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72화 (72/250)

제21장. 반전을 품은 연습생 (4)

GSS에 참가하는 연습생들의 준비 상태가 신경이 쓰이지만.

사실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헌터 훈련소에 도착한 나는 고 교관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안쪽에서 고 교관의 쩌렁쩌렁한 외침이 들려왔다.

“벌써 숨차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 얼른 물속으로 안 들어가?”

“이 안에서 어떻게 노래 연습을 하라고요!”

준서가 고 교관한테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면서 고래고래 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 교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우리 교관의 옛 별명이 뭐였는지 아나?

고집불통이다.

고집 싸움에선 거의 진 적이 없는 사람이 바로 우리 고설중 교관이다.

“야, 인마! 태오는 내가 재촉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하고 그랬어!”

“태오 형하고 저희하고는 애초에 랭크 자체가 다르잖아요! 데이브 형! 형도 뭐라고 좀 해 보세요!”

방금 전까지 준서와 마찬가지로 이 말도 안 되는 훈련을 내가 왜 하고 있어야 되는지 불만을 가득 드러내는 얼굴을 했던 데이브였지만.

이내 표정이 달라졌다.

“교관님, 강태오도 이 훈련…… 아니, 노래 연습 했습니까?”

“그래, 왜?”

“……아닙니다.”

그 뒤로 데이브는 말없이 물속으로 잠수했다.

풍덩! 소리와 함께 바닥까지 가라앉은 데이브는 가부좌를 틀고서 열심히 입을 뻐끔뻐끔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사용했던 헌터식 노래 연습인데.

아직 다른 헌터들한테는 익숙지 않은 모양인가 보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준서가 나에게 SOS를 요청했다.

“태오 형! 교관님 좀 어떻게 해 보세요! 노래 연습한다고 불렀으면서, 저희를 익사시키려고 하고 있잖아요!”

“익사 아니야. 의외로 효과 있으니까, 교관님 말에 얌전히 따르도록 해.”

“형까지 진짜……!”

홀로 투쟁 아닌 투쟁을 펼치는 준서와 달리, 니암과 딜런은 데이브와 마찬가지로 물속에 들어가서 얌전히 내가 고안한 헌터식 노래 연습 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교관님, 여성 멤버들은요?”

“B코스 연습하고 있어.”

“잘 받고 있나요?”

“뭐…… 이 녀석들보다는 그래도 얌전한 편이지.”

남자 그룹에는 대표 까불이와 대표 반항아가 있으니까.

고 교관도 여러모로 고생이 많아 보였다.

“그나저나 넌 요즘 많이 바빠 보이더라.”

“저요?”

“얼마 전에 GSS인가, 그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기로 했다면서?”

“아, 그거요? 고정 출연은 아니고요, 특별심사위원으로 2회 정도 되는 분량에만 나오기로 했어요. 내일 촬영이 끝입니다.”

내일이 3차 팀 미션이 있는 날이다.

특별히 선정한 관객들 앞에서 준비한 무대를 펼쳐야 하는 미션으로, 현장 관객 투표 60퍼센트와 심사위원 투표 40퍼센트를 반영해서 순위를 가를 예정이다.

“근데 교관님이 GSS를 어떻게 알아요? 평소에 이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내가 아는 고설중 교관은 그런 거 안 챙겨 볼 것 같은 성격인데.

애초에 대중문화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어떤 건지도 모르고 말이다.

워낙 고지식한 사람이기에 먼저 GSS를 언급한 것 자체가 내게는 꽤나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거기에 출연하는 연습생 때문에 어쩌다가 보게 된 거라서.”

“아는 사람이 있어요? 누군데요?”

연습생 중에 친인척이라도 있나 싶어서 물었다.

고 교관이 들려준 연습생의 정체는 전혀 예상 밖이었다.

“진슬혜라고, TV에는 거의 안 나왔는데, 아나 모르겠네.”

진슬혜 연습생.

최근에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참가자였다.

“알긴 알죠. 근데 진슬혜 연습생이 왜요?”

“슬혜, 예전에 여기 몇 번 들락날락했었거든.”

“여기라면…… 훈련소를요?”

“어.”

일반인인 진슬혜가 대체 왜 여기를?

설마.

내 머릿속에 어느 가설 하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 * *

3차 팀 미션 당일.

약속한 시간보다 2시간가량 먼저 온 나는 승훈이 형과 함께 바로 무대로 향했다.

연습생들의 리허설 무대를 직접 보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 팀부터 마지막 열 번째 팀까지.

한 번씩 돌아가며 공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무대를 공유하면 그나마 나은데, 무대별로 세팅을 다르게 해야 하다 보니 시간이 꽤나 소요될 것이다.

연습생들의 컨디션이 어떨지 신경도 쓰이고.

내 무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별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이상 내가 체크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하고 넘어가고 싶다.

연습생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놓치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태오 씨.”

스태프가 내게 오늘 녹화의 세트 리스트를 가져다줬다.

송유별 팀이 가장 마지막에 위치해 있었다.

‘좋다고 봐야 할지, 안 좋다고 봐야 할지. 애매하네.’

일반 가요 프로그램이었다면, 당연히 좋은 순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긴 경연 무대다.

아까도 말했지만, 1팀부터 10팀까지 모든 공연을 한자리에서 하게 될 텐데, 과연 관중이 마지막 팀 순서가 될 때까지 체력과 정신력을 남겨 둔 채로 무대를 관람할 수 있을지.

