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나와 계약해서 헌터 아이돌이 되어 줘 (2)
나빈이를 만나러 가기 전에 먼저 니암과의 계약을 추진하기 위해 그를 만나러 떠났다.
승훈이 형과 함께 니암이 머물고 있다는 호텔 앞 카페를 찾았다.
그러자 먼저 도착한 니암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쪽입니다!”
니암과 같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마자 간단한 이야깃거리부터 먼저 꺼내 보기로 했다.
“한국에는 처음 와 본다고 했었죠?”
“예, 신기한 나라더라고요. 헌터 활동할 때에도 이곳에는 와 볼 일이 없었는데.”
“어떤 거 같습니까?”
“좋아 보입니다.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발전되고 활기찬 나라라는 게 느껴질 정도더군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아직 한국을 후진국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그냥 던져 본 질문이었다.
여기에 오기 전에 협회로부터 니암에 대한 아주 상세한 신상 정보를 건네받았다.
원래는 이렇게 개인 정보를 함부로 보여 주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만.
협회장과 내가 긴밀한 사이였기에 이런 것도 가능했다.
물론 니암 본인한테는 철저하게 비밀로 할 예정이다.
내가 생각해도 떳떳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출국은 언제 하시기로 예정되어 있나요?”
“모레입니다. 그동안 여행 삼아서 이곳저곳 돌아다녀 보려고요. 의외로 한국말을 할 줄 몰라도 의사소통은 잘 통하더라고요. 이 커피도 통역사 도움 없이 어찌어찌 저 혼자 시켰습니다.”
자랑하듯 말하는 니암의 모습에 나도, 승훈이 형도 작게 웃었다.
대충 안부를 묻는 형태의 인사말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고.
슬슬 본론을 꺼내 보기로 했다.
“저희 회사하고 계약을 안 하신다고 하셨죠?”
“예.”
“실례가 안 된다면 이유가 뭔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가수 활동이 부담스러운 건지.
아니면 혹시 다른 연예 기획사에서 니암을 노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후자는 가능성이 낮다.
아직 니암이 나와 같은 노래 버프 능력을 지녔다는 게 외부에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본인이 말을 하고 다녔다면 자연스럽게 소문이 퍼져 나갔을 테지만.
짧은 기간이나마 내가 본 니암이라는 사람의 성격은 준서처럼 입이 그렇게 가벼운 편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준서가 들으면 화냈으려나.
아무튼 그렇다.
우선은 이유를 알고, 회유는 그다음에 들어가기로 했다.
니암이 난색을 드러냈다.
“그게…… 실은 제가 취업을 해서요.”
승훈이 형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되물었다.
“취업……이요?”
“예.”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평범한 이야기가 튀어나와서 나조차도 조금 당황했다.
아니, 나는 뭐 대단한 이유라도 숨겨져 있나 싶었는데.
이러면 어제 괜히 하루 종일 고민했잖아.
근데 단순히 취업했다는 이유로 우리와의 계약을 거절하는 것도 납득이 안 간다.
“좋은 회사인가 보죠?”
내가 떠보듯 묻자, 니암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의 제 스펙으로는 절대로 들어가기 불가능한 대기업이거든요. 회장님께서 제 헌터 이력을 높게 봐주신 거 같더라고요. 어차피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헌터로 먹고살기 힘들어질 테고. 그렇다고 제가 태오 씨처럼 헌터 활동으로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축적한 건 아니라서……. 그래서 이번 기회에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렇군요.”
처음에는 취업이라는 이유가 나에게는 다소 의외라고 느껴졌었다.
하지만 니암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듯이, 니암의 헌터 랭크는 B다.
B랭크. 딱 평균적인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수입적인 면은 좋았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인류를 대표해서 몬스터와 싸우는 일이니까.
그래서 협회 측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급여와 생명 수당 자체가 굉장히 센 편이었다.
여기에 현상금, 성과금이 더해지면 그래도 꽤나 짭짤하게 벌었을 터.
하지만 니암이 말한 것처럼 평생 놀고먹고 할 수준만큼 많이 벌진 않았을 것이다.
그건 나나 데이브, 나빈이나 아이리스처럼 최소 S랭크 이상 정도까지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테니까 말이다.
앞으로의 생계가 많이 걱정될 테니, 기회가 있을 때 적당히 자리를 잡는 게 좋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니암이 가진 능력이 너무나도 유니크하다.
“그럼 이렇게 하죠.”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본격적인 조율에 들어가기로 했다.
“취업하기로 한 그 기업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쪽 연봉보다 두 배를 드리겠습니다. 조건 없이요.”
“예? 두 배면…… 금액이 장난이 아닐 텐데요.”
“니암 씨, 제가 누군지 아시죠?”
승훈이 형한테 슬쩍 눈짓을 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승훈이 형이 미리 챙겨 온 서류 가방을 꺼냈다.
딸칵!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해제되면서 내용물이 드러나자 니암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이, 이건…….”
“달러입니다. 급하게 환전해 오느라 이 정도밖에 준비 못 했습니다.”
달러가 아니라 원이었다면 더 많은 금액을 가져왔을 텐데.
그게 아쉬웠다.
하지만 니암은 내가 보여 준 금액만으로도 쉽게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 아니, 저한테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전 니암 씨가 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니암의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단은 최대한 내 의사를 전달해 주기로 했다.
