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영웅이라 불리는 스타 (2)
방화범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조 팀장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반응했다.
“방화범……요?”
“예.”
“혹시 범인하고 마주치셨습니까?”
“아니요. 저하고 나빈이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럼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천장에서 마력의 흔적이 느껴졌거든요.”
마력의 흔적은 과학수사대나, 아니면 다른 쪽 연구원들이 열심히 조사한다고 발견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마나의 존재를 느끼고 다룰 수 있는 각성자가 필요하다.
나 같은 사람 말이다.
“이 사건을 아마 일반 화재 사건처럼 다루고 조사하면,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협회 측하고 합의해서 공동으로 조사해 보는 걸 추천합니다.”
“설마 각성자가 범인이라는 겁니까?”
“몬스터일 수도 있죠. 저도 정확히 모르니까 공동 조사 이야기를 꺼낸 거니까요.”
물론 받아들이는 건 조우천 팀장의 일이다.
조 팀장은 내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에 이 이야기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오 씨.”
소방 시설 구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가능한 방화 사건.
내가 봤을 때에는 몬스터의 소행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정말로 각성자가 저지른 짓일 수도 있겠지.’
레이드 시대가 끝나고 두 달쯤 지나서의 일이었을 것이다.
한 각성자가 사회에 불만을 품고 인질극을 벌였던 사건이 기사로 크게 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몬스터와 죽어라 싸웠는데, 정작 돌아온 것은 보상이 아닌 자신을 괴물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별적인 시선이었다고.
그게 그자의 범행 동기였다.
모든 헌터들이 나처럼 잘 먹고 잘 사는 건 아니다.
범행을 저지른 각성자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는 헌터들도 있었다.
나나 데이브, 나빈이처럼 랭크가 높은 경우에는 이런 생활고에 시달일 일이 거의 없다.
전투력이 강한 만큼 값어치가 높은 레어한 몬스터들을 혼자서 독식할 수 있는 확률이 커지니까.
몬스터 사체와 희귀한 아이템 그리고 협회 내에서 건 현상금까지.
세 가지를 다 챙겨 갈 수 있는 기회 덕분에 나도 그렇고 데이브도 이미 돈이 아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나빈이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랭크가 낮은 각성자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모르지.’
세상은 넓고 희한한 사람들은 많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뒤틀린 마인드를 지닌 헌터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가급적이면 조심하는 편이 좋다.
그나저나.
‘각성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오히려 나한테는 안 좋은데.’
대중의 마음속에 이미 각성자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이런 범죄까지 성행하게 되면, 이에 따른 반작용 역시 내 인지도에 영향을 줄 게 뻔하다.
‘당분간 헌터 때려치우고 경찰이라도 되어야 하나?’
이런 고민이 진심으로 발전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 *
마력의 흔적이 발견되긴 했지만, 확실히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볼 만한 정황은 추가로 발견되지 않았다.
수상한 사람의 모습도 CCTV에 찍히지 않았고.
방화범으로 보이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는 증언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비정상적으로 발생한 마나의 뭉침이 발화점으로 작용해서 자연적으로 화재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공식 발표가 이루어졌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찌하랴.
증거가 없는데.
뭔가 찝찝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 혼자서 뭔가 어찌해 볼 만한 문제는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이 일은 그렇다 치고.
화재 사건으로 인해 나는 본의 아니게 큰 득을 보게 되었다.
광고 촬영을 하던 중에 사람들을 구한 나와 나빈이의 활약상이 기자들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못지않게 기뻐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광고주였다.
내가 무슨 광고를 찍었는지, 광고 영상이 공개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스포츠웨어 제품들이 품절 대란에 휩싸이게 되었다고 들었다.
이래서 화제성이라는 게 참 중요하다.
한번 입소문을 타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구입하려고 하니까 말이다.
졸지에 또다시 사람들로부터 영웅이라고 떠받들어지게 된 나.
거실 소파에 앉아서 나에 대한 뉴스를 시청하는 와중에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데이브,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잠잠하대?’
데이브가 싫어하는 게 내가 자기보다 사람들한테 더 인기몰이를 하는 것이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인데.
어째 너무 조용하다.
데이브, 그 녀석의 평소 성격을 생각한다면 기자들 불러 모아서 ‘나였으면 더 안전하게, 더 확실하게 화재를 제압했을 텐데. 강태오의 대처가 아쉽다.’라고 했을 것이다.
‘요즘 아예 활동 자체를 안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내 방송 활동을 견제하겠다느니 뭐니 하면서, 자기도 연예인 것처럼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다 출연하더니만.
‘뭔 일이라도 생겼나?’
얼마 전에 발생한 화재 사건이 문득 떠올랐다.
설마 데이브가 반사회적인 성향을 보이는 각성자들한테 당하기라도 한 걸까?
그럴 만한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가장 빠른 확인 방법은 데이브한테 직접 전화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내 연락은 절대로 안 받겠지.’
녀석의 전화번호가 내 폰에 저장되어 있는 것도 신기할 정도다.
마침 승훈이 형이 스케줄 관련 일 때문에 내 집을 찾아왔다.
“태오야, 준비 다 끝났지? 샵부터 먼저 들를 거니까 바로 출발하자.”
“형, 혹시 데이브 소식 들은 거 없어?”
“데이브? 갑자기?”
승훈이 형이 별일이라는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너, 데이브하고 앙숙이잖아.”
