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49화 (49/250)

제13장. 잘못된 만남 (5)

현재 해피모드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는 바슬라 엔터테인먼트다.

역사가 그렇게 오래된 회사는 아니다.

엔터테인먼트업을 시작한 지는 5년 정도. 그동안 나름 인지도 있는 가수를 여럿 배출하긴 했지만, 다들 하나같이 회사와의 마찰로 인해 소속사를 옮기는 결말로 이어졌다.

이 패턴이 늘 똑같다.

도대체 회사가 얼마나 문제가 많으면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알아낼 생각도 없다.

그쪽 사정이 어떻든 간에 내 알 바 아니니까 말이다.

회사를 망하게 하면 된다는 내 말에 연 대표와 승훈이 형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거?”

승훈이 형이 확인차 물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한번 확실하게 내 뜻을 전해 주기로 했다.

“응.”

“아니, 멀쩡한 회사를 왜 망하게 하려고…….”

“멀쩡하지 않으니까 망하게 해야지.”

나는 나쁜 사람들을 응징하는 그런 복수자 역할을 떠맡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장수복이 예전에 나한테 모질게 대했으니까 이에 대한 보복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내게 이익이 될 만한 계획을 짰을 뿐이다.

현실은 늘 냉정해야 하는 법이니까.

연 대표가 알겠다고 답하면서 내 요구를 적극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굳혔다.

그러자 승훈이 형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진짜로 하실 겁니까, 대표님?”

“물론 바슬라라는 회사가 어떤 곳인지 알아는 봐야지. 하지만 태오가 이렇게까지 말을 할 정도면, 뭔가 속사정이 있을 거야. 나는 태오를 믿거든.”

좋은 말이다.

이러니까 내가 연 대표를 계속 믿고 레이드 시대가 끝날 때까지 함께했던 것이다.

연 대표 못지않게 나는 승훈이 형도 믿고 있다.

승훈이 형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나를 적극 신뢰하고 있다는 시선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태오가 문제가 많은 회사라고 했으니까, 조금만 뒤져도 약점 잡을 만한 것들은 금방 나올 겁니다.”

“내가 사람들을 소개시켜 줄 테니까, 그쪽하고 협력해서 바슬라 엔터테인먼트 탈탈 털어 봐. 그쪽에 특화된 인재들이니까 원하는 건 다 알아내 줄 거야.”

“예, 알겠습니다.”

연 대표는 인맥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이번 일은 연 대표를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그러면 난 이제…….

‘해피모드 멤버들하고 다시 만나서 이야기나 마저 좀 나눠 볼까.’

저번에는 내가 대접을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우리 집으로 초대를 해야겠다.

* * *

우리 집에 처음 방문한 해피모드 멤버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우리 집 전경을 살폈다.

넓은 마당. 화이트 톤으로 깔끔하게 꾸며진 인테리어.

그리고 조용한 거주 환경까지.

해피모드의 막내 멤버, 다진 씨가 언니들의 팔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말했다.

“언니, 언니! 저거 봐! 저쪽에 있는 거, 호수 아니야? 다른 건 몰라도 호수 있는 집은 처음 봐!”

“얘는, 호들갑 좀 떨지 마. 태오 씨가 뭐라고 생각하겠니.”

“그래도 신기한 걸 어떻게 해. 어머어머, 안에 물고기도 사나 본데?”

물고기라는 말에 내가 작게 웃으면서 부연 설명을 들려줬다.

“예전에 잠깐 취미로 시작해 봤던 겁니다. 하도 몬스터들하고 싸우니 피 냄새가 몸에서 떠나질 않았죠. 그때 제 심리 치료를 병행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이 심신을 안정시켜 줄 만한 취미 하나 만들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당이나 호수 같은 걸 꾸며 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효과는 있었나요?”

“아니요. 집에서 가만히 틀어박혀서 게임이나 하는 게 제일 좋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손님들이 너무 좋다고 말해 주니까 보람은 느낀다.

은근히 돈 많이 들어간 취미니까, 이런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지난번에 해피모드 멤버들의 숙소에서 촬영했던 것처럼, 집 안 구석구석을 찍어 줄 수 있는 카메라들이 없다는 게 조금은 아쉽지만 말이다.

이렇게 보면 나도 관종이 맞긴 한가 보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나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오는 멤버들.

그러자 우리 집에서 일하는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곧바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긴 테이블 덕분에 멤버들이 다 앉아도 전혀 부족하지 않을 만큼 넉넉한 식사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진주 씨가 놀라는 얼굴로 물었다.

“평소에 식사하실 때 여기서 드시나요?”

“아니요. 저 혼자 밥 먹는 일이 많아서, 저기 저 아일랜드 식탁 위에서 먹습니다.”

부엌에 작게 딸려 있는 기역 자 형태의 아일랜드 식탁이 내가 주로 식사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건…….”

“여러분들 초대하면서 따로 주문 제작해 둔 테이블입니다.”

“네? 그,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

멤버들이 크게 당황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식탁. 이걸 단지 자신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구입했다고 하니, 부담이 굉장히 크게 느껴졌나 보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돈은 많거든요.”

나 살아생전 어떻게 이 많은 돈을 쓰면 좋을지, 늘 고민일 정도다.

그럼에도 해피모드 멤버들은 불안한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내 대접이 그렇게 부담스러운가?

이제부터 더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꺼낼 텐데,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지, 흠.

“일단은 식사하시죠.”

