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나와 계약해서 헌터 아이돌이 되어 줘 (1)
다섯 명의 젊은 헌터들이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이 중에서 내가 아는 인물은…….
‘둘 정도 있네.’
심지어 그중에 한 명은 나와 상당히 친한 사이였다.
“준서야, 너도 뽑혔냐?”
“형!”
어린티가 노골적으로 풍기는 헌터, 최준서.
빙벽 속에 꽁꽁 숨은 몬스터들을 유인해야 하는 작전을 펼칠 당시, 내가 속한 팀에서 같이 활약을 했었던 B랭크 헌터다.
그때 당시의 나이가 중학생으로 알고 있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다, 야. 키도 많이 컸네?”
“네! 지금은 레이드 시대 끝나고 바로 고등학교로 편입했어요.”
“몇 학년인데?”
“2학년이요!”
어리다, 어려.
준서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바로 다음 아는 얼굴에게 다가갔다.
“딜런도 오랜만이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내가 데이브와 같이 헌터 양성소에 입소했을 때, 딜런이 우리 뒤에 후배 기수로 들어왔었다.
나빈이하고 동기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나빈이처럼 나한테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어 실력, 많이 늘었네?”
“전수조사 받고, 제가 선배님하고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부랴부랴 한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어머님께서 많이 알려 주셨겠네?”
“예, 그렇습니다.”
전형적인 미국 남성과 달리, 딜런의 경우에는 한국인 어머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게 외모 곳곳에서 보인다.
서양인의 강직함과 남자다움, 그리고 여기에 동양인의 부드러움이 적절하게 섞인 미형이라고 해야 할까.
준서처럼 몇 번 같이 작전을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성격이 나쁘지 않고 괜찮았던 녀석으로 기억한다.
남자 멤버 중에 마지막은 니암이라는 이름의 헌터였다.
데이브, 딜런과 같이 미국에서 활동 중인 헌터로, 내가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건넸지만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국말을 모르시나 보군요.”
“아, 예.”
영어로 말을 하니까, 그제야 니암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머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는 여자 멤버들과 인사를 나눴다.
같은 미국인 헌터, 이사벨라. 그리고 일본에서 활동했던 마에다 시오리까지.
둘은 나와 전혀 연이 없었던 헌터들이다.
이사벨라도 니암처럼 아직 한국말에 익숙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반면, 시오리는 달랐다.
“헌터가 되기 전부터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했거든요.”
“그래요?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웬만한 연예인들은 다 알고 있겠네요?”
“네, 물론이죠! 요즘 관심 있는 인물은…….”
시오리가 얼굴을 붉히면서 나를 힐긋 바라봤다.
왠지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 좋아한다는 사람을 싫어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어디 보자.
준서하고 니암이 B랭크고, 딜런하고 시오리가 C랭크,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랭크가 높은 이사벨라가 A랭크였다.
‘랭크가 높다고 노래 버프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나하고 데이브, 둘 다 헌터들 중에서 랭크로 따지면 톱 1, 2위를 달린다.
그래서 나는 은연중에 헌터의 랭크가 높아야 이런 노래 버프 능력을 지닐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수조사 결과를 보니, 딱히 랭크하고는 관계가 없는 거 같다.
이철민 소장에게 다섯 명이 끝인지 다시 한번 물었다.
“이렇게 다섯 명이 최종 인원으로 결정된 거죠?”
“아니요. 아직 한 명이 남았습니다.”
“예?”
“저희가 놓치고 있던 헌터가 한 분 계셨습니다. 혹시 몰라서 측정을 해 봤는데, 의외로 MML 적합자로 나오더라고요.”
그 한 명이 누군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마침 타이밍에 맞춰서 마지막 남은 한 명의 멤버가 알아서 모습을 드러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공교롭게도 내가 아주 잘 아는 인물이었다.
“나빈아, 설마 너도?”
어안이 벙벙한 내 얼굴을 보면서 나빈이가 머쓱한 미소를 띠었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이래서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나오는 거로구만.
옛날 말 틀린 거 하나 없다.
* * *
오늘은 헌터이자 가수가 될 이들과 짧게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이대로 이철민 소장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직원들을 모았다.
“팀장 회의 할 거니까 다들 제 사무실로 오라고 하세요.”
“네, 이사님.”
이철민 소장이 자리를 잡기 전에 내 사무실을 빠르게 구경했다.
“개인 사무실치고는 굉장히 넓네요.”
“어렸을 때 누나하고 반지하에서 오랫동안 살아서 그런지, 어른이 된 이후부터는 제 개인 공간을 무조건 크게 잡습니다. 힘들었던 과거에 대한 설욕이라고 할까요.”
“그럴 수 있죠.”
이철민 소장은 크게 공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래부터 저런 성격이니까, 나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이철민 소장에게 내 사무실에 대한 평가를 듣기 위함이 목적이 아니니까 말이다.
직원들이 모이기 전에 나는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전수조사를 통해 능력이 밝혀진 헌터들에 대해 떠올렸다.
나하고 데이브를 포함하면 남자 멤버는 다섯.
그리고 여자 멤버는 셋.
머릿속으로 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체적으로 구상에 들어갔다.
그사이, 직원들이 속속 내 사무실로 모여들었다.
이철민 소장까지 이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승훈이 형도 마찬가지였다.
“외부에서 정말 보기 힘든 분이 여기 계셨네요.”
