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81화 (81/250)

제23장. 던전 탐험대 (2)

DN-219.

속칭 ‘미로 던전’이라고 불린다.

그곳을 클리어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내부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박 PD한테 첫 촬영지로는 아주 적합하다고 말을 했던 거였다.

나는 다른 출연자들과는 다른 포지션으로 섭외되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혹시나 몬스터가 나올 경우에는 내가 직접 나서야 하니까.

유명한 연예인인데, 여기에 몬스터까지 때려눕힐 수 있는 사람을 박 PD라면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출연료는 넉넉하게 챙겨 드릴게요.”

첫 미팅부터 박 PD가 내게 먼저 출연료 이야기를 꺼냈다.

딱히 출연료에 연연하진 않지만.

“감사합니다, PD님.”

뭐, 돈 많이 준다는데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대충 이 정도로 오늘의 미팅은 마무리를 짓도록 하고.

“사전 답사 끝난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시고요.”

박 PD 일행을 배웅해 준 뒤, 승훈이 형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승훈이 형이 소파에 앉자마자 감회가 새롭다는 어투로 말했다.

“던전에서 방송이라니. 게이트 한창 열릴 때에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그만큼 시대가 변했다는 뜻이겠지.”

나는 오히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헌터 말고도 일반인들 역시 알 권리가 있다.

던전, 몬스터, 아이템, 그리고 헌터에 대해서 말이다.

정부도 점점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씩 풀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방송 촬영도 허가해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태오야. DN-219, 정말로 안전하겠지?”

“아마도?”

솔직히 나도 장담은 못 한다.

게이트가 닫힌 이후에도 몬스터란 몬스터는 싹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지금도 계속 튀어나오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그래서 몬스터가 튀어나올 리 없다는 확신까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촬영 당일까지 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출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가서 아이템 좀 정비해 둬야겠네.’

촬영장에 가는 기분이 아니라,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기분이다.

* * *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던전 탐험대’가 편성되었다는 소식이 기자들을 통해 발 빠르게 공개되었다.

정규 편성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덜할 줄 알았는데.

정작 현실은 정반대였다.

딱 3회만 하고 마무리될 프로그램이니까, 제작 발표회도 안 가지고 바로 촬영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던전 탐험대’에 대한 기사들이 매일매일 쏟아졌다.

아직 공식 발표가 있기도 전에 기사를 통해서 이미 출연진에 대한 정보도 전부 공개되었다.

양성빈, 이아담 배우, 커스티 멤버로 활동 중인 윤선규, 방송인 신에리, 그리고 나와 아이리스, 홍나빈까지.

총 일곱 명의 출연자들이 ‘던전 탐험대’에 출연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기사에 아주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근데 파일럿 프로그램인데도 박 PD가 출연자들 섭외에 공을 굉장히 많이 들였네.’

양성빈, 이아담. 둘 다 대중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들이다.

커스티 멤버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신에리도 웹 예능과 케이블 채널을 넘나들면서 맹활약 중인 연예인이다.

화려한 라인업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박 PD가 이번에 크게 화제 몰이를 해서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이걸 계기로 ‘던전 탐험대’를 정규 편성으로 확정 지으려 한다고 말이다.

그런 의지가 굉장히 강하게 느껴진다.

‘시청률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겠지.’

‘던전 탐험대’에 관한 것 때문인지, 기자들이 나한테도 엄청 연락을 해 오고 있었다.

이런 연락이 올 때마다 제작진에게 물어보라는 말로 대충 둘러대고 끊으라고 미리 지시를 해뒀다.

아이리스와 나빈이 측도 동일하게 대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던전 안에서 2박 3일 동안 어떻게 지내지?’

방송 분량이 나오려나?

이게 가장 큰 걱정이다.

* * *

연예계에 데뷔하면서 나는 기자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여러 차례 느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촬영 일자는 또 어떻게 알아냈는지, DN-219 입구에서부터 이미 기자들이 포토 라인을 형성한 채 우리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었다.

스태프들이 기자들을 향해 외쳤다.

“촬영해야 하니까, 비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촬영에 방해돼요!”

박 PD도 기자들의 열정적인 취재 열기에 당황한 모양인지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최대한 조용히 진행하려고 했는데, 다 틀렸네요.”

“그래도 기자들이 던전 안쪽까지는 못 들어올 겁니다.”

DN-219, 소위 미로 던전이라 불리는 이곳은 일반인들도 출입이 가능하긴 하지만, 아무 때나 와서 들어갈 수 있다는 뜻까진 아니었다.

미로 던전을 방문하고 싶다고 신청을 하고, 이 신청에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출입 허가증이 발급된다.

이 발급증을 가지고 있어야 입장이 가능해진다.

이미 우리들은 전부 출입 허가증을 받아 둔 상황이었다.

박 PD가 스태프들과 긴급회의를 가진 끝에 우리들에게 바뀐 사항에 대해 일러 줬다.

“촬영은 DN-219에 들어가자마자 시작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몰라서 서울에서 강릉으로 출발하기 전에 오프닝을 촬영하고 갈 거라고 했던 박 PD의 혜안이 빛을 발했다.

만약에 여기서 촬영을 할 생각이었다면, 시작부터 단단히 꼬였을 것이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방송 짬밥은 무시할 수 없음을 느낀다.

마치 동굴처럼 생긴 던전 입구.

