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까칠한 팬 (2)
원래부터 데이브는 나만 만나면 가시를 바짝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대놓고 나를 견제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짓는 표정은 ‘견제’라는 의미와는 확연히 달랐다.
당혹감.
이게 더 커 보였다.
“뭐냐, 데이브.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반응이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네 녀석이 왜 여기에 있냐! 어?”
“뭐긴, 보다시피…….”
여길 보라는 식으로 나는 양팔을 살짝 벌린 채 내 주변 현장을 가리켰다.
수많은 카메라들과 조명들, 그리고 스태프들과 출연자들.
딱 봐도 뭐 하러 왔는지 알 수 있지 않겠나.
“일하러 왔지.”
촬영이다.
데이브는 썩은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뭐라고 한 소리를 하려다가 이내 참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지켜보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한편.
“태오 오빠! 오랜만이에요!”
아이리스는 데이브와 다르게 나를 보자마자 상당히 격한 반가움을 드러냈다.
“그러게. 이게 얼마 만이야.”
“정확히 392일 하고도 4시간 21분 만이에요.”
“아…… 그래?”
뭐냐, 이 정확한 시간대는.
대충 ‘1년 조금 넘었어요, 호호.’ 같은 대답을 기대했는데.
무서우리만치 정확한 수치가 나와서 이번에는 내가 당황하고 말았다.
하긴, 아이리스는 원래부터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이었으니까.
물론 이런 행동을 보고서 과연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하는 고민이 잠깐 들었지만, 그런 건 그냥 넘기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오빠, 이번에 노래 나온 거, 들었어요.”
노래라는 말에 데이브의 어깨가 유독 움찔거렸던 거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저, 이번에 오빠 앨범 초회 한정판도 질렀어요! 예약 실패해서 프리미엄 엄청 붙었더라고요.”
“그런 거면 그냥 나한테 연락을 하지 그랬어. 내가 줄 수 있는데.”
“아니에요. 원래 이런 건 제 노력으로 얻어야 더 가치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맞는 말이긴 한데.
그나저나 아이리스와 본격적인 수다의 장이 열려서인지 PD와 제작진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태오 씨, 이제 슬슬…….”
방송 시작해야 하는데요.
PD는 이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데이브와 아이리스가 눈앞에 있어서 그런 거였다.
나에 비하면 성과가 떨어지긴 하지만, 데이브는 헌터 랭킹 2위를 달리던 남자다.
인류는 나뿐만 아니라 데이브에게도 커다란 빚을 지고 있었기에 차마 이런 말을 면전에서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적당히 마무리를 지어 줬으면 하고 바라는 듯했다.
“오빠 촬영 시작해야 하니까, 데이브하고 같이 밥 먹고 있어. 알았지?”
“오래 걸려요?”
“오래…… 걸리나?”
나도 잘 모른다.
이때, PD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 가게에서는 촬영 오래 안 할 겁니다. 다음 가게로 넘어가기 전에 저희가 따로 이야기 나눌 시간 드릴 테니까 천천히 식사하셔도 됩니다. 하, 하하.”
어색한 마무리 웃음소리가 PD의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아이리스가 데이브를 데리고 미리 예약해 둔 테이블로 향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럴까.
‘저 녀석, 반응이 왜 저래?’
뭔가 나사가 하나 풀린 것처럼 보인다.
아니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풀린 것 같다.
* * *
맛집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내가 느낀 게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네.’
토크 예능은 헌터 시절 때에도 아주 가끔씩은 출연해 본 적이 있어서 적응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을 먹으면서 이에 대한 묘사와 설명, 그리고 소감을 말하는 건 토크 예능과 확실히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된 탓에 멘트를 치는 데에도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이것도 금세 적응했다.
“태오 씨는 방금 먹은 부채살 스테이크, 어떤 느낌이었나요?”
“훌륭합니다. 굽기도 적당하고. 안에 고기를 씹으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뜨끈한 육즙이 ‘맛있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떠오르게 만들더라고요. 방송이 끝나더라도 나중에 개인적으로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긴 했지만, 그래도 맛있다는 소감에 거짓은 없었다.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가게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런 걸 보면 참 뭐랄까.
‘평화의 시대가 맞긴 한가 보네.’
천하의 내가 이렇게 한가하게 밥도 먹을 수 있고 말이다.
헌터로 활동하면서 이렇게 마음 편히 밥을 먹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늘 24시간 비상대기.
자다가 깨서 출동하는 일도 허다했다.
아무래도 헌터 랭킹 1위니까.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헌터 강태오가 아닌 가수 태오를 원하고 있다.
나는 이게 가장 만족스럽다.
PD가 한껏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네,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디저트 먹고, 그다음 가게에서 계속 촬영 이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디저트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던데…….”
PD가 내 쪽을 응시했다.
“데이브 씨하고 이야기하고 오셔도 됩니다.”
“그럴까요?”
평소의 나였더라면 데이브가 있더라도 본체만체했을 것이다.
나만 보면 화난 강아지처럼 으르렁거리는 데이브인데.
굳이 화를 자초할 필요가 없었기에 필요한 때가 아니라면 일부러 내가 말을 걸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말도 없이 잠수 탔던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데이브는 둘째 치고, 아이리스가 같이 있으니까 저 남매를 모른 척하기가 그랬다.
아이리스가 예전에 나를 도와줬던 적도 많고 말이다.
“그럼 잠깐만 다녀오겠습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이진주에게도 잠깐만 갔다 오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촬영 자리를 떠나서 일반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구역으로 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사인해 달라, 같이 사진 찍어 달라 이런 요청이 쇄도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요청을 동시에 해 왔다면 정중해 거절했을 것이다.
