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74화 (74/250)

제21장. 반전을 품은 연습생 (6)

진슬혜는 내 제안에 진심으로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단 한 계단 차이로 떨어져서 굉장히 슬픈 상황을 맞이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내 회사 자랑을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요즘 가수들 사이에서 HT 엔터테인먼트는 소위 ‘가고 싶은 소속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단순한 신드롬에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회사가 조건이 굉장히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의 방침 자체가 소속 가수들에게 굉장히 친화적인 것도 제대로 어필이 되었다.

덕분에 요즘은 우리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싶어 하는 연예인들이 상당수 보이고 있었다.

아직은 우리 HT 엔터테인먼트가 그렇게까지 많은 직원을 채용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계약에 적극적이지 못한 상태지만.

진슬혜 한 명 정도는 충분히 케어해 줄 수 있다.

내가 정식으로 계약서를 들이밀자, 진슬혜 본인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연습생들도, 스태프들도 눈을 의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저는…….”

진슬혜가 슬쩍 PD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PD가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이면서 말했다.

“우리와 계약을 맺은 건 어디까지나 프로그램 출연 의무에 관한 계약이었지, 소속사 계약은 아니니까 내 눈치 볼 거 없어.”

그리고 진슬혜가 너무 당황하는 거 같아서 아직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이미 PD님하고도 이야기를 모두 마친 상태니까 저희와 계약서를 작성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언제 그런 것까지…….”

“3차 미션이 끝난 직후부터요.”

진슬혜에게 내가 원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한 순간.

이건 무조건 계약 각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여기서는 듣는 귀가 많으니까, 잠깐 자리를 옮길까요?”

“네? 아…… 네.”

진슬혜를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향하기 직전.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또 한 명의 연습생을 추가로 불렀다.

“유별 씨도 궁금하시면 같이 오시겠습니까?”

“저도요? 괘, 괜찮으신가요?”

“슬혜 씨만 허락한다면요.”

둘 사이가 돈독하다는 걸 나도 잘 알기에 기회를 주고 싶었다.

진슬혜는 일말의 고민 없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우리는 방송국 근처에 위치한 작은 카페로 향했다.

마침 손님이 우리 말고 없어서 이야기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내 옆에는 승훈이 형이.

맞은편에는 진슬혜와 송유별이.

그리고.

“PD님까지 오실 필요는 없었는데.”

GSS PD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전화상으로 대충 이야기만 들었더니 감이 잘 안 잡혀서요. 그리고 GSS에 참가하는 모든 연습생들이 제 자식 같고. 그래서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더라고요. 일단은 저도 사정을 듣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 좀 드릴까 합니다.”

PD의 참석 역시 진슬혜가 허락했기에 가능했다.

대신, PD와 송유별에게 조건을 하나 걸기로 했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당분간 비밀로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내 말대로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약속도 받아 냈으니까, 슬슬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그 전에 진슬혜가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고 있던 비밀 하나부터 먼저 드러내고 시작해야 했다.

“슬혜 씨.”

“네.”

“각성하셨죠?”

내 말에 PD와 송유별이 크게 경악했다.

게이트라는 존재가 사라짐과 동시에 신규 각성자 역시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럼에도 진슬혜는 각성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게이트가 닫히고 난 후에 각성한 건 아닐 터.

“고설중 교관님한테 들었습니다. 레이드 시대 막바지 때, 슬혜 씨가 교관님을 찾아왔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단순히 헌터 훈련소를 견학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던 건 아니었다.

자신의 각성 능력에 대해 상담하기 위해서였다.

송유별이 진슬혜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방금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 진짜야? 응?”

“…….”

말을 아끼던 진슬혜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왼쪽 손을 우리 앞으로 꺼내 보여 줬다.

손등이 잘 보이는 위치로 손을 들어 올린 진슬혜.

그녀의 손등에 작은 문양 같은 것이 빛나기 시작했다.

각성자라면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각성 문양이었다.

당연히 나도, 승훈이 형도 가지고 있다.

크기와 문양 패턴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각성 능력을 발휘하면 문양에 빛이 들어오는 건 모든 각성자들의 공통된 사항이다.

이걸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고설중 교관이 말했던 게 모두 사실임이 밝혀진 셈이었다.

송유별이 진슬혜에게 추궁했다.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겠다고 말했었으니까.”

각성했다고 모두가 다 헌터로 활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두 가지 예외 사항이 존재한다.

첫 번째, 전투력 측정이 불가능한 수준, 그러니까 F랭크조차도 안 되는 정도의 전투력을 지닌 각성 능력자라면, 헌터 자격을 얻을 수가 없다.

이 정도 전투력이면, 일반인보다 약간 강한 정도? 그게 다다.

잡몹 한 마리조차 잡을 수 없는 전투력으로 전장에 나서 봤자 개죽음만 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 일부러 랭크 제도를 도입한 거였다.

그리고 두 번째.

본인이 희망하지 않을 경우, 헌터 자격 획득이 불가능하다.

몬스터와의 싸움은 단순히 전투 능력만 높다고 능사가 아니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내가 아무리 SSS랭크 각성 능력을 지녔다 할지라도 몬스터만 보면 싸울 의지를 잃어버리는 사람이었다면, 나도 헌터 자격을 획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슬혜의 경우에는 둘 다 해당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도 모르게, 조용히 헌터가 아닌 일반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PD조차도 몰랐다고 한다.

