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컴백 (2)
원래 내 계획은 한강 전경이 훤히 보이는 레스토랑에 예약을 잡아서 그곳에서 간단하게 술이라도 한잔하려고 했는데.
누나가 한사코 거절한 탓에 다른 장소로 향하게 되었다.
바로 누나의 집이었다.
“들어와.”
누나가 혼자 사는 집은 굉장히 단출했다.
평수 20에 30년 이상 된 낡은 아파트.
그나마 탑층이라 그런지 뷰는 좋았다.
“누나가 여기서 얼마나 살았지?”
“글쎄. 너 헌터로 각성한 다음부터 쭉 여기서 살았을걸. 원래는 월세 내면서 살다가 집주인이 다른 사람한테 집 팔 거라고 해서 차라리 내가 매매하겠다고 했었지. 어차피 여기서 오래 살 거 같았으니까.”
“집값 많이 오르지 않았어?”
“올랐었지. 게이트가 열리고 난 다음에는 뚝 떨어지긴 했지만.”
“그때는 안 떨어진 지역이 없었을걸.”
대한민국만 한정해서 게이트가 생성되는 빈도를 따졌을 때, 서울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았던 서울의 집값은 게이트 효과로 인해 거래 절벽과 하락세를 동시에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도 누나가 샀을 때에 비해선 많이 올랐다.
“그러면 여기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게 좋지 않아?”
“난 여기가 편해. 그리고 출퇴근 거리도 가깝고.”
“하여간…….”
남동생이 이렇게 유명하고 돈을 잘 버는 데에도 불구하고 우리 누나는 예전과 달라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뭐, 난 누나의 이런 면이 오히려 좋긴 하지만 말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누나가 앞치마를 둘렀다.
“냉장고에 소주하고 맥주 있으니까 그거 마시자.”
“누나, 평소에도 술 마셔? 냉장고에 왜 술이 있어?”
“너 온다고 해서 아침에 미리 사 둔 거야. 평상시에는 마셔 봤자 맥주 한 캔 정도밖에 안 마시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안주는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금방 해.”
부엌으로 들어간 누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어렸을 때 기억이 절로 떠올랐다.
예전에 나 배고프다고 하면 누나가 이렇게 직접 요리해 주고 그랬는데.
많이 귀찮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누나는 싫은 티 한 번 내지 않았다.
나였으면 절대로 못 했을 일들을 누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해 왔다.
한편으로는 이런 누나가 존경스러웠다.
“제육볶음에 김치전 할 건데, 괜찮지?”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네.”
역시 우리 누나. 동생이 뭘 좋아하는지 여전히 잘 알고 있다.
식탁이 워낙 작다 보니, 둘이 앉아도 금세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이 식탁도, 저 냉장고도 죄다 오래되어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누나는 아직 한참 더 쓸 수 있다면서 바꾸겠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지. 내 손으로 너 결혼까지 시켜 주고 싶으니까.”
“갑자기 결혼을?”
“너, 이제 적은 나이 아니잖아.”
“나보단 누나가 더 급하잖아.”
“괜찮아. 난 혼자 살 거니까.”
아니, 그건 내가 싫다.
언제까지 누나가 희생하는 것만 보고 싶지 않다.
“누나도 좋은 사람 생기면, 내 눈치 볼 것 없이 계속 만남 이어 가도록 해 봐.”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네.”
“있을 거야. 왜냐하면 누나만큼 착한 사람도 없으니까.”
나 같은 날라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 아닌가.
이런 사람이 착하지 않다면, 아마 세상에서 ‘착하다’라는 단어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작게 웃은 누나가 맥주 캔을 들어 올렸다.
“아무튼 이렇게 오랜만에 둘이서 마시니까 좋네.”
“생일 케이크도 없이 이렇게 조촐하게 먹어도 돼?”
“괜찮아. 케이크는 아까 프로그램 시작하기 전에 실컷 먹었으니까.”
