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까칠한 팬 (5)
뜬금없는 노래 요청에 데이브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가 왜 여기서 노래를 불러야 합니까?”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데이브 씨가 태오 씨보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걸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몸소 증명한다면, 태오 씨처럼 앨범 제작해 주겠다고 나오는 업체가 있을지도요.”
“아니, 전 가수 활동에 딱히 욕심은 없는데요.”
그렇겠지.
방송이라면 몰라도, 데이브는 나처럼 각성하기 전에 연습생 시절을 겪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중가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도 아니었다.
노래를 듣는 것도 일반 사람들이 즐겨 듣는 것 정도의 수준에서 그쳤다.
그리고 나도 데이브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내심 보고 싶기도 하네.’
얼마나 잘 부르기에 나한테 ‘내가 너보단 잘 부르겠다!’라고 단언하는지 궁금했다.
나와 텔레파시가 통하기라도 한 걸까.
아이리스가 이철민 소장의 편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소장님 말이 맞아. 오빠, 한번 불러 보는 게 어때?”
“너까지 왜 이래?”
“어차피 몬스터 다 없애면, 오빠도 백수 될 운명이잖아. 벌어 놓은 돈 가지고 놀고먹으면서 살 거라면 말리진 않겠지만, 오빠 그런 것도 싫어하잖아.”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선 데이브와 나의 생각이 일치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 젊다.
얼마 남지 않은 몬스터들이 사라지면, 하릴없는 백수 헌터가 될 예정인데, 슬슬 일자리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도 한때 접었던 가수의 꿈을 다시 이뤄 가고 있는 거고 말이다.
물론 내 노래에 버프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다.
이철민 소장과 아이리스가 열심히 데이브를 설득할 때.
나도 힘을 보태 주기로 했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
나를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데이브.
한편 이철민 소장과 연구원들, 그리고 아이리스가 다시 한번 이어지는 내 장단에 맞춰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네엣!”
우리의 기대감이 굳게 닫힌 데이브의 마음의 문을 열었다.
데이브가 마지못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Every moment is a fresh beginning.
you are my everything.
외국인답게 선곡 역시 팝송이었다.
나도 예전에 몇 번 들어 본 적이 있는 노래였다.
좀 더 큰 목소리로 불러 준다면 좋을 텐데.
창피한 모양인지 목소리 크기도 작고, 그리고 딱 두 소절만으로 끝을 봤다.
“됐어. 내가 왜 여기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왜, 잘 부르는구만.”
나만큼 잘 부른다고 호언장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꽤 부르는 편이긴 했다.
조금만 다듬으면 무대에 올라서도 괜찮을 정도로.
게다가 데이브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무기가 두 가지나 존재했다.
하나는 준수한 외모.
내가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헌터라면, 데이브의 경우에는 주로 여성 팬들이 많았다.
데이브가 본격적으로 방송인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에도 벌써부터 데이브를 응원하는 팬클럽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어딜 가든 항상 데이브를 응원하곤 했었으니까 말이다.
웬만한 유명 연예인 뺨칠 정도였다.
외모도 외모지만.
두 번째 이유가 진짜배기라 할 수 있다.
바로 헌터로 활동하면서 쌓아 온 인지도다.
사실 내가 방송에 첫발을 내디딜 때 이 두 번째 요소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가수로 데뷔조차 안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보다도 훨씬 유명한 인사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데이브.”
내가 데이브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뭐가?”
“데뷔하자. 계약서는 우리랑 쓰고.”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미친놈.”
거참 너무하네.
나는 나름 용기 내어 말한 거였는데.
* * *
잠시 연구소에 폭풍을 몰고 왔던 강태오와 데이브, 아이리스가 떠난 뒤.
배웅을 나섰던 이철민 소장이 빠른 걸음으로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이 소장이 연구원에게 확인차 물었다.
“아까 내가 하라고 했던 건?”
“잘되었습니다. 들어 보시겠어요?”
젊은 연구원이 이철민 소장에게 노트북과 페어링된 헤드셋 하나를 건넸다.
헤드셋을 착용한 이철민 소장은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음성 파일 하나를 클릭했다.
동시에 들려오는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
방금 전, 데이브가 등 떠밀리듯 억지로 불렀던 바로 그 노래였다.
“음질이 좀 더 좋았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나.”
부스에서 정식으로 녹음을 진행한 것도 아니고.
이철민이 데이브의 바로 뒤에 위치한 연구원한테 갑작스럽게 녹음할 준비를 빨리하라고 지시했기에 부랴부랴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음질 저하로 이어진 거였다.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지. 일단 샘플은 확보했으니까, 여기서 만족하는 수밖에.”
이철민 소장의 입꼬리가 초승달을 그렸다.
* * *
한창 ‘다먹소’ 촬영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난입한 몬스터들로 인해 중간에 녹화가 흐지부지되었다.
그때의 녹화를 다시 이어서 하기 위해 나는 승훈이 형과 함께 그날 두 번째로 방문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가게를 찾았다.
“이번에는 분식집이네?”
굉장히 허름해 보이는 가게였다.
위치도 찾기 힘들고.
그럼에도 평상시에 손님들이 굉장히 많이 몰리는 가게라고 알고 있다.
지리적 이점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음식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입소문 하나만으로 가게가 떴다.
