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42화 (42/250)

제12장. 까칠한 팬 (3)

아이리스가 겉보기에 얌전한 아이처럼 느껴져서 그렇지, 사실 저렇게 보여도 헌터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한 강자에 속한다.

나빈이와 동급인 S랭크.

전 세계에 존재하는 헌터들 중에서 S라는 등급을 달고 있는 헌터가 5퍼센트도 안 되는 걸 생각하면, 아이리스의 헌터로서의 재능은 진짜배기라 할 수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전투 방식 또한 화끈하다.

어렸을 때 호신술로 배웠던 각종 격투술을 이용해서 몬스터들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스타일이다.

아리그의 단단한 껍질조차도 아이리스의 주먹 한 방에 커다란 균열이 새겨졌다.

겉보기에는 연약한 여성으로 보일지라도 절대로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게 바로 저 파괴력 덕분이다.

“오빠들! 저도 합류할까요?”

“아니, 괜찮아. 너는 내려오지 말고 아까처럼 우리 피해서 가게로 뛰어들려고 하는 놈들만 적당히 컷해 줘. 나머지는 나하고 데이브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우리 둘이면 여기 있는 아리그들 전부를 상대하고도 남는다.

둘 중에 한 명만 있어도 여유롭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협회 쪽에 보고부터 하는 게 좋겠지.

오랜만에 몬스터가 나타났으니까 말이다.

협회 작전 본부로 바로 연결되는 핫라인이 있다.

통신기기를 꺼내서 전원을 켜자마자 협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몬스터 나왔다며?

“네, 공교롭게도 저하고 데이브가 현장에 있네요.”

-들었다. 그래서 안심하는 중이지.

어쩐지.

베를린 사건 이후 오랜만에 서울 도심 한복판에 몬스터들이 다수 등장했는데, 그런 것치고는 협회장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침착했다.

나와 데이브의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아마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뭐, 나도 협회장과 같은 기분이다.

차라리 몬스터가 나온다면 내가 있는 쪽에 나오는 게 나도 훨씬 안심이다.

몬스터들이 나를 쓰러뜨리려면, 적어도 드래곤 두 마리는 와야 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아리그의 정확한 숫자부터 먼저 파악해 보기로 했다.

“총 12마리네.”

그러자 데이브가 갑자기 내 말속에 숨겨진 오류 하나를 지적했다.

“방금 아이리스가 한 마리 없앴으니 11마리다.”

“아, 그 녀석 죽었어?”

“어.”

불쌍한 녀석이구만.

어디 보자. 11마리면…….

“딱 반으로 나누기가 애매하네.”

한 마리가 남는다.

딱 보니까.

“저 한 마리가 대장인 거 같은데?”

다른 아리그들과 달리, 뒤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저놈만 유독 덩치가 크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아리그의 강함은 등과 배에 있는 껍질이 얼마나 두꺼운지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리스가 한 방에 없애 버린 놈과는 차원이 다른 두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사이, 데이브가 먼저 행동에 나서며 말했다.

“저 대장 녀석은 다섯 마리를 먼저 없앤 사람이 차지하도록 하지!”

“어쭈? 이 녀석, 먼저 시작하는 건 반칙이라고!”

그래도 내가 알던 평소의 데이브로 다시 돌아온 거 같아서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그 놈들을 내 손으로 직접 때려눕히면서 한 마리 한 마리씩 숨통을 끊어 버렸다.

움직임이 느린 놈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상대하기 편하고 좋긴 한데.

딱 하나, 아쉬움이 남는 게 있었다.

‘이 자리에 다른 헌터들도 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내 노래가 지닌 버프 능력을 테스트하기 좋았을 것이다.

데이브는 어차피 나를 싫어하니까 노래 버프를 못 받을 테고.

그렇다고 아이리스한테 이 녀석들을 전부 다 처리하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래도 직장 동료의 친한 여동생인데 어찌 고생시킬 수가 있을까.

내가 아무리 데이브와 원수지간이라 할지라도, 녀석의 여동생까지 고생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

손쉽게 아리그들을 제압한 나였지만, 마지막 다섯 마리째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이 녀석이?”

어째 다른 아리그들보다 유독 몸집이 작다 싶더니, 아리그라는 종류의 몬스터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빠른 움직임을 보이면서 내게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사이, 데이브는 순식간에 다섯 마리를 없앴다.

“내가 이겼다, 강태오!”

쳇.

나도 승부욕이 강한 편이었기에 보스급 몬스터를 데이브에게 양보하려고 하니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데이브한테 덩치 큰 아리그를 양보하게 만들어 준 원흉의 머리를 붙잡은 나는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녀석의 머리를 터뜨려 버렸다.

“난 손 안 댈 테니까, 후딱 처리해라.”

“후후후.”

기분이 좋아진 모양인지, 데이브가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나를 이긴 게 그렇게나 좋을까.

하긴, 나 때문에 만년 이인자로 불렸으니까.

데이브는 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어깨 근육을 풀었다.

아이리스하고 밥 먹으러 나온 게 목적이어서 그런지 아이템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데이브 정도면 쉽게 아리그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데이브의 일격이 아리그의 배 껍질에 흠집조차 못 내기 전까진 말이다.

빠아악!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질러 본 데이브지만, 아리그는 멀쩡했다.

나도 그렇지만, 데이브가 가장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꿈쩍도 안 한다고?”

아리그는 그렇게까지 강한 몬스터가 아니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잡몹이라 할지라도 가끔씩 비정상적인 강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돌연변이들이 몇몇 있다.

