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43화 (43/250)

제12장. 까칠한 팬 (4)

몬스터들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작게나마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세이렌과 머들린 놈들이 나타났을 때에는 내 노래가 몬스터들을 교란시키고 혼란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고.

이번 아리그의 출현 때에는 데이브가 내 노래 버프를 받을 수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다른 헌터도 아니고. 랭킹 2위의 전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소식은 협회 입장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만큼 인류의 전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뜻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작 데이브는 여전히 눈앞의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버프를 받을 수 있는 숨겨진 조건이 있나 보지! 반드시 네 녀석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 말고도 추가 조건이 또 있을 수 있잖아! 이 소장님도 뭐라고 말 좀 해 보십시오! 예?”

나와 같이 협회장의 호출을 받고 걸어가던 이철민 소장이 나를 대신해서 단호하게 말했다.

“없다고는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것들을 종합해 보면 ‘태오 씨에게 높은 호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는 법칙이 가장 유력하다고 봅니다.”

“아니, 내가 왜!”

“글쎄요.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싸우면서 정든다고. 아마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싶네요.”

아이리스는 이미 노래 버프를 받을 수 있는 체질이라는 게 증명되었다.

반대로 데이브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일이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도 데이브는 내 노래 버프를 절대로 못 받을 사람이라고 한참 전부터 단정 짓고 있었는데 말이다.

당황하는 데이브를 위해서라도 내가 이 소장에게 대신 물어보기로 했다.

“노래 버프가 랜덤으로 적용되는 건 아닌 거죠?”

“예, 제가 수차례 헌터들을 데리고 실험해 봤습니다만, 노래 버프를 통해서 전투력이 상승했던 헌터들은 전부 태오 씨에게 어느 정도 이상의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랬군요.”

이 소장이 이렇게 딱 잘라 말하는 경우는 딱 하나밖에 없다.

강한 확신이 들었을 때.

즉, 확률이 0.1퍼센트 이하일 때 이렇게 강한 어조로 말을 하곤 한다.

나도 그리고 데이브도, 이 소장과 나름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온 사이다.

내가 아는 걸 데이브가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데이브는 이 소장에게 더 이상 항의하는 걸 포기했다.

아니, 항의라고 하는 게 정확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숨과 짜증을 연속으로 드러내는 데이브와 달리, 이 소장은 이런 사정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오히려 좋지 않습니까? 태오 씨의 노래 버프를 받으면 전투력이 상승할 수 있다는 거 말입니다. 데이브 씨가 레이드 시대 때 상대하기 껄끄러워했던 몬스터들도, 이제는 태오 씨의 노래만 있으면 쉽게 쓰러뜨리는 게 가능해진 겁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말을 이어 가던 순간, 데이브의 표정이 변했다.

그러더니 오늘 녀석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뭔가 꿍꿍이가 떠올랐을 때 보여 주는 반응과 굉장히 흡사했다.

“야, 강태오.”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한판 붙어 보자.”

실험실 쪽을 가리키면서 갑자기 내게 대련 신청을 했다.

“내가 이길 텐데?”

“그거야 붙어 보면 알겠지.”

데이브도 잘 알 것이다.

내가 녀석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데이브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녀석이 왜 이렇게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아이리스한테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빌린 데이브.

내 노래의 힘을 이용해서 나를 꺾어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너를 한 번이라도 꺾어야 내 속이 풀릴 거 같거든.”

“그러고 보니 너하고 내 전적이 108전 108승이었던가?”

전승.

데이브를 상대로 나는 한 번도 패배한 역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먼저 대전 이야기를 꺼내면, 데이브는 마치 천적이라도 만난 늑대……까진 아니고, 강아지처럼 이빨을 드러낸다.

“오늘부턴 내가 너, 무조건 꺾는다!”

내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는지, 데이브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확실히, 예전에 봤을 때보다도 몸놀림이 상당히 빨라졌다.

거의 두 배, 아니 세 배 정도 되는 빠르기였다.

‘이렇게 보면, 내 노래가 효능이 확실하긴 한가 봐.’

실험실에서 미리 받은 창 형태의 훈련용 아이템을 들고 내 머리 위치를 향해 빠르게 찔렀다.

아무리 훈련용 무기라 할지라도, 이렇게 위협적으로 공격을 가하면 큰 부상이 뒤따른다.

하지만 나를 상대하는 데이브는 그딴 건 아무렴 어떠냐는 식이었다.

살짝 고개를 옆으로 까딱하며 데이브의 일격을 피해 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데이브가 선택한 창은 뾰족한 앞부분만 위협적인 게 아니다.

장병기 형태다 보니, 옆으로 휘두르는 방식의 공격 역시 위협적이다.

내가 피한 방향으로 크게 무기를 휘두르는 데이브.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해서 피하면 그만이지.’

이런 점에선 차라리 데이브가 잡몹을 상대할 때보다 오히려 더 편했다.

왜냐하면 나는 데이브의 성향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녀석의 성격, 그리고 녀석이 주로 선호하는 공격 방식 등.

오랫동안 같이 전장을 누볐던 사이였기에 연달아 이어지는 데이브의 콤보 공격을 쉽게 회피할 수 있었다.

호기롭게 나에게 덤벼들었는데 나한테 제대로 된 유효타조차 먹이지 못하니, 데이브의 얼굴에 점점 짜증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쥐 새끼처럼 도망만 다닐 거냐, 강태오!”

