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39화 (39/250)

제11장. 영웅이라 불리는 스타 (3)

뉴스 프로그램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나는 미리 스튜디오 구경을 마쳤다.

특별한 뜻이 있어서 이런 건 아니고.

누나가 몸담은 곳과 다른 방송국 뉴스는 어떤 분위기의 스튜디오에서 프로그램을 꾸려 가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한 행동이었다.

단순한 호기심을 풀기 위해 이리저리 장소를 이동해 가던 내게 승훈이 형이 다급하게 손짓했다.

“와서 전화받아 봐라.”

“누군데?”

“협회장님.”

“나 곧 촬영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지 그랬어.”

“그거 때문에 전화하신 거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받아 봐야 할 거 같다.”

어쩔 수 없구만.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협회장에게 직접 들어 보기로 했다.

“강태오입니다.”

-태오야, 아직 촬영 시작 안 했지?

“예, 아마 한…… 30분 지나면 슛 들어갈 거 같습니다. 근데 무슨 일로 전화까지 하셨어요?”

협회장이 나한테 이렇게 직접 연락을 하는 경우는 아주 높은 확률로 잔소리를 해야 할 상황이라서 그렇다.

헌터로 한창 활약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자회견 때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했다느니, 경거망동 좀 하지 말라느니. 이런 잔소리들이 매번 내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까 승훈이 형한테 보여 준 태도처럼 나는 협회장의 전화를 가급적이면 잘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지금처럼 방송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에는 더더욱.

그러나 이번에는 다행히도 잔소리 때문에 나한테 전화를 걸었던 건 아니었다.

-화재 사건 때, 네가 조우천 팀장한테 했던 말 기억하지?

“각성자가 방화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요?”

뉴스에서 인터뷰할 때, 그거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이 말을 해 주고 싶어서 전화한 거다.

아직 확실한 증거가 안 나왔는데, 굳이 각성자 때문에 이런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걸 대중에게 알릴 필요까진 없었다.

안 그래도 각성자는 정부의 특별 감시하에 생활하게끔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시민 단체가 몇몇 있는데.

여기에 구태여 불을 지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협회장님. 저도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정도는 구분해요.”

-내가 생각하는 구분점과 네가 생각하는 구분점이 달라서 그런 거다. 예전에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르진 않겠지?

“알죠, 알아요.”

나도 그 정도는 당연히 안다.

하여간 우리 협회장님은 너무 걱정이 많아서 문제다.

그렇게 대충 협회장을 어르고 달래서 겨우 통화를 끊은 나는 스태프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촬영 준비를 서둘렀다.

화제의 인물을 한 명씩 선정해서 특별히 인터뷰를 나눠 보는 시간.

누나가 진행하던 뉴스 프로그램과 비슷한 코너였다.

깔끔한 인상의 남녀 앵커들이 시청자들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자리로 안내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부터 해 주실까요?”

“안녕하세요. 가수 겸 헌터로 활동하고 있는 강태오입니다. 반갑습니다.”

원래 예능이나 다른 가요 프로그램에 나갈 때에는 유독 가수라는 직업을 강조하곤 했지만, 뉴스에서는 이렇게 둘 다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그리고 오늘은 화재 사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거였기에 굳이 가수라는 걸 강조할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남자 앵커가 나에게 물었다.

“요즘 태오 씨는 장안의 화제 그 자체라고 하셔도 될 정도로 굉장히 많은 인기를 끌고 계시더라고요. 어딜 가도 태오 씨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거 같습니다.”

“그래요? 저는 아직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음원 차트 상위권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 정도면 훌륭하시죠.”

맞는 말이긴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1위 자리를 다른 가수에게 내주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화제성이라는 게 영원한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 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 노래의 인기가 좀 더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는 건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욕심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는 여자 앵커가 멘트를 이어 갔다.

“최근까지 몬스터들이 나타난 적이 없고, 그래서인지 요즘은 연예계 활동에 많이 집중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예, 그렇죠.”

“화재 사건도 광고 촬영을 하시다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으셨던 거라고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화재 사건 쪽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트는 앵커.

역시, 프로는 다르다.

“그랬었죠. 스포츠웨어 업체에서 이번에 새로 운동복을 출시한다고 해서 그거 광고 촬영하고 있다가 도중에 사고가 난 걸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제 후배하고 바로 출동했죠.”

“만약 그 자리에 태오 씨하고 나빈 씨가 안 계셨더라면, 더 큰 희생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당시 태오 씨에게 구조받은 시민분들도 인터뷰를 하면서 따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시던데, 혹시 보셨나요?”

“예, 봤습니다. 감사 인사도 좋지만, 일단은 건강 회복부터 우선이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제가 따로 연락도 드렸습니다.”

“역시, 인류의 영웅이라 불리실 만하네요.”

“하하, 아닙니다.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저희 헌터의 임무니까요.”

지금은 게이트가 사라진 덕분에 백수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때, 남자 앵커가 질문지에 없는 말 하나를 꺼냈다.

“듣자 하니 방화범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던데,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정에 없던 깜짝 질문.

앵커들뿐만 아니라 스태프, 그리고 PD의 얼굴 표정을 보니 딱 감이 온다.

