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80화 (80/250)

제23장. 던전 탐험대 (1)

내가 바라는 요구 조건은 간단하다.

출연진을 구성할 때 일반 연예인으로만 꾸리지 말고, 나처럼 헌터이자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몇몇 포함시킬 것.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였다.

물론 헌터와 연예인, 두 가지 일을 병행해서 활동하는 사람은 우리 HT 엔터테인먼트와 계약 맺은 이들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나 말고 우리 소속 연예인들도 같이 캐스팅해라. 이런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게 가장 중요하다.

“철저하게 안전이 검증된 던전으로만 골라서 촬영 장소로 삼을 것. 첫 번째는 안 된다고 해도, 두 번째는 무조건 성사시켜 줘. 만약이 이것마저도 안 하겠다면, 그냥 거절할게.”

승훈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았다고 답했다.

그나저나 ‘던전 탐험대’를 기획한 이 PD 양반. 담이 큰 건지, 아니면 던전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몰라서 그런지 알 수가 없으나, 참 대범한 인물이긴 하다.

‘몬스터라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 일반인들도 있을 텐데.’

그 몬스터 둥지를 직접 탐험하는 프로그램을 생각해 낼 줄은 몰랐다.

위험하긴 하지만, 만약에 이게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문제가 없다고 하고 그대로 송출이 된다면, 확실히 예능계에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몬스터나 던전은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미지의 존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쪽에서 내 요구 사항을 듣고 어떻게 나올지 한번 지켜봐야겠어.’

흥미진진한 기다림이 펼쳐졌다.

* * *

걸 그룹 쪽은 이제 더 이상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활동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멤버들도 점점 방송에 익숙해지고 있고.

아무런 걱정이 없어졌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보이 그룹 쪽이겠지.’

오랜만에 멤버들을 다 함께 불러서 식사라도 할까 했었는데.

한겨울도 아닌데, 식탁 근처에 냉기가 불어오고 있었다.

“서로 싸우기라도 했냐?”

정곡을 찌른 걸까.

내 말에 네 남자들의 어깨가 동시에 한 차례 들썩였다.

멤버들 중에서 가장 나서기를 좋아하는 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데이브 형하고 저희하고…… 추구하는 방식이 많이 다른 거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속 연예인의 고충을 들어 주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상세하게 풀어서 설명해 보라고 요구하자, 준서가 데이브의 눈치를 살폈다.

데이브는 준서나 딜런, 니암이 현역으로 활동할 때 말도 못 붙일 만큼 격차가 크게 나는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준서 쪽 랭크는 B, C밖에 안 되고.

데이브는 내 바로 한 단계 아래인 SS랭크니까.

그만큼 헌터계에서 받는 대우도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애들을 대신해서 데이브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들어 봐도 돼?”

“……마음대로 해라.”

허락이 떨어지자, 봉인이 풀린 것처럼 준서의 입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이브 형하고 저희하고, 능력 차이가 심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훈련을 할 때, 저희 같은 경우에는 낮은 단계조차도 허덕이는 반면에 데이브 형은 이거 가지고 목이 단련이 안 된다고, 더 강한 훈련을 자꾸만 요구하니까…… 저희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요.”

데이브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이 마인드였기에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는 멤버들이 많이 답답해 보일 것이다.

이들을 한 그룹으로 묶기로 할 때부터 이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어렴풋이 예상하긴 했었다.

그렇다고 데이브를 솔로로 데뷔시키고, 남은 세 명을 그룹으로 묶어서 따로 데뷔시킨다?

그것도 그림이 영 살지 않는다.

넷은 저마다 다른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

이 다양한 캐릭터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그룹으로 묶여서 움직일 때.

여기서 오는 시너지가 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을 그룹으로 데뷔시키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온 멤버들을 하나처럼 움직이게 한다는 건 꽤나 많은 부담을 초래했다.

‘헌터걸스 쪽은 문제없었는데.’

데이브의 포지션이 딱 나빈이였다.

그러나 나빈이의 경우에는 성격이 워낙 유하기도 해서, 멤버들이 못하는 게 있으면 본인이 알아서 낮추고 가급적이면 같이 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만약 데이브라면?

‘어림도 없지.’

녀석은 자기 자신에게도 한없이 엄격한 남자다.

그래서인지 타인한테도 똑같이 엄격하다.

그렇다고 데이브를 솔로로 데뷔시킨다?

‘그것도 좀…….’

안 좋다는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혼자 무대에 섰을 때보다, 이렇게 넷이서 같이 무대에 올랐을 때가 더 보기 좋아 보인다는 뜻이다.

‘최 프로듀서가 머리 좀 많이 아프겠어.’

내가 아는 걸 최 프로듀서가 모를 리 없을 테고.

나중에 한번 진지하게 날 잡아서 이야기해 봐야겠다.

계속 이런 식으로 마찰이 생긴다면, 끝까지 그룹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어색한 합석이 계속되려고 할 무렵.

승훈이 형이 우리를 찾아왔다.

“태오야, 밥 다 먹으면 나 좀 보자.”

“뭔 일 생겼어?”

“‘던전 탐험대’ 제작진한테서 답신 왔어. 그거 이야기해 주려고.”

‘던전 탐험대’라는 말을 듣자마자 준서가 관심을 보였다.

“그건 어떤 프로그램이에요?”

“던전 탐험하는 예능이라는데, 나도 정확한 건 몰라. 아직 계획 단계라서, PD한테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봐야 돼.”

“부럽다. 나도 빨리 데뷔하고 싶은데…….”

준서는 딱 봐도 방송 체질이다.

특히 예능에 나가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예능에 나가기 전에 먼저 ‘데뷔’라는 커다란 산을 넘어야 한다는 거지만 말이다.

