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던전 탐험대 (4)
던전에서의 아침은 생각보다 일찍 펼쳐졌다.
새벽 6시에 모두 눈을 뜬 우리들은 어제 미처 돌지 못했던 지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침을 간단하게 빵과 수프로 때워서인지 시간이 조금밖에 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근처에서 밥 좀 먹고 갈까요?”
“그럽시다!”
탐험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은 추위와 배고픔이다.
혹시 몰라서 먹을 건 많이 챙겨 왔으니까.
이 자리에서 바로 식사 준비에 돌입했다.
이 식사 준비 역시 우리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해결해야 한다.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다 방송으로 나갈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서바이벌 전문 교육 수료자인 이아담이 먼저 나섰다.
“바람이 계속 부니까, 불이 꺼지지 않도록 가림막이 되어 줄 만한 걸 찾아서 막는 게 좋아 보입니다.”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저도요.”
필요한 재료는 나와 아이리스, 나빈이가 찾아오기로 했다.
혹시 몰라서 가져온 버프 아이템을 이용해서 공중으로 크게 도약했다.
부유 아이템도 있긴 하지만, 어두운 데다 실내인 공간에서 사용하기에는 위험했다.
그래서 나빈이와 스포츠웨어 광고를 찍을 때처럼 크게 점프를 하면서 주변을 이동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 우리 셋.
“이거면 되겠네.”
넓은 철판 쪼가리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마 이곳 던전을 토벌할 때 사용되었던 탄도 미사일의 잔해인 거 같은데.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도 이아담 못지않게 서바이벌 지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일부러 나서지 않았다.
이렇게나마 활약할 수 있는 순간을 줘야 나중에 조금이라도 방송에 나올 수 있지 않겠나.
그동안 이아담의 활약이 너무 없었다. 양성빈은 맏형으로서 우리들을 이끄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면서 적절하게 본인 분량을 챙겨 갔고.
윤선규나 신에리도 루즈할 수 있는 구간에서 자기들이 겪은 재미있는 썰들 같은 걸 풀면서 존재감을 어필했다.
나하고 아이리스, 나빈이는 헌터들이니까 굳이 방송 분량 욕심을 내지 않아도 알아서 PD가 잘 챙겨 줄 테고.
하지만 이아담은 그런 장면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일부러 그에게 일거리를 맡기기로 했다.
이아담도 우리의 배려를 얼추 눈치챈 모양인지, 식사 준비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후웅-!
어제 새벽에 느꼈던 이질적인 감촉을 품은 바람이 또 한 차례 내 전신을 훑었다.
뭐랄까.
마치…….
“나를 부르는 느낌인데.”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 촉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방향은 얼추 알겠는데.
‘혼자서라도 가 볼까?’
하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태오 오빠!”
저 멀리서 아이리스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빠른 속도로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되돌아갔다.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아 보였다.
“왜, 무슨 일이야?”
“이거 한번 봐 주실래요?”
손전등으로 구석진 곳을 가리키는 아이리스.
빛이 드는 곳에 영 안 좋은 장면이 보였다.
말라붙은 몬스터의 사체.
박 PD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아직 여기에 몬스터가 있는 건 아닐까요?”
내심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약간 느껴지는 거 같은데.
그러면 방송으로는 대박일 테니까 말이다.
박 PD도 내가 ‘강태공들 나가신다!’에 출연했던 편을 봤을 것이다.
낚시하러 갔다가 때아닌 몬스터와의 전투를 벌인 덕에 당시 ‘강태공들 나가신다!’는 역대급 시청률을 갱신했다.
그런 장면이 또 나와 준다면, ‘던전 탐험대’ 시청률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도 시청률을 1순위로 생각하다니.
뭐, PD도 우리가 있으니까 크게 위험하진 않을 거라서 그러는 거겠지.
PD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주 예전에 죽은 녀석입니다. 협회 측에서 뒷정리를 제대로 못 했나 보네요.”
“그, 그래요?”
피가 이미 다 말라붙었고.
이미 백골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당장 죽었다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했을 때 힘들었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가기 이전에 나도 여기에 개인적으로 승훈이 형이랑 같이 사전 답사를 오긴 했었는데.
그때도 몬스터들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 몬스터는 없다.
이게 불과 얼마 전에 내린 내 결론이었지만.
어제저녁부터 느껴지는 이유 모를 위화감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 * *
약간의 불안한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게 몬스터 때문인지 어떤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도 아니고.
그리고 어쩌면 내가 예민해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좀 든다.
그래서 촬영을 계속 진행하게끔 하기로 했다.
미로 지역을 거쳐서 던전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부터는 막다른 길이네요.”
“여기가 보스 몬스터가 있던 둥지입니다.”
내 설명에 모두가 기겁을 했다.
“여, 여기예요?”
“예. 근데 그렇게까지 강한 녀석은 아니었습니다. 설령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제가 다시 없애 버릴 수 있으니까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나 혼자로도 충분한데, 여기에 아이리스하고 나빈이까지 있으니까. 걱정은 아예 안 해도 된다.
“시간도 늦었는데, 여기서 자고 갈까요?”
내 제안에 사람들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먼저 결단을 내린 사람은 바로 박 PD였다.
