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헌터걸스, 데뷔 (3)
양 팀장이 웹 예능 제작을 맡아 줄 콘텐츠 제작팀 인원들을 물색하는 동안, 최 프로듀서와 보컬, 댄스 트레이너들, 그리고 나와 승훈이 형 이렇게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애들, 아직 안 왔죠?”
“네, 안무 연습실에서 데뷔곡 연습 중이었던지라 뒷정리만 하고 바로 올라올 거라고 했습니다……. 아, 마침 저기 오네요.”
마진수 트레이너가 미팅룸 창문 밖을 가리켰다.
사무실을 거쳐 우리가 있는 미팅룸에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낸 걸 그룹 멤버들.
이사벨라와 사오리, 나빈이, 그리고 마지막에 합류한 슬혜까지.
이렇게 네 명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나빈이가 멤버들을 대신해서 나에게 오늘의 소집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선배님?”
“너희한테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있어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아주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이미 데뷔곡도 나왔고, 컴백 일자도 대략적으로 잡아 놓기까지 했는데.
정작 이것들보다 먼저 정했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우리, 그룹명 아직 안 정했지?”
그렇다.
멤버들이 앞으로 사용하게 될 팀명이 아직 미정이었다.
명칭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헌터걸스. 이게 지금까지 우리 사이에 통용되었던 그룹 명칭이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 그룹명일 뿐이고.
나중에 데뷔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면, 그때 정식으로 그룹명을 생각해 보자고 했었는데, 그게 여기까지 미뤄지게 된 거였다.
“내가 업무 서류를 보다가 너희 그룹명이 아직 안 정해져 있다는 걸 이제야 눈치챘거든.”
“그러게요. 저희도 완전히 깜빡하고 있었어요.”
“헌터걸스라는 게 너무 입에 잘 달라붙어서…… 임시 명칭이라는 것도 까먹었네요.”
우리들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이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반면, 슬혜는 언니들하고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헌터걸스가 그룹명 아니었어요? 저는 여태껏 그런 줄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야. 그때 우리가 워낙 급하게 계약 맺고 데뷔 준비하려고 하다 보니까 다들 정신이 없고 그래서 그룹명은 나중에 상의하자고 하고 일단 연습부터 시작한 거였거든.”
“아하…….”
슬혜가 그게 어떻게 말이 되냐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듯했다.
솔직히 많이 황당한 상황이긴 하다.
이미 데뷔 시기도 정해졌는데,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
이때, 사오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할 말 있는데요.”
“어, 사오리. 말해 봐.”
“그냥 ‘헌터걸스’로 가면 안 되나요? 저는 이 그룹명, 마음에 드는데.”
뒤이어 이사벨라도 사오리의 의견에 적극 동참했다.
“저도요. 지금 와서 그룹명을 바꾸려고 하니까, 왠지 아쉬워요. 나빈 언니도 그렇지?”
“나? 나도 뭐…… 아니라고는 말 못 하지.”
멤버들 중에서 가장 연장자인 나빈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번 기회에 기존에 사용하던 임시 그룹명을 정식 명칭으로 인정하자고 말했다.
슬혜는 처음부터 헌터걸스가 마음에 든다고 했었다.
비록 자기는 헌터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그룹만의 색깔을 직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명칭이라서 좋다고 한다.
“다른 분들은 어떻습니까?”
최 프로듀서와 트레이너들의 의견도 궁금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도요.”
“이제 와서 다른 명칭으로 바꾸면, 그것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고. 그냥 이대로 가시죠?”
마지막으로 승훈이 형도 헌터걸스로 가자는 쪽에 한 표를 행사했다.
“오케이,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렇다고 오늘 멤버들에게 이야기해 줘야 할 사항이 모두 끝난 건 아니었다.
“너희가 데뷔하는 과정을 웹 예능으로 촬영해서 매주 1회씩 채널에 업로드를 할 건데, 어때?”
웹 예능이라는 말에 멤버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 중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슬혜가 유독 적극적으로 물었다.
“한 편당 몇 분이에요?”
“아카튜브에 올라갈 거니까 너무 길면 안 되고, 한 15분에서 20분 정도로 잡고 있어. 웹 예능 편성 기간은 다음 주부터 너희가 데뷔 무대 가질 때까지. 딱 이 기간에만 촬영을 할 거야.”
“혹시 저희만 나오는 건가요? 아니면 대표님도 출연하시나요?”
“나? 뭐, 자주는 아니더라도 얼굴 몇 번 비치긴 하겠지? 아직은 논의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확답은 못 주겠고. 왜, 내가 같이 나와 주는 걸 원하는 거야?”
슬혜가 고민할 시간도 없이 바로 ‘네!’라고 대답했다.
나머지 헌터걸스 멤버들도 슬혜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최 프로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헌터걸스 멤버들만으로는 유입 인원을 늘릴 수가 없으니까요. 초반에는 이사님이 몇 번 나오시면서 사람들 관심을 한번 끌어당겨 주시고, 그다음부터는 점점 비중을 줄여 가는 식으로 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어그로 끌기 용인가.
곧 편성될 헌터걸스 데뷔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멤버들이니까.
우리는 그저 멤버들의 데뷔를 도와주는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최대한 멤버들의 의견을 우선으로 삼기로 했다.
“알았어. 나한테 맡겨 내가 지원사격 제대로 해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이사님!”
“선배님만 믿을게요.”
내가 데려온 사람들이니까.
이 정도는 당연히 도와야 한다.
* * *
오늘은 방송국이 아닌 헌터협회로 출근을 했다.
최근까지 벌어진 몬스터와의 전투에 관한 정기 보고를 듣기 위해서였다.