이게 가장 큰 걱정이다.

특히나 진슬혜의 경우에는 이번 우승이 매우 간절하다.

‘탈락 위기권에 놓여 있으니까.’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에서 제 역량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 탓에 외줄 타기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오늘은 다르지 않을까.

이 생각을 해 봤지만.

“잠깐만요! 진슬혜 씨, 목소리 너무 작은 거 같은데. 오디오 볼륨 좀 체크해 주실래요?”

“오디오는 정상입니다. 슬혜 씨, 목소리 좀 더 크게 내 주세요.”

“죄, 죄송합니다……!”

리허설 단계부터 이미 틀린 것 같다.

무대 공포증이라도 있는 걸까?

연습 때에는 그렇게 잘하던 진슬혜가 왜 유독 본무대에만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리허설이 끝나자, 송유별이 먼저 진슬혜에게 접근했다.

한 손으로 진슬혜의 작은 어깨를 감싸 주면서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아. 조금 있다가 잘하면 돼. 너무 긴장하지 말고. 알았지?”

“……미안해, 유별아. 나 때문에 괜히 너희 발목만 붙잡아서…….”

“왜 그래. 아직 무대 안 끝났어. 벌써부터 망한 것처럼 이야기하지 말라고. 알았지?”

“…….”

내가 지난번에 기숙사에서 본 그 진슬혜와 지금의 진슬혜가 동일 인물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굉장히 소심한 모습을 보였다.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모양인지, 진슬혜는 잠시 바깥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하고 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사람들 몰래 진슬혜의 뒤를 따랐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기척을 지우고 타깃에게 접근하는 건 내 특기다.

게다가 현장은 3차 미션 무대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쓸 만한 사람은 없었다.

후문에 위치한 주차장 바닥에 조용히 앉은 진슬혜.

고개를 푹 숙인 채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은 상태로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조용히 진슬혜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옆자리에 앉아도 괜찮을까요?”

“……!”

기척도 없이 다가온 나 때문에 깜짝 놀란 모양인지, 진슬혜의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서, 선배님! 바닥이라서 그냥 앉으시면 안 되는데…….”

“몬스터하고 싸울 때에는 흙바닥을 뒹구는 게 다반사였으니까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진슬혜가 황급히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눈시울이 붉은 걸 봐선, 혼자서 조용히 눈물을 삼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리허설 무대, 봤습니다. 긴장을 많이 한 거 같더라고요.”

“…….”

“무대가 두려우십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을 모르겠다.

무대에 서기를 희망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거 아닌가?

그런데 무대를 무서워한다는 건 모순이다.

오랜 고민 끝에 진슬혜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유별이하고 같이 무대에 설 일이 있었어요. 선배님들 공연 사이에 아주 잠깐 하는 자투리 무대였어요.”

소속사가 망하기 전의 일을 회상하는 진슬혜.

그녀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거의 한 달 가까이를 연습한 무대였거든요. 계속해서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연습하고. 그렇게 자신감이 가득한 채로 무대 위에 섰어요. 그런데…….”

“큰 실수라도 저질렀나요?”

진슬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무대 자체는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당시 매니저님도 고생 많았다고, 최고였다고 칭찬해 주시기도 했고요.”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무대 끝나고 집에 가기 전에 잠깐 화장실에 들렀거든요. 근데 그 화장실 안에서 저희 무대를 봤던 관객들이 뒷담화하는 걸 들었어요. 아까 그 댄서들, 아마추어같이 보이던데, 자기들은 이 비싼 돈 내고 그 여자들 춤추는 거 보러 온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게 트라우마가 되었군요.”

“…….”

자신들이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누군가가 그렇게 폄하하는 소리를 직접 들은 건 처음 경험했을 것이다.

프로 가수들조차도 그런 일을 겪으면 멘탈이 나갈 텐데, 당시 진슬혜는 어땠을까.

“그날 이후로 사람들 앞에 서면 이런 생각이 먼저 들어요. 지금은 웃고 있지만, 혹시 저 사람들은 뒤에서 나를 몰래 험담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에요.”

이 불안감이 자꾸만 진슬혜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래서 무대 위에 서면 제 실력을 낼 수가 없는 거였다.

“선배님은 혹시 이런 경우가 있었나요?”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은 아직 못 만나 봤습니다. 대신 앞에서 신랄하게 까 대는 사람은 있죠.”

데이브라고, 아주 이상한 성격을 가진 남자가 있다.

물론 이건 농담이고.

“저도 저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원래 팬이 많을수록, 그만큼 안티의 수도 많아지는 법이거든요.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꼭 한 명씩은 있지 않습니까?”

해결책은 간단하다.

“신경 쓰지 마세요.”

“네?”

“그 사람들이 하는 말, 그냥 잊어버리세요. 어차피 평생 만날 사람들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제가 장담컨대, 슬혜 씨를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겁니다. 소수의 안티들 때문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지 마세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열심히 하는 게 우리들의 일 아니겠습니까? 슬혜 씨는 오롯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들만 보면 됩니다. 해바라기처럼요.”

“…….”

나도 이게 어려운 일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한다.

그래야 진슬혜가 앞으로 계속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슬혜 씨 괴롭히는 사람들이 또 나타나면, 언제든 저한테 말해 주세요. 제가 한 방 먹여 주러 갈 테니까요.”

가볍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내 모습에 진슬혜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힘이 좀 나네요.”

내 조언이 과연 진슬혜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

그건 무대를 통해서 직접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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