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48화 (48/250)

제13장. 잘못된 만남 (4)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낮에 들었던 장수복이라는 인물에 대해 떠올렸다.

내가 어렸을 적 소속사에서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 신분이 되었을 당시.

연습생 관리를 맡았던 인물이 바로 장수복이었다.

당시의 직책은 실장 겸 매니저.

직원들은 주로 실장님이라고 불렀고, 연습생들은 매니저님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월말 평가라든지, 스케줄 같은 것들을 총괄하던 사람이었기에 다른 직원들보다도 유독 우리 연습생들과 자주 마주치곤 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좋은 기억은 없지.’

그 흔한 ‘힘내!’라는 말조차 듣지 못했다.

장수복에게 있어서 우리 연습생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했을 것이다.

대중에게 선보일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소모되는 떨거지들.

내가 그냥 혼자 오해가 쌓여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이거, 놀랍게도 실제로 본인의 입을 통해 들은 말이다.

니들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어차피 너희는 데뷔도 못 할 거니까, 적당히 연습하다가 적당히 평가받고,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에 다른 완성품 아이들을 위해서 눈치껏 떨어지면 된다고 우리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뺨 한 대 씨게 후리고 싶네.’

잠시 잊고 있었던 분노와 짜증이 샘솟았다.

그때 당시 나는 각성을 해 버린 탓에 계속 연습생 생활을 할 수 없어서 중간에 나오긴 했지만.

‘우준이는 잘 알겠지?’

오랜만에 장수복에 대한 것도 궁금해져서 우준이한테 전화를 걸어 보기로 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촬영 중이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뒤늦게 몰려왔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준이는 내 전화를 금세 받았다.

-형이 웬일이에요? 전화를 다 하시고.

“왜, 내가 그동안 연락 안 해서 많이 섭섭하기라도 했냐?”

-그야 당연하죠. 형 덕분에 지금 이렇게 가수로 잘나가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모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기획한 앨범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나를 밀어내고 음원 차트 1위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했었다.

물론 미국에서 벌어진 몬스터들과의 전투 덕분에 내 노래가 다시 관심을 받게 되면서 1위를 되찾긴 했지만 말이다.

-설마 저번에 1위 빼앗겼던 거 때문에 섭섭하다고 전화하신 건 아니죠?

“그랬다면 지금처럼 한참 뒤가 아니라 당시에 전화를 했겠지. 다름이 아니고,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제 은인이신데, 아는 게 있으면 다 말씀드려야죠.

은인이라.

나는 이런 거창한 호칭보다는 그냥 형이라고 불리는 게 더 좋긴 한데.

그래도 뭐,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까.

“장수복, 기억하지?”

-아, 그 싸가지요?

이름을 거론하자마자 바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착하디착한 우준이의 입에서 좀처럼 이런 거친 말은 들을 수가 없는 편인데.

그만큼 장수복이라는 인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모질게 대했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마어마했죠. 형 나가고 난 이후에는 더 심했어요. 언제는 술 마시고 잔뜩 취해서 저희 안무 연습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서 폭행까지 했다니까요.

“진짜로?”

-네! 확 공론화해 버릴까 했었는데…… 연습생 편을 누가 들어 주겠어요. 그리고 다들 데뷔하고 싶어서 모였던 건데, 무대 올라가기도 전에 벌써부터 업계 관계자하고 척지기 싫어하는 분위기여서 그냥 조용조용히 넘어갔었죠. 근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그냥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었는데…… 아쉽네요.

싸가지라는 별칭이 참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래서 형, 그 사람 이야기는 갑자기 왜요?

“네가 이를 가는 그 싸가지, 다른 소속사에서 이사직 맡고 있더라.”

-뭐…… 그렇겠죠. 그 사람, 자기보다 위에 있는 사람한테는 잘도 굽신거렸으니까요. 형 있을 때에도 이 이야기 나왔었잖아요. 장수복은 이 업계에서 어떻게든 잘 붙어서 살아남을 바퀴벌레 같은 인간이라고.

“그러게. 근데 그 바퀴벌레가 설마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지.”

실장에서 이사라.

나름 승승장구했나 보다.

나만큼 성공한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 사람한테 예전에 당한 거, 복수라도 하시려고요?

“복수까진 아니고, 해피모드라는 걸 그룹이 있는데, 그 걸 그룹이 소속사하고 불공정 계약 문제 때문에 이래저래 말이 많은 거 같아서. 그래서 우리가 빼 오려고.”

안 그래도 우리 HT 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연예인 확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적극적으로 연예인들을 우리 소속사로 데려오기 위한 작전과 투자를 감행할 생각이다.

우준이에 이어서 이번에 내가 노리는 타깃은 해피모드다.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해 온 데다 저번에 숙소에 가서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눠 보니 나름 괜찮은 그룹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데려올까 하는데.

우준이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형, 그쪽 소속사에서 지금 유일하게 잘나가는 그룹이 해피모드인데 해피모드 멤버들을 단체로 빼 오면, 그 회사는 망할걸요.

따지고 보면 우준이가 말한 복수라는 개념이 맞는 거 같기도 하다.

장수복 이사가 있는 회사를 망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장수복 이사가 불쌍해서 관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사람은 애초에 내게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냥 내 일에 집중해야지.’

좋아, 결심했다.

“승훈이 형한테 말해 둬야겠어.”