하긴, 나 말고도 축하해 줄 사람들은 여럿 있겠네.
예전에는 오롯이 나하고 누나, 둘뿐이었는데.
이런 걸 보면 세월이 참 많이 변한 거 같다.
어느새 맥주 캔 하나를 다 비운 누나가 살짝 취기가 감도는 얼굴로 물었다.
“컴백 준비는 잘되어 가?”
“뭐, 대충.”
“……그래?”
딱!
누나가 두 번째 캔을 깠다.
꿀꺽, 꿀꺽, 꿀꺽!
말없이 맥주만 마시던 누나가 깊은 숨을 토해 내면서 마저 말을 이었다.
“잘됐네.”
“뭐가?”
“네가 꿈을 이룬 거 같아서.”
“…….”
누나의 말에 내 손이 잠시 멈췄다.
그때는 그랬다.
누나한테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막연하게 이야기하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었다.
“나보다도 누나가 훨씬 더 힘들었을 텐데, 괜히 투정까지 부렸던 내가 나쁜 놈이야.”
“괜찮아. 나는 네가 언젠가 가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진짜로? 누나, 내가 노래하고 춤추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잖아.”
“그래도 알 수 있지. 이 세상에서 너에 대해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 말이 내 가슴으로 날아와 꽂혔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 그날 처음 본 심사위원도.
당시 소속사 대표도.
아무도 나에 대해 완벽히 알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역시 누나는 누나다.
내게 있어서 누나는 엄마이자 아빠, 그 자체다.
만약에 누나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다.
결국 세상을 구한 건 내가 아니라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누나가 아닐까 싶다.
소맥이 담긴 잔을 단숨에 비웠다.
“누나.”
“응.”
“내가 꼭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
쿡쿡 웃던 누나가 건배를 위해 캔을 들어 올렸다.
“네가 행복하면, 그게 내 행복이야.”
역시 난 평생 누나를 당해 낼 수 없나 보다.
* * *
이번 컴백 역시 쇼케이스 무대를 따로 준비하기로 했다.
지난번처럼 이빈 씨가 특별 MC를 맡아 주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내일이 바로 내 두 번째 앨범 발표를 알리는 날이 될 것이다.
현장에 와서 미리 무대를 살펴본 이빈 씨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짧은 소감을 읊었다.
“데뷔 쇼케이스 때보다 스케일이 더 커진 거 같은데?”
“기업들이 내 컴백에 관심이 굉장히 많은 거 같더라.”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된 우리들.
동갑내기인 데다 방송에서 몇 번 얼굴을 마주치다 보니 부쩍 친해지게 되었다.
애초에 이빈이가 먼저 나한테 말을 놓자고 제안하기도 했고.
계속 거절하는 건 이빈이한테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알겠다고 했다.
“내일 나빈이도 와서 구경해도 된다고 했다면서?”
“어, 와서 편하게 구경하라고 했어. 아마 나빈이 말고도 내 지인이 여럿 올 거야.”
“어머, 그래? 헌터분들이 많이 오시겠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아이리스는 오기로 했고.
데이브는 올지 말지 모르겠다. 일단 알겠다고는 했는데.
무대 위쪽을 올려다보던 이빈이가 PV 영상에 대해 언급했다.
“조회 수 엄청나더라. 댓글 보니까 한국어로 쓰인 문구가 안 보일 정도였어.”
데뷔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준비한 앨범인데, 사람들의 관심은 배로 증가했다.
내 노래에 대한 효과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런 관심도 폭증했다.
세계를 구할 노래. 이 말 그대로였다.
“관심 많이 받고 있는 만큼, 열심히 해야지.”
그러나 내 컴백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건 아니었다.
소수의 악플러도 당연히 존재했다.
그들에게는 내가 나라를 구했다 할지라도 별 상관 없는 듯했다.
