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조사 결과 (1)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한 직후부터 내 일정은 다시 바빠졌다.
노래가 나왔음을 열심히 홍보하고 다녀야 그만큼 사람들도 ‘어? 태오 신곡 나왔어?’ 하고 알아주지 않겠나.
한때 협회장이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정부에서 네가 노래를 낼 때마다 헌터들에게 기본적으로 연락이 가고, 노래를 계속 들을 수 있도록 시스템 체계를 구축하는 건 어떻겠냐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안 된다고 했다.
억지로 노래를 듣게 만들면, 누가 내 노래를 좋아해 줄까.
강제로 노래를 듣게 만든다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내가 이철민 소장과 내 노래가 지닌 버프 능력에 대해 밝혀 나갈 때 말했듯이 헌터들이 자발적으로 내 노래를 좋아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노래가 주는 버프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진심으로 내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해야 한다. 이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강압보다는 자발이라는 콘셉트로 작전을 꾸려 나가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확실하게 가야 한다.
그래서 다른 가수들이 점점 인기 있는 스타로 향하는 그 과정처럼 나도 순차적으로 계단을 밟아 올라가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승훈이 형이 잡아 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서 외출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새벽 5시.
태양도 아직 출근 도장을 찍지 않은 시간대다.
어두컴컴한 새벽 공기를 뚫고서 우리 집 앞으로 차를 몰고 온 승훈이 형의 반쯤 눈이 감긴 나를 반겼다.
“일어나느라 고생했다, 태오야.”
“그러게 오늘은 진짜 고생했어.”
내가 잠이 많은 체질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방송 활동을 시작해서 그런지 이 생활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오늘은 무슨 촬영이었지?”
“대본 위에다 올려놨으니까, 한번 봐 봐.”
“땡큐.”
하도 여기저기 출연하다 보니 가끔씩 내가 오늘 무슨 촬영이 있는지 까먹는 경우가 있었다.
대본을 보자마자 어떤 프로그램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맞다. 오늘 낚시 프로그램 출연하는 날이었지.”
그래서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였다.
낚시를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데려다가 말 그대로 주야장천 낚시만 시키는 프로그램, ‘강태공들 나가신다!’.
나는 딱히 낚시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냥 오늘의 일일 게스트로 나가서 즉석으로 낚시를 배우고, 배 타고 나가서 몇 시간 동안 고정 출연자들과 같이 낚시를 하다가 오면 된다.
시청률이 워낙 잘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여기도 출연하게 된 것 같다.
“근데 노래 홍보가 될까?”
내 노래는 주로 젊은 층이 좋아한다.
반면, ‘강태공들 나가신다!’는 주로 중장년층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이다.
승훈이 형이 운전대를 돌리면서 말했다.
“남녀노소 네 노래를 다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게 목표라면서.”
“그렇긴 하지.”
“그리고 그 프로그램, 의외로 젊은 사람들도 많이 보거든. 요즘 붐이 일어난 게 두 개 있잖아. 골프, 그리고 낚시.”
“그럼 차라리 골프가 낫지 않을까?”
“어차피 골프는 다음 주에 나가기로 했어.”
뭐, 그럴 줄 알았다.
“그리고 낚시 가면 시간 잘 가거든. 바쁠 거 없이 가만히 바다만 쭉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니까. 힐링과 방송을 동시에. 이런 프로그램 또 없다.”
낚시의 매력에 대해 나에게 일장 연설을 펼치는 승훈이 형.
“형.”
“왜?”
“요즘 낚시에 재미 들렸어?”
내 물음에 승훈이 형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아니, 뭐…… 저번에 연 대표님하고 같이 우연히 낚시터에 가게 되었는데, 막상 해 보니까 의외로 재미있더라고.”
오늘의 일정은 형의 사리사욕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뭐, 그래도 시청률이 웬만큼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가겠다고 한 건 나였으니까.
‘강태공들 나가신다!’도 결국 내 의지에 따라 나가게 된 거나 다름없다.
물론 중간에 누군가의 사적인 욕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것이 살짝 신경이 쓰이지만 말이다.
승훈이 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계속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장소가 바다다 보니 기본적으로 이동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달려 온 만큼, 이에 대한 보상은 뚜렷했다.
“와, 태오야, 밖에 봐라. 풍경 죽이지 않냐?”
승훈이 형 말대로였다.
넓게 펼쳐진 바다 풍경.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저거 보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다.
“예전에 바다에서 던전이 갑자기 소환되어 가지고 몬스터들 막 튀어나왔을 때가 떠오르네. 그때 바다가 막 몬스터 피로 도배되던 게 엄청 신기했는데.”
“……정상적인 감상 좀 들려주면 안 되겠냐, 태오야.”
“미안. 그 광경이 너무 인상적으로 남아서.”
근데 그때 봤던 바다 모습이 참 신기하긴 했다.
오래간만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우리가 탄 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스태프가 우리들을 향해 조용히 손짓했다.
“곧 출연자분들 나오면 바로 촬영 들어갈 테니까 여기서 조용히 숨어 계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현장에는 나 말고도 다른 게스트가 또 있었다.
늘씬한 키에 수려한 미모를 뽐내는 한 여성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인사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유세련이라고 해요.”
이름 그대로 세련미가 느껴지는 여성이었다.
유세련. 요즘 나도 방송 일을 하다 보니 TV를 자주 시청하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최근에 누가 방송에 많이 나오는지, 소위 말해서 ‘대세 연예인’이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유세련이 이 중 한 명이었다.
