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까칠한 팬 (1)
눈앞에 벌어진 현실에 데이브는 믿을 수가 없었다.
여러 개의 훈련용 더미들을 구입해서 본인이 직접 실험을 했었다.
강태오의 노래를 듣고, 실제로 전투력이 올랐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기 위해.
이 실험의 결과는…… 데이브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나왔다.
“내가 대체 왜 그 녀석 노래 따위를…….”
이철민 소장은 틀림없을 거라고 했지만, 데이브는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계속해서 테스트를 해 보고 또 해 본 결과.
이쯤 하면 믿지 않을 수가 없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소속사에서 무슨 일이냐고 연락이 와도 데이브는 계속해서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그의 여동생이 직접 따지기 위해 데이브의 개인 훈련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오빠! 언제까지 전화 안 받을 거야? 오빠 때문에 계속 나한테도 전화 오잖아!”
예고도 없이 잠적해 버린 데이브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이 여기저기서 빗발치고 있었다.
데이브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대로 숨어 있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할.”
머리를 긁적이는 데이브를 보면서 아이리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오 오빠 노래를 들으면 자기한테도 버프 적용되는 거 때문에 그러는 거지?”
“……!”
데이브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한 번도 여동생에게 자신의 속사정을 말해 준 적이 없었다.
이철민 소장한테도 말은 안 했지만, 그는 어렴풋이 눈치를 챈 듯했다.
“설마 이 소장이 말했어?”
“아니, 오빠가 혼잣말로 계속 중얼거렸잖아. ‘내가 그 녀석 노래를 좋아했다니, 있을 수 없어…….’라고 말이야.”
“…….”
“태오 오빠 노래가 헌터들한테 버프를 줄 수 있다는 내용도 자기가 다 말했으면서.”
어지간히 충격이 컸던 모양인가 보다.
일부러도 아니고. 혼잣말로 중얼거린 게 여동생한테 들리는지도 전혀 눈치 못 채고 말이다.
“아이리스, 그건…….”
“알고 있어. 비밀로 해 달라는 거지? 대신에 조건이 있어.”
아이리스가 자신의 긴 금발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음침하게 여기에 그만 틀어박혀 있어.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자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여동생을 보면서 데이브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동생의 말에 무엇 하나 틀린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러자.”
“점심은 오빠가 쏘는 거지? 오늘 비싼 거 먹으러 갈 테니까 각오해.”
“알았어.”
티격태격해도, 역시 가족은 가족이다.
힘이 들 때 확실하게 자기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존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크다.
데이브는 이 사실을 오늘,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 * *
맛집 투어를 소재로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 ‘다먹소’.
오늘은 내가 이곳에 게스트로 참가하기로 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토크를 나누는 프로그램은 처음이었기에 오기 전에 관련 영상들을 찾아 모니터링을 쭉 하고 와야 했다.
나는 성격상 한번 하게 된 일은 누구보다도 잘해야 한다.
잘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아, 열심히 했다.’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기본적인 노력은 무조건 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디 가서 깍두기 취급받는 건 내가 못 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위장도 많이 비우고 왔는데.
PD가 하하 웃으면서 의욕에 가득 찬 나를 진정시켰다.
“무조건 많이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건 안 가지셔도 됩니다. 여러 사람들이랑 같이 맛있게 한 끼 하러 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최대한 편하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식사하시면서 지인들이랑 대화하듯 말씀하시면 돼요. 편집은 저희가 알아서 재미있게 해 드릴 테니까요.”
아까 뉴스 프로그램에서 겪었던 그 망할 PD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출연자분들하고 인사시켜 드릴게요.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PD가 직접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다먹소’에 출연하는 고정 패널들과 짧게 인사를 시켜 줬다.
이 중에서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인물이 있었다.
“어머, 태오 씨!”
예전에 ‘도정수의 미팅 타임’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만났던 보조 MC, 이진주.
그녀가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녹화가 있던 그날 이후로 따로 만날 일이 없었던 이진주였기에 오늘의 만남이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 모르는 사람인데 출연자 중에서 아는 얼굴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지 않은가.
“안녕하세요, 진주 씨. 요즘 많이 바빠 보이시던데요.”
“다 태오 씨 덕분이에요.”
내가 당시에 출연했던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한 차례 크게 끌어올린 덕분에 이진주도 짧게나마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짧은 기간이라 할지도 연예계에서는 이 한 번의 주목이 굉장히 큰 계기가 된다.
당시 나의 캐리 덕분에 여러 사람들에게 이진주라는 여성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자리가 되었고, 그 기세를 쭉 몰고 나간 덕분에 이진주는 현재 그녀가 속한 걸 그룹, 해피모드의 가장 인기 많은 멤버로 거듭나게 되었다.
덩달아 해피모드의 인지도도 단번에 치고 올라갔다.
“얼마 전에 발표한 신곡에서 진주 씨가 센터 포지션인 것도 봤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나도 가수였기에 그룹에서 센터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잘 안다.
그동안 그룹 자체가 인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성공이 더욱 가치 있을 것이다.
이진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내게 말했다.
“그때 태오 씨가 방송 안 살려 주셨으면, 저도 여전히 그냥저냥 묻힌 걸 그룹 멤버로 남았을 거예요. 이게 다 태오 씨 덕분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허리를 깊숙하게 숙이면서 나에 대한 고마움을 표출했다.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을 보면 괜스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녹화도 잘해 보죠.”