“네. 저도 웬만하면 안 오려고 했는데, 그래도 요즘 이 일만큼 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만한 건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 건수가 무엇을 뜻하는지, 승훈이 형과 여기 모인 직원들 모두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아까 협회 측에서 전수조사를 통해 선별한 인원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고 왔습니다. 승훈이 형은 어제 봤을 테고. 다른 분들은 아직 모르시죠?”
“예.”
“어떤 분들입니까?”
어차피 나와 같이 그들을 케어하고 데뷔시키는 데에 크게 일조할 사람들이니까.
빔프로젝트를 실행시킨 뒤에 어제 승훈이 형이 연구소 측에서 받아 온 그들의 신상 정보 이미지를 띄웠다.
최준서를 시작으로 니암, 딜런, 이사벨라, 마에다 사오리, 그리고 홍나빈까지.
“어? 나빈 씨가 있네요?”
“나빈 양도 이사님처럼 노래로 헌터들에게 버프를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전혀 몰랐는데…….”
나빈이 말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눈치였다.
하기야, 데이브만큼 랭크가 높은 것도 아니고, 나처럼 유명한 헌터들도 아니었기에 대중은 준서와 기타 등등의 헌터들이 누군지 모를 것이다.
나도 나와 예전에 같이 작전을 수행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최 프로듀서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인지 내게 먼저 물었다.
“이사님, 그러면 저분들하고 다 계약하기로 하신 겁니까?”
“이에 대해서는 승훈이 형이 잘 설명해 줄 겁니다.”
내가 낚시 예능 프로그램 녹화를 하러 배 타고 떠나 있는 동안, 승훈이 형을 먼저 서울로 보냈던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저들이 우리 회사와 계약을 맺고, 나처럼 헌터 겸 가수로 활동할 의사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승훈이 형이 헛기침을 하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명 빼고 나머지는 다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두 명이 누굽니까?”
“니암하고 홍나빈입니다.”
나빈이가 거부하는 이유는 왠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니암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었기에 아직 왜 거절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다.
“그러면 저 두 분은 제외하고 가는 겁니까?”
이에 대해서는 내가 대답해 주기로 했다.
“아니요. 웬만하면 둘 다 같이 데리고 가는 쪽으로 할 겁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안 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요.”
노래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체스나 장기도 그렇지 않은가.
내가 가용할 수 있는 말이 있어야 보다 다양한 전략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법이다.
설득이 잘 안 통할 거 같다 싶으면.
‘필살기를 써야지.’
내일 당장 두 사람을 만나 봐야겠다.
* * *
준서와 딜런, 이사벨라, 그리고 사오리는 오전에 우리 회사로 직접 초대해서 계약서를 작성하게끔 만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네 사람이 우리와 계약을 맺기로 한 동기가 궁금해졌다.
“준서, 너도 나처럼 예전부터 가수가 꿈이었냐?”
“아니요.”
“그러면?”
“저는 공부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근데 엄마가 어차피 헌터도 조만간 관두게 될 거니까, 지금이라도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취업이나 하라고 하도 잔소리를 해서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요.”
“그게 이거다?”
“네!”
예전부터 준서를 보면서 느꼈던 거지만, 정말 단순한 녀석이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할 것 없이, 본인이 싫으면 안 하는 거고, 본인이 좋다면 하는 거다.
뭐, 오히려 나는 이런 점 덕분에 준서가 마음에 든다.
대신에 미리 이야기해 줄 게 있었다.
“가수라는 게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는 건 미리 알아 둬.”
“괜찮습니다. 저한테는 가만히 앉아서 책 보고 문제 푸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거든요. 차라리 몬스터하고 대판 싸우는 게 좋아요.”
오케이, 합격.
다음으로 딜런과 이사벨라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두 사람의 대답이 비슷했다.
“예전부터 남들 앞에서 춤추는 걸 좋아했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각성하기 전에는 댄서로 일했거든요.”
“어머, 저도요!”
두 사람 다 댄서 출신인가.
합격!
마지막으로 남은 사오리에게도 이들과 동일하게 물었다.
사오리의 대답이 가장 특이했다.
“저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연기도 배워 보려고요. 그래서 한국 드라마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보는 게 저의 꿈이에요.”
역시, K 드라마로 한국어에 입문했다는 말은 진심이었나 보다.
뭐, 가수와 배우 활동을 겸하고 있는 연예인들은 많으니까.
그리고 이들 중에서 사오리가 가장 많은 한국 연예계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에 우리 회사와 손을 잡게 되면 가장 든든한 멤버가 될 것이다.
이때, 이사벨라가 갑자기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런데 이사님.”
“네.”
“저희는 어떤 식으로 활동하게 되는 건가요? 이렇게 여러 명이 한 그룹으로?”
이것에 대해서 어제 직원들과 오랫동안 회의를 했었다.
회의 결과.
“따로 갈 겁니다.”
“어떻게요?”
“남자 그룹 따로, 여자 그룹 따로. 혼성 그룹도 생각을 해 봤는데, 혼성보다는 아무래도 요즘 유행하는 그룹 형태를 따라가는 게 맞을 거 같아서요.”
남자 아이돌, 혹은 여자 아이돌 노래만 듣는 팬들도 은근히 많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이렇게 성별에 따라서 그룹 활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생각이었다.
물론 나중에 필요에 따라선 혼성팀으로 계획을 수정할 의향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나빈 씨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데려오는 편이 좋겠네요. 저하고 이사벨라 씨, 두 명만으로는 그룹이라고 말하기 좀 약한 거 같아서요.”
사오리가 정확하게 지적했다.
니암은 몰라도.
나빈이는 반드시 우리가 데려올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