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56화 (56/250)

제16장. 몰랐던 재능 (1)

이철민 소장이 하는 말을 듣고서 처음에 내가 내뱉은 말은 이러했다.

“……예에???”

당장 이해가 가질 않아서였다.

아니, 노래 버프가 나만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니라.

“데이브도 노래로 헌터들한테 버프를 줄 수 있다고요?”

“예.”

“그게 정말입니까? 지금 저희 놀래키려고 일부러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제가 시덥지도 않는 농담 안 좋아한다는 거, 태오 씨가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

그렇지.

이철민 소장은 그렇게까지 유쾌한 성격이 아니다.

웃기지도 않는 농담 따 먹기나 하는 게 이철민 소장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 중 하나다.

그런 이 소장이 나하고 데이브 한번 웃기겠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데이브도 이철민 소장의 말에 눈만 여러 차례 꿈뻑꿈뻑할 뿐이었다.

“제가 강태오처럼 노래를 부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걸 알아낸 겁니까?”

“노래는 여기서 한번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그제야 예전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노래를 부르면 나보단 잘 부르겠다고 허세를 부렸던 데이브.

그래서 즉석으로 노래를 불러서 증명해 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그때 데이브는 무반주로 아주 짤막하게 팝송을 부른 적이 있었다.

설마.

“그거, 이 소장님이 녹음했습니까?”

이철민 소장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예, 연구원한테 시켜서 몰래 녹음하라고 했었습니다. 음질이 안 좋았다는 게 조금 불만이긴 했지만, 그래도 테스트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더군요.”

그렇게 말하면서 이철민 소장은 우리들 몰래 진행했던 새로운 실험 결과에 대해서 공유해 주기 시작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연구원이 우리들 앞에 노트북 화면을 대령했다.

PPT 형식으로 펼쳐지는 이철민 소장의 자료들.

“이런 걸 언제…….”

데이브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흘렸다.

그러자 이철민 소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협회장님 밑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건 자연스럽게 습관화될 겁니다. 필요하면 새벽에도 저 불러서 보고 자료 준비 좀 해 달라고 하시는 분이거든요.”

직장 상사로서는 최악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일은 잘하니까.

내 입장에선 딱히 불만은 없다.

아무튼 이철민 소장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를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 소장이 육성으로 부연 설명을 보탰다.

“강태오 씨의 노래 버프 효과만큼은 아니지만, 데이브 씨의 노래에도 비슷한 능력이 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태오 씨의 노래가 헌터들의 전투 능력을 2단계 정도 상승시킨다면, 데이브 씨의 노래는 1.5단계 정도에 그치더군요.”

“여기에서까지 저 녀석한테 밀릴 줄이야.”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닐 텐데.

“대신에 재미있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바로 다음 장으로 넘기는 이 소장.

그가 말한 ‘재미있는 결과’라는 건 내 입장에서도 꽤나 흥미로웠다.

“현직 프로듀서한테 강태오 씨와 데이브 씨의 노래를 서로 섞어서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느낌으로 짜 맞춰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노래가 완성되더군요.”

내 노래 속에 데이브의 팝송 파트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믹싱 잘했네요.”

“외주 비용을 비싸게 줬거든요.”

“그러면 차라리 저희 최 프로듀서한테 맡기지 그랬어요.”

“그러게요. 그걸 생각 못 했네요.”

정말로 생각을 못 해서 안 맡긴 건지.

아니면 일부러 피한 건지.

이 소장의 표정을 보면 도통 모르겠다.

워낙 속내를 안 드러내는 사람으로 유명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 노래로 다시 실험을 해 봤습니다.”

“헌터들한테 들려줘서 랭크 측정을 다시 해 봤다, 이거죠?”

“예. 태오 씨하고 데이브 씨가 예상하기로는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 거 같습니까?”

내 노래가 2단계 정도를 상승시켜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고.

데이브는 이것보다 낮은 1.5단계 정도 상승 효과를 지녔으니까.

“그 중간 정도이지 않을까요? 1.7이나 1.8 정도.”

이철민 소장은 내 추측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틀렸습니다.”

“그럼요?”

“태오 씨의 노래 효과를 기준으로 맞춰졌습니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네, 2단계가량 상승입니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내 노래 효과에는 큰 약점이 두 개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나한테 호감을 가진 헌터들에 한해서만 버프 효과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같은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들으면 점점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노래를 나 혼자가 아니라 데이브가 같이 부른다면.

“노래를 좀 더 다양하게 양산해서 발표할 수 있다는 뜻이죠.”

이 소장이 마침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을 똑같이 읊었다.

데이브와 협업해서 다양한 노래를 낸다면, 헌터들이 똑같은 노래만 계속해서 들을 필요가 없어지고.

그리고 ‘내 노래에 호감을 가져야 한다.’에서 ‘나와 데이브의 노래에 호감을 가져야 한다.’라는 식으로 조건의 범위가 늘어나게 된다.

‘나’를 좋아하는 헌터의 숫자보다 ‘나와 데이브’ 둘 중 하나를 좋아하는 헌터들의 숫자가 더 많은 건 당연할 테니까.

이때, 데이브가 날카로운 질문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만약 저 녀석의 노래에는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저는 싫어하는 헌터가 있다면,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이것도 테스트해 봤겠죠?”

“예.”

역시 이철민 소장답다.

이 소장이 그걸 실험 안 해 봤을 리가 없다.

조금의 경우의 수가 있으면 전부 다 실험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게 바로 이철민 소장의 성격이다.

