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78화 (78/250)

제22장. 헌터걸스, 데뷔 (4)

정기 보고회가 끝나자마자 나는 연 대표와 함께 협회장의 호출을 받고 이동했다.

협회장은 우리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갸우뚱했다.

“데이브는? 이렇게 둘이 부르면, 데이브도 같이 올 줄 알았는데.”

“요즘 데뷔 준비 때문에 정신없을 겁니다.”

“아, 바쁜가 보구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데이브한테 반드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부른 건 아니었나 보다.

협회장이 직접 우리들에게 차를 대접했다.

“한창 바쁠 텐데, 오늘 내 부탁까지 들어주느라 고생했어.”

“아닙니다. 협회장님이 여러모로 도와주신 덕분에 저하고 같은 능력을 지닌 헌터들하고 무사히 계약도 맺을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여러모로 지원도 많이 받게끔 도와주고 계시니까요.”

우리 HT 엔터테인먼트의 자금력이 강한 데엔 헌터협회의 도움도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

헌터협회가 중간에 다리가 되어 준 덕분에 정부에서 빵빵한 지원도 받을 수 있었고.

회사를 운영하는 데에도 상당히 편했다.

그래서 우리도 협회가 필요하다고 하면, 웬만하면 도와주려고 나서는 편이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곧 자네들이 선보일 새로운 걸 그룹 프로젝트에 매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이유는 내가 말 안 해도 알고 있겠지?”

“예, 압니다.”

여태껏 헌터들은 내 노래에만 의지해 왔었다.

하지만 내 노래가, 내 목소리가 취향이 아닌 헌터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들까지 포괄적으로 전투력을 끌어올려 주기 위해 시작된 새로운 프로젝트들.

가장 먼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걸 그룹, 헌터걸스가 얼마만큼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여기에 모든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그래서, 타이틀곡은 잘 뽑혔어?”

연 대표가 슬쩍 나를 바라봤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힘차게 답했다.

“데뷔하면, 무조건 1위 찍고 시작할 겁니다.”

“역시 우리 태오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언제나 보기 좋단 말이지.”

준비 기간은 매우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전 압축’ 연습을 통해서 지금 당장 무대에 세워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까지 성장시켰다.

그래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올 한 해, 헌터걸스가 헌터계와 가요계, 둘 다 뒤흔들 돌풍의 핵이 될 거라고.

협회장이 찻잔을 내려놓더니, 우리를 부른 진짜 목적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혹시 괜찮다면…… 헌터걸스 데뷔 앨범 한정판, 나한테도 몇 개 주면 안 되겠나?”

“예?”

“아니, 내 조카가 그거 구하려고 했는데, 이미 다 매진되어 버렸다고. 그래서 삼촌이 좀 구해다 줄 수 있겠냐고 하도 졸라대서. 그래서 부탁 좀 하려고.”

이거, 저번에도 비슷한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로만 듣던 데자뷰인가?

그래도 협회장이 이렇게 직접 부탁하는데, 딱 잘라 거절하기에도 애매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고맙다.”

협회장도 참 힘들겠구만.

뭐, 그래도 몬스터 때문에 심각한 표정으로 사람들이랑 밤낮으로 회의하고, 그런 것보다 차라리 이런 부탁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평화의 시대로구만, 참말로.

* * *

오전에 잠깐 방송국에 들른 나는 2시간 남짓한 짧은 녹화를 끝내고 승훈이 형과 함께 회사로 향했다.

지하 주차장에 진입하자마자 승훈이 형이 ‘뭐지?’ 하는 말을 흘리면서 나를 찾았다.

“태오야, 오늘, 우리 회사에서 뭐 촬영 같은 거 한다고 했었냐?”

“촬영? ……아, 있어.”

스태프들이 두 명의 여성을 따라 같이 이동하고 있었다.

데뷔를 앞두고 있는 나빈이와 슬혜였다.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둘은 우리 회사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사담을 나눴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이런 대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담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양 팀장한테 말했던 그 웹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나를 보자마자 나빈이가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자연스럽게 나빈이, 슬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섰다.

“촬영 중이야?”

“네, 안 그래도 선배님 이야기도 하려고 했었는데, 타이밍이 좋네요.”

“무슨 이야기? 설마 내 뒷담화 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

“카메라가 바로 앞에 있는데, 어떻게 뒷담화가 되겠어요. 앞담화죠.”

헌터 활동을 잠시 접고 한창 방송 활동에 매진했던 그 시절의 나빈이는 뭐랄까, 어색해하는 티를 자주 보여 주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빈이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내 말을 받아 내기도 하고. 입담이 많이 늘었다.

슬혜도 GSS 시절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자연스러운 미소를 연신 유지했다.

이게 다 특훈의 성과다.

“저희, 지금 밥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구내식당 가는 거지?”

“네.”

“그래, 가자.”

원래는 승훈이 형하고 같이 밖에 나가서 국밥이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승훈이 형도 카메라 뒤에서 내게 괜찮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안 그래도 나는 기회가 될 때, 우리 구내식당을 사람들에게 한번 자랑하고 싶었다.

“여기가 저희 식당입니다. 뷔페식으로 되어 있고요. 호텔 조리장으로 일했던 분들이 모든 메뉴를 직접 정성 들여서 조리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고급 뷔페 식당 부럽지 않을 만큼 깔끔한 인테리어와 많은 음식 가짓수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도 웬만하면 여기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나 외부 일정이 하도 많다 보니, 생각보다 구내식당에서 많이 먹진 못한다.

대신에 우리 직원들, 우리 소속 연예인들이 마음껏 먹고 다닐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쟁반 위에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많은 양의 음식들을 담았다.

그러나 나빈이와 슬혜가 가져온 쟁반은 크기에 비해 굉장히 초라한 내용물을 담고 있었다.