앞서 걸어가던 양성빈 배우가 던전 안쪽에서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후, 분위기 요상하네.”

부랴부랴 챙겨 온 겉옷을 걸쳤다.

나도 나름 많은 던전들을 돌아봤지만.

다들 공통점이 있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 대부분은 춥더라고요. 그러니까 안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성빈 씨처럼 겉옷 가져오셨으면 여기서 미리 입고 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이건 출연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카메라, 조명 등, 장비를 들고 있는 스태프들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스태프들이 내 말에 얌전히 따르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나만 한 전문가가 없으니까.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

박 PD가 우리에게 신호를 줬다.

슛 들어가자마자 최연장자이자 진행을 맡게 된 양성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침내 던전 입구에 도착했는데요. 여기가 말로만 듣던 그 던전 맞죠?”

내가 가이드 겸 보디가드 겸 출연자 역할을 맡고 있었기에 대답도 해 줘야 했다.

“예, 맞습니다.”

“어마어마하네요. 영상으로도 보기 힘든 곳이라고 들었는데…….”

레이드 시대 때에는 이보다도 더 살벌했던 곳이다.

지금이야 몬스터들이 사라지고. 그래서 그냥 평범한…… 아니, 평범하다기보다는 좀 더 큰 동굴 느낌이 진하게 나긴 하지만, 이전에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이아담 배우가 나, 아이리스, 나빈이 이렇게 헌터 출신 셋에게 물었다.

“세 분 다 여기 와 보신 적 있나요?”

아이리스와 나빈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희는 다른 곳에서 몬스터가 나왔다고 해서 여기는 못 왔어요. 이 던전은 저희들 중에서 선배님만 와 봤어요.”

“클리어한 것도 태오 오빠예요.”

아이리스가 마치 자기 일을 자랑하는 것처럼 어깨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출연자들이 존경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눈빛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리액션이였다.

이거 가지고 딱히 자랑하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여기는 규모만 클 뿐이지, 내 헌터 생활 일생일대의 위기가 펼쳐질 만큼 난도가 있는 던전은 아니었다.

등급을 나눈다면, 여기는 초급 던전이라고 볼 수 있다.

전투력이 높은 몬스터도 없었고.

하지만 잡몹들의 숫자가 너무 많은 탓에 현장을 정리하는 데 상당히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 오니까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손전등을 켜고 앞으로 향하는 우리들.

조명 장비만으로는 주변을 비추기 턱없이 부족했다.

‘이 앞으로 쭉 가다 보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 때였다.

“으아아악!”

갑자기 윤선규가 비명을 질러 댔다.

“왜, 왜 그래요, 오빠!”

“뭐야! 몬스터라도 튀어나왔어?”

카메라 감독들 역시 화들짝 놀랐는지 앵글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박 PD도, 스태프들도 모두가 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소리를 지른 윤선규가 그대로 경직된 채 말했다.

“내, 내 팔에…… 뭐, 뭔가가 느껴지는데……! 미, 미끄럽고 말캉하고…….”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내가 손전등으로 윤선규의 팔을 비췄다.

“개구리네요.”

“……예?”

“여기요. 개구리.”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가 윤선규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나 개구리도 무서운 모양인지 여전히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닥을 비춰 보니, 개구리뿐만 아니라 쥐라든지, 길고양이 같은 작은 생물들도 보였다.

“몬스터들이 사라진 던전은 동물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보금자리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가끔씩 멧돼지 같은 것도 안에서 출몰하고 그래요.”

“그, 그렇습니까.”

“예. 그렇다고 방심은 하지 마시고요. 멧돼지도 충분히 위협적인 동물이니까요. 다시 앞으로 가시죠.”

그나저나 여기도 많이 변했구나 싶다.

풀도 자라고, 바람도 솔솔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이 통한다는 건…….’

던전 안쪽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천장이 뻥 뚫린 공터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작은 생태계가 펼쳐졌다.

“와……!”

“세상에! 이게 뭐야?”

출연자들은 처음 보는 광경에 크게 놀랐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작은 야생의 세계.

신에리가 자신도 모르게 본인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었다.

“무슨 드라마 촬영 현장처럼 보여요.”

신비함이 감도는 곳이었다.

거대하게 뚫려 있는 천장.

그 위로 파란 하늘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이제는 손전등을 꺼도 될 정도로 밝았다.

이아담이 거의 축구장 크기만큼 뻥 뚫린 넓은 구멍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구멍은 왜 뚫려 있는 걸까요?”

양성빈이 자신의 추측을 들려줬다.

“몬스터들이 자기들 빠져나가기 유리하게 하려고 일부러 뚫어 놓은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름 일리 있는 추측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요. 저거, 몬스터들이 뚫어 놓은 거 아닙니다.”

아쉽게도 정답은 아니다.

“태오 씨는 알고 있나요?”

“예.”

“역시, 전문가다우시네요.”

“전문가라서 알고 있다기보다는…….”

모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저 구멍.

“제가 만든 거거든요.”

“……예?”

“입구로 걸어 들어가기 귀찮아서, 일부러 천장에 구멍 하나 시원하게 뚫어 버렸습니다. 저게 던전 내부로 진입하기 훨씬 쉬워서요.”

“아, 아하…… 그러셨군요.”

출연자들의 입에서 어색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왠지 나와 슬쩍 거리를 벌리려고 하는 듯한 느낌인데.

내가 착각한 거지?

출연자들이 그렇다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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