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75화 (75/250)

제22장. 헌터걸스, 데뷔 (1)

오전에 언론 매체와 간단한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어서 그걸 소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현장에 도착하니, 다수의 기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먼저 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안녕하세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모여 주셨네요.”

고작 노래 앨범 두 개 발표하고 언론에게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가수는 아마 내가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기자회견……이라고 보기에는, 처음엔 그렇게까지 크게 규모를 잡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냥 하하호호 웃으면서 기자들과 가벼운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기 위해 잡은 인터뷰 일정이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기자들이 자기들도 참가하고 싶다고 해서 의도치 않게 일이 커지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냥 기자회견으로 아예 바꿔서 좀 더 넓은 공간으로 대여할 걸 그랬나 보다.

물로 목을 축이면서 장시간 이어질지도 모르는 인터뷰에 대비했다.

사실 내가 일부러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하도 나에 대해, 그리고 우리 HT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서였다.

이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우선 뭐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오늘 아침에 제가 뭐 먹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무도 내 유머를 받아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맨 앞줄을 차지한 QWE의 남지덕 기자가 고맙게도 내 말을 받아 줬다.

“궁금하네요. 이사님이라면 왠지 든든하게 한식 먹고 왔을 거 같은데요.”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오늘은 그냥 간단하게 빵에 우유 한 잔으로 때우고 왔습니다.”

“나라를 지키시는 분이 식사를 그렇게 소홀하게 해도 괜찮으신가요?”

“지금은 열심히 노래 부르면서 지키고 있으니까요. 힘쓸 일이 별로 없다 보니까 간단하게 먹어도 딱히 큰 지장은 없더라고요.”

안부를 묻는 식의 가벼운 토크는 끝났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들 여럿이 단숨에 손을 들어 올렸다.

“맨 왼쪽에 계신 분.”

“사이드스토리 미디어의 서재현 기자입니다. 이번에 진슬혜 양과 새롭게 계약을 맺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네, 다른 연예 기획사들도 거기에 참가했던 연습생들을 컨텍하길래, 저희도 슬쩍 참전해 봤습니다.”

“근데 왜 하필이면 진슬혜 양을 택하셨습니까? HT 엔터테인먼트라면, 더 유명하고 실력 있는 연습생들을 노려 볼 수도 있었을 텐데요.”

역시 기자들이 소식이 참 빠르긴 빠르다.

아직 진슬혜가 지닌 각성 능력에 대해서 외부에 언급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기자들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새 이야기가 새어 나갔나 보다.

뭐…… 대충 일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반대쪽에서 승훈이 형이 ‘말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입 위로 자크를 채우는 듯한 모션을 내게 계속해서 보여 주는 중이지만.

누군가가 억지로 알아내서 강제로 밝히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내 입으로 말하는 편이 좋다.

“진슬혜 양도 저와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약을 맺자고 했습니다.”

승훈이 형이 이마를 탁 쳤다.

반대로 기자들은 소문이 사실이라는 게 내 입을 통해 밝혀지자마자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 알게 될 사실인데.

까짓것 미리 밝혀도 상관없지 않겠나.

* * *

인터뷰가 끝나고.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진짜.”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승훈이 형이 나를 향해 눈을 흘기면서 잔소리 속사포를 날렸다.

“니가 비밀로 하자고 했잖아. 근데 이제 와서 니가 그걸 어기면 어쩌자는 거냐, 엉?”

“기자들 보니까 이미 눈치 다 깐 거 같더만. 그래서 노선을 바꾸기로 한 거야.”

“그러면 하다못해 인터뷰하기 전에 우리한테 먼저 이야기라도 좀 해 줘.”

“이제 해 주려고.”

“어휴, 진짜…….”

이래서 내가 헌터로 활동할 때 협회장하고 우리 연 대표한테 잔소리를 자주 들었나 보다.

그래도 뭐, 연예계에서는 딱히 눈치 볼 사람이 없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진슬혜가 나한테 먼저 이 이야기를 했었다.

“자기가 노래 버프 능력 가지고 있는 거, 본인은 미리 언론에 공개해도 상관없대.”

“슬혜가 그랬어?”

“어, 그래서 공개한 거야.”

“아니, 그러면 그걸 먼저 이야기해 줬어야지.”

“그러니까 이제 해 주고 있잖아?”

승훈이 형은 나와 말싸움을 해 봤자 무슨 짓을 해도 본인이 질 거라는 사실을 잘 아는 모양인지 이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최 프로듀서가 나를 보면서 하하 웃었다.

“저지르셨네요, 이사님.”

“태오가 태오해 버렸죠.”

“이사님의 그런 화끈한 면,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직원들은요?”

“지금 올라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헌터 아이돌들의 구체적인 활동 방향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속속 모이기 시작하는 직원들.

다들 진슬혜에 관해 터져 나오는 기사들을 보고 왔는지 최 프로듀서처럼 내게 한마디씩을 던졌다.

이제 직원들도 내 성향에 완전히 적응한 모양인지 크게 당황하는 모습 대신에 오히려 지금의 이 일을 즐기려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승훈이 형만 빼고 말이다.

“다들 참석하셨죠?”

“네.”

“그럼 회의 바로 시작할까요?”

……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노크도 없이 회의실 문이 열렸다.

의외의 인물이 우리를 찾아왔다.

“안 늦었구만.”

연수하 대표가 빈 의자를 찾아 앉았다.

연 대표가 온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설명을 요구하는 내 표정을 보고서 연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HT 엔터테인먼트가 어떤 식으로 버프 능력을 지닌 헌터들을 데뷔시킬 건지 들어 봐야 하거든.”