“도망 다니는 거 아니야. 네 전투 능력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궁금증은 얼추 다 풀렸고.

‘슬슬 진심으로 상대해 볼까.’

데이브의 창 중간 부분을 맨손으로 덥석 잡았다.

행동에 나서기 전에, 이 소장에게 먼저 허락을 받을 게 생겼다.

“이 소장님, 이거 박살 내면 제가 물어내야 합니까?”

테스트장 밖에서 우리들이 대련을 펼치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이 소장이 마이크 쪽으로 상반신을 기울이며 이렇게 답했다.

-돈 많으시니까 그 정도는 배상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배상해야 합니까?”

-아니요, 농담이었습니다.

우리 이철민 소장, 농담이 많이 늘었네.

근데 이 소장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까지 재미있진 않았다.

-훈련용 아이템 정도야 남아도니까 마음껏 부숴 먹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레이드 때처럼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나오는 시대도 아니고. 얌전히 폐기 처분하는 것보다야 낫겠죠.

“감사합니다.”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나는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시켰다.

손에 살짝 힘을 주자…….

빠각!

창이 그대로 부러졌다.

데이브가 헛숨을 삼켰다.

하지만 녀석은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방심하면 큰코다칠 거다, 이렇게!”

데이브가 챙겨 온 훈련용 아이템은 창 하나만이 아니었다.

스릉!

허리에서 꺼내 든 단도 아이템.

번뜩이는 칼날이 내 목 근처까지 도달했다.

창으로 내 시선을 빼앗은 뒤에 무기를 박살 냈다는 것으로 방심을 유도한 후 기습을 노리는 작전.

데이브다운 방식이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데이브라는 헌터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안다.

그게 녀석의 가장 큰 실수다.

왼손을 뻗어 훈련용 단검 날을 붙잡았다.

맨손이어도 상관없다.

어차피 마력으로 손을 둘둘 감쌌기 때문에 웬만한 철붙이로는 상처조차 내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데이브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필살의 일격마저 가로막혔으니, 많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내가 하나만 말해 주마, 데이브. 내 노래로 강해진 것까지는 좋은데.”

꽈직!

두 번째 아이템이 박살 났다.

“그래 봤자 내가 더 강해.”

오른손으로 마력을 빠르게 끌어모아 완전히 오픈된 데이브의 복부를 가격했다.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데이브의 몸이 붕 떴다.

철푸덕!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진 데이브는 꽉 움켜쥔 주먹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려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망할 녀석……!”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사실 이것도 데이브를 나름 배려해 준 거다.

만약에 내가 온 힘을 다했다면.

데이브는 단검을 꺼내 보지도 못한 채 패배했을 것이다.

‘이건 뭐, 나 혼자만의 비밀로 해야지.’

안 그래도 침울해하는 데이브에게 더한 충격을 주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내 노래를 좋아해 주는 나의 팬이지 않은가.

많이 까칠한 편이긴 하지만 말이다.

* * *

실험을 마친 뒤.

나는 아이리스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

“미안. 너 보는 앞에서 네 오빠한테 몹쓸 짓을 해 버렸네.”

“에이, 신경 쓰지 마세요, 태오 오빠. 우리 오빠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편이거든요.”

내 뒤를 따라서 테스트장을 빠져나온 데이브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리스는 손수건으로 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직접 닦아 줬다.

“다친 곳은 없죠, 오빠?”

“만약에 다쳤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 데이브지 않을까 싶은데.”

한편 이철민 소장은 뭐가 그리 좋은지, 우리가 방금 전에 펼쳤던 대련 영상을 바로 백업하기 시작했다.

헌터 랭킹 1위와 2위의 싸움을 보는 건 상당히 힘들다.

진기한 기회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새로운 정보들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철만 소장의 표정이 밝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태오 씨는 이전보다 더 강해지신 느낌이네요.”

“드래곤하고 싸우면서 몇 차례 자체적으로 각성을 해서 그런가 봅니다.”

물론 내가 말하는 각성은 헌터 적임자로 선택받을 때 쓰는 그 ‘각성’과는 다른 의미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뜻이다.

원래 죽지 않을 만큼의 힘든 위기는 오히려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 경우가 딱 그랬다.

드래곤만큼 강한 몬스터가 앞으로 나타날 일은 없을 거고.

지금의 내 강함은 아직 지구상에 남아 있는 잔여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데에만 쓸 생각이다.

이 소장이 이번에는 데이브에게 말을 붙였다.

“그런데 데이브 씨는 왜 이렇게 태오 씨를 싫어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이번 노래는 객관적으로 들어도 좋지 않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라는 말이 미묘하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나도 데이브의 대답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데이브가 말하길.

“제가 저 녀석보다 훨씬 잘 부르는데, 사람들이 ‘태오 님, 태오 님’ 이러고 있으니까 짜증이 나서 그렇습니다. 뭐…… 소장님이 말한 것처럼 노래는 좋긴 하더군요.”

“데이브 씨는 노래 실력이 출중하신 편인가 보군요.”

“적어도 저 녀석보다는 잘 부를 자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갑자기 이 소장의 눈빛이 변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싶었는데.

“여기서 한 곡 뽑아 보시면 어떻습니까?”

“예? 저보고 노래를 불러 보라고요?”

“네.”

역시 이철민 소장답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황당한 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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