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조사 결과 (2)
PD의 말대로 나도 황운택 선생님이 별도의 설명 없이 게스트로 나온 이 친구가 무슨 일을 하는 친구인지, 어디서 어떻게 유명한 사람인지 알아차리는 모습은 처음인 것 같았다.
내가 많이 유명하다는 건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황 선생님이 바로 알아볼 정도일 줄은 몰랐다.
PD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선생님이 여기 나왔던 게스트들 중에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내는 이는 태오 씨가 처음인 거 같습니다.”
“그래? 나는 이 친구가 나올 줄 몰랐거든. 그래서 놀랐어. 나중에 사진이라도 좀 찍어 줘. 우리 딸들이 자네 엄청 좋아하거든.”
“아, 네. 물론이죠.”
황운택 선생님의 자제들도 같은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확실히 피는 못 속이나 보다.
그렇게 오프닝 촬영을 짧게 마치고.
하나둘씩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황 선생님보다 먼저 배에 탑승한 내가 직접 에스코트를 했다.
“고마워.”
“아닙니다, 선생님. 오늘 제가 선생님 옆자리 맡게 되었으니까 열심히 보필하겠습니다.”
“그려, 그려. 나도 낚시 어떻게 하는지 많이 알려 줄게.”
암묵적인 동맹 라인을 형성하는 사이에 서서히 배가 출발하려고 했다.
이때, 승훈이 형이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태오야!”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온 모양인지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아직 배가 떠나려면 시간이 좀 남은 상황.
그러나 이미 지상과 배의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다.
보통 사람에겐 점프로 넘어가기에는 많이 힘들어 보였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PD님, 잠시만 다녀오겠습니다.”
“예?”
어차피 아직 카메라 안 돌아가고 있으니까.
퉁!
배 갑판에 서서 크게 도약한 나는 그대로 다시 육지에 착지했다.
사람들은 내 모습에 눈을 의심했다.
헌터인데, 뭐 이 정도 가지고.
“무슨 일인데?”
승훈이 형의 표정이 워낙 다급해 보였기 때문에 도무지 이야기를 안 듣고 출발할 수가 없었다.
배 타고 한번 나가면, 육지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12시간 이상은 걸린다.
그 시간 동안 호기심을 끙끙 끌어안은 채 방송하고 싶진 않았다.
풀 수 있으면 바로 풀고 가는 게 좋다.
“받아 봐.”
“이철민 소장님 전화야?”
“어.”
이른 아침에 이 소장이 일어나 있다는 거에 더 놀랐다.
아니지. 일어난 게 아니라 밤을 새운 것일지도 모른다.
“여보세요, 강태오입니다.”
-안녕하세요, 태오 씨. 바쁘실 텐데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한테 급하게 알려 주실 거라도 있으신가요?”
웬만큼 중요한 게 아니라면 승훈이 형이 이렇게 나를 다급하게 불렀을 리가 없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통화일지.
이건 이제부터 들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태오 씨가 기다리던 결과 나왔습니다.
내가 기다리던 결과라면, 지금으로선 하나밖에 없다.
-전수조사, 금일부로 다 끝났습니다.
마침내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 순간이 왔다.
* * *
전수조사가 끝났다는 희소식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은데?’
만선의 기운이다.
‘강태공들 나가신다!’는 낚시를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사투 아닌 사투를 예능으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이지만, 꽝 빈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출연자들이 나름 낚시 베테랑들로 소문이 자자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오늘은 첫 회 방송부터 지금까지 계속 도전했지만 줄곧 꽝의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악명 높은 촬영 장소 중 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배를 탈 때부터 출연자들의 얼굴에는 게스트보다도 더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황운택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배로 1시간 남짓 이동하는 시간 동안에도 미끼와 낚싯대를 점검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셨다.
안에 누워만 있기도 좀 그래서.
기왕 바다로 나왔으니, 바다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갑판에 나왔다.
나를 보자마자 황 선생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잠 미리 자 두지, 뭐 하러 나왔어? 앞으로 쉬지도 않고 계속 낚시만 할 텐데.”
“그 전에 여유롭게 바다 좀 보려고요.”
레이드 시대에는 쉬는 게 쉬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몬스터가 나타날 일이 없었기에 이렇게 마음 편히 녹화도 나오고 할 수 있게 된 거다.
아무런 걱정 없이 멍하니 바다만 보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다.
황 선생님도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오늘은 좀 잡혔으면 좋겠는데. 저번에도 꽝 치고. 지난 녹화 때에도 한 마리도 못 잡아서 우리 이 감독한테 미안해 죽겠어.”
안 잡히는 것도 시청자들에게는 또 다른 재미라는 말을 해 주려고 하다가 이내 참았다.
황 선생님은 물고기를 미치도록 낚고 싶어 하는데, 여기다 대고 안 잡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장면 많이 나온다는 말을 하면 그것도 실례가 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낚시, 해 본 적 없다고 했지?”
“아주 예전에 한두 번 깔짝깔짝했던 게 다입니다.”
“그래? 그럼 내가 자투리 시간에 좀 알려 줄까?”
“저야 영광이죠.”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로 불리던 황운택 선생님에게 직접 낚시를 배워 보는 시간이 또 언제 올까.
이때 아니면 없을 거다.
황 선생님이 직접 미끼와 낚싯대를 이용해서 짧은 강의를 이어 갔다.
“캐스팅을 하고. 입질이 있다 싶으면 바로 챔질하지 말고 기다려.”
“그렇게 하면 물고기가 도망가지 않습니까?”
“낚시라는 건 한마디로 말해서 ‘기다림을 배우는 스포츠’거든. 낚시 실력이 있고 없고를 판가름하는 건 바로 인내심이야. 요즘 현대인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에는 인내심이 많이 부족하잖아. 뭐든 빨리빨리 하려고 하고. 안 그래?”
