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73화 (73/250)

제21장. 반전을 품은 연습생 (5)

3차 팀 미션 무대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현장은 긴장감으로 가득 물들었다.

이번에 특별심사위원으로 참가하게 된 나는 첫 방송 때부터 심사위원으로 활약해 오고 있는 출연자들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제가 여기에 앉아 있어도 되려나 모르겠네요.”

약한 소리를 잠깐 하자, 내 바로 옆에 앉은 홍소율 프로듀서가 고개를 여러 차례 가로저었다.

“세상을 구하는 노래를 부르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 누구도 못 하는 일을 하시는 거 아닙니까.”

다른 심사위원들도 홍 프로듀서의 말에 격한 공감을 드러냈다.

이거 참.

헌터로 한창 활동할 때에는 사람들로부터 이렇게 기대감을 받는 일을 오히려 즐기곤 했었는데.

가수가 되고 나니까 가끔씩은 이런 말들이 부담으로 작용할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가수로서 경력이 오래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아직 나도 멀었구만.’

쓴 미소를 흘리면서 펜대를 여러 차례 굴렸다.

잠시 뒤.

조윤혁이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면서 등장했다.

메인 MC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는 뜻은.

“곧 녹화 시작하겠네요.”

홍 프로듀서의 말대로였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와 주신 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걸스 스타 스테이지, 대망의 3차 팀 미션 무대를 시작하겠습니다!”

현장이 더욱 뜨거워졌다.

분명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열기는 에어컨으로 식힐 수 없는 종류의 뜨거움이었다.

1팀부터 무대에 올라섰다.

차례차례 자신들을 소개하는 연습생들.

기숙사에서 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풀메이크업에 무대 의상까지 예쁘게 차려입으니까 한 명 한 명이 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비주얼만으로 평가를 내릴 수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무대다.

“대망의 첫 무대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유도한 뒤, 조윤혁은 잠시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부터는 연습생들만의 시간이 펼쳐진다.

반주가 흘러나오면서 연습생들이 그동안 열심히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타트를 끊어야 한다는 점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라도 한 걸까.

“자잘한 실수가 많네요.”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이렇게 말을 했다.

옆에 앉은 홍 프로듀서 역시 굳은 표정을 유지하면서 ‘그러네요.’라고 말했다.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심지어 나는 기숙사에 방문했을 때, 그리고 리허설 때를 모두 합쳐서 저들의 무대를 꽤 자주 봤었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 실수를 했는지,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었다.

무대가 끝나자, 관중이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우리들도 고생했다는 뜻으로 박수 보내기에 동참했다.

하지만 아쉬움은 쉽게 지울 수 없었다.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아쉬운 것보다 연습생들이 더 많이 아쉬울 것이다.

그렇게 첫 무대가 끝나고.

잠시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 뒤에 두 번째 무대의 막이 올랐다.

첫 번째 팀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첫 번째 팀보다도 더 못하면 좀…….’

최악이었다.

너무 큰 실수가 많이 벌어졌다.

무엇보다도 저지르지 말아야 할 실수가 나왔다.

메인 보컬 포지션을 맡은 연습생이 후렴구를 부르다가 음 이탈을 해 버린 거였다.

그래도 관객들이 열심히 하니까 괜찮다고 응원해 줘서 다행이지,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연습생들은 끝까지 무대를 이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홍 프로듀서의 한숨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일 났네요, 이거.”

제대로 하는 팀이 하나도 없네.

어쩔 수 없이 남은 팀들에게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다.

* * *

다행히도 허리 라인을 맡게 된 팀들은 준수한 실력을 뽐내면서 그럭저럭 볼만한 무대를 보여 주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여전히 많이 보였다.

나도 그렇고 말이다.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팀 차례가 도래했다.

송유별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기운을 차리고 미친 듯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과연 마지막 팀을 응원할 정도의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신경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었나 보네.’

앞서 보여 줬던 연습생들의 표정과 마찬가지로, 송유별 팀 멤버들 역시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엿보였다.

“마지막 팀 무대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뜨거운 박수로 응원해 주세요!”

해피모드의 노래가 현장에 빠르게 울려 퍼졌다.

앞에서 무대를 펼쳤던 연습생들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줘서 그럴까.

솔직히 그렇게까지 크게 기대하진 않았었다.

게다가 무대에 서는 걸 두려워하는 진슬혜도 있고.

그럼에도 나에게는 일말의 희망 같은 게 있었다.

내가 해 준 조언이 진슬혜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지.

여기에 모든 걸 걸어 보기로 했다.

이 승부수가 통했을까?

‘너무 잘 통한 거 같은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슬혜는 연습 때 보여 줬던 당찬 표정을 유지하면서 안무를 선보였다.

동작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넘쳤다.

달라진 진슬혜의 모습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저 연습생, 누구야?”

“그…… 맨날 하위권에만 맴돌던 그 멤버 있잖아. 진슬혜? 그런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엄청 잘하는데?”

“노래도 잘 부르고.”

“진슬혜가 저렇게 예뻤나?”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것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마음마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무대의 힘이다.

원래는 송유별 하나만 보고 마지막까지 기다렸을 관객들에게 반전을 보여 주는 데에 성공한 진슬혜.

덕분에 그녀는 꽤 오랫동안 관객들의 머릿속에 기억될 것이다.

심사위원들도, 그리고 PD도 진슬혜의 활약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3차 미션이 방송에 나갈 때에는 슬혜 씨가 샷 많이 받겠네.’