레이드 시대 당시, 우리는 이런 몬스터를 ‘엘리트 몬스터’라 불렀다.

데이브가 아리그와 다시 거리를 벌리고서 혼잣말을 흘렸다.

“이 새끼, 엘리트급인가.”

“그렇게 보이긴 하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맡을까?”

데이브도 강하긴 하지만, 엘리트급 아리그의 방어를 뚫기에는 역부족이다.

놈들은 전투 능력을 거의 방어력에 올인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무식한 방어 스펙을 자랑한다.

이것 때문에 헌터들이 상대하기 꽤 어려운 몬스터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런 와중에 무지막지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엘리트급이 등장했으니.

이건 아무래도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아리그가 아무리 강해도.

내 일격까지 버텨 내진 못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녀석은 내가 처리한다.”

아리그의 껍질보다도 더 단단한 게 있었다.

바로 데이브의 고집이다.

“흡!”

기합을 넣고서 아리그를 향해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마력을 둘둘 두른 주먹으로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고.

저 정도면 웬만한 몬스터는 피 떡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트급 아리그는 그저 뒤로 살짝 밀리기만 할 뿐, 녀석의 상징이자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두꺼운 껍질은 여전히 멀쩡했다.

“역시 내가 나서는 게 빠르다니까.”

재차 데이브를 회유해 보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녀석은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이리스도 상황을 파악한 모양인지, 아래로 내려와서 나와 같이 데이브를 설득하는 일에 열중했다.

“오빠,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그냥 태오 오빠한테 양보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이 녀석 쓰러뜨릴 때까지.”

“하여간 못난 오빠라니까.”

아이리스의 투덜거림에도 데이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엘리트급 아리그와 데이브.

‘X고집들끼리 서로 잘 만났구만.’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원만하게 잘 풀 수 있을까 고민에 잠긴 사이에, 아이리스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오빠.”

데이브한테 갑자기 뭔가 하나를 던져 주는 아이리스.

처음에는 아이템인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블루투스 이어폰?”

내가 묻자, 아이리스는 어색한 웃음소리만 흘릴 뿐 왜 갑자기 이어폰을 던져 줬는지 나에게 따로 설명을 해 주진 않았다.

“내가 ‘틀어 줄’ 테니까, 그거 끼고 해 봐.”

“…….”

데이브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졌다.

대체 뭐길래 저러는 거지?

한참을 고민하던 데이브는 결국 마지못해 아이리스의 말대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자신의 귀에 꽂았다.

그러더니 아이리스가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실행시키기 시작했다.

잠시 뒤.

데이브가 오른 주먹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마나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던 나는 속으로 놀라고 말았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양인데?’

각성 능력에 따라 얼마만큼 많은 마나를 마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갈린다.

즉, 운용할 수 있는 마나의 양에 따라 헌터의 전투력이 달라진다.

데이브가 여태껏 내게 보여 줬던 능력과는 차원이 다른 마력이 몸 전체를 에워쌌다.

힘을 모은 데이브가 기세등등해진 아리그의 배 한가운데에 주먹을 꽂은 순간.

쩌저적!

놈의 껍질이 갈라졌다.

그제야 아리그는 위기를 느꼈는지 데이브를 통째로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지만.

“꺼져라, 괴물 녀석아.”

데이브가 날린 마력탄은 아리그의 머리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쿠웅!

엘리트급 아리그의 육중한 몸이 그대로 지면에 쓰러졌다.

녀석이 죽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데이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가 좋게 나왔으니까 나도 만족은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남았다.

“이어폰으로 뭘 들었길래 그렇게 갑자기 세진 거냐?”

설마.

내 노래와 같은 작용을 하는 게 또 있나?

그러면 곤란한데.

데이브가 다급하게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네가 알아서 뭐 하게.”

“궁금하잖아. 뭔데? 이거 때문에 설마 그동안 잠적했던 거냐? 설마 너도 나처럼 노래 불렀어?”

“그런 거 아니라고!”

데이브가 아이리스의 이어폰 한 짝을 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아이리스가 고개를 거세게 가로저으면서 데이브를 말리려고 했다.

“오빠! 그거, 터치식으로 폰하고 연결했다가 끊을 수도 있어서 그렇게 꽉 쥐고 있으면 연결이……!”

‘블루투스 연결이 해제되었습니다.’라는 음성 안내와 함께.

아이리스의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데이브를 일시적으로 강하게 만들어 준 노래가 흘러나왔다.

공교롭게도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노래였다.

바람이 거칠게 불던 날.

모든 것이 너의 기억과 함께 사라져 버렸어.

No way.

“이거…… 내 노랜데?”

“…….”

데이브가 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감싸 쥐었다.

이거 혹시.

“너, 내 노래로 버프받을 수 있냐?”

“…….”

창피함과 수치심 때문인지 데이브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이 녀석한테 친근감이 들었다.

손을 뻗어 데이브의 어깨를 감쌌다.

“짜식, 내 노래를 좋아했었구만. 그러면 나한테 미리 말이라도 하지 그랬냐. 무슨 츤데레도 아니고. 사실은 좋아하면서 뭘 그렇게 싫은 척을 했어? 응?”

“미친 새끼가! 내가 언제 그딴 생각을 했다는 거냐! 차라리 죽고 말지! 이상한 오해하지 마라, 패 버리기 전에!”

“근데 사실이잖아.”

“…….”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해 봐도.

이미 결과가 모든 걸 말해 주고 있는데,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할 말을 잃은 데이브.

이렇게 해서 내 팬이 한 명 더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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