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60화 (60/250)

제17장. 컴백 (3)

아직 겨울이 오려면 멀었는데, 두 여자 사이에 껴서 본의 아니게 한겨울의 날씨를 미리 체험한 나는 무대 뒤에서 마지막으로 점검에 나섰다.

생방송 시작까지 단 1분.

나보다 먼저 무대에 오를 이빈이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나 못지않게 이빈이도 많이 떨릴 것이다.

대기하고 있는 시청자 수만 들어도 웬만한 가수들과는 단위가 다르니까 말이다.

여러 차례 심호흡을 마친 이빈이가 먼저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내가 작은 목소리로 ‘파이팅!’이라고 해 주자, 내 말을 들은 모양인지 계단을 오르던 이빈이가 걸음을 멈추고 싱긋 미소를 보냈다.

이빈이가 무대 위로 올라서자, 기자들과 쇼케이스 현장을 찾은 관계자들이 큰 환호성을 보냈다.

이빈이가 이들을 향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가수 태오 씨의 컴백 스페셜 무대를 찾아 주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쇼케이스 무대에 이어 이번에도 특별 MC를 맡게 된 유이빈입니다! 반가워요!”

이빈이가 귀엽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여자 솔로 가수 중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구사하는 이빈이다 보니 관중의 호응 역시 매우 뜨거웠다.

“기자분들도 많이 오셨던데, 아무쪼록 좋은 기사 써 주시기를 부탁드릴게요.”

남지덕 기자를 포함해서 오늘 내 컴백 무대에 초대된 기자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예!’라고 힘차게 답했다.

“시간 질질 끌 것 없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부터 모셔 보도록 할까요? 태오 씨! 나와 주세요!”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선 나는 기자들을 향해 양손을 크게 흔들었다.

내 모습을 앵글에 담아내기 위해 수많은 카메라들이 빛을 번쩍였다.

플래시가 어찌나 많이 터지는지, 머리 위로 내리쬐는 조명보다도 객석 쪽이 더 밝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빈이가 나를 자리로 안내했다.

“오늘 저희, 두 번째죠?”

“네, 그렇죠.”

“데뷔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방송 활동에 적응하려고 여기저기 출연해 보고. 가끔 몬스터 때려잡고. 그리고 최근까지는 앨범 작업에 집중하고. 그러면서 지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에도 그 자리에 참석하셨던데요?”

“네. 오랜만에 그런 자리에 있으니까 조금 어색하긴 하더라고요.”

이빈이가 내 말에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웃었다.

“저는 태오 씨가 그 자리에서 축하의 의미로 노래도 같이 부르시는 줄 알았어요.”

“공동성명 발표하기 위한 자리인데, 거기서 제가 마이크를 들고 ‘워우워~’ 이러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또다시 웃음소리가 현장을 채웠다.

그때는 비록 잠자코 있었지만.

“여기서는 원 없이 노래 부르다가 가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우선 토크 시작하기 전에 노래부터 먼저 공개하시는 거죠?”

“예. 노래 들려드린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좋으니까요.”

사람들에게 소감을 들어 볼 수 있어서 좋고.

그리고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듯이 미리 무대를 끝내 두면 앞으로 남은 시간은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노래부터 공개하는 쪽으로 기획을 잡아 뒀다.

이빈이가 스태프들과 함께 잠시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무대에는 오롯이 나 혼자만 남았다.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이에 보답하고자 나는 다시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저의 두 번째 노래, ‘결의’입니다.”

내 멘트에 맞춰서 반주가 흘러나왔다.

낮게 깔리는 저음의 선율.

감정선을 잡으면서 목소리를 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나아가.

돌아보지 마.

네 자신을 믿어.

Trust me.

이전 타이틀곡은 장르가 댄스다 보니 움직이는 거에도 많은 집중을 필요로 했지만, 이번에는 장르가 락발라드인 만큼 보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대중 앞에서 내 가창력을 증명하고 싶기도 했고.

그거 때문에 일부러 이런 장르를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일렉 기타 음이 격해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후렴구에 접어들면서 조명이 바뀌었다.

약간 어두웠던 분위기에서 붉게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시키는 것처럼 새빨간 조명이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여기에 맞춰서 나 또한 손을 번쩍 들고서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쓰러져도 포기하지 마!

Nothing's impossible.

물러서지 마!

사람들의 응원에 너를 맡겨 봐!

파이팅이 넘치는 가사와 강렬한 락 비트의 선율이 아우러져 무대를 장악했다.

무대 뒤쪽이 열리면서, 내 노래를 연주해 주고 있는 밴드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밴드의 등장에 사람들이 입을 쩍 벌렸다.

기타, 드럼, 베이스, 키보드 등등. 한 명 한 명이 다 유명 그룹에서 밴드 멤버에 속해 있었던 실력파들이다.

이들을 모아서 하나의 팀으로 꾸렸다는 사실 자체가 기자들에게는 상당히 놀랄 만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밴드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급하게 들어 올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몇몇 보였다.

아직 끝이 아니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뛰어-!”

샤우팅 파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고음을 시원스럽게 내지르면, 그날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방금 전까지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긴장감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된 기분이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심장이 크게 뜀을 느꼈다.

‘그래, 이런 기분이었지.’

