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71화 (71/250)

제21장. 반전을 품은 연습생 (3)

안에서 들려오는 연습생들의 날카로운 목소리들.

이건 누가 들어 봐도…….

“싸움 났네요.”

PD가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뭐,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한 번도 안 싸우고 살 수가 있을까.

특히나 이곳 환경은 더더욱 그렇다.

군대처럼 계급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동일한 연습생 신분에 같은 목표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인데, 한 기숙사에서 거주하고 있으니까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PD도 그걸 잘 아는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이전에도 이런 일들이 종종 있었나 보네요.”

“어휴, 아주 많았죠. 방송에 안 나갔을 뿐이지,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싸움이 벌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역시 카메라 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법이다.

“더 심해지기 전에 말려야겠네요. 그래도 우리들 중 누군가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지거든요. 김 작가가 가 볼래?”

“네, PD님.”

스태프가 안무 연습실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기 직전.

“잠깐만요.”

내가 나서서 그를 만류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보면,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싸움이 격화되려고 하던 순간에 같은 팀원인 진슬혜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말고. 같은 팀이잖아? 그리고 쉬지도 못하고 늦은 시간까지 계속 연습만 반복해서 예민해진 거 다 알아. 우리,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보자. 좋든 싫든, 이 멤버로 무대에 서야 하잖아. 그러면 최소한 우리 무대 보러 온 분들한테는 밝은 모습 보여 줘야지. 안 그래?”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연예인은 카메라 앞에 서면 항상 웃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어떻든 간에.

그래서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굉장히 힘든 것이다.

진슬혜는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다독임이 통했을까.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두 연습생이 어느새 화를 가라앉히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PD도 놀랐는지 감탄을 흘리며 말했다.

“연습생들끼리 서로 싸움 벌어졌는데 알아서 잦아드는 경우는 처음 보네요. 지금까지 전부 다 우리가 말려야 했는데.”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던 때에, 이번에는 송유별이 나섰다.

“시간 얼마 없으니까 일단 연습부터 시작하자. 바로 5일 후가 본무대야.”

진슬혜가 팀원들을 다독이고, 조장인 송유별이 이들을 이끈다.

두 사람이 같은 팀에 있으니 확실히 시너지 효과가 크다.

‘이래서 송유별이 진슬혜를 첫 번째로 지목했던 거였군.’

게다가 같은 소속사에서 연습생으로 지냈었다고 하니까, 호흡도 잘 맞을 것이다.

의외의 픽이라고 생각했던 송유별의 선택은 결국 그 어떤 전략보다도 뛰어난 선택으로 판별되었다.

상황이 정리되었음을 확인한 나는 PD와 스태프들에게 손짓했다.

“들어가시죠.”

지금 들어가면 딱 좋을 타이밍이다.

* * *

드르륵 소리에 연습생들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쏠렸다.

동시에 양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놀라움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열 명의 팀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면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연습은 잘되어 가고 있어요? 별문제 없죠?”

“네!”

애써 웃는 연습생들.

방금 전 목소리를 높이며 싸웠던 연습생들 또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금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싸운 거 가지고 굳이 탓할 생각은 없었기에 나도 모른 척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빈손으로 오기 좀 그래서, 먹을 거 좀 사 왔어요.”

“우와……!”

“감사합니다, 선배님!”

먹을 거라는 말에 연습생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까 소란을 일으킨 원인이었던 연습생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먹거리들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침을 꼴깍 삼켰다.

기숙사에서 머무는 동안, 먹고 싶은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없다고 들었다.

마치 군대 같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일부러 다양한 것들로 사 왔다.

대신에 밤에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들은 웬만하면 피했다.

괜히 나 때문에 컨디션 난조로 이다음 날 연습에 불참하게 되면 큰일이니까 말이다.

나 덕분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된 팀원들.

“연습은 잘되어 가고 있나요?”

내 물음에 송유별이 대표로 답했다.

“약간 헤매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 빼고는 대체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어요.”

“그래요? 어느 부분인데요? 괜찮다면 제가 한번 봐도 될까요?”

“선배님이 직접이요?”

“예, 이래 봬도 나름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합니다.”

헌터와 가수를 겸직하고 있지만, 이전부터 나는 대중가요에 관심이 많았기에 어느 부분이 어색하고 수정이 필요한지 정도는 자신 있게 지적해 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현역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고 말이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내 말이 연습생들에게 의외로 커다란 힌트로 작용하게 될지.

연습생들은 잠시 먹는 걸 멈추고 바로 대형을 갖췄다.

송유별 팀이 택한 노래는 공교롭게도 우리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걸 그룹, 해피모드의 노래였다.

3집 타이틀곡인 ‘키스 키스’.

해피모드는 원래 총 여덟 명이다.

하지만 송유별 팀의 인원수는 열 명. 두 명이 더 추가된 만큼, 안무나 포지션 같은 것도 새로 짜야 할 것이다.

해피모드 무대는 나도 여러 차례 봐 왔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피드백을 줄 수 있을 거라 자부한다.

노래가 시작되자, 센터를 차지한 송유별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원래는 안무만 볼 생각이었는데, 내게 평가받는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모양인지 보컬까지 본인들이 직접 소화하기 시작했다.

PD가 이전에 송유별은 거의 완성형에 가깝다고 표현했었다.