맞는 말이었다.
일단 나부터도 그러니까 말이다.
“무조건 빠르다고 좋은 건 아니야. 이렇게 느긋하게. 기다림의 여유를 느끼면서 하는 게 낚시의 참된 재미거든. 물고기가 확실히 미끼를 삼켰다 싶을 때, 그 확신이 드는 한순간이 올 때까지 참으면 돼.”
연륜이 묻어 나오는 조언이었다.
내가 헌터로서 여러 가지 업적을 달성했지만, 아직 황 선생님처럼 인생의 단맛 쓴맛 등 다양한 일들을 다 겪어 온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황 선생님처럼 연륜 있는 분들의 조언을 자주 들으려고 하는 편이다.
배가 멈춤과 동시에 PD가 확성기를 켰다.
“캐스팅하시면 됩니다.”
첫 캐스팅은 늘 황운택 선생님의 차지였다.
휘익-!
저 멀리 날아가는 미끼.
확실히 낚시 경력이 되는 분이라서 그런지,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던지는 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멀리 던지면 됩니까?”
“뭐, 그렇지.”
“알겠습니다.”
낚싯대를 가볍게 쥐었다.
그리고 힘껏 앞으로 내질렀다.
촤르르르르르륵……!
드랙이 사정없이 풀렸다.
그러더니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멈춰 버렸다.
스태프들과 선장, 그리고 내 바로 옆자리에서 낚시를 하게 된 황 선생님까지 모두가 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멀리 던지라고 말씀하셔서…….”
왠지 내가 뭐 잘못한 거 같은데.
황 선생님이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내가 어리둥절해하는 부분을 지적해 줬다.
“멀리 던지는 것도 적당히 던져야지, 이 사람아. 찌가 저기 저 끝까지 가 버리면, 입질이 오는지 안 오는지 어떻게 알려고?”
“그런 거군요.”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하면 볼 수 있긴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니까.
그리고 물고기가 미끼를 물면 챔질을 해야 하는데, 저 끝에서 물면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 한참 걸린다.
그러면 바늘이 빠질 수도 있고.
확실히 황 선생님의 지적에 일리가 있었다.
다시 릴을 감으면서 미끼를 회수했다.
황 선생님이 본인이 던진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기, 저 근처에 던져 봐. 아까 보일링 있던 자리였으니까. 저쪽에 물고기들이 많이 모여 있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적당히 힘 조절을 하기로 했다.
휘익!
아주 정확히 황 선생님의 자리 바로 옆에 안착했다.
선장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엄청 정확히 던지시네요.”
내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황 선생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괴물들 때려잡던 사람인데, 이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겠지.”
내가 하려던 말을 아주 정확하게 해 주셨다.
‘강태공들 나가신다!’에는 출연자들을 따로 찍는 카메라 감독들이 배치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낚시가 시작된 지 1시간째.
우리가 탄 배에서는 아직 입질 소식조차 없었다.
카메라 감독이 나를 비추면서 물었다.
“오늘 어떠세요. 한 마리 낚으실 수 있을 거 같으세요?”
무조건 물고기를 낚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오늘의 대상 어종을 낚아야 한다.
그 어종 중 무조건 큰 놈을 낚는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예, 무조건 잡고 갈 겁니다. 왜냐하면 오늘 느낌이 좋거든요.”
이철민 소장이 알려 준 소식 덕분에 나는 새벽부터 높은 텐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쯤 나를 대신해서 육지에 있는 승훈이 형이 헌터 협회로 달려가서 미리 이철민 소장이 찾았다는 그 헌터들을 만나기로 했으니까.
오늘 늦은 시간까지 녹화를 마치면, 내일쯤 나도 그들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먼저.
‘오늘 방송부터 잘 마무리 짓고 가야겠지.’
모처럼 새벽에 나와서 배까지 탔는데.
물고기 하나 못 낚고 통편집이 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낚시가 시작된 지 3시간이 지나도록 여전히 바다는 침묵을 지켰다.
참다못한 출연자 한 명이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으으!!! 한 마리만 좀 나와라!!!”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 소리.
깜짝 놀라는 세련 씨와 달리, 황 선생님과 다른 출연자들은 이것이 일상이라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황 선생님이 화를 내는 출연자를 가리키면서 내게 말했다.
“저 녀석은 낚시가 안 풀리면 저렇게 화부터 내는 놈이거든. 우리 방송 봤다고 했었지?”
“예.”
“그러면 알겠네.”
알긴 안다.
근데 이렇게까지 찐텐으로 화를 내는 줄은 몰랐다.
PD가 재미있게 잘 편집했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동시에 낚시에 얼마나 진심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이 방법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바닷속에도 마나는 존재한다. 슬쩍 마력을 흘려 마나를 인위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든 나는 마치 레이더망처럼 마나를 넓게 펼쳐 어군을 탐지하기 시작했다.
‘큰 놈이 하나 있군.’
그쪽을 향해 미끼를 던졌다.
잠시 뒤.
낚싯대가 미친 듯이 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자마자 PD가 난리를 쳤다.
“감독들, 강태오 씨 찍으세요. 어서!”
카메라 감독들이 전부 다 나만 찍기 시작했다.
황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선 물고기 잡는 사람이 왕이라고.
‘그 말이 사실이었네.’
장장 3시간 만에 온 첫 입질.
제작진이 나를 향해 ‘강태오! 강태오!’ 이름을 연호하면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이리저리 난리를 치던 녀석이 바닷속에서 잠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우리 모두가 다 경악했다.
“저, 저거……!”
“모, 몬스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