“네! 아, 그렇지. 저희 이번에 식사할 가게, 알고 계시죠?”
“오면서 들었습니다.”
바로 이 근처에 있는 스테이크 맛집.
“‘빌레오’라고 들었습니다. 저 가게 맞죠?”
“네, 맞아요.”
고기는 늘 진리다.
어디, 얼마나 맛있는 가게길래 방송 출연까지 하게 되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 * *
기분 전환 겸, 여동생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온 데이브.
오픈카를 끌고 운전대를 잡은 채 한강 도로변을 달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이 데이브 남매에게 쏠렸다.
오빠와 여동생, 둘 다 선남선녀가 따로 없을 정도로 잘생기고 예쁘다.
한강을 통해 부는 바람에 아이리스의 긴 금발이 휘날렸다.
차에서 내린 그녀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아이리스는 가볍게 오른손을 흔들어 주면서 이런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다.
데이브는 그런 여동생을 보면서 말했다.
“너도 연예인 한번 해 보는 건 어떠냐?”
“나? 이미 하고 있잖아.”
미국에서 모델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
예전에는 부업으로 하던 일이었지만,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나서부터 그녀는 아예 모델을 전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패션과 미용에 많은 관심이 있는 데다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즐기는 무대 스타일이다 보니, 어느새 아이리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패션모델이 되어 있었다.
“방송 같은 거 전문으로 나는 일은 아니잖아.”
“무대가 곧 방송이지, 뭐. 그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은 나가거든. 한국에 오기 전에도 일주일에 최소 3회 이상은 온갖 프로그램에 출연했었어.”
“그렇게 바쁜데, 왜 갑자기 한국으로 온 거냐?”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데이브는 아직 아이리스가 한국에 온 이유를 듣지 못했다.
순간 아이리스가 오빠의 시선을 피했다.
“그건 뭐…….”
말끝을 흐렸다.
아이리스가 어렸을 때부터 대답하기 곤란하면 늘 나오는 버릇 같은 거였다.
데이브의 추측은 계속되었다.
“부모님한테도 왜 여기까지 왔는지 이유를 말 안 해 줬다며. 사람들이 들으면 안 되는 거라도 돼?”
“그, 그렇지, 맞아. 그래서 일부러 오빠한테도 말 안 하고 있는 거야.”
글쎄, 과연 어떨까.
친동생이라서 그런지 데이브는 지금 아이리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렇다고 계속 추궁해 봤자 꾹 닫은 입이 열릴 리는 없고.
데이브의 동생답게 아이리스도 한 고집 하는 성격이다.
자기가 싫다고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머리 위에 게이트가 열려서 몬스터들이 비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여동생의 독한 고집은 누구보다도 데이브가 더 잘 알기에 더 이상의 추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한강 구경은 이쯤에서 끝내고, 슬슬 밥이나 먹으러 갈까.”
그동안 개인 훈련실에 틀어박혀서 끼니도 거르고 자신의 전투력 테스트만 거듭한 터라 배고파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데이브의 말에 아이리스가 ‘잠깐만’이라고 외쳤다.
“안 그래도 가 보고 싶은 가게가 있었어.”
“어딘데?”
“스테이크 맛집인데, 여기서 파는 토마호크가 먹고 싶어. 오빠랑 같이 가야 하나 시켜서 마음껏 먹을 수 있거든. 내가 다 못 먹어도 오빠가 많이 먹어 줄 거잖아. 그렇지?”
“하여간…….”
여동생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다.
까탈스럽게 굴 때에는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래도 세상 소중한 여동생으로 변한다.
“주소 어딘데. 톡으로 보내 줘. 내비에 입력하게.”
“조금만 기다려 봐…… 여기!”
아이리스가 직접 가게 주소와 상호명을 보여 줬다.
스테이크 맛집.
“빌레오? 알았어. 여기로 입력해 둘게.”
그곳에 미리 어떤 손님이 와 있는지.
이때 당시 데이브는 전혀 알지 못했다.
* * *
녹화 진행을 위해 나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예능 프로그램, ‘다먹소’는 총 다섯 명의 고정 패널과 함께 매회 초빙되는 두 명의 게스트가 같이 촬영에 임한다.
총 일곱 명.
한 테이블에 앉기는 많은 인원수다.
그래서인지 가게 측에서도 일곱 명이 넉넉히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가장 큰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따로 좌석을 마련해 뒀다.
덕분에 장시간 동안 녹화하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촬영이라 할지라도 가게 운영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처럼 스테이크를 맛보러 온 일반 손님들의 모습도 보였다.
대신에 조금 떨어져 있는 터라 일반 손님들이 아무리 왔다 갔다 할지라도 촬영에는 방해가 되지 않았다.
PD가 각자 자리를 지정해 줬다.
“게스트 두 분은 여기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슛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
갑자기 근처에서 아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여기야. 이쪽으로.”
이 목소리…….
‘아이리스는 아니겠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아이리스가 데이브를 데리고 이 가게를 찾은 것이다.
“PD님, 잠시만요.”
촬영이 시작되기 직전.
나는 먼저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데이브, 아이리스!”
손을 번쩍 들고 두 사람을 불렀다.
이때 보인 데이브의 표정은…….
참 가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