우준이가 한동안 통쾌하다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 * *

스케줄을 소화하기 전에 나는 HT 엔터테인먼트 바로 옆에 위치한 모회사, BOO를 방문했다.

마침 승훈이 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연수하 대표가 나를 반겼다.

“어서 와라, 태오야. 여기 앉아.”

“예.”

내가 승훈이 형한테 연락을 하기도 전에 먼저 이쪽에서 나보고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냐고 전화가 걸려 왔다.

그래서 여기까지 이렇게 오게 된 거였다.

“할 말 있으신 거죠?”

단도직입적으로 목적을 물었다.

애초에 나는 빙빙 돌려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니까 말이다.

연 대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정상회담 열리는 거, 알고 있지?”

“네, 미국 대통령하고 여러 명 온다고 들었습니다.”

“헌터 협력 체계 강화가 주목적이라고 하더라.”

레이드 시대에 접어들면서 헌터는 각 국가에게 있어서 일종의 ‘최종 병기’ 같은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내가 너무 강해서 그렇지, 사실 A랭크 정도만 되도 어딜 가든 국빈 대접을 받는다.

실제로 어떤 나라에서는 부족한 헌터 숫자를 채우기 위해서 다른 나라에 거주 중인 헌터들에게 이민권과 거주지, 그리고 각종 혜택을 줄 테니 제발 우리 나라에 와서 활동해 주면 안 되겠냐는 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헌터는 국가 차원에 있어서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

지금이야 레이드 시대에 비해선 그 가치가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여전히 몬스터는 존재하고, 이들을 최소한의 피해로 제압하려면 결국 헌터가 필요하다.

대한민국과 미국은 헌터 동맹국으로 유명한 관계다.

원래 가장 많은 헌터 수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대한민국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등장한 이후, 이 분위기는 급격하게 달라졌다.

일반 헌터 수백…… 아니, 수천 명 이상의 전투력과 나 혼자의 전투력이 맞먹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쪽에서 정말 이례적으로 대한민국에 먼저 헌터 동맹 협약을 제안하게 되었다.

원래 갑과 을의 입장은 ‘부탁을 하는 쪽’과 ‘부탁을 받는 쪽’이 누구냐에 따라 결정된다.

부탁을 하는 쪽은 미국. 즉, 그들은 스스로 을이 되기를 자처했다.

단지 나 한 명 때문에.

“대통령께서 이번에 미국 측과 만날 때, 너도 같이 참석해 줬으면 하더라.”

“그래요?”

“어, 네가 거기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쪽에 많은 압박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만약에 ‘동맹, 파기하죠.’라는 말을 꺼내면, 미국은 그 자리에서 나를 회유하기 위해 온갖 조건들을 제시할 것이다.

그 정도로 내가 지닌 영향력은 막대하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런 나의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헌터 동맹 협약 체계 강화 말고도 다른 안건들을 유리한 조건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저는 그런 자리,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나도 알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직접 부탁하는 거야.”

연 대표는 ‘부탁’이라는 단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이런 걸 생각해 보면, 확실히 어떻게든 나를 그쪽에 내보내고 싶어 하는 티가 났다.

왜 그럴까?

굳이 깊게 생각 안 해도 된다.

“정부에서 뭐 받기로 하셨어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빙빙 돌려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연 대표도 이런 내 화법에 많이 익숙해진 모양인지, 불쾌하다는 기색 하나 없이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여러 가지 혜택들이 있지. 궁금하다면 목록 작성해서 보여 줄까?”

“아니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아무튼 BOO한테는 많은 득이 되는 계약이라, 이거네요?”

“그렇지.”

“저희 HT 엔터테인먼트는요?”

“그건…….”

HT 엔터테인먼트가 BOO 산하에 있는 회사지만, 하는 분야가 다르다 보니 이래저래 소외되는 게 많긴 했다.

HT 엔터테인먼트의 실질적인 대표는 나니까.

기왕이면 우리도 얻는 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승훈이 형도 이번만큼은 연 대표가 아닌, 내 편을 들어 주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곧장 지원사격에 나섰다.

“가서 고생하는 건 태오니까요. 태오가 원하는 것도 들어주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연 대표는 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나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이기도 하고.

의리가 있는데, 여기서 안 된다고 말할 사람은 아니다.

내 예상대로.

“그렇긴 하지.”

연 대표는 결국 우리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원하는 게 따로 있어? 말해 봐.”

마침 하나 있긴 하다.

“해피모드를 저희 회사로 데려오고 싶습니다.”

“그거라면…… HT 엔터테인먼트 내에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니야? 이적 관련이잖아. 그러면 돈 조금만 풀면 금방 데려올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여기저기서 뒷이야기가 나올 거 같아서요. 대표님도 잘 아시잖아요? 저, 일이 찝찝하게 마무리되면 굉장히 싫어하는 타입이라는 거.”

“알지, 알아.”

죽은 것처럼 보이는 몬스터도 숨통이 끊어졌는지 확실하게 확인을 하고 넘어가는 스타일이다.

예전에 이걸 소홀히 했다가 어떤 몬스터 녀석한테 죽을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나도 참, 헌터가 되고 성격 많이 변하긴 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제가 생각을 해 봤거든요. 어떻게 하면 깔끔하게 우리가 해피모드를 그대로 데려올 수 있을까 하고. 그래서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려 봤는데요.”

잠시 말을 끊은 뒤,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해피모드가 지금 소속되어 있는 회사가 망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