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헌터걸스, 데뷔 (2)
오늘부터 정식으로 진슬혜가 기존 그룹 멤버와 합류해서 함께 연습을 하게 되었다.
진슬혜를 데리고 멤버들이 있는 안무 연습실로 향했다.
“안녕.”
멤버들과 말을 놓게 된 나는 최대한 친근한 목소리로 연습에 매진 중인 그녀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사님!”
“안녕하세요!”
나빈이와 이사벨라, 사오리. 셋이 밝은 얼굴로 내게 꾸벅 인사했다.
사오리는 처음부터 한국말이 굉장히 능숙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사벨라는 그 짧은 시간에 보컬, 댄스 능력뿐만 아니라 한국어 실력까지 올라와서 볼 때마다 놀란다.
“연습 잘하고 있었지?”
나빈이가 대표로 내 물음에 답했다.
“네, 커버곡 연습하고 있었어요.”
“매니저한테 대충 들었지? 데이브네 그룹보다 너희 그룹이 먼저 데뷔하게 될 거라고.”
“들었어요. 왜 선배님들부터 안 하고 저희가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왜겠어, 이쪽 그룹이 성장 속도, 실력이 좋으니까 그렇지.”
“데이브 선배님이 지금 이 말 들었으면, 분명 화냈을 거예요.”
“없으니까 하는 거야. 그보다도 오늘은 소개해 줄 사람이 있는데.”
슬혜한테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낯선 언니들과의 만남에 쭈뼛쭈뼛 나 있는 곳까지 걸어 나오는 슬혜.
기존 멤버들은 진슬혜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내가 오전에 기자들 앞에서 큰 거 한방 터뜨렸으니까, 오히려 모르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래도 자기소개는 하는 게 서로 간의 매너가 아닐까 싶다.
슬혜가 허리를 크게 숙이면서 멤버들에게 큰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진슬혜라고 해요! 많이 부족하겠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슬혜의 자기소개를 접한 멤버들의 표정에 온화한 미소가 깃들었다.
“저희도 잘 부탁해요.”
“같이 열심히 해요.”
“궁금한 거 있으면 저희한테 언제든 물어보시고요.”
“네!”
여기에는 데이브처럼 모난 사람이 없다.
내 예상이긴 하지만, 세 명에서 네 명으로 멤버가 늘었어도 서로 금세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최 프로듀서가 지금 너희들 데뷔곡 작업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그동안 연습 게을리하지 말고. 협회장님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너희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 항상 잊지 말고. 알았지?”
“네!”
“좋아, 그 자세야.”
멤버들끼리 인사도 시켜 줬고.
이제 연습에 매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해야 할 업무도 많이 쌓여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헌터로서의 일도 겸하고 있고, HT 엔터테인먼트 이사 업무도 소화해야 했다.
말 그대로 쓰리 잡.
남들보다 일할 거리가 세 배라는 뜻이다.
누나를 닮아서 그런지 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 오히려 일이 많은 쪽을 더 선호하긴 하지만.
뭐든 적당할 때가 제일 좋은 법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산처럼 쌓여 있는 서류 더미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차라리 나한테 몬스터하고 싸우라고 그러지.”
그게 마음은 더 편할 거 같은데 말이다.
업무를 대신 해 주는 아이템은 없나?
나중에 이철민 소장한테 물어봐야겠다.
의자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밀린 업무를 처리하려고 하던 순간.
이철민 소장한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
‘뭐야, 나하고 텔레파시라도 통했나?’
물어볼 게 있었는데, 이렇게 바로 기회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예, 강태오입니다.”
-……안녕하세요, 태오 씨.
목소리가 다 죽어 가는 사람의 것처럼 들렸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네. 제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아서 며칠째 술만 퍼마시고 있는 중입니다. 덕분에 오늘 의사한테 가서 잔소리만 잔뜩 듣고 왔습니다.
저런.
그나저나 이철민 소장에게 안 좋은 일이라니, 어떤 것 때문인지 감이 전혀 안 잡힌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모르면 그냥 이 자리에서 바로 물어보면 된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진슬혜 씨에 관한 것 때문입니다.
슬혜 이름만 들었을 뿐인데, 왠지 이철민 소장을 술주정뱅이로 만든 원인이 뭔지 알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헌터가 아닌 각성 능력자들까지도 버프 능력을 줄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뒀어야 했는데, 헌터들만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했으니…… 제가 멍청이입니다, 멍청이.
그래,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사실 이걸 오롯이 이 소장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당시에는 나도 그렇고, 아무도 이런 발상을 떠올리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여태껏 버프 능력자로 밝혀진 사람들의 정체가 다 헌터였지 않았나.
이렇다 보니 은연중에 우리들 멋대로 헌터여야만 능력을 발동시킬 수 있다고 자체 울타리를 설치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가 놓쳤던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서 다행이지 않은가……라고 말을 해 봤자, 지금의 이철민 소장의 귀에는 들리지 않겠지.
-……아무튼. 이번에는 헌터가 아닌 각성 능력자들까지 포함해서 다시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해 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이철민 소장이 열심히 하려는 건 좋지만.
그래도 자기 몸 정도는 챙겨 가면서 일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지금 이 소장이 하고 있는 일을 누가 대신 떠맡으려고 하겠나.
그나마 이철민 소장이니까 지금처럼 할 수 있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절대로 못 한다.
‘나중에 이철민 소장한테 식사라도 제대로 대접해야겠네.’
따지고 보면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거니까.