하지만 아쉬운 점도 하나 있었다.

첫 방송 때부터 이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하다못해 2, 3화에서부터 본실력을 보여 줬더라면, 진슬혜는 더 많은 사람들의 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

나도 그날은 ‘본방사수’를 해야겠다.

* * *

심사위원들의 모든 투표가 끝나고.

딱 결과만 보고서 승훈이 형과 함께 차로 돌아왔다.

GSS 3차 팀 미션.

결과는 내 예상대로 송유별 팀의 압도적인 승리로 돌아갔다.

1위를 차지한 덕분에 송유별 팀 인원들은 전원 베니핏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차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승훈이 형에게 물었다.

“형, 녹화 시작하기 전에 내가 부탁했던 거, 어떻게 됐어?”

“이거?”

승훈이 형이 스마트폰을 꺼내고서 동영상 하나를 내게 보여 줬다.

송유별 팀의 무대를 영상으로 몰래 찍어 달라고 승훈이 형에게 부탁을 했었다.

외부로 유출할 생각으로 찍어 달라고 한 건 아니고.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였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집중해서 들은 나는 운전석에 앉아 있는 승훈이 형을 불렀다.

“형.”

“왜, 또…… 히익!”

이번에도 나는 지난번처럼 승훈이 형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일반인이라면 절대로 못 막을 속도지만, 승훈이 형도 각성 능력을 지녔기에 어렵사리 막아 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저번과 똑같진 않았다.

퍽! 소리와 함께 승훈이 형이 비명을 질러 댔다.

“아, X발! X나 아프네! 야, 강태오! 너, 저번에도 그러더니만, 대체 왜 그러냐? 나한테 뭐 원한이라도 있냐? 어?”

그럴 리가 있나.

이건 단지 실험일 뿐이다.

“많이 아파, 형?”

“아프지, 그럼!”

“그래? 저번에 내 주먹 막았을 때하고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아파?”

“그야 당연히 지금이지!”

“음, 그래?”

역시 그랬다.

지난번에 고설중 교관한테서 설명을 들었을 때에는 솔직히 긴가민가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의문이 해결되었다.

기숙사에서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위화감의 수수께끼도 같이.

“형, 방금 내가 주먹 휘두른 거 있잖아. 그거, 기숙사 때하고 똑같은 파워로 휘둘렀던 거야.”

“뭐? 근데 왜 지금 게 훨씬 아프냐?”

“뭐 때문이겠어?”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승훈이 형이 틀어 준 영상을 가리켰다.

그러자 승훈이 형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 설마……!”

스마트폰을 다시 승훈이 형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내일 회사 출근하면, 계약서 하나 더 준비해 달라고 전해 줘.”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거두게 되었다.

* * *

3차 팀 미션 이후에 진행되는 녹화는 내 출연이 따로 잡혀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PD로부터 양해를 받아서 직접 녹화 현장에 참여할 수 있었다.

출연하는 건 아니고, 견학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승훈이 형이 내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만약 상위 라운드로 진출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

“그러면 더 좋은 거지. 본인이 원하는 대로 된 거니까.”

“그렇겠지? 축하해 줘야겠지?”

“왜 그래, 형. 마치 떨어질 걸 바라는 사람처럼. 그렇게 못된 생각 하지 말라고.”

“어흠!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 나중에 시간 지나면 경쟁자가 더 많아질 거 같고.”

승훈이 형의 혼잣말도 녹화 시작과 함께 끝을 맺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조윤혁이 직접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생존자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70명 중 50명만이 생존할 수 있다.

나머지 20명은 이대로 탈락.

딱 50위 안에만 들면 된다.

“상당한 순위 변동이 있었습니다. 3차 미션의 여파가 꽤나 컸던 모양인가 보네요.”

연습생들의 이목이 무대로 집중되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어떻게 될지, 결과가 너무 궁금했다.

“먼저 40위권부터 발표하겠습니다.”

50위권 발표는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마지막에 발표할 생각인가 보다.

40위부터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생존자들의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다.

송유별 팀에 소속되어 있던 연습생들 대다수가 이름이 불리는 영광을 차지했다.

순식간에 1, 2위 발표까지 오게 되었다.

“3차 팀 미션 영애의 1위는 바로…… 송유별 양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이변 없이 송유별이 1위의 자리에 올랐다.

1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송유별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진슬혜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41위부터 50위까지 순서대로 발표하겠습니다.”

41위를 시작으로 42, 43, 44, 45위까지.

여전히 진슬혜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진슬혜는 애써 웃었다.

자신은 괜찮다고.

그렇게 송유별을 위로하는 듯했다.

“마지막 50위!”

여기서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정말로 끝이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막차를 타게 될 연습생의 정체가 발표되기를 기다렸다.

“마지막 생존자는…… 서현아 양입니다!”

진슬혜의 최종 순위는 아쉽게도 51위.

딱 한 계단 차이였다.

그럼에도 진슬혜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지으면서 펑펑 우는 송유별을 안아 줬다.

“괜찮아. 나는 괜찮으니까, 나 대신 반드시 우승해 줘.”

그렇게 송유별을 달래 줄 때까지 기다린 나는 녹화가 끝나자마자 진슬혜에게 다가갔다.

“슬혜 씨.”

“선배님? 여긴 어떻게…….”

나는 대답 대신 계약서를 꺼냈다.

“저희하고 계약하시죠.”

진슬혜와의 계약.

이게 오늘, 우리의 목적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