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52화 (52/250)

제14장. 1지망 (2)

오전에 라디오 녹음 하나를 빠르게 소화한 나는 승훈이 형에게 미리 작별 인사를 건넸다.

“형, 그럼 내일 봐.”

“오늘 약속 있다고 했었나?”

“어, 데이브가 밥 먹자고 연락했던 거.”

“아, 그거구나.”

승훈이 형도 데이브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 모양인지 헛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그 녀석이 너한테 그런 연락을 했다는 게 참 놀랍긴 하더라. 세상에 변하긴 했나 봐, 데이브가 네 제안을 다 받아들이는 걸 보면?”

“아직 멀었어. 더 큰 제안을 받아들이게끔 만들어야지.”

“계약 말하는 거지?”

“응.”

데이브를 우리 회사로 끌어들인다.

이것이 내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지만, 승훈이 형이 말했던 것처럼 세상이 점점 변하고 있는 추세 아닌가.

데이브도 나처럼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평생 백수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갈 만한 그런 성격은 결코 아니다.

소일거리라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체질이다 보니,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데이브는 계속해서 방송에 출연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소속사가 딱이지.

우리는 이름부터 이미 헌터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회사 아니겠나.

HT 엔터테인먼트.

만약 방송에 진출하려는 헌터가 있다면, 무조건 우리 쪽과 계약을 맺는 게 좋을 것이다.

이사인 나부터가 일단 헌터 출신이니까 말이다.

출발하기 전에 승훈이 형에게 의견을 들을 겸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봤다.

“형, 데이브가 혹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데이브? 글쎄. 나한테도 속내를 털어놨던 적이 없어서, 솔직히 녀석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데이브가 좋아할 만한 미끼를 투척해야 한다.

낚시를 할 때에도 대상어종을 잡으려면 웜이라든지, 새우라든지 그에 걸맞은 미끼를 써야 하지 않겠나.

데이브라는 대어를 낚기 위해서는 녀석이 좋아하는 미끼를 미리 준비해서 가야 한다.

하지만 승훈이 형이 방금 말했듯이 그 미끼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내가 데이브에 대해 정말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는 애초에 알려는 시도조차 안 하긴 했었지만.’

몬스터와 하루하루 싸우느라 정신이 없던 시기였기에 인맥을 다져야 한다는 그런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아니지. ‘않았다’가 아니라 ‘못 했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승훈이 형이 내 등을 토닥여 주면서 일이 원만하게 풀리기를 기원했다.

“이야기 잘 나눠 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 내가 지원사격 나서 줄 테니까.”

“고마워, 형.”

승훈이 형의 말은 무척이나 고맙긴 하지만, 큰 도움이 될 거 같진 않다.

* * *

데이브가 약속 장소로 잡은 가게는 내게 있어서 꽤나 의외였다.

스테이크 맛집으로 소문난 가게, ‘빌레오’.

밥 먹다가 도중에 몬스터와 싸웠던 바로 그 가게다.

‘보수공사는 다 끝났나 보네.’

뻥 뚫려 있던 벽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메꿔져 있었다.

차를 세우고 가게로 향하는 길.

사람들이 끊임없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다 웨이팅인가?’

몬스터가 튀어나오고, 나와 데이브가 여기서 전투를 벌인 탓에 이 가게가 본의 아니게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는 건 나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본적으로 맛있는 가게이기도 하고.

여기에 화제성까지 더해지니, 그 여파가 어마어마했다.

한편, 가게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들은 나를 보자마자 격하게 반응했다.

“태오 오빠!!”

“여기 한 번만 봐 주시면 안 돼요?”

“손 좀 흔들어 주세요! 소원이에요!”

사방에서 팬 서비스 요청이 날아들었다.

이미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봤을 때부터 이럴 거라고 예상하고 왔었기에, 나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계속 유지하면서 팬들이 원하는 것들을 빠르게 선보였다.

언제 어디서든 웃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진정한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이제는 헌터라는 수식어보다 연예인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게 되었구만.’

기뻐해야 할 일이겠지?

앞으로의 시대에선 헌터보다 연예인이 더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미리 예약을 잡아 뒀기에 나는 사람들처럼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가게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가게에 모습을 보이자, 직원이 다급하게 사장을 호출했다.

주방에서 부랴부랴 뛰쳐나온 사장이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아이구! 오셨습니까, 태오 씨!”

나를 바라보는 사장의 시선에서 애정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덕분에 가게가 유명해졌으니까.

그래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였다.

여기 예약할 때에도 가게 내에서 최고로 좋은 자리로 잡아 주겠다고 누차 말을 했던 가게 사장.

예약석으로 안내하는 일도 사장이 직접 도맡아 했다.

“여기입니다. 주문은 바로 하실 건가요?”

“아니요. 만나기로 한 손님이 있어서요. 그쪽이 오면, 그때 주문하겠습니다.”

“예,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오늘 제가 서비스 팍팍 드릴 테니까요, 하하하!”

호쾌한 웃음소리를 남긴 채 사장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예약석이 다른 손님들과 섞일 일 없이 격벽으로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전망도 나쁘지 않고.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딱 안성맞춤인 자리처럼 보인다.

마침 가게 입구에서부터 데이브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동행인이 한 명 껴 있었다.

“태오 오빠!”

아이리스가 캐주얼한 복장으로 오른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자신이 왔음을 나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었다.