“그렇긴 한데,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니까 신경이 쓰이더라고.”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나 싶어서?”
“그런 것도 있고.”
일단은 승훈이 형과 같이 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승훈이 형이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 들려줬다.
“저번에 이철민 소장 만나러 왔었다고 그러더라. 그날 이후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집에만 처박혀 있다고 하던데.”
“이 소장한테 뭐 들은 거라도 있나?”
“글쎄.”
차량 시트에 등을 기댄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형, 샵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려?”
“한 25분 정도? 왜?”
“이 소장한테 한번 연락해 보게.”
승훈이 형이 알겠다고 하면서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 소장의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꽤 길게 이어졌다.
한 30초 정도?
자고 있나 싶어서 그냥 끊으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철민 소장의 음성이었으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잠겨 있는 것으로 봐선, 한창 자다가 내 전화 때문에 중간에 깬 모양인가 보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주무시고 계셨군요.”
-……아닙니다. 슬슬 연락이 올 줄 알았습니다.
“저한테서요?”
-예.
“왜요?”
오히려 내가 묻고 말았다.
정기적으로 우리 측과 연락을 취하기로 했었지만, 그렇다고 이 소장이 이 협약을 등한시하진 않았다.
불과 3일 전에도 BOO 측과 통화를 나누면서 내 노래가 품고 있는 비밀에 대해서 추가로 알아낸 게 있는지 없는지 정보를 공유해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소장한테 전화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순간 이 소장이 말을 바꿨다.
-제가 자다가 일어나서 그런지 이상한 말을 했군요. 죄송합니다.
단순한 말실수였음을 알리는 이 소장.
정말로 그럴까?
의심이 되긴 하지만, 본인이 그렇다니까 이 이상은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물어볼 것도 따로 있으니까 말이다.
“데이브가 지난번에 소장님을 만나러 갔었다고 하던데요. 그때 혹시 무슨 이야기 나누셨습니까?”
-…….
이 소장의 말수가 급격히 줄었다.
원래도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지만, 대화 도중에 갑자기 말이 이렇게 뚝 끊긴 경우는 별로 없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내가 의도치 않게 이 소장의 정곡을 찌른 그런 느낌이다.
이 소장이 어렵사리 말문을 뗐다.
-그냥 세상 사는 이야기 좀 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뭘 마시고 있었더라면, 100퍼센트 뿜었을 것이다.
데이브도, 이철민 소장도 단순히 사는 이야기나 하려고 일부러 시간을 낼 만한 성격들이 아니다.
데이브는 자기 일 아니면 별로 관심 없는 녀석이고.
이 소장은 오직 연구, 연구, 연구뿐인 사람이다.
이런 두 사람이 안부차 만났다라…….
새로 유행하는 농담인가?
그러면 내 취향의 유머는 아닌 걸로 하고 싶다.
아무튼 데이브와 나눈 이야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장이 그걸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은 확실하게 깨달았다.
어차피 전화로 닦달해 봤자 이 소장이 말해 줄 리가 없으니까.
‘이것도 나중으로 킵해 둘까.’
입이 참 근질거리긴 하는데.
그래, 마음씨 넓은 내가 한번 참아 주마.
* * *
단골 샵에 들러서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을 받고.
협찬받은 옷으로 갈아입은 채 방송국으로 향했다.
도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형.”
“왜, 또. 설마 아까 이철민 소장이 했던 말이 아직도 신경 쓰이는 거야?”
“어차피 그건 지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서, 잠깐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어.”
“잘했어. 일단은 방송에 집중해. 오늘은 일정 두 개니까 빡세게 움직여야 돼.”
“알고 있어.”
하나는 뉴스 프로그램,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음식을 메인 소재로 삼고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예정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한참 전에 잡아 뒀던 일정인데, 전자는 갑자기 잡혔다.
원인은 화재 사건이 제공했다.
긴급재난본부와 소방청에서 이번 화재 사건에 관한 공식 발표를 마쳤지만, 대중은 사고에 대해 정부에서 발표하는 것보다 내 입을 통해서 듣는 것을 더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직접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마음 같으면 누나가 진행하는 뉴스에 나가고 싶었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아쉽네.”
혼잣말로 아송이 누나 이야기를 흘리자, 승훈이 형의 어깨가 한 차례 들썩였다.
하여간 저 형은, 티를 너무 많이 내서 문제다.
“아송 씨는…… 잘 계시지?”
“잘 있지. 요새는 서로 바빠서 얼굴도 못 보고 있지만.”
“조만간 추석이잖아. 그때는 봐야 하지 않겠냐?”
“안 그래도 그날은 무조건 시간 내기로 했어.”
게이트가 사라지고 평화의 시대에서 맞이하는, 말 그대로 ‘평화로운 명절’을 나도 보내고 싶다.
그 전까지는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몰라 24시간 항시 대기 상태였다.
그래서 명절이 뭔지, 공휴일이 뭔지, 주말과 평일의 경계선이 있었는지 이런 것조차 잊고 지내며 살아왔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아직은 몬스터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 때문에 헌터라는 직함을 완전히 내려놓기 힘들게 되었지만.
적어도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당연한 일상들을 이제는 나도 누리고 싶다.
“설마 명절에 눈치 없이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거나 그러진 않겠지?”
내 말에 승훈이 형이 경고를 줬다.
“쉿! 괜히 플래그 세우지 마라.”
“아차.”
손으로 즉시 내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