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45화 (45/250)

제13장. 잘못된 만남 (1)

진주 씨의 요청이 있은 직후.

바로 다음 날, ‘스타 관찰기’를 맡고 있는 황호정 PD가 스태프들을 이끌고 우리 HT 엔터테인먼트를 찾아왔다.

설마 이렇게 바로 우리 회사를 방문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황호정은 소위 말하는 스타 PD로 불리는 데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맡고 있어서 웬만큼 잘나가는 연예인 못지않을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낸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 측의 전화를 한 통 받고서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날아오다시피 할 줄은 몰랐다.

“황 PD님, 많이 바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오늘은 공교롭게도 일정이 비셨나 보네요?”

혹시 내가 황 PD가 쉬는 날을 빼앗은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황 PD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내 추측이 틀렸음을 알렸다.

“아니에요. 오늘도 어차피 방송국에 출근해서 일하고 있었어요. 오전에 미팅도 잡혀 있었고요.”

“과거형이네요?”

“네, 어제 태오 씨가 먼저 저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모른 척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어제 새벽에 상대측에 연락해서 미팅 다음으로 미루자고 그랬죠.”

“새벽이라…… 그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미안한 짓을 해 버렸네요.”

“호호, 괜찮아요. 나중에 비싼 술 한잔 사 주면 금방 풀릴 테니까요. 아무튼 먼저 전화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사실 모든 예능 PD들이 그렇듯, 저도 태오 씨를 어떻게든 저희 프로그램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모시고 싶었거든요.”

내가 좀 귀한 몸이긴 하지.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어쩔 수 없다. 실제로 그런 걸.

오늘 황 PD 일행과 이렇게 마주 앉기 전에도 두 군데에서 출연 요청이 들어왔었다.

나로 인해서 우리 직원들은 이제 전화받는 것 정도는 프로 중의 프로가 되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황 PD의 눈빛은 반짝였다.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제 욕심 같으면 태오 씨를 아예 관찰 대상 연예인으로 섭외해서 한 편…… 아니, 두 편 정도는 특집으로 편성해서 촬영하고 싶은데, 그건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내가 슬쩍 승훈이 형에게 눈짓을 보냈다.

일정이 워낙 바쁘다 보니, 나조차도 실시간으로 내 스케줄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승훈이 형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고 정확하다.

승훈이 형이 수첩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안 된다는 뜻이군.

“죄송합니다, PD님. 보다시피 당분간은 일정이 꽉 차 있어서요.”

최근, 미국 쪽에서 몬스터로 추정되는 괴생명체가 목격되었다는 소식이 갑자기 많이 들려오고 있었다.

방송 일정에 몬스터 문제까지.

몸이 여러 개여도 바쁜 상황이다.

황 PD는 입맛을 다시면서 좀처럼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일정이 비게 된다면, 그때 꼭 저희한테 연락 주세요. 아니면 잊어버리실지도 모르니까, 아예 저희가 주기적으로 전화를 드릴까요? 모닝콜처럼요.”

“아니요.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제발, 그건 피해 줬으면 좋겠다.

작가 한 명이 팔꿈치로 황 PD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속삭였다.

“PD님, 그러다가 태오 씨가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시면 어쩌려고요. 자중 좀 하세요, 자중.”

“알고 있어. 미안해.”

두 사람이 아무리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도, 각성 능력을 지닌 내 귀에는 바로 옆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둘의 속삭임이 생생하게 들렸다.

황 PD가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일부러 헛기침을 몇 차례 했다.

“어흠! 그러면…… 해피모드 편에 잠깐 출연하시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예. 진주 씨 말을 듣자 하니, 제가 기숙사에 한번 놀러 와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쪽 그룹 멤버들이 다 제 팬이라고 해서요.”

“연예계에선 해피모드 멤버들처럼 태오 씨의 팬임을 자처하는 연예인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시네요.”

“그러게요. 저한테는 많이 과분하지만요.”

“어머, 그렇지 않아요. 그만큼 능력 있으시고. 나라를 구하신 분인데 그 정도 인지도는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까, 하하.”

아, 겸손 차리기 힘드네.

이런 말은 이제 접어 두고.

서로 바쁜 사람들이니까,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황 PD와 작가들이 대충 그날 촬영이 어떻게 진행될지, 기타 필요한 정보들을 내게 알려 줬다.

그리고 하나 더.

“올 때 혼자 오시는 건가요?”

황 PD가 뭔가를 더 기대하는 사람처럼 내게 물었다.

누군가를 더 데려왔으면 하고 바라는 거 같은데.

“네, 일단은 저 혼자입니다.”

아직 방송에 대해 말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만 가는 걸로 알고 있는 게 제작진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혹시나, 만약에 다른 분도 같이 데려오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촬영에는 전혀 지장 없게끔 저희가 알아서 조치할 테니까요. 태오 씨는 그저 무사히 현장에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데이브라도 데려갈까?

그러면 황 PD가 아주 좋아할 거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일단은 전화라도 한번 해 봐야겠다.

* * *

황 PD 측과의 미팅이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데이브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도 같이 출연할래?

이렇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미쳤냐? 너하고 왜 거길 나가냐!

하여간 츤데레 녀석.