“이것밖에 안 먹는 거야?”

“선생님이 데뷔 전까지 체중에 신경 써야 한다고 하셔서 식단 조절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래? 내가 보기에는 지금도 말랐는데.”

“원래 남자들이 보는 시선과 여자들이 보는 시선이 달라요.”

그렇다면야 뭐.

나도 많이 좀 먹으라고 더 이상 강요하진 않기로 했다.

몸매 관리는 연예인으로서 필수 과목이니까.

식사 시간이지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 때문에 조용히 밥만 먹을 수는 없었다.

방송 분량을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말을 계속해야 했다.

“사오리하고 이사벨라는?”

“보충수업 받고 있어요. 보컬 쪽으로요. 그쪽도 촬영팀이 따로 있어서 같이 찍고 있을 거예요.”

관찰 예능이라는 게 진짜 사생활이라는 것이 없구나.

해피모드 멤버들의 기숙사에 수많은 무인 카메라들이 설치되어 있는 것만 봤을 때에는 체감이 잘 안 됐었는데.

내가 이렇게 직접 당해 보니까(?) 알 것 같다.

반면, 아직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헌터걸스 멤버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촬영이자 방송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그래도 점점 카메라에 익숙해지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니까 괜히 내가 다 뿌듯해진다.

“데뷔가 언제였지?”

알면서도 일부러 나빈이에게 물었다.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3주 후예요. 11일 저녁 7시.”

“그때도 나처럼 쇼케이스로 진행할 거라고 했었지?”

“네, 진행은 언니가 맡아 주기로 했어요.”

“이빈이는 거의 우리 회사 전담 MC가 되었네. 내 데뷔, 컴백 무대 MC도 맡았는데.”

이번에는 우리 쪽에서 이빈이에게 MC 해 줄 수 있냐고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빈이가 먼저 연락해 와서 자기가 MC를 맡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동생의 데뷔 무대니까, 언니가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니가 같은 무대에 서 주니까 힘이 많이 되겠네.”

“모르겠어요. 오히려 시작 전에 잔소리만 엄청 할 거 같은데요.”

“그러진 않겠지.”

나 때에는 얼마나 친절했었는데.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 * *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을 나는 오랜만에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말았다.

헌터걸스 데뷔 쇼케이스 당일.

리허설 단계부터 이빈이의 날카로운 잔소리가 울려 퍼졌다.

“홍나빈! 시선 처리가 완전히 엉망이잖아! 그리고 표정 좀 밝게 해 봐! 여기 누구하고 싸우러 왔어?”

무섭다, 무서워.

말로 사람을 때린다는 게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빈이도 나빈이가 싫어서 저렇게 하진 않을 것이다.

동생의 데뷔 무대인 만큼 완벽하게 꾸며 주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저렇게 바짝 날을 세우는 것일 수도 있다.

‘그보다 이빈이가 저렇게 화내는 건 처음 보는데.’

아마 이빈이의 친한 지인이 이 모습을 봤다면 크게 놀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그렇거든.

리허설이 끝나고 드디어 데뷔 무대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무대 아래에서 헌터걸스의 데뷔 무대를 직관할 예정이다.

승훈이 형과 연 대표도 나와 같이 자리를 지켰다.

연 대표가 벌써 물만 세 통째를 비워 내면서 말했다.

“왜 내가 다 긴장되는지 모르겠네.”

“저 데뷔할 때에는 그렇게 말씀 안 하셨잖아요.”

“너는 뭐, 알아서 잘하는 타입이니까. 근데 저기 애들은 아니잖아.”

내놓은 자식이 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승훈이 형도 연 대표와 비슷한 감정인지 아까부터 계속해서 다리를 떨고 있었다.

마침내 10분이 지난 뒤.

드디어 헌터걸스가 전 세계 사람들 앞에 최초 공개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이빈이가 먼저 무대에 올라서 짧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뒤.

“자, 오늘의 주인공들을 만나 보시겠습니다! 여러분, 헌터걸스를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연 대표와 승훈이 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큰 환호성으로 헌터걸스 멤버들을 환영했다.

하여간 둘 다 주책이다.

한편, 처음으로 헌터걸스 소속으로서 무대에 오른 멤버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저 기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지.

이빈이가 멤버들에게 단체 인사를 부탁했다.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인사 한번 해 볼까요?”

참고로 헌터걸스의 리더는 나빈이가 맡기로 했다.

나빈이가 먼저 신호를 줬다.

“둘, 셋.”

“안녕하세요! 나라를 구한 걸 그룹, 헌터걸스입니다!”

저 캐치프레이즈는 참고로 내 작품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나라를 구한 스타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우리 헌터걸스 멤버들에게도 동일한 캐치프레이즈를 추천했었다.

나만 나라를 구한 게 아니니까 말이다.

물론 헌터가 아닌 인물이 한 명 섞여 있긴 하지만, 뭐 그런 사소한 건 그냥 넘기면 된다.

이빈이가 헌터걸스의 소개를 보면서 물었다.

“인사말이 굉장히 특이하네요. 실제로 여러분들 모두 각성 능력을 가지고 계시죠?”

“네!”

세계 최초 각성 능력자들로만 구성된 걸 그룹.

개성 하나만 놓고 본다면 이미 탑이다.

하지만 톱스타가 되기 위해선 개성만 있으면 안 된다.

“그럼 헌터걸스의 무대부터 먼저 보고 난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도록 할까요? 채널 고정해 주시고요. 여러분들의 뜨거운 함성과 함께 헌터걸스의 첫 데뷔곡, ‘In the world’를 들어 보시겠습니다!”

마침내.

우리 회사가 사활을 걸고 준비한 헌터 걸 그룹 프로젝트가 첫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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