뭐,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지키기 위해서 헌터로 활동한 거지, 그런 놈들 지켜 주려고 몬스터들과 싸운 건 아니니까.
소수의 안티 여론은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온 김에 짧게 리허설도 가져 보기로 했다.
무대 아래에 붙어 있는 테이프 위치에 따라 섰다.
마이크를 들고 반주에 맞춰서 이번 타이틀곡인 ‘결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대 감독과 스태프들, 그리고 이빈이가 내 공연을 조용히 지켜봤다.
보통은 2절 들어가는 구간에서 무대 감독이 적절하게 컷을 해 주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게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의도치 않게 완곡을 해 버리고 말았다.
마이크를 내려놓은 나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무대감독에게 물었다.
“왜 중간에 안 멈추신 거예요?”
“스태프들이 계속 듣고 싶어 해서요. 저도 그렇고요.”
그 말에 나는 너털웃음을 흘렸다.
이빈이도 내게 엄지를 추켜세우면서 외쳤다.
“노래 좋은데? 실력도 많이 늘었고.”
잘나가는 현역 가수가 이렇게 말을 할 정도면 내 노래 실력이 확실히 늘긴 했나 보다.
열심히 노력한 만큼 보다 많은 헌터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게 된다면 좋을 텐데.
어차피 노래에 대한 평가는 나나 전문가가 하는 게 아니다.
대중의 몫이다.
‘내일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그 전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
* * *
마침내 컴백 쇼케이스의 날이 밝았다.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기에 현장 분위기는 평소보다 더 얼어붙어 있었다.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바로 방송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 생방송은 데뷔 방송 때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 동시 송출로 진행된다.
그렇다 보니 스태프들이 신경 써야 할 게 더 늘었다.
생방송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1시간.
거울 앞에 선 나는 왁스로 고정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신경을 썼다.
방송 활동을 쉬면서 앨범 작업에만 매진한 만큼 대중에게 좋은 결과물을 보여 줘야 한다.
이렇게 주목도가 높은 상황에서 실수라도 한번 해 봐라.
그만큼 쪽팔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혹시 몰라서 대기실에 있는 동안에도 노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때,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
“태오 오빠! 저희 왔어요.”
아이리스가 말한 ‘저희’라는 단어에 나는 데이브도 같이 왔음을 직감했다.
“네 오빠는 어디 있는데?”
“먼저 객석으로 가 버렸어요. 오빠한테 태오 오빠 안 만날 거냐고 하니까 자기는 무대만 보러 왔다고 말하고 가 버렸어요.”
무대 봐주러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아이리스가 건네준 꽃다발을 받는 사이.
또 다른 방문자가 등장했다.
“선배님.”
“어, 나빈아, 왔어?”
우리 자랑스러운 후배도 이 선배를 응원하기 위해 이곳까지 와 줬다.
“이빈이하고는 인사했지?”
“네. 원래 선배님 먼저 보고 그다음에 언니 보려고 했는데, 오다가 복도에서 마주쳤어요. 이야기 좀 하다가 일로 바로 온 거예요.”
“잘했어.”
“선배님, 여기 선물이에요.”
아이리스보다도 더 큰 꽃다발을 가져온 나빈이.
순간 아이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 손에는 아이리스가 준 꽃다발이.
다른 한 손에는 나빈이 것이 들려 있었다.
이게 리얼 ‘양손의 꽃’이구나.
그러나 문제는 이 꽃들이 서로 친한 사이처럼 보이진 않는다는 거였다.
“안녕하세요, 나빈 씨.”
아이리스가 먼저 나빈이한테 인사를 건넸다.
나빈이 역시 약간 불편해하는 표정으로 아이리스의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게요. 잘 지내시는 거 같아 보여서 다행이에요.”
“저도요.”
“…….”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
하필이면 이 가운데에 내가 미묘하게 껴 있었다.
누가 에어컨이라도 세게 틀었나.
대기실이 갑자기 왜 이렇게 춥대, 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