기 시체들이 땅에서 튀어나와 사람들을 습격했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몬스터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나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헌터들은 단연 이렇게 답할 것이다.

언데드라고.

이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들을 자유자재로 소환하고 조종하던 존재가 있었다.

“네크로맨서에 관한 보고를 처음 들었을 때가 떠오르네요.”

동시에 안 좋은 기억도 오랜만에 같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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