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79화 (79/250)

제22장. 헌터걸스, 데뷔 (5)

1시간 반가량 걸렸던 헌터걸스의 데뷔 쇼케이스 무대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모양인지, 멤버들은 모든 힘을 쏟아붓고 온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기특함이 먼저 밀려왔다.

“다들 잘했어. 시청자들 반응 보니까 엄청 좋더라. 벌써부터 대박 조짐이 보여.”

슬혜가 고개만 빼꼼 내밀고서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이에요? 혹시 저희들 위로해 주려고 일부러 거짓말하시는 건 아니죠?”

“내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하겠어? 그리고 어차피 내일 음원 순위 보면, 결과 바로 알 텐데.”

나도 처음에는 스태프들이 생방송 반응 좋았다고 말을 여러 차례 해 줬는데, 정작 나는 실감이 잘 안 났다.

하지만 그다음 날, 내 음원이 공개되자마자 각종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순위권에 속한 것을 보고 스태프들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대도 실수 없이 잘했고. 지금까지 내가 봤던 무대 중에서 가장 완벽했어. 리허설 때보다도 더 잘하던데?”

실전에 매우 강했다.

하지만 아직도 긴장이 떠나질 않았는지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멤버들의 반응은 굉장히 미적지근했다.

아직도 꿈속에 있는 거 같은 느낌일 것이다.

나도 경험해 봐서 잘 안다.

“이제 그만 정신들 차리고! 다들 수고했으니까,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승훈이 형, 우리 예약해 둔 가게 있지? 그쪽으로 가자.”

“오케이, 알았어. 대표님도 가실 거죠?”

연 대표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빈이도 간다고 했었고.

고생한 멤버들과 특별 MC를 위해서 오늘은 내가 제대로 대접해야겠다.

* * *

요즘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랬던 걸까.

새벽 늦은 시간까지 술 마실 일이 근래에 들어서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어제.

오랜만에 취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덕분에 숙취가 내게 반갑다고 아침부터 와락 안겨 오는 느낌이 들었다.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내 머리를 달랬다.

냉수라도 마시고 정신 좀 차리려고 거실로 나왔는데.

익숙한 인물 둘이 소파와 거실 바닥에 각각 널브러져 있었다.

한 명은 승훈이 형이고.

다른 한 명은 연 대표였다.

그제야 어제 일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둘 다 술에 너무 곯아떨어져서 내가 우리 집으로 데려왔었지.’

저대로 보내면 혼자서 집에 못 돌아갈 거 같아서 임시방편으로 내 집에서 재우기로 했었다.

‘아침에 스케줄이 없어서 다행이네.’

우리 회사 대표와 매니저가 동시에 녹다운이 되었는데, 나 혼자서 움직이기가 좀 애매하지 않나.

대신, 스트리밍 플랫폼에 접속해서 어제 음원이 처음으로 공개된 헌터걸스의 노래 순위를 확인했다.

‘어디 보자…….’

헌터걸스의 ‘In the world’가 각각 3위, 5위, 2위에 랭크되었다.

‘홍보 많이 한 효과가 있네.’

내가 아이디어를 냈었던 웹 예능 조회 수도 높았고.

헌터걸스 데뷔에 관한 기사들도 상당히 많이 쏟아졌다.

데뷔하기도 전에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은 걸 그룹은 헌터걸스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졸지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걸 그룹이 되어 버린 우리 헌터걸스.

첫 헌터 아이돌 그룹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문제는 보이 그룹 쪽인데.’

헌터걸스가 이렇게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는데.

후속 그룹이 온갖 문제를 다 터뜨리고 다니면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면 큰일이지 않은가.

조만간 헌터보이즈 멤버들과 개별 면담이라도 진행해 봐야겠다.

* * *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던 헌터걸스.

오늘은 내가 출연하는 가요 무대에 오르기 위해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헌터걸스에게 있어서 첫 가요 프로그램 출연이라는 의미가 있는 날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슬혜에게는 이날이 기억에 남는 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스아티지도 오늘 출연한다고 했었지?”

나와 같은 대기실에 앉아 있던 슬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아티지는 GSS를 통해 데뷔하게 된 신인 걸 그룹이다.

리더는 GSS가 방영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굳건하게 1위의 자리를 지켰던 송유별이 맡고 있다.

“유별 씨하고는 인사 나눴어?”

“아니요. 아직 현장에 안 온 거 같더라고요. 앞에 일정이 타이트하게 끝날 거 같다고, 아마 스아티지는 오자마자 바로 리허설부터 시작할 거라고 스태프한테 들었어요.”

“그쪽도 바쁘네.”

스아티지는 헌터걸스보다 2주 먼저 데뷔했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신인 동료이자 경쟁자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도 스아티지와 헌터걸스의 노래가 서로 1, 2위를 다투는 중이다.

나는 앨범 낸 지 좀 된 터라 두 그룹에 비해서 순위는 낮다.

그래도 아직까진 5위권 안에서 계속 버티고 있으니까, 딱히 아쉬움은 없다.

“가요 프로그램 처음 출연하면 선배 가수들한테 한 번씩 쭉 인사 돌려야 하니까, 조금 있다가 멤버들하고 같이 매니저 따라서 다니도록 해. 그때 유별이하고도 따로 인사 나누고.”

“네, 알겠습니다, 이사님.”

“그래, 그럼 고생하고.”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를 시켜 주고 싶은데.

지난번에 내가 데뷔할 때처럼 오히려 인사를 받아야 하는 선배 가수들이 나를 보면서 역으로 같은 무대에 서게 되어서 영광이라고 그럴까 봐, 참기로 했다.