“그렇게 하죠. 여기는 그림도 좋게 나오고. 몬스터는 확실히 없다고 태오 씨가 말씀하셨으니까. 다른 분들도 괜찮죠?”
약간의 께름칙함 때문에 쉽게 대답을 못 하는 출연자들이었지만, 그림이 좋게 나온다는 건 동의하는 모양인지 이내 박 PD의 말에 동의했다.
여기는 우리가 거쳐온 길목처럼 천장이 뚫려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바로 벽 전체가 다 투명한 광물 같은 걸로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체 발광 기능까지 있는 탓에 마치 반딧불이 수천 마리가 벽에 붙어 있는 것처럼 진귀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귀한 광경.
영상을 만드는 입장에서 이건 놓치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할 것이다.
윤선규가 빛나는 광물을 손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물었다.
“이건 여기에 그대로 놔두기로 한 건가요? 사파이어나 루비처럼 비싼 가격대에 팔 수 있을 거 같은데.”
“이 던전 자체가 협회 소유물이라서요. 만약에 다른 민간 업체한테 던전의 소유권을 넘긴다면, 아마 이 방부터 바로 채굴에 들어갈 겁니다.”
“그러면 떼돈 벌겠네요.”
“글쎄요. 그건 모르죠. 시장에서 과연 얼마에 가격이 측정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애초에 아이템이 무슨 원리로 능력이 발동되는지도 밝혀내지 못했는데.
이 광물이 어디에 사용되고 무슨 효과가 있는지, 어떻게 알까.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협회도 이걸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대화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신에리가 손뼉을 두 차례 치면서 우리들의 시선을 독점했다.
“그럼 슬슬 저녁 먹고 잘까요? 계속 걷기만 하니까 피곤하네요. 이번에도 아담 오빠가 요리하실 거예요?”
“그래야지. 기다려 봐. 오늘을 위해서 내가 맛있는 재료들 가져왔으니까.”
던전 탐험의 마지막 밤이 달콤한 고기 냄새와 함께 시작되었다.
* * *
오늘도 어제저녁처럼 불침번을 따로 두기로 했다.
양성빈, 이아담이 둘이서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낮에 있던 일이 신경 쓰여서 두 사람에 먼저 양해를 구했다.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볼일 보러 가시는 건가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니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마땅히 핑계 댈 게 없어서 대충 그렇다고 하고 잠시 자리를 떠났다.
어제, 오늘 이틀 동안 계속해서 나를 인도하는 듯한 바람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커다란 벽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막다른 길.
하지만 바람은 이 벽 너머로 불고 있었다.
“설마.”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내 손이 그대로 벽을 통과했다.
일루전 마법으로 감춰져 있던 공간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눈을 의심했다.
이제야.
이곳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다.
* *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곧장 박 PD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 보셔야 할 곳이 있습니다.”
“네? 어디요?”
2박 3일째 아침이 밝았으니, 촬영은 이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이대로 촬영을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다.
“카메라로 꼭 담아야 할 장면이 있거든요.”
“방송 분량이 안 나올까 봐 걱정이 되셔서 그러는 거라면, 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하거든요.”
“아니요. 이건 반드시 보셔야 합니다. 만약에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
박 PD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일행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빠르게 걸어가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맞춘 나빈이가 어디로 가는지를 물었다.
“뭘 발견하신 거예요, 선배님?”
“너도 보면 깜짝 놀랄 거다.”
나는 일행을 가짜 벽 앞에 세웠다.
그런 뒤, 어제 했던 것처럼 벽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쑥 통과하는 내 손.
사람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이건……?”
“마나로 만들어 낸 가짜 벽입니다. 들어오세요.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더 크게 놀라고 말았다.
넓은 공간.
그 안을 맴도는 초록색의 새들.
“모, 몬스터입니까?”
윤선규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아이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령이에요.”
“정령?”
“게이트가 열리면서 이곳으로 넘어온 건 몬스터만이 아니거든요. 정령들도 아주 가끔씩 보이긴 하는데…… 이렇게 많은 정령들이 모여 있는 건 저도 처음 봐요.”
정령들은 우리가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그들 역시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
게이트가 닫히고.
길을 잃은 정령들이 이곳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박 PD가 카메라 감독에게 어서 찍으라고 지시했다.
한편, 나빈이가 정령들을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이 정령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요?”
“돌려보내 줘야지. 저들이 살던 세계로.”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런 뒤, 천천히 입을 열면서 노래를 시작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발라드곡 중에 ‘안녕이라 말해 줄게’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정령들에게 들려줬다.
떠나는 그대여.
아쉬워하지 말아요.
어느 차원에 있든.
어느 공간에 있든.
내 마음은 당신과 늘 함께할 테니까요.
정령들이 내 노래에 따라 움직였다.
빙글빙글 돌면서 움직이더니, 그들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졌다.
노래는 그들을 원래의 세계로 인도해 주는 가이드가 되어 준다.
헌터들의 능력을 올려 줄 수 있는 힘을 지닌 내 노래라면.
정령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해 줄 것이다.
마지막 남은 새 한 마리가 나에게 인사를 하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히 자취를 감춘 정령들을 바라보면서.
내 노래도 끝을 맞이했다.
사람들이 전율에 손을 떨었다.
깊은숨을 토해 낸 나는 박 PD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집에 갈까요?”
오늘도 보람찬 촬영이 된 거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