덕분에 가게 내에 있는 손님들의 시선이 우리들에게 쏠렸다.

데이브가 그런 아이리스에게 눈치를 줬다.

“조용히 좀 해라.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뭐, 어때. 어차피 우리가 만나는 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알 텐데.”

데이브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면서 여동생의 말에 연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아이리스가 같이 올 줄은 몰랐는데.

데이브는 여동생을 아끼는 편이긴 하지만, 사적인 일에 동생을 옆에 끼고 다닐 정도까지 다정한 오빠는 아니다.

데이브가 아니라면.

‘아이리스가 먼저 오겠다고 고집부렸을지도 모르겠군.’

아마 나 때문에 그랬겠지.

그럴 확률이 가장 높아 보였다.

아무튼 두 남매가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먼저 데이브에게 고마움의 말을 들려주기로 했다.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와 줘서 고맙다.”

“너 때문에 나온 거 아니니까 그딴 말 하지 마라.”

“아이리스가 끌고 온 거지?”

“……어.”

아이리스에게 대신 윙크를 보냈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헤헤 웃으면서 말했다.

“저, 잘했죠?”

“나이스였어.”

데이브는 아이리스의 말이라면 곧잘 듣는 편이니까.

가만있어 보자.

그렇다면…….

‘아이리스를 우리 회사에 먼저 끌어들이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데이브도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편의점에서 1+1 행사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음, 이건 좀 이상한 비유인가.

아이리스가 핸드백을 옆에 내려놓으면서 내게 물었다.

“태오 오빠, 저희 오빠한테 HT로 오라고 제안했다면서요?”

“어. 근데 뭐, 아주 당연하게도 본인이 싫다고 하더라.”

“오빠, 왜 싫다고 하는 거야? HT 엔터테인먼트 정도면 괜찮은 회사잖아.”

그래, 잘한다, 우리 아이리스.

계속 그렇게 어필 좀 해 줘.

아이리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데이브의 태도는 여전했다.

“저 녀석이 있는 곳을 뭐 하러 가냐.”

“뭐 어때. 만약에 내가 오빠라면, 나는 무조건 간다고 했을 텐데.”

순간 머릿속에 커다란 전구 하나가 번뜩였다.

지금인가?

“아이리스는 어때?”

“저요?”

“우리 소속사로 오는 거. 지금 소속사보다 훨씬 더 잘해 줄게. 조건도 더 챙겨 줄 테고.”

“그치만 저는 한국에서 활동할 예정이 아직 없는데요.”

그랬었지.

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직은 없지만, 원한다면 외국에서의 활동도 충분히 지원해 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돼.”

“정말이에요?”

“응, 정말이지.”

데이브가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나와 아이리스를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역시, 내 작전이 조금씩 먹히는 듯하다.

“그리고 너, 한국에서도 방송 활동 해 보고 싶다고 늘 말했었잖아?”

“네, 그렇죠. K-Pop을 많이 좋아하니까요.”

“네가 평소에 즐겨 듣던 노래 부르는 가수들하고도 같이 방송 출연 할 수 있는 기회인데, 이거 놓치면 아쉬울걸.”

내가 봐도 참 달콤한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고민을 이어 가던 아이리스가 갑자기 내게 이런 제안을 했다.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어떤 거?”

“오빠, 저하고 언제 한번 날 잡아서 데이트해 줘요.”

데이트라는 말에 데이브가 마시던 물을 뿜었다.

“이, 이 녀석이랑?”

“왜, 내가 오빠한테 누구랑 데이트해야 좋을지 허락까지 맡아야 해?”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하필이면 이 녀석이냐.”

“태오 오빠가 뭐 어때서.”

“…….”

친동생이 자기가 아니라 내 편을 들어 주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데이브에게 동정심이 든다.

데이트라.

“그래, 그러자.”

“아싸! 고마워요, 오빠.”

“내가 더 고맙지.”

데이브의 인상이 점점 더 구겨지기 시작했다.

깊은 한숨을 내쉬던 데이브는 나를 노려보면서 아이리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목소리를 작게 낮추고선 말했다.

“내 여동생 그만 꼬시고 밥이나 먹어라.”

여동생을 아끼는 오빠의 마음이란 무섭다.

* * *

오랜만에 직접 연구소를 찾은 나를 보면서 이철민 소장이 무신경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게요. 앨범 발표한 지도 꽤 됐는데, 아직도 저를 찾는 프로그램이 많더라고요.”

“슬슬 신곡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도 돼요?”

나는 괜히 노래를 바꿨다가 그나마 있던 버프 효과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이철민 소장의 생각은 달랐다.

“같은 곡을 계속 반복해 들으면, 아무래도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실제로 아무리 태오 씨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똑같은 곡을 무한 재생해서 들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버프 효과가 떨어지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말인즉슨…….”

이철민 소장이 간단하게 요약을 해 줬다.

“신곡을 주기적으로 계속 내는 편이 좋다는 거죠.”

“다음 곡도 버프 효과가 있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요?”

“버프의 원인은 노래가 아니라 태오 씨의 목소리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신곡 발표라.

안 그래도 요즘 많이 바쁜데.

곡 준비까지 들어가면, 앞으로는 더 바빠질 수도 있겠다.

아니지. 앨범 준비에 전념하겠다고 하면서 잠시 방송 활동을 쉬는 것도 방법이니까.

집에 가서 고민 좀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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