식사 도중이었기에 소수의 인원만이 내게 적극적으로 팬 서비스를 요청했기에 잠깐만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데이브가 있는 쪽으로 가기로 했다.
마침 데이브와 아이리스는 어디 안 가고 예약했던 자리에 앉아서 계속 식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아이리스의 표정이 180도 달라졌다.
“어머, 태오 오빠! 여기 앉으세요.”
“고마워.”
아이리스가 내가 앉기 편하게 의자를 빼 줬다.
원래 이런 건 레이디가 받아야 하는 건데, 오히려 내가 받게 되니 조금 민망하긴 했다.
그래도 아이리스의 친절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었기에 얌전히 내 임시 지정석에 앉았다.
아이리스와의 안부는 잠시 뒤로 미루고.
“야, 데이브, 그동안 어디에 처박혀 있었냐?”
일단은 데이브의 행적부터 먼저 캐묻기로 했다.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데이브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답했다.
“내가 뭘 하든, 무슨 상관이냐.”
“걱정되니까 그러지.”
“걱정? 평소에는 나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던 녀석이.”
“그건 네 오해고. 내 마음은 늘 네 걱정으로 가득하다고.”
약간…… 아니, 아주 많은 오버스러움을 섞어서 말하자, 데이브가 포크와 나이프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밥맛 떨어지게 만들 거냐?”
“네가 얌전히 말해 주면, 나도 이렇게까진 안 했을 거야.”
“…….”
데이브에게 가장 효과적일 거 같은 공격을 한 보람이 있었다.
제대로 먹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데이브는 말을 아꼈다.
데이브는 예전부터 그랬다.
말싸움으로 밀린다 싶으면 아예 침묵으로 일관한다.
“내가 알면 안 되는 짓이라도 하고 다녔냐?”
데이브가 끝까지 입을 다물자, 참다못한 아이리스가 입을 열려고 했다.
“태오 오빠,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아이리스가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우르르……!
갑자기 가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
아니, 천재지변이라고 하기에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이건 설마…….
“몬스터다!”
* * *
어떤 존재가 일부러 땅을 뒤흔들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건 아니고.
경험으로 쌓인 촉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데이브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자세를 낮춘 채 주변을 경계했다.
흔들림은 점점 커지더니, 우리 발밑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곳은 건물 4층 높이에 위치해 있다.
지면과 맞닿는 곳도 아니고. 그렇다 보니 흔들림 자체가 굉장히 수상하게 여겨졌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일단은 가게 손님들부터 먼저 진정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들지 마시고 책상 밑으로 숨으세요, 어서!”
괜히 일어나 있다가 떨어지는 건물 잔해에 머리를 맞기라도 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러 힘을 실어서 외친 덕분에 이 난리 통 속에서도 내 목소리는 사람들의 귀에 날카롭게 꽂힐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내 지시에 따르는 사람들.
촬영팀 역시 장비들을 놔두고 피신부터 서둘렀다.
머지않아 격한 흔들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
테이블 아래에 몸을 숨겼던 PD가 얼굴만 내민 채 내게 물었다.
“이, 이제 괜찮습니까……?”
“쉿!”
갑자기 PD가 몸을 숨긴 바로 앞쪽의 시멘트 바닥이 갈라졌다.
그 위로 모습을 드러낸 기괴한 형상의 몬스터.
사람들의 비명이 다시 한번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몬스터를 본 사람들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은 죄다 우리 헌터들이 했으니까 말이다.
녹아 흘러내린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거친 피부.
거북이의 등껍질과 매우 흡사한 것을 등과 배에 매달고 있는 몬스터, 아리그가 입을 쩍 벌리고서 사람들을 노렸다.
PD가 아리그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에 내가 발로 녀석을 후려쳐 버렸다.
놈의 육중한 몸이 붕 뜨더니, 레스토랑 벽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서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PD님, 괜찮으십니까?”
“저, 저는 괘, 괜찮습니다……!”
얼굴 표정을 보아하니, 전혀 괜찮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다른 스태프들에게 PD를 맡기기로 하고.
나는 데이브와 같이 밖에 있는 몬스터 녀석을 쓰러뜨리기 위해 나서기로 했다.
가게 밖으로 나온 순간.
데이브가 짧게 혀를 찼다.
“우리가 고기에 정신 팔린 사이에 이렇게나 많이 몰려들었군.”
아리그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얼핏 봐도 열 마리는 족히 넘었다.
“내 감도 다 죽었군. 이딴 잡몹들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너무 자책하지 마, 데이브. 원래 저놈들은 기척 숨기기가 특기잖아.”
땅속에 굴을 파면서 이동하는 몬스터들이라 그런지 놈들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놈들이 왜 하필이면 이곳에 몰려들었을까?
이유는 얼추 알 것 같다.
“이 집 고기가 맛있긴 하지.”
아리그는 식탐이 굉장히 강하다.
게이트가 사라진 이후, 헌터들의 눈을 피해 오랫동안 잠수를 타고 있었던 터라 배가 굉장히 고플 것이다.
그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걸로 추정된다.
한 녀석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우리들을 넘어 가게로 직행했다.
나와 데이브만 피하면 되겠거니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빠각-!
뭔가에 얻어맞고 튕겨 나오는 아리그 한 마리.
여기 있는 헌터는 나, 데이브 이렇게 둘만이 아니다.
검은 가죽 장갑을 끼고서 우두둑우두둑 몸을 푸는 여성.
“모처럼 태오 오빠 만나서 기분 좋았는데, 네 녀석들이 다 망쳐 버렸어.”
아이리스가 차가운 시선으로 아리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