이 질문, 나한테 일부러 안 알려 준 거다.

미리 알려 주면 내가 아니라는 형태로 미리 대답할 것을 생각해 올 게 틀림없으니까.

그래서 나를 당황시키고 조금이나마 이에 대한 특종거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기습 공격을 가해 왔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름 좋게 본 프로그램이었는데.

PD가 바뀌어서 그런가? 정이 뚝뚝 떨어지는구만.

뭐, 아무렴 어때.

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로 답했다.

“글쎄요. 제 관할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가수 겸 헌터’라서요. 화재 쪽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럼 그 방화범이 각성자일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그러면 태오 씨와도 어느 정도 겹치지 않을까요?”

작정을 했나 보군.

나는 슬쩍 카메라 쪽을 바라봤다.

참고로 이 촬영, 녹화가 아니라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을 시청자들도 꽤 많이 있을 터.

그래서 PD 양반이 더 어그로를 끌고 싶었나 보다.

“저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건 약간 실례가 되는 멘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내가 공격적으로 나오자, 앵커들이 오히려 당황하는 반응을 보였다.

난 절대로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한테 X같이 굴었다?

그러면 나도 똑같이 대응한다.

“앵커님이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시청자분들 중에서 몇몇 분들은 ‘강태오가 방화를 저질렀어?’라고 오해하실 거 같아서 걱정이 드네요.”

“그,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까요. 저야 물론 앵커님이 그런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한 건 아니라고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받아들이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뜻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앵커가 내게 급하게 사과를 했다.

PD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인지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내 단호한 어조 덕분에 이 이상 화재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게 불가능해졌다.

분위기상 그럴 수도 없게 되어 버렸고 말이다.

물론 난 그걸 노리고 한 거였지만, 앵커들은 지금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을 것이다.

화재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를 초빙했는데.

그걸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내가 먼저 웃으면서 말했다.

“제 앨범 이야기나 할까요?”

앵커들이 PD의 눈치를 살폈다.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 PD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그러니까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이 사람들아.

* * *

생방송이 끝나자마자 PD와 스태프들이 나를 향해 어색한 얼굴로 사과의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태오 씨. 혹시 저희가 불편하게 만든 게 있다면 용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뭐, 괜찮습니다. 그냥 좀 당황했을 뿐이거든요.”

나는 쉽게 용서해 줄 수 있지만.

시청자들이 과연 용서해 줄지 모르겠다.

생방송이 끝나자마자 승훈이 형이 나한테 이런 귀띔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 글이 폭주 중이라고.

그거 때문에 스태프들이 뒤에서 우왕좌왕 움직이고 있었다고 한다.

벌써부터 아까의 내 쓴소리가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한동안 이 뉴스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뭇매를 맞게 될 거다.

나는 그저 최재현 보도국장이 있는 QWE 쪽에 생방송 당시 내 심경이 어땠는지, 간간이 기사로 내보내게끔 흘려 주기만 하면 된다.

제작진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끝낸 나는 승훈이 형과 함께 차에 올랐다.

승훈이 형이 시동을 걸면서 쓴 웃음소리를 흘렸다.

“너, 이제 방송인 다 되었더라?”

“갑자기 왜?”

“예전에는 누가 너한테 마이크 들이대고 도발하면, 성질 못 이기고 그 자리에서 협회장님이 하지 말라는 말까지 쏟아 내곤 했었잖아. 솔직히 이번에도 그럴까 봐 조마조마했었는데, 다행이네.”

지고는 못 사는 성격 때문에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의 나일 뿐이고,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건 역시 어른이 되었다는 거겠지.

그때는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였으니까.

“협회장님도 아까 나한테 따로 연락해서 말씀하셨어. 이제는 자기가 따로 신경 안 써도 될 거 같다고.”

“그래서 내가 계속 말하고 있잖아. 나, 많이 달라졌다고.”

“잘했다. 그나저나 아까 그 자식들, 어떻게 할 거냐? 감히 우리한테 상의도 없이 멋대로 그런 말이나 하고. 너 망신 주려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

말을 하다 보니 뒤늦게 화가 나는 모양인지, 승훈이 형의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승훈이 형을 말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역풍 많이 맞겠지. 잠잠해질 거 같다 싶으면 내가 인터뷰나 기사로 이 일 시청자들에게 다시 상기시킬 테니까, 형도 협조해 줘.”

“오케이, 알았어.”

적절한 타이밍에 기름만 부어 주면 된다.

그러면 장작은 알아서 잘 탈 거다.

뉴스 건은 이것으로 대충 마무리 짓도록 하고.

이다음에 잡혀 있는 오후 촬영에 집중하기로 했다.

“형, 밥은 어디서 먹을 거야? 식당에서? 아니면 이동하면서?”

“방송국에서 먹어야지.”

“방송국? 그쪽 직원 식당에서?”

“아니.”

승훈이 형이 내게 스케줄 표를 보여 주면서 말했다.

“너 조금 있다가 방송에서 엄청 먹어야 하잖아.”

“아, 그랬지.”

생각해 보니 오늘 맛집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했었지.

‘밥은 가서 원 없이 먹겠네.’

그냥 이대로 밥 타임 없이, 굶고 가도 괜찮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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