내 노래도 좋아하면서. 모처럼 나와 같이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

뭐, 데이브라면 거절할 가능성이 매우 클 거 같았으니까,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 타깃을 노려 보기로 했다.

“아이리스는?”

데이브와 다르게 아이리스라면 분명 나가겠다고 할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리스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굉장히 잘 따랐다.

그때부터 이미 내 팬이 되었던 건가?

어찌 되었든, 아이리스 정도면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화제성이 높은 인물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말을 매우 잘 듣는다.

방송에 데려가기 딱 적합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제 미국 갔다.

“왜? 당분간 한국에 머물 거라며?”

-너, 협회한테 연락 못 받았냐, 아니면 받았는데 벌써 까먹은 거냐? 그쪽에 계속 몬스터 봤다는 목격담이 나오니까 혹시 몰라서 아이리스도 그쪽으로 간 거잖아.

그랬구만.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나도 실시간으로 듣고 있어서 안다.

그런데 아이리스까지 갈 줄은 몰랐다.

“근데 넌 왜 안 갔냐?”

문득 이게 궁금해졌다.

데이브는 혀를 차면서 왜 안 갔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해 줬다.

-잡몹들일 텐데 뭐 하러 나까지 가냐, 귀찮게. 어차피 그쪽 헌터들이 알아서 다 막을 수 있잖아. 그리고 네 녀석의 노래만 있으면 더 수월하게 막을 건데.

하여간 저놈의 성질머리는.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라서 그러려니 했다.

미국은 S랭크 이상의 헌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들이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을 때 미국이 가장 피해가 적었다.

이번 토벌은 레이드 시대 때와 비교해서 난도가 훨씬 낮은 편이니까.

데이브의 말대로 알아서 잘 막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내 노래 덕분에 헌터들 전투력이 올라가서 더 쉽게 몬스터들을 제압했다고 알려지면, 내 가수 활동과 노래의 가치가 더 올라갈 테고.’

기대되는 효과가 상당히 많다.

아무튼 결국 데이브와 아이리스는 출연이 힘들다, 이런 뜻이었다.

그렇다면…….

‘승훈이 형을 데려가기에는 좀 그렇고.’

승훈이 형은 나와 다르게 본인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직 카메라가 낯설다나, 뭐라나.

나중에 익숙해지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했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리고 나갈 정도로 난 성질이 못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방송 경험이 있고.

그리고 헌터로서 유명하고.

또 나와 친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한 명 있네.’

아직 연락을 안 해 본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 *

배가 노출된 탱크톱과 흰색 레깅스를 입은 채로 무릎을 굽힌 채 자세를 낮추는 홍나빈.

이른 새벽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쉬고 있던 홍나빈의 언니, 유이빈이 친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

“뭐 하고 있어? 스쿼트?”

“아니, 자세 잡는 훈련.”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좀 격한 홈트레이닝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홍나빈은 엄연히 훈련 중이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나의 흐름이 홍나빈의 몸 구석구석을 훑고 있었다.

마나와 마력은 각성 능력을 발휘하는 데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이것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각성 능력을 제대로 발동할 수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템 사용에도 제한이 생긴다.

그래서 홍나빈은 이렇게 아침마다 꾸준히 자체 훈련을 실시하고 있었다.

유이빈은 이런 여동생의 모습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레이드 시대도 끝났는데, 훈련을 계속할 필요가 있어?”

“게이트가 사라졌어도 몬스터가 사라진 건 아니니까.”

“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몬스터라는 존재가 그렇게까지 인류에게 위협이 되진 않았다.

헌터들의 실력이 상승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태오 씨 노래가 몬스터들하고 싸우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된다며?”

아직 유이빈은 버프 효과까지 있다는 건 모르는 상태다.

홍나빈은 이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비밀로 해 달라고 한 이상 아무리 가족이라도 말하면 안 된다.

가족이니까, 친한 사이니까,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슬쩍 말을 흘리고 다니면 어느 순간부터 비밀이 아니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홍나빈은 여전히 훈련에 집중하면서 언니의 물음에 답했다.

“그래도 ‘만약에’라는 게 있으니까, 훈련해 두면 좋지. 그리고 이거, 은근히 몸매 관리에도 탁월하거든.”

몸매 관리라는 말에 유이빈의 눈빛이 격하게 반짝였다.

“진짜? 나도 할래!”

연예인이다 보니 몸매 관리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다이어트는 거의 평생 하다시피 하고 있고, 이런 와중에 좀 더 수월하게 체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나.

잔뜩 흥분하는 언니를 보면서 홍나빈은 작게 웃었다.

“일단 각성부터 먼저 하고 와.”

“……쳇.”

불가능한 일을 지시하는 여동생 때문에 유이빈은 입술을 삐쭉 내밀어야만 했다.

한 통의 전화가 잠시 그녀들의 평화로운 일상 속 대화를 방해했다.

유이빈이 여동생을 대신해서 스마트폰을 건네줬다.

“태오 씨한테서 온 거네?”

“선배님이? 줘 봐.”

통화 버튼을 누른 홍나빈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변했다.

“네, 선배님…… 예?”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뀐 홍나빈은 확인 차원으로 방금 들은 말을 강태오에게 되물었다.

“방송 출연이요? 저하고 같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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