“협회장님이 시킨 거예요?”

“어, 잘 아네.”

하긴, 우리가 하는 일은 엄밀히 말하면 단순한 연예계 활동이 아니니까.

몬스터 퇴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HT 엔터테인먼트의 활동 방향이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면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연 대표에게 묻고 싶은 것부터 밝히기로 했다.

“최근에는 몬스터들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요.”

“어, 한동안 잠잠하더니, 다시 여기저기 나오기 시작했다고 그러더라. 레이드 시대 때하고 비교하면 위기 수준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잠복해 있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꽤 되나 봐. 아, 그리고 협회장님이 이 말 전해 달라고 하더라.”

“어떤 말이요? 만약에 잔소리라면 안 들을래요.”

“그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헌터로 활동하면서 내가 협회장하고 연 대표, 저 두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는지. 생각만 하면 아직도 두통이 생길 정도다.

“예전에 세이렌하고 머들린 나타났을 때, 기억하지?”

“네, 물론이죠.”

“그때 네가 협회 관계자들 앞에서 이야기했었잖아. 세이렌처럼 소리와 관련된 몬스터들이 많이 숨어 있을 거라고. 네 말이 사실로 드러났어.”

“그래요?”

“어, 최근에 목격된 57건의 사례들 중에서 세이렌, 머들린처럼 소리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어 있는 몬스터 종수가 과반수가 넘었더라. 그 녀석들 나타났을 때 네 노래 트니까 아주 좋아 죽던데?”

“다행이네요.”

가설에 불과했던 내 주장이 현실로 증명된 셈이었다.

“협회장님이 최대한 빨리 앨범 발표하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너희들 노래를 이용해서 몬스터들 싹 쓸어버리고 싶다고 하시더라.”

“너무 그렇게 성급하게 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아직 우리는 준비 단계에 불과하니까요.”

내 노래 버프 능력은 만능이 아니다.

알아낸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보니, 최대한 조심하면서 작전을 펼쳐야 한다.

“일단은…… 최 프로듀서님.”

“네.”

“얼마 전에 헌터들 대상으로 월말평가 진행하셨죠? 슬혜 빼고요.”

진슬혜는 최근에 합류한 인원이었기 때문에 월말평가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굳이 월말평가를 받지 않아도, GSS를 통해서 이미 진슬혜의 가수로서의 능력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가늠할 수 있었으니까.

“슬슬 데뷔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시기인 거 같은데…… 연 대표님이 이 자리에 직접 오신 걸 보니까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드네요.”

직원들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 모양인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최 프로듀서에게 일부러 월말평가에 대해 물어본 거였다.

“프로듀서님이 보시기엔 어떠세요? 다들 데뷔시켜도 될 만한 실력까지 올라왔나요?”

“솔직히 말해서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걸 그룹, 보이 그룹, 두 쪽 다요?”

“아니요. 보이 그룹 쪽이요. 걸 그룹 멤버들은 실력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이사벨라가 메인 댄서로 가고, 원래는 나빈이를 메인 보컬로 내세울까 생각했었는데, 슬혜가 들어오면 슬혜를 메인 자리에 올려 두고 나빈이를 서브로 빼려고 합니다.”

“사오리는요?”

“래퍼로 갈 겁니다.”

아이돌 그룹에 래퍼 한 명 정도는 있어야겠지.

“포지션이 딱딱 정해졌네요.”

“예, 이사님이 슬혜를 발굴해 낸 게 천만다행입니다. 만약에 슬혜가 없었더라면 걸 그룹 쪽도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했을 겁니다.”

“문제는 보이 그룹이네요.”

누가 문제냐. 왠지 안 물어봐도 알 것 같다.

데이브는 잘 협조를 안 해 주고, 준서는 까불기만 하고, 니암은 열심히는 하는데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진지해서 아이돌이라는 느낌이 아직 안 들고. 그나마 딜런이 좀 나은 편인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 보이 그룹 쪽은 전체적인 그림이 안 그려진다.

좀 그려 볼까 싶으면 꼭 한 녀석씩 튀어나와서 도화지를 찢어 버리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이사님이 대단하신 거였더라고요. 데뷔 때 기억하십니까? 그 짧은 기간에 보컬 실력 엄청 키워 오셨잖아요.”

“그랬죠.”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사님이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였던 거 같습니다.”

아직 다른 멤버들은 나만큼 실력이 늘고 있지 않다는 말을 잘 돌려서 표현했다.

“그럼 걸 그룹부터 먼저 데뷔시키는 걸로 가닥을 잡죠.”

“예, 어차피 대표님은 아직 솔로 앨범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걸로 활동하시다가 다른 멤버들이 준비되면, 그때 보이 그룹 데뷔도 염두에 두시면 될 거 같습니다.”

최 프로듀서가 교통정리를 잘해 준 덕분에 복잡해질 뻔한 머릿속이 단순하게 정리되었다.

우선은 걸 그룹 멤버들의 데뷔를 1순위로 삼기로 결정했다.

회의를 마무리 짓기 전에, 나는 연 대표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협회장님한테 오늘 나온 이야기 정리해서 들려주시면 될 거 같네요.”

“알았어. 그나저나 협회장님이 많이 아쉬워하겠네.”

“왜요?”

“너하고 데이브가 같은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거 보고 싶다고 기대 많이 하셨거든.”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과연 우리가 데뷔하게 되면 어떤 무대가 펼쳐지게 될까?

기대감이 크긴 하지만.

동시에 걱정도 컸다.

무대 펼치다가 괜히 합 안 맞다고 갑자기 난투극이 벌어지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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