“일단 데뷔만 무사히 해. 나머지는 내가 너 하고 싶은 거, 뒤에서 팍팍 밀어줄 테니까.”

“네, 형!”

이렇게 오늘도 멤버들에게 의욕 +1을 더해 주고.

“나 먼저 일어날게.”

과연 그쪽에서 어떤 대답을 했을지.

당장 확인하러 가야겠다.

* * *

“결과부터 말해 주자면, 그쪽에서 네 의견 다 수용하기로 했어.”

“뭐, 어려운 조건은 아니었으니까.”

쉽게 들어줄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여기에 추가로 전달받을 사항이 더 있었다.

“미팅 일자 잡아 보자고 그러더라. 그쪽에서 우리 편한 날짜 말해 주면, 이쪽으로 오겠대.”

“그래? 그러면…… 내일 바로 잡아도 괜찮을까?”

“내일? 갑작스럽긴 한데. 알았어, 일단 말해 볼게.”

“어. 그리고 나하고 같이 나갈 멤버도 정해 봐야 할 거 같은데. 그것도 우리한테 선택권이 있는 거야?”

“글쎄. 그것까진 못 들었는데. 미팅하면서 이야기 나눠 볼래?”

“그게 좋겠어.”

이번 기회에 예능에 나가고 싶어 하는 준서를 데리고 나갈까?

아니,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준서만 특별 대우를 해 주는 것처럼 보이면, 다른 멤버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여기서는 무난하게 헌터걸스 멤버들을 데리고 나가는 게 더 좋겠지.

……아.

“생각해 보니까 한 명 더 있었구나.”

“응? 뭐가?”

“헌터면서 우리나라에서 연예인 활동도 하고 있는 사람.”

나, 헌터걸스, 헌터보이즈 멤버들로만 한정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멤버들보다도 훨씬 먼저 우리와 계약을 체결했던 인물이 있었다.

“오랜만에 아이리스한테 연락해 볼까.”

* * *

아침 일찍 회사를 찾은 나는 오전부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서둘렀다.

잠시 뒤.

똑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승훈이 형이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고서 내게 말했다.

“제작팀 도착했대.”

“알았어, 잠깐만. 이것만 처리하고 갈게.”

회사에 온 김에 밀린 업무들도 같이 할 생각이었다.

하다가 중간에 관두고 가면 나중에 까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마무리만 짓고 얼른 나오기로 했다.

미팅룸에 들어서자, 마침 우리 쪽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려던 ‘던전 탐험대’ 스태프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오 씨! 안녕하세요, 박민진 PD라고 해요.”

30대 후반의 여성이 내게 먼저 명함을 건넸다.

“강태오입니다. 일단은 앉으시죠. 마실 것도 좀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아까 직원분이 마실 거 가지고 온다고 하셨거든요.”

“아, 이미 끝났군요.”

역시 우리 직원들은 빠르다.

안 그래도 여기 제작진에게, 특히나 던전을 탐험한다는 내용의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낸 박 PD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역시 방송 허가에 관한 것이다.

“송출해도 되는 건 확실한 거죠?”

“네. 이미 여러 방면으로 문의를 넣고 확답까지 다 받아 냈습니다.”

“고생하면서 열심히 찍었는데, 던전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면서 방영 불가 판정을 받으면 큰일이니까요. 그러면 출연자도 그렇지만 PD님께서 가장 타격이 크시지 않겠습니까.”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하긴, 이쪽 방면에 대해서는 저보다 태오 씨가 더 잘 아실 테니까요.”

지금까지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일이다.

그만큼 신중하게,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참고로 저희 프로그램이 아직 정규 편성된 건 아니고요. 일단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3화 정도까지만 촬영할 예정이에요.”

“예. 그것도 승훈이 형…… 저희 매니저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3회 동안 출연하실 분들도 이미 고려해 뒀어요. 여기에 태오 씨가 추천하시는 분만 넣으면 돼요. 혹시 생각해 두신 분이 계신가요?”

“예, 있습니다.”

나와 같이 ‘던전 탐험대’에 출연할 후보. 아니, 후보들의 이름을 박 PD에게도 알렸다.

“아이리스하고 나빈이. 이렇게 둘 어떻습니까?”

“좋네요. 두 분 다 유명하신 분들이고. 그리고 헌터로서도 활약이 대단하셨으니까요. 다만 요즘 많이 바쁘시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어제 스케줄 확인까지 미리 다 해 뒀습니다. 둘 다 오케이라고 하더라고요.”

나빈이에게 아이리스하고 나가겠다고 말하고, 반대로 아이리스에겐 나빈이하고 나갈 거라고 하니까,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저도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갈게요!’라고 답했다.

이렇게 해서 손쉽게 일정이 조율되었다.

박 PD의 입가에 아주 짙은 미소가 번졌다.

PD 입장에선 당연히 좋은 소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잘나가는 셀럽이 두 명이나, 게다가 본인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알아서 출연자로 확정되었으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아이리스 양하고 홍나빈 양도 출연자 명단에 포함시켜 둘게요.”

“네, 알겠습니다.”

다른 출연자들은 아직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니, 확정되는 대로 나한테 다시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 밖에 언제부터 촬영 일정이 시작될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구체적인 내용들을 우리에게 알려 줬다.

2박 3일 동안 던전 내부에서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는 것. 생존 서바이벌 콘셉트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어느 던전’에서 촬영을 하느냐였다.

“1회 촬영 장소는 어디인가요?”

“강릉에 있는 던전으로 할까 고민 중인데, 어떨까요?”

“DN-219군요.”

지역만 들어도 바로바로 코드가 떠올랐다.

“나쁘지 않네요.”

첫 촬영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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