“유별 씨하고 인사할 때, 그렇다고 서로 펑펑 울고 그러진 말고. 메이크업 다시 받아야 하니까. 알겠지?”

슬혜가 내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 * *

오랜 기다림 끝에 시작된 촬영.

생방송이 아니라 녹화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부담감은 덜했다.

중간에 방송 사고가 나기라도 하면, 편집하면 되니까.

세 번째로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나는 대기실 안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 화면 앞에 자리를 잡았다.

모니터링을 통해서 다른 가수들의 무대를 살펴볼 수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그룹은 둘이었다.

우리 헌터걸스의 무대하고.

그리고 앞으로 계속 맞붙게 될 라이벌 그룹, 스아티지의 무대.

먼저 스아티지의 무대가 펼쳐졌다.

GSS 특별심사위원 자격으로 녹화에 참여했을 때 송유별의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건 여러 차례 봤었다.

지금도 그럴까?

굳이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센터에 선 송유별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그때보다 훨씬 성장했네.’

하지만 우리 헌터걸스도 이에 못지않았다.

데뷔 무대에서 보여 준 것보다 훨씬 뛰어난 퍼포먼스로 관중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슬혜가 특히나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무대를 마치고 퇴장하는 슬혜가 누군가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상대가 누군지, 왠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아마 송유별이겠지.’

이번 녹화 때 누가 1위를 차지할지 벌써부터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1위 발표를 위해 오늘 녹화에 참여한 모든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먼저 1위 후보부터 만나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MC의 외침에 따라 대형 화면에 1위 후보 두 팀의 정체가 공개되었다.

스아티지.

그리고 헌터걸스.

“오늘은 걸 그룹 맞대결이네요!”

“데뷔하자마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두 그룹.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요!”

“결과, 보여 주세요!”

여러 항목의 수치들이 표기되기 시작했다.

두구두구두구.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BGM이 깔렸다.

모든 점수를 합산한 결과.

“이번 주 영예의 1위는……!”

“헌터걸스입니다! 축하드려요!”

말 그대로 접전이었다.

한 끗 차이. 아슬아슬한 점수 차로 처음 1위에 올라서게 된 헌터걸스.

멤버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리더인 나빈이가 대표로 시청자들에게 수상 소감을 전했다.

“먼저 저희를 믿고 끝까지 응원해 주신 회사 관계자 여러분들. 매니저 언니, 프로듀서님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태오 선배님,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현장에 응원하러 온 팬들이 나빈이의 기쁨으로 물든 멘트에 뜨거운 환호성으로 보답했다.

1위를 차지한 팀의 앙코르 무대를 위해 모든 출연자들이 퇴장했다.

그 전에, 멤버들에게 축하 말을 직접 전해 주기로 했다.

“1위 축하해.”

“감사합니다, 이사님!”

“다 이사님 덕분이에요.”

“저희, 정말로 열심히 노력할게요!”

그렇게 해 준다면야 당연히 나야 좋지.

멤버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송유별, 그녀가 슬혜와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강하게 슬혜를 끌어안아 줬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가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은지,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비록 다른 그룹에 속해 있지만.

그래도 데뷔라는 이름의 꿈을 이뤘으니까, 그걸로 됐다.

이제부터는 각자만의 새로운 꿈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나도 저렇게 마음을 나눌 친구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뭐, 대신에 누나도 있고, 승훈이 형도 있고, 연 대표나 협회장, 나빈이나 아이리스도 있으니까.

데이브는…… 아직 잘 모르겠다.

* * *

TV를 틀면 한동안 헌터걸스에 관한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 회사가 배출한 걸 그룹이 상당한 화제 몰이를 하고 있음을 뜻했다.

이번에 음악 프로그램에 나가서 1위를 차지한 것도 크게 한몫을 했다.

벌써부터 각종 프로그램에서 러브 콜이 쇄도하고 있다.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될 정도.

마치 내가 데뷔했을 때 초창기 시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헌터걸스 쪽으로만 섭외 요청이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걸 그룹 프로젝트가 빵 뜸과 동시에 나도 의도치 않게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었다.

이전에도 출연 요청이 많이 들어오긴 했었지만, 헌터걸스가 데뷔한 이후부터 체감상 1.5배 정도가 더 늘어난 기분이다.

이 중에서 이제 막 기획 단계에 접어든 신생 프로그램 하나가 내 관심을 사로잡았다.

“형, 이거 봤어?”

“이게 뭔데?”

승훈이 형한테 제작진이 보내온 팩스를 그대로 건네줬다.

프로그램에 대한 개요와 제작진에 관한 정보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프로그램 제목은 ‘던전 탐험대’.

콘셉트가 상당히 특이했다.

게이트가 사라져도 몬스터가 침공했던 흔적은 여전히 지구상에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던전이라는 존재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도 던전이 목격되었다.

지금까지 파악된 던전의 개수만 하더더라도 세 자릿수에 달했다.

개인적으로 던전은 우리 인류가 얼마나 치열하게 몬스터들과 싸워서 살아남게 되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닐까 싶다.

‘이 던전을 하나하나씩 탐험해 보자!’라는 게 바로 ‘던전 탐험대’의 콘셉트였다.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고, 안전이 확보된 던전들에 한해서 몇 개는 일반인들의 방문을 허용했다.

그럼에도 방송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그런데 두 달 전, 이것마저 풀리게 되었다.

“재미있겠는데?”

내가 흥미를 보이자, 승훈이 형이 ‘답장할까?’라고 물었다.

“어, 대신에 조건 몇 개만 걸어 달라고 해 줘.”

여기에 내 입맛에 맞는 것들을 추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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