“네, 네!”

멤버들이 어정쩡한 움직임으로 테이블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나를 포함해서 아홉 명이 나란히 자리에 앉으니까, 긴 테이블을 따로 주문해서 산 보람이 느껴졌다.

그래, 이런 맛에 돈을 쓰는 거지.

“촬영은 잘 끝나셨나요?”

나와 나빈이는 집들이 촬영을 끝내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해피모드 멤버들은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촬영해야 했기에 그날 늦은 저녁때까지 카메라와 함께 외출을 하거나, 따로 뭔가를 먹으러 가거나, 이런 이벤트를 일부러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다.

아직은 방영되지 않은 탓에 영상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선 나도 모른다.

그래서 건너, 건너 들은 것들로만 대충 유추를 할 뿐이었다.

내가 손짓을 하자,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켜 줬다.

식사도 좋지만, 슬슬 중요한 이야기를 진행할까 한다.

“저번에 소속사하고 계약이 잘못되었다는 건에 대해서 저한테 말씀하신 게 있었죠?”

“아…… 네.”

해피모드 멤버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처음 보는 나한테 하소연을 하듯 말을 했을까.

“확실히 계약서를 보니까 독소 조항이 너무나도 많이 들어 있더라고요.”

“예?”

“저희 계약서를…… 보셨어요?”

멤버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멤버들과 소속사 간의 계약서를 어떻게 봤는지 모르니까.

계약서는 기본적으로 비밀 유지 조항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나에게 ‘불공정 계약서를 썼다.’라는 말만 해 줄 수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조항이 어떤 식으로 그녀들에게 피해를 끼치는지 말을 해 줄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비밀 유지 조항을 어기는 셈이니까.

그래서 나는 해피모드 멤버들을 통해서가 아닌, 내 별도의 인맥을 통해서 그녀들이 작성한 계약서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했다.

나도 지금은 어엿한 엔터테인먼트사의 이사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물론 직책만 이사일 뿐, 실질적으로 HT 엔터테인먼트는 내 회사라 할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나도 연예계 내에 이루어지는 계약 사항 같은 것들을 웬만하면 다 꿰고 있었다.

“여러분들의 고민을 제가 직접 해결해 드리고자 이렇게 집으로 초대한 겁니다.”

“해결이라니, 어떻게요?”

진주 씨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저희 회사로 오시겠습니까?”

HT 엔터테인먼트에서 정식으로 밝히는 스카우트 제의.

하지만 해피모드 멤버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저희, 계약 끝나려면 아직 기간이 한참 남았는데…….”

“맞아요. 회사가 저희 절대로 안 놔줄 거예요.”

바슬라 엔터테인먼트의 유일한 돈줄이니까.

그녀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모기처럼 쪽쪽 빨아먹을 것이다.

아마 그걸 해피모드 멤버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시간은 그녀들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녀들을 안심시켜 주기로 했다.

어디 보자.

“지금 몇 시죠?”

갑자기 내가 시간을 묻자, 해피모드 멤버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몇 시인지 물어보면,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해 씨가 대표로 답해 줬다.

“지금 7시 반이에요.”

“딱 좋은 시간이네요.”

미리 준비해 둔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채널을 따로 돌릴 것 없이 바로 뉴스 채널이 떴다.

아나운서 밑에 ‘속보’라는 단어가 커다랗게 새겨졌다.

[다음 소식입니다. 바슬라 엔터테인먼트가 국세청으로부터 대대적인 세무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탈세 의혹에 이어 홍태평 대표, 장수복 이사의 마약 소지에 관한 건도 현재 수사 의뢰 중이라고 합니다. 경찰은 곧 두 사람의 자택을 수색할 예정이며…….]

“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갑작스럽게 벌어진 대형 사고에 해피모드 멤버들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면서 짧게 답했다.

“어디 사는 누군가가 천벌이라도 내렸나 봐요.”

* * *

세간에는 이런 말이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그런 생각으로 바슬라 엔터테인먼트의 뒷조사를 의뢰했던 거였는데.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게 숨겨져 있었다.

뉴스에 나왔던 탈세, 마약 혐의 등등.

소속 연예인과의 불공정 계약은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바슬라 엔터테인먼트는 크게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서 온갖 압박이 들어오니, 회사도 정신이 없을 터.

바쁜 건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이야기할 건 해야겠다.

승훈이 형과 함께 바슬라 엔터테인먼트 본사를 찾았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압류 딱지들.

이미 경찰이며 국세청이며, 정부 관계자들까지 싹 다녀갔는지라 바슬라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은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책상은 많은데, 이에 비해 직원들은 고작 한두 명에 불과했다.

나를 보자마자 직원 한 명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태, 태오 씨 맞으시죠?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곳 대표하고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사무실은 어디 있습니까?”

“대표님이라면 지금…….”

“회사에 있다는 거 알고 찾아왔습니다. 괜히 일 귀찮게 만들지 마시고 얌전히 사무실 위치나 알려 주세요.”

내가 최대한 감정을 억눌러 말할 때 얌전히 협조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남자도 그걸 느꼈는지, 얌전히 대표의 사무실 위치를 실토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보고 싶은 얼굴이 둘이나 있었다.

우리의 원래 목적인 홍태평 대표.

그리고 장수복 이사.

‘그때나 지금이나 성질 더러워 보이는 얼굴은 여전하네.’

어쩜 저렇게 하나도 안 변했을까.

오랜만에 만나는 악연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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