대체 얼마나 맛있어서 그러는지, 오늘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평소에는 대기 줄이 쫙 깔렸을 테지만.
오늘은 우리 방송 촬영을 위해 사장님이 휴무일을 반납하고 가게를 열어 주셨다.
덕분에 한산한 환경 속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약속 시간에 맞춰서 현장에 도착하자, 스태프들과 출연진이 내 안부부터 먼저 물었다.
“태오 씨, 괜찮으신 거죠?”
“어디 다치신 곳은 없나요?”
아리그 무리와 주먹다짐을 하는 모습을 바로 근처에서 목격해서 그런 걸까.
내 걱정으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나 나누고, 대본 체크한 다음에 바로 촬영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그보다 이들을 안심시켜 주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할 판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멀쩡해요. 만약에 심각하게 다쳤다면, 오늘 녹화 힘들다고 제가 먼저 연락을 했겠죠.”
나, 아직 안 죽었다. 그런 잡몹들에게 당할 만큼 실력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철민 소장에게 말했던 것처럼 오히려 내 전투 능력은 상승했다.
아마 앞으로도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3일 만에 보는 이진주도 두 다리로 멀쩡히 현장까지 걸어온 내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날 저, 태오 씨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를 거예요. 매번 그런 식으로 싸우셨어요?”
“저번에는 오히려 편한 축에 속했습니다. 한창 치열할 때에는 사방에 막 피 튀기고, 신체 절단된 거 굴러다니고, 그리고…….”
말을 계속 이어 가려던 나는 알아서 자체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곧 있으면 식사해야 하는데 제가 입맛 떨어지는 말을 하고 있었네요.”
출연진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런 건 알아서 자제해야 하는데.
헌터 생활에서 벗어나 사회라는 것에 적응하려면 아직은 시간이 좀 필요해 보였다.
* * *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저번처럼 PD의 자리 배정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가게가 좁기도 하고. 그래서 최대한 다닥다닥 붙어서 앉으실게요. 태오 씨하고 진주 씨, 조금만 더 붙어 주세요.”
“이렇게요?”
내가 먼저 의자를 끌고 진주 씨의 옆으로 붙었다.
순간 진주 씨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내가 한 번에 너무 가까이 접근한 걸까?
“조금 떨어질까요?”
“아, 아니에요! 이 정도가 딱 괜찮을 거 같아요.”
당황하는 이진주의 모습을 바로 맞은편 자리에서 지켜보던 또 다른 출연자가 킥킥 웃으면서 내게 어떤 정보 하나를 흘렸다.
“진주가 태오 씨한테 도움받은 날부터 완전 팬 됐더라고요. 본인 그룹 노래보다 태오 씨 노래를 더 자주 들을 정도라니까요.”
“왜 그런 걸 말씀하시고 그러세요, 선배님!”
“뭐 어때, 사실인 걸.”
그랬었나.
하기야, 내 목적은 헌터들만 내 팬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가수가 되는 것.
아니지, 가수가 아니라 톱스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말은 언제든 반갑고 기쁘다.
설령 같은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구석에서 따로 음식만 진열해 놓고 인트로 촬영을 시작하고 있었다.
뒤이어 우리 쪽 카메라도 돌기 시작했다.
분식집 사장님이 직접 음식들을 서빙했다.
테이블 위에 하나씩 세팅되는 먹거리들.
그러면서 사장님이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을 했다.
“혹시 저희 집까지 몬스터가 오진 않겠죠?”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보장할게요.”
지난번에 아리그가 나타났던 경로를 역으로 추적해서 놈들이 추가로 몇 마리나 더 숨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나와 데이브가 때려눕혔던 아리그가 전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협회 측의 공식 발표가 오늘 저녁에 있을 것이다.
아직 뉴스로 안 나왔기 때문에 분식집 사장님도 그렇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단언을 하니, 크게 안심이 되는 반응을 보였다.
“태오 씨만 믿고 있겠습니다.”
“예. 제가 있으면, 오히려 이곳이 더 안전할 겁니다.”
내 말에 출연진뿐만 아니라 스태프들, 그리고 PD가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출연자가 아니라 보디가드로 온 기분이 살짝 들긴 하는데.
뭐, 어쩔 수 없지.
* * *
무사히 두 번째 가게 촬영을 마치고.
승훈이 형이 차를 가지고 오기 전까지 나는 현장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이때, 진주 씨가 나를 찾아왔다.
“태오 씨, 혹시…… 다음 주 목요일에 시간 되시나요?”
“목요일이요?”
혹시 데이트 신청인가?
그건 아니었다.
“네. 그날 저희 멤버들이 관찰 예능 프로그램 하나 촬영하기로 했거든요. ‘스타 관찰기’라는 프로그램인데, 아시나요?”
“알죠.”
관찰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시청률이 잘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
“그날 괜찮으시다면 태오 씨하고 같이 촬영해 보고 싶어서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실 필요는 없고, 그냥 잠깐 저희 숙소에 놀러 와 주시기만 하면 돼요.”
“숙소요?”
걸 그룹 숙소를 내가 간다고?
음, 어떻게 할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날 시간 비워 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시청률 잘 나오는 프로그램이라서 이러는 거다.
결코 걸 그룹 숙소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