예전에는 걸 그룹 멤버로 활동했으며, 지금은 솔로로 데뷔해 랩이면 랩, 노래면 노래.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싱어로 활약 중이다.
“안녕하세요. 강태오라고 합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어머머, 선배님이라뇨. 서로 너무 격식 차리지 말고 오늘은 편하게 녹화해 봐요.”
성격이 참 좋아 보인다.
실제로 연예계에 떠도는 소문을 들어 보면, 모난 성격은 아닌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강태공들 나가신다!’ 고정 출연자들을 기다리는 동안, 스태프들 뒤에 숨어서 유세련과 나란히 앉아 대기하기로 했다.
우리가 게스트로 왔음을 출연자들한테 미리 들키면 재미가 없다는 말 때문이었다.
여기 오기 전에 ‘강태공들 나가신다!’ 최근 편들을 몇 편 모니터링하고 왔는데, 이전 편들에 출연했던 게스트들도 다 요런 식으로 숨어 있다가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 깜짝 등장시켰었다.
‘PD가 이런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성향인가 보네.’
바닷가라 그런지 유독 날씨가 더 쌀쌀했다.
스태프가 우리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잔을 건넸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오면서 마시고 왔거든요.”
“그래도 추우실 텐데. 이걸로 손이라도 녹이시는 건 어때요?”
“이 정도 날씨는 저한텐 추운 축에도 못 낍니다.”
빙결 마법을 난사하던 몬스터와 싸울 때에는 극지방이 봄 날씨처럼 따스하게 느껴질 정도로 추웠다.
그거에 비하면 이 정도 날씨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마나를 이용하면 체온을 어느 정도 계속 유지시킬 수 있다.
유세련이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말했다.
“헌터분들은 마나로 신체를 강화시킬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예, 그렇죠.”
“랭크가 높을수록 많은 마나들을 다룰 수 있는 거죠?”
“잘 아시네요.”
“제가 헌터에 관심이 많아서요. 헌터 랭킹이나 아이템 목록 같은 것도 다 외우고 다녔어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봤던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아이템 하나가 경매에 올라왔는데, 그걸 최고가로 입찰해서 가져간 사람이 바로 유명 가수였다고.
그 사람이 유세련이었다는 건 뒤늦게 기사를 통해 추가로 밝혀졌다.
“아이템도 수집하셨죠?”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예전에 기사를 봤었거든요.”
“맞아요. 집에 몇 개 소장용으로 두고 있어요. 제 몇 없는 취미 중 하나예요.”
돈 있는 사람들의 취미라고 할 수 있다.
유세련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나를 응시했다.
“틈만 나면 아이템 올라오는 거, 경매 사이트에서 수시로 확인하는데, 태오 씨 거는 잘 안 올라오더라고요. 아니, 거의 못 본 거 같은데요?”
“제가 썼던 거는 저한테 정말로 필요 없는 경우가 아니면 안 내놓는 편이라서요.”
“그래요? 저, 개인적으로 태오 씨가 쓰던 아이템도 모으고 싶은데. 마니아들 사이에선 소장 가치가 어마어마하거든요.”
“하하, 그래요? 그럼 오늘 녹화 잘 풀리면, 제가 선물로 하나 드릴게요.”
유세련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더니 이내 긴 머리카락이 크게 휘날릴 정도로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 걸 어떻게 선물로…… 돈은 지불할게요.”
“괜찮습니다. 저는 아이템으로 수익 버는 거에 딱히 미련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만약에 내가 정말로 돈 욕심이 있었다면, 내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아이템들을 전부 경매로 내놨을 것이다.
그러면 수백, 수천억은 벌어들였겠지.
그럼에도 내놓지 않는 이유는 이미 내 수중에 돈이 너무 많기도 하고.
그리고 귀찮아서였다.
그래서 지난번에 해피모드 기숙사를 방문했을 때처럼 지인들에게 주는 선물용으로 활용 중이다.
유세련은 특별히 나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 촬영 잘 부탁한다는 뜻으로 줘도 괜찮을 거 같다.
얼마나 좋은지, 유세련의 입꼬리는 아까부터 귀에 걸린 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태오 씨. 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태오 씨가 원한다면 뭐든 할게요!”
내 아이템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값어치 있는 물건으로 평가받고 있으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잠깐의 수다를 떠는 사이.
저 멀리서 출연자들이 탄 차가 다가왔다.
하나둘씩 내리는 출연자들.
‘강태공들 나가신다!’는 기본적으로 고정 출연자들 연령이 높은 편이다.
최고령 출연자가 63세였던가? 아마 그럴 것이다.
막내가 45세 개그맨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게 나와 유세련 씨는 저분들 앞에선 햇병아리…… 아니, 애기처럼 보일 것이다.
출연자들이 카메라 앞에 일렬로 나란히 섰다.
PD가 낚시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이들을 향해 먼저 고지할 사항이 있음을 알렸다.
“오늘 게스트가 있습니다.”
“게스트?”
“예, 나와 주세요!”
PD의 소개와 함께 스태프들이 열띤 박수로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들이 등장하자, 출연자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최고령 출연자인 황운택 선생님이 가장 놀랐다.
“저 친구, 나 아는데. 강태오 아니야? 세계 제일의 헌터!”
“안녕하세요, 선생님.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황 선생님과 손을 마주 잡고 뜨거운 인사를 나눴다.
황운택 선생님의 반응에 PD가 더 놀랐다.
“선생님, 여태껏 젊은 출연자들 하나도 모르시더니만. 태오 씨는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아, 이 사람이. 강태오 모르면 간첩이지. 나라를 구한 분인데.”
헌터로서의 내 명성이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