비록 우리는 현장에 없었지만, 그래도 어떤 종류의 몬스터가 어떤 습성을 지니고 있는지.
이런 데이터들을 하나하나 쌓아 가면서 모두와 공유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이 데이터를 근거로 유리한 싸움을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우리 인류가 몬스터와 싸우면서 얻은 데이터 범주 내에 있는 종들만 등장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아직 우리가 싸워 본 적 없는 녀석들이 있을지 어떨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헌터협회 관계자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나와 데이브.
매번 회사에서 보다가 이렇게 협회에서 데이브와 나란히 앉아 있으니까 어색함이 들 정도였다.
아직 정기 보고가 시작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할 일도 마땅히 없고 그래서 데이브에게 먼저 슬쩍 말을 붙였다.
“연습은 잘돼 가고 있지?”
“왜, 궁금하냐?”
“궁금하지. 나도 그쪽에 들어가서 활동해야 하니까.”
걸 그룹 쪽 명칭이 ‘헌터걸스’인 반면, 보이 그룹 쪽은 ‘헌터보이즈’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쪽도 가칭이긴 한데, 헌터걸스 때처럼 여기도 그냥 이대로 가도 괜찮지 않겠냐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헌터 아이돌이라는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활동할 예정이니까. 헌터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할 거 같고, 그리고 같은 소속사에서 활동할 그룹이니까 명칭이 어느 정도 통일성을 띠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이쪽은 그룹명이 문제가 아니다.
아직 그룹 활동을 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데뷔도 헌터걸스가 먼저 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최 프로듀서가 너희들,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고 그러더라.”
“고생이지. 여태껏 괴물들 때려잡으면서 생활했는데, 갑자기 무대에 올라가서 춤추고 노래하라고 하면 적응이 되겠냐?”
음, 잘 안 되어 가고 있나 보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데이브의 반응을 통해서 상황을 직접 접해 보니까 체감되는 정도가 달랐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이는데.
‘나중에 최 프로듀서하고 한번 상의해 봐야겠어.’
합이 잘 맞지 않는 멤버들을 어떻게 한마음 한뜻으로 만들 수 있을지.
최 프로듀서는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여태껏 많은 아이돌 그룹들을 본인이 직접 프로듀싱하면서 키워 냈으니까 말이다.
아니면 2집 활동 끝나자마자 내가 바로 헌터보이즈 그룹 연습에 참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단은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 두고서 방향성을 결정하는 게 좋아 보인다.
생각이 많아질 무렵, 협회장이 정기 보고회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 지루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 * *
레이드 시대에 비해서 요즘 열리는 정기 보고회는 예전만큼 그리 길지 않았다.
이미 웬만한 몬스터 자료들은 다 쌓여 있는 상태고.
그리고 몬스터 등장 빈도가 예전만큼 잦은 편이 아니어서 정리할 게 별로 없었다.
분량이 짧은 대신에 다른 게 추가되었다.
협회장이 직접 나와 연 대표를 불렀다.
“자네들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사람들한테 알려 주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정기 보고회가 시작되기 전에 협회장이 먼저 나와 연 대표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헌터 관계자들이 우리가 발표하는 노래에 대해서 매우 높은 관심도를 보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국 내에서 활동 중인 헌터들의 전투력을 높여 줄 수 있는 수단을 우리가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이걸 좀 더 풀어서 보급할 생각이 없는지. 여러모로 알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나와 연 대표가 단상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연 대표가 먼저 개요를 설명했다.
“최근에 BOO 산하에 있는 HT 엔터테인먼트는 강태오를 포함한 아홉 명의 MML 능력자와 모두 계약을 맺었습니다. 현재 솔로로 활동 중인 강태오가 있고, 다음 달에 데뷔를 앞두고 있는 4인조 걸 그룹, 헌터걸스가 있습니다.”
설마 이런 이야기를 여기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헌터들이 같은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들으면 버프 효과가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최대한 다양하게, 그리고 빠르게 곡들을 발표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때, 한 남성이 손을 들어 올리면서 발언권을 요청했다.
“혹시 나중에 한국어 말고 다른 언어 버전으로도 낼 의향이 있습니까? 유럽 쪽 헌터들 중에서 태오 씨 노래를 좋아하는 헌터들이 많긴 한데, 가사가 이해가 잘 안 되니까 뭐랄까, 많이 아쉬워하더군요.”
대답하는 역할은 내가 직접 맡기로 했다.
“예, 그것도 계획되어 있습니다.”
우선은 영어 버전부터 준비 중이다.
그다음, 프랑스어나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 등등. 주요 국가들을 위주로 언어만 바꿔서 재녹음을 진행할 예정이다.
굉장히 힘든 일이 될 거다. 하지만 애초에 우리가 노래를 발표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헌터들의 전투력을 높여 주기 위함이다.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선 번거롭더라도 해야 한다.
“이미 ‘나의 길’은 여덟 개 언어로 재녹음해서 작업 진행 중입니다. 조만간 음원도 공유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 추가로 궁금하신 거 있습니까?”
연 대표가 묻자,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손을 들어 올렸다.
“네, 거기 계신 분. 말씀해 보세요.”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인데…….”
여성이 내 눈치를 유독 살폈다.
“혹시 월드 투어 같은 건 없나요? 제가 태오 씨 팬이라서. 만약에 콘서트도 계획하고 계시다면, 꼭 참석하고 싶거든요.”
몇몇 사람들이 자기도 원하고 있다고 어필해 오기 시작했다.
정기 보고회로 알고 왔는데.
순간 나는 내 팬 미팅 현장에 온 걸로 착각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