어떤 연예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여러 번 무대에 선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무대에 섰던 사람은 없다고.

무대가 주는 특유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롯이 나만을 보고 있고.

내 노래에 열광하고.

이 상황은 어디 가서 절대로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가수들은 늘 무대를 그리워하고, 그리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나도 그럴 테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 * *

컴백 쇼케이스를 무사히 마친 나는 스태프들에게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부터 먼저 물었다.

영상 송출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나를 향해 입을 모아 말했다.

“대박이었어요!”

“채팅창도 완전히 난리 났더라고요.”

“아까 들어 보니까, 아카튜브 역사상 가장 많은 생방송 시청자 수를 기록했대요. 이러다가 기네스에 오르는 거 아니에요?”

당사자인 나보다 오히려 스태프들이 더 들뜬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말을 해 주니 나도 기뻤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대가 끝났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오늘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정식으로 음원이 공개되고 하루하루 단위로 음원 차트 순위라는 녀석이 나를 압박할 것이다.

녀석이 내게 기쁨을 줄지, 아니면 스트레스를 줄지.

그건 나중에 시간이 지나 봐야 알 것 같다.

내가 무대에서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리스와 나빈이가 나를 축하하고 격려해 줬다.

“멋있었어요, 오빠!”

“선배님, 무대에서 보니까 제가 알던 분이 아닌 것처럼 보이던데요? 이제는 헌터가 아니라 정말 가수가 전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으실 거 같아요.”

다들 좋게 봐주니 나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두 후배들이 경쟁하듯 내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 줄 때.

저 멀리에 서 있는 데이브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시선이 딱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려고 했던 데이브가 짧게 혀를 찼다.

그러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서 자리를 떴다.

잘했다는 데이브 나름의 칭찬이겠지.

저걸 보니까 내가 오늘 무대를 정말 잘 소화한 게 맞긴 한가 보다.

* * *

컴백 쇼케이스가 끝나고 마침내 나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 ‘결의’가 모든 음원 플랫폼에 공개되었다.

음원이 풀림과 동시에 순위가 빠르게 상승했다.

보컬 트레이닝을 위해 회사에 와서 잠깐 목을 풀고 있을 때.

보컬 코칭을 맡고 있는 신유화 트레이너가 빠른 걸음으로 연습실에 와선 내게 외쳤다.

“이사님! 음원 차트 최단기간 1위예요!”

신기록을 세웠다.

저번처럼 1위 정도는 무난하게 찍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1위를 달성하게 될 줄은 몰랐다.

메이저로 불리는 음원 플랫폼들은 죄다 내 노래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 아니었다.

신곡의 효과 덕분일까.

‘나의 길’도 오랜만에 다시 순위권에 모습을 보였다.

신유화 트레이너가 나보다도 더 흥분한 목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출근하면서 기사 봤는데, 벌써부터 이사님 이야기로 도배가 되었더라고요.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 보컬 수업 언제 하나요?”

“아, 그랬지. 죄송해요.”

기쁜 건 잘 알겠는데.

그래도 오늘 우리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곳에 모인 이유가 있으니까.

일단은 보컬 수업부터 먼저 진행하고, 그다음에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남은 대화를 이어 나가는 편이 좋아 보였다.

신유화 트레이너가 키보드 건반을 누르면서 음을 잡아 주기 시작했다.

그런 뒤, 가볍게 노래도 불러 봤다.

20분 정도 흘렀을 때.

신유화 트레이너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실력 많이 느셨네요.”

“그래요?”

“네. 처음 이사님 노래를 들었을 때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요.”

그 짧은 시간 동안 피나는 노력으로 보컬 실력을 끌어올렸던 나.

내 보컬 담당이 이렇게 말을 해 주니 더 큰 보람이 느껴졌다.

노력해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전 솔직히 이번 두 번째 앨범에서 이사님이 락발라드를 부르겠다고 하셨을 때 걱정 많이 했거든요. 댄스곡 때에는 그래도 퍼포먼스라는 요소가 있으니까 괜찮은데, 락발라드는 마니아층이 많이 있잖아요.”

“그렇죠. 저도 예전에 락발라드만 골라서 들었던 적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보컬 실력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장르이기도 해요. 처음에는 말려야 하나 고민 많이 했었는데, 지금 와서 이렇게 보니까 제가 이사님을 너무 못 믿었던 거 같아요. 죄송해요.”

갑작스러운 사과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트레이너님은 초창기 제 모습을 보셨으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때는 데뷔를 노리기엔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내가 신유화 트레이너였어도 같은 말을 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딱히 원망하는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대신에 한 가지 부탁이 있었다.

“나중에 저 말고 다른 사람들 보컬 수업도 담당하시게 될 텐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다른 사람이라면…… 해피모드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그쪽 멤버들은 오랫동안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굳이 많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소속사에서 아직 트레이너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애정을 많이 필요로 하는 소속 연예인이 한 명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한 명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데이브하고 추가로 헌터 출신들을 몇 명 더 영입할 예정이라서요.”

“그, 그래요?”

당황하는 트레이너를 보면서 나는 씨익 웃었다.

아마 다음 달쯤이면 전수조사가 끝날 텐데.

‘나하고 데이브와 같은 능력을 지닌 헌터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네.’

벌써부터 이철민 소장의 연락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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