어디 보자.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이 언제인지 스마트폰 달력 어플로 일정을 확인해 보려고 했다.
때마침 내 개인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최 프로듀서와 양석정 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 팀장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를 노려봤다.
“이사님, 오늘 처리해서 넘겨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딴짓할 시간이 있습니까?”
“딴짓하려고 폰 보고 있던 게 아니라요.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하지만 양 팀장은 이런 내 말을 그저 핑계로만 받아들일 뿐이었다.
하여간 타이밍도 안 좋네.
뭐, 이건 그렇다 치고.
“어떤 일로 오셨어요?”
“최 프로듀서하고 걸 그룹 데뷔 건으로 이야기 나누다가 이사님하고 상의할 게 생겨서요.”
“어떤 걸까요?”
“데뷔 무대 가지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최대한 우리 걸 그룹을 홍보할 수 있는 마케팅 수단이 뭐 없을까 고민 중입니다.”
나 때에도 이런 고민은 있었다.
원래는 데뷔 전에 어디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서 내가 가수로 데뷔한다는 사실을 홍보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중간에 몬스터들의 습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여기서 내가 대활약을 펼친 덕분에 별도의 홍보 수단 없이 알아서 나라는 존재가 절로 홍보되었다.
하지만 데뷔 준비에 한창인 우리 회사의 걸 그룹 멤버들은 나와 경우가 달랐다.
나에 비해서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기도 하고.
사전 홍보는 불가피해 보였다.
다만, 어떤 식으로 홍보를 하는 게 좋은가?
이게 문제다.
“가장 확실한 수단은 역시 방송이지 않을까요?”
“근데 방송국 하나를 잡아서 프로그램을 따로 편성하려면 제작하고 준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제약도 걸려서 저희가 원하는 방향으로 홍보를 못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방송이 효과가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다.
장점만 존재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안 그래도 예전에 내가 GSS 프로그램에 특별심사위원으로 출연하기로 했을 때, 최 프로듀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도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뭐 하나 편성해서 홍보하면 좋지 않겠냐고.
물론 인원수 부족에다가 탈락자를 만들 수 없는 독특한 사정으로 인해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은 물 건너가게 되었지만.
대신에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잘 살려 볼 수 있을지, 다른 방면으로 여러 차례 생각을 해 봤다.
그 결과.
“이건 어떻습니까? 걸 그룹 멤버들 데뷔 과정을 관찰 예능처럼 찍어서 매회마다 시청자들에게 공개하는 거예요. 대신에, 방송국 채널을 통해서 공개하진 않을 겁니다.”
“네?”
“그러면 대체 어떤 식으로……?”
방송국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만약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다면 맞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양한 미디어 수단이 존재한다.
나는 이 중 하나를 이용할 생각이다.
“인터넷 영상 플랫폼을 활용해 보려고요.”
“아카튜브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대다수의 기획사가 그렇듯, 우리도 자체적으로 HT 엔터테인먼트 채널을 가지고 있다.
구독자 수는 1백만 약간 못 미치는 정도.
“웹 예능식으로 편성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그러면 아까 말씀하셨던 방송국 프로그램 편성 시에 벌어지는 단점 같은 게 어느 정도 사라지고. 그리고 우리 회사 채널도 키울 수 있고. 일석이조 아닐까요?”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TV 대신에 인터넷 영상 플랫폼을 더 친숙하게 여긴다.
TV 없는 가구도 요즘은 많다고 하니까 말이다.
양 팀장이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이면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웹 예능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하긴, 요즘은 방송국에서도 웹 예능을 많이들 만들고 그러더라고요. 오히려 웬만한 TV 프로그램보다 잘 만든 웹 예능이 더 영향력이 뛰어난 거 같아요.”
하지만 최 프로듀서는 걱정되는 게 있는 모양인지 내 의견에 약간의 태클을 더했다.
“근데 웹 예능 만드는 것도 제작비가 꽤 들 텐데, 괜찮겠습니까? 방송국에 제작 의뢰하는 게 더 싸게 먹힐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내 대답은 한마디로 압축하고 싶었다.
“돈은 차고 넘칠 정도로 많으니까 상관없습니다.”
다른 연예 기획사라면 몰라도.
우리가 돈에 허덕여서 회사가 망하는 일은 아마 이번 생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최 프로듀서는 금방 내 의견에 납득해 버리고 말았다.
아까도 말했듯이 자본금은 문제없다.
돈 말고, 굳이 아쉬운 점을 하나 고른다면…….
“회사 내에서 영상 콘텐츠를 자체 제작할 팀이 없다는 게 문제겠네요.”
“외부 제작 업체에다가 맡기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요. 나중에 걸 그룹 말고 제가 속한 보이 그룹도 데뷔를 해야 하는데, 어차피 웹 예능 계속 만들게 될 거 같으니까 그냥 우리가 내부 팀 하나 만들죠?”
영상 제작팀을 가지고 있으면, 필요에 따라서 우리 회사와 소속 연예인을 자체적으로 홍보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다.
초기가 어려울 뿐 제작팀을 꾸려 놓으면, 활용할 분야는 많이 있을 것이다.
“양 팀장님이 잘 맡아서 진행해 주세요.”
“예, 이사님. 알겠습니다.”
헌터 활동도 모자라서 연예계, 그리고 이제는 영상 콘텐츠 제작까지 손을 뻗는 우리 HT 엔터테인먼트.
‘엔터테인먼트라는 단어에 딱 맞는 회사가 되어 가고 있네.’
이러다가 나중에 전혀 엉뚱한 분야까지 진출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