“헌터 활동에 매진했을 때에는 분명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헌터였겠죠. 니암 씨 본인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거 같고요. 하지만 니암 씨, 잘 들으세요.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세계를 구할 능력입니다.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희귀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
“B랭크라 할지라도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취업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니암 씨에게 특별해질 수 있는 순간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무대에 오른다는 일은 곧 특별한 내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자 결과다.
헌터로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면.
“헌터 아이돌로서 두각을 드러내면 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니암 씨를 기억하고, 니암 씨가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고, 그리고 니암 씨를 좋아하게 되겠죠.”
물론 좋은 일만 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쁜 일보다 행복할 일이 훨씬 더 많아질 거라고 장담한다.
내가 직접 경험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니암의 결정뿐이다.
크게 한숨을 쉰 니암이 내게 들려준 말은 이러했다.
“태오 씨를 한번 믿어 보겠습니다.”
“네, 걱정 마세요.”
원래 이런 건 믿음으로 가는 거다.
* * *
이제 마지막 남은 설득 대상을 향해 다시 바쁘게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나빈이가 편한 곳에서 만날 생각이었는데.
약속 장소를 우리 HT 엔터테인먼트로 잡은 건 좀 의외였다.
승훈이 형이 내 사무실에서 나와 같이 나빈이를 기다리면서 걱정스러운 말을 흘렸다.
“나빈이가 거절하려고 일부러 여기서 보자고 한 거 아닐까? 생각해 봐. 자기 집 근처 카페에서 보자고 하면, 일부러 우리를 거기까지 오라고 한 게 미안해질 거잖아. 그래서 일부러 미안한 감정 안 남기려고 자기가 회사로 오겠다고 그러는 거 같은데. 나빈이 성격 생각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잖아.”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한다.
그래도 딱히 상관은 없다.
나는 어떻게든 나빈이를 설득할 생각이니까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의 미팅 상대인 나빈이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잘 지냈지? 뭐, 오랜만에 만나는 건 아니지만.”
“저야 별일 없이 똑같죠.”
나빈이는 오히려 니암보다 설득하기가 더 어려운 존재다.
S랭크 헌터로 오랫동안 활동했기 때문에 앞으로 먹고살 돈이 후달리진 않을 테고.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어차피 언니가 유이빈이니까, 평생 돈 문제로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돈은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기다.
니암을 설득할 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기회니 뭐니 말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니암에게 제시했던 연봉 제안이 그의 결정에 아예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돈은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생계 수단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니암이 취업을 다 했을까.
하지만 이럴 걱정이 전혀 없는 나빈이였기에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음을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은 나빈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가 무슨 말 하려고 여기까지 왔는지, 선배님은 잘 아시죠?”
“알지. 나와 계약해서 헌터 아이돌이 되어 주겠다고 말을 하려고 온 거잖아. 그렇지?”
“어디서 이상한 말을 배워 오셨네요.”
나빈이에게는 농담도 먹히지 않았다.
이빈이한테는 그래도 나름 잘 먹히던데.
자매가 이렇게 성격이 다를 줄은 몰랐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지.
“왜 거절하려는지 말해 줘.”
어디 이유라도 들어 보자.
나빈이가 갑자기 어느 한 인물을 거론했다.
“제 언니가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었다는 거, 선배님도 아시죠?”
“알지.”
“그래서예요.”
짧은 말이지만, 이 말로 웬만한 설명이 다 되었다.
친언니가 연예인이니까, 바로 근처에서 연예인에 대한 안 좋은 일들을 많이 봐 왔을 것이다.
니암에게도 말했지만, 연예인이라는 게 마냥 좋은 일만 생기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악플, 기자들의 쓸데없는 허위 기사 유포, 그리고 악의적인 여론 등.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건수가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나는 한 가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게 있었다.
이렇게 연예인이 힘들다는 걸 잘 알면서도.
“왜 이빈이는 계속 연예계에 남아 있는 걸까?”
“그건…….”
그곳이 좋아서겠지.
그리고 이빈이도 알 것이다.
무대에 서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기분을.
이제는 나도 알게 되었다.
말문이 막혀 버린 나빈이를 보면서 나는 한 가지 더, 이해가 안 가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걸 잘 아는 너도 왜 계속 방송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는 거야?”
“…….”
사실 나빈이는 알고 있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 그리고 대중 앞에 선다는 재미를.
만약에 나빈이가 정말로 연예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면.
애초에 방송 활동 자체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아…….”
나빈이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선배님은 예전부터 그랬어요.”
“응? 내가? 뭘?”
“제 속내를 너무 잘 아세요. 그래서 가끔씩 가볍게 던지는 한마디인 거 같은데, 저한테는 너무 날카롭게 다가와서 푹 찌르는 느낌이라니까요.”
“그렇게 리얼하게 비유하지 마.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들으면 어쩌려고.”
“그만큼 뜨끔했다는 뜻이에요.”
나빈이가 오늘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졌어요. 선배님 뜻대로 할게요.”
“그, 그래?”
“네.”
굉장히 어려운 협상 테이블이 될 줄 알았는데.
니암 때보다 더 쉽게 풀린 거 같아서 역으로 내가 얼떨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