“이거, 차라리 오디션 단계에서 나한테 말해 주지 그랬어. 그러면 ‘각성 능력을 가진 연습생!’이라는 콘셉트로 조금이나마 너 카메라 더 비춰 줄 수 있었을 텐데.”

“죄송해요. 저는 오히려 이 능력이 가수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이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이 있었다.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저를 보세요.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약간 장난기가 섞인 내 말에 잔뜩 경직되어 있던 진슬혜가 겨우 미소를 되찾았다.

이때, 송유별이 추가로 물었다.

“그런데 선배님, 각성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에 슬혜하고 계약을 맺으려고 하시는 거예요?”

“각성 능력은 부수적인 이유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내가 진슬혜와 계약을 맺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

“슬혜 씨가 저하고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 * *

내 노래가 헌터들의 전투 능력을 상승시켜 준다는 사실은 이미 헌터 협회를 통해 모두 공개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나와 같은 버프 능력을 지닌 헌터들이 더 있다는 사실 역시 추가로 밝혀졌다.

전수조사 결과, 나를 포함해서 총 여덟 명이 나왔다.

하지만 이철민 소장이 간과했던 부분이 하나 있었다.

각성 능력을 지녔지만, 진슬혜처럼 헌터 자격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각성 능력자도 노래 버프를 주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걸 놓친 것이다.

“이제 슬혜 씨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에서 총 아홉 명이 되었네요.”

“제게…… 그런 능력이 있었나요?”

“네.”

“하지만 저는 그런 거, 해 본 적이 없는데.”

“제가 해 봤습니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던 날 밤.

승훈이 형한테는 정말로 미안하지만, 내 주먹을 막을 수 있게끔 일부러 일격을 가했었다.

그리고 3차 미션 당일.

이번에는 진슬혜가 불렀던 노래를 들으면서 주먹을 내질렀다.

둘 다 같은 속도, 같은 위력으로 공격을 가했지만.

받아 내는 입장이었던 승훈이 형은 위력이 천지 차이였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어림짐작만으로 진슬혜에게 나와 동일한 능력이 있다고 한 게 아니다.

진슬혜의 노래를 녹음한 걸 가지고 이철민 소장과 협조해서 여러 차례 테스트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MML 수치가 1.3이 나왔습니다.”

“MML? 그게 뭔가요?”

MML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Music is my life’의 약자입니다.”

“…….”

갑자기 카페 안이 썰렁해졌다.

멋있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을 줄은 몰랐다.

승훈이 형이 나를 대신해서 이 민망함을 지워 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노래로 버프를 줘서 전투력을 얼마만큼 상승시킬 수 있는지 수치로 나타낸 것이 MML입니다. 현재까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게 여기 있는 태오입니다.”

이 형도 참.

그런 걸 말하면 내가 좀 부끄러운데.

그렇다고 뭐, 싫다는 건 아니고.

“아무튼 이런 이유에서 슬혜 씨를 저희 회사로 스카웃할까 합니다만. 괜찮으신지요?”

이제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진슬혜.

그러나 여전히 복잡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 저도 다른 분들처럼 헌터로 활동하게 되는 건…….”

“그건 아닙니다. 저희야 헌터, 가수를 겸업하고 있어서 몬스터가 나타나면 퇴치하러 가는 거지만, 슬혜 씨는 헌터 자격증이 없으니까요. 그냥 가수로만 활동해 주셔도 됩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헌터 협회 측에 말해서 헌터 자격증도 얻게끔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버퍼 포지션으로 신청하면 되니까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고 헌터 자격을 얻게 되면, 기본적인 생활비와 생명 수당이 지급되고 기타 세금 감면 등 다양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진슬혜는 자기가 이런 것까지 받을 자격은 없다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노래만 부를 수 있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좋네요.”

나는 다시 한번 그녀 앞에 계약서를 내밀었다.

“무대에 서고 싶다면, 저희와 계약하시면 됩니다.”

“…….”

그럼에도 진슬혜는 여전히 망설였다.

자신이 모르는 분야니까.

그리고 자신이 아예 가 본 적이 없는 길이니까.

그것 때문에 첫걸음을 섣불리 내딛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녀의 등을 떠밀어 줄 수 있는 동료가 바로 근처에 있으니까.

“계약해, 슬혜야.”

송유별이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선배님 회사라면 뒤통수 때릴 걱정 없고. 그리고 HT 엔터테인먼트는 연예계에서도 유명한 곳이잖아? 그쪽에 이미 다른 가수 선배님들도 계시고.”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송유별이 진슬혜의 손을 다시 잡아 줬다.

“나는 계속 너하고 같이 가수로 활동하고 싶어. 설령 다른 소속사, 다른 팀에 가더라도. 우리 둘 다 가수의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도 만족해.”

진슬혜의 생각이 깊어졌다.

가장 힘들 때, 가장 힘이 되어 준 친구의 말이 그녀에게 용기를 심어 준 걸까.

잠시 내려놓았던 펜을 다시 들어 올렸다.

여기에 맞춰서 나도 행동에 임했다.

“사인은 여기에 하시면 됩니다.”

이것으로 우리 HT 엔터테인먼트는 또 한 명의 헌터 아이돌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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