“싫어하는 건 상관없습니다. 단지 호감에만 영향을 받더군요.”

그것은 다시 말해서.

아까 데이브가 예시로 든 한 명을 좋아하고 한 명을 싫어하는 경우라면, ‘호감’ 상태로 판명된다는 거다.

즉, 버프 효과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결국 저하고 데이브, 둘이서 협업하는 게 무조건 득이라는 뜻이군요.”

“그렇죠. 그래서 저는 태오 씨가 이걸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데이브 씨를 영입하려고 한 줄 알았는데, 모르고 계셨군요.”

“예, 전혀요.”

나는 또.

노래 버프가 내 고유기인 줄 알았는데.

근데 뭐,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내가 줄 수 있는 버프 효과가 더 크니까, 내 노래의 가치가 떨어진 건 아니었다.

반면, 데이브는 굉장히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도 저 녀석한테 지고 들어가다니…….”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는 기쁨보다, 나한테 졌다는 분함이 더 크게 다가온 모양인가 보다.

원래 행복이라는 건 남과 비교해서 얻는 게 아닌데.

안타까운 녀석이다.

어쨌든 이로 인해서 데이브가 우리 회사로 들어와야 할 명분이 생겼다.

덥석!

데이브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들었지? 오늘 당장 우리하고 계약서 쓰자. 열심히 듀엣 활동 해 보자고.”

하지만 데이브의 대답은 예상외였다.

“거절한다.”

* * *

데이브는 원래 성격상 본인이 싫어도 인류 수호에 도움이 되는 임무라면 어쩔 수 없이 따르는 편이었다.

하지만 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일단 브레이크가 한번 걸린다.

결국은 나와 손을 잡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긴 하겠지만.

‘그때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

데이브는 복잡한 심경을 끌어안고서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반면, 나는 아직 연구소에 남아서 이철민 소장과 좀 더 대화를 나눴다.

“태오 씨뿐만 아니라 노래를 통해서 버프를 줄 수 있는 헌터가 또 있다는 게 밝혀졌으니까, 모든 헌터들을 대상으로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전수조사를 해 볼까 합니다.”

“만약에 데이브 같은 경우가 추가로 더 나온다면요?”

“그 이후부터의 일은 태오 씨에게 맡기겠습니다.”

흠…….

사실 노래 버프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 말고도 더 나올 거란 사실은 전혀 계산에 넣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여러 명이 있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전수조사까지 얼마나 걸릴 거 같습니까?”

“글쎄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헌터들을 대상으로 할 예정이라,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대략 언제쯤 끝나는지, 그리고 조사를 확실하게 해서 능력의 여부만 밝혀내서 알려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아직 모르고. 전자는…… 반년 정도면 충분할 거 같네요.”

중요한 일인 데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검증 단계를 거쳐야 하다 보니 확실히 오래 걸리는 거 같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반년이면, 데이브도 우리 회사로 올지 말지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도 남을 테고.

“만약에 데이브 같은 헌터들이 또 있다면, 저한테만 미리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한테 맡기겠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후의 진행에 대해서 궁금한가 보다.

사실 답은 나와 있다.

“싸그리 다 계약 맺어야죠. 그리고 그룹 하나 만들어서 앨범 발표할 겁니다.”

헌터돌이라.

아마 듣도 보도 못한 그룹이 나올 것 같다.

* * *

그룹 프로젝트는 일단 전수조사가 끝난 다음에 인원수를 보고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내부 회의에서 결론을 지었다.

이 소장이 알려 준 정보들을 나를 통해 들은 회사 직원들은 회의 시간 내내 못 믿겠다는 얼굴 표정을 유지했다.

“대표님과 같은 능력을 지닌 헌터들이 또 있을 수도 있다니. 믿기 힘드네요.”

“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헌터 활동을 할 때에는 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이 겪었으니까요.”

웬만하면 ‘나 때는 말이야~’ 화법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게 된다.

최 프로듀서가 지난번에 녹음실에서 나와 이야기했던 내 두 번째 솔로 앨범에 대해 물었다.

“그러면 이사님 솔로 앨범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차피 이 소장 말로는 조사 끝나기까지 반년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까, 일단은 두 번째 앨범은 솔로로 그대로 진행해 보죠. 중간에 데이브가 마음을 바꿔 먹어서 우리하고 일찍 계약을 맺겠다고 연락이 오면, 듀엣곡 하나 빠르게 내는 식으로 하면 되겠죠. 노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오늘도 오면서 협회장한테 빨리 다음 앨범 내라고 재촉을 받았다.

몬스터 잡고 오라는 것도 아니고, 헌터한테 노래 발표를 촉구하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인원수하고 성별에 따라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겁니다. 남자들만 있다면 보이 그룹으로, 여자들의 숫자가 꽤 된다면 혼성 그룹으로 갈 테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으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전수조사 결과가 나오고 나서 그때부터 준비하면 한참 늦을 테니까, 그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해 주세요. 바로 활동 들어갈 수 있도록.”

이건 시간과의 싸움이다.

최대한 빠르게, 많은 노래들을 발표해서 우리가 헌터들의 사기와 전투 능력을 높여 주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회의를 끝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남았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한 말들은 협회 쪽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까진 비밀로 해 주세요. 안 그러면…….”

내가 말끝을 흐리는 동안, 직원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싱긋.

내 장난스러운 미소가 분위기를 바꿨다.

“협회장님이 와서 잔소리하실지 모릅니다.”

내가 많이 겪어 봐서 아는데.

잔소리 듣는 거, 은근히 힘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