이렇게 직접 무대를 보니, 나도 PD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송유별보다도 더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진슬혜였다.

오늘 밤 너의 입술을 훔쳐 갈래.

도망가도 소용없어.

넌 나의 노예.

넌 나의 포로.

춤 실력은 말할 필요가 없고.

보컬, 그리고 표정 연기를 포함해서 손짓 하나하나까지 디테일한 부분을 전부 신경 쓰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앗……!”

포지션을 바꾸던 와중에 어느 연습생이 중간에 실수를 했다.

살짝 위치가 꼬여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진슬혜는 같은 팀원의 실수를 실수가 아닌 척 감추기 위해서 일부러 그녀와 같은 각도로, 같은 위치로 재빨리 이동했다.

똑같은 포지션에 위치해 있으니까 확실히 ‘어? 이상한데?’라는 느낌이 덜 들었다.

‘센스 있네.’

웬만한 연습생은 이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자신이 할 것만 할 텐데.

진슬혜의 이 모습만 봐도 그녀가 자신의 역할에만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팀 전체를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시야가 넓은 연습생은 처음 본다.

‘보면 볼수록 탐나는데.’

무대가 끝날 때까지, 진슬혜의 존재감은 송유별을 뛰어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 눈에는 진슬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가 압도적으로 잘했다.

문제가 있다면.

‘무대에서 본실력을 못 발휘한다는 게 너무 치명적이네.’

한편, 연습생들이 내 평가를 기다렸다.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인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 몇 개만 지적해 주기로 했다.

“잘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요. 무대를 즐긴다는 느낌보다는 시험을 보러 왔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더라고요. 물론 평가받는 자리라고 다들 생각하셔서 그렇게 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무대를 펼칠 때에는 본인이 이 무대를 즐기고 있다는 것을 관중에게 꼭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리고 중간에 한 번 실수하셨죠?”

“아…….”

연습생들은 내가 눈치 못 챘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설령 내가 해피모드 그룹의 안무를 몰랐다 할지라도, 약간의 버벅거림만 봐도 안무 실수했구나 하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 테니까 굳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단순 실수니까요. 대신에 본무대에서는 최대한 실수를 줄이도록 해야 합니다. 오직 연습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거, 잘 아시죠?”

“네, 선배님!”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 깊게 봤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시면, 1위는 문제없을 거 같네요.”

3차 팀 미션에서 우승한 팀에게는 막대한 베니핏이 주어진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시청자 투표에 일정 표를 더해서 계산하는 형태로 이점을 줄 거라고 했는데.

그거야 뭐, 팀 미션에서 1등 하고 난 다음에 고민해 봐야 할 사항이고.

아직은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아까 진슬혜가 노래 부를 때.

‘위화감이 자꾸 들던데.’

노래를 못 불러서?

아니면 음 이탈이 나서?

그런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다른 멤버들이 노래하고 춤출 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유독 진슬혜의 파트에만 그랬다.

문제는 이 위화감이 낯설지가 않다는 거였다.

익숙한 느낌.

하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각.

‘뭐지?’

묘하게 신경이 쓰이는데, 내게 답을 줄 사람이 없다.

진슬혜 본인도 모르는 거 같고.

‘젠장, 오늘 잠은 다 잤네.’

늦잠은 이미 확정이다.

* * *

송유별 팀을 시작해서 다른 열 개 팀의 안무 연습실을 한 번씩 들렀다.

편차는 있지만, 다들 열심히 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한 바퀴 쭉 돌다 보니까 벌써 새벽 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PD님. 저 때문에 이 시간까지 일하게 만들었네요.”

“아닙니다. 어차피 아까 잠 많이 자 둬서 괜찮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태오 씨가 안 오셨어도 어차피 밤새웠어야 했어요.”

“왜요?”

“아직 다음 화 영상 편집이 다 안 끝났거든요.”

PD의 고충은 이런 것이다.

GSS가 장안의 화제로 거듭나면서, 편집에 대한 부담감도 점점 커졌을 것이다.

괜히 이상하게 영상을 편집했다간 그 많은 관심들이 어느새 비난과 비판으로 바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네. 살펴 가세요, 태오 씨.”

PD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저 멀리서 승훈이 형이 차를 끌고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뒷좌석에 탑승한 나는 승훈이 형에게도 늦은 시간까지 함께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자 승훈이 형은 괜찮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려줬다.

“이게 내 일이니까. 그리고 어차피 집에 가 봤자 할 일도 없고. 이렇게 바깥 활동이라도 해야 하루를 보람차게 보냈구나 하고 생각이 들지.”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참, 형.”

“왜?”

“이쪽 한번 볼래?”

“……?”

승훈이 형이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오른 주먹을 강하게 휘둘렀다.

순간 승훈이 형이 기겁을 하면서 다급하게 손바닥을 펼쳐 내 주먹을 막았다.

펑! 소리와 함께 묵직한 살갗 부딪치는 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뭐 하는 짓이야, 이 녀석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 방금 전까지 나한테 미안하다고 한 놈이 이제 와서…….”

“그보다 형, 뭐 특별한 거 못 느꼈지?”

“응? 뭐를?”

그냥 내 착각인가?

“아니야, 아무것도.”

에라, 모르겠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게임이나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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