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영웅이라 불리는 스타 (1)
보통 공중을 날아다니는 촬영의 경우에는 와이어 액션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원래 이 스포츠웨어 광고 촬영도 그렇게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미팅 단계에서 내가 그것을 거절했다.
아니, 나하고 나빈이가 헌터인데, 굳이 와이어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나?
그냥 우리가 직접 뛰어다니면 그만이지.
제작진 입장에서야 비용이 굳으니까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안전상의 걱정까지 지우진 못한 듯했다.
그래서 보호 장비 같은 걸 착용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도 애원을 해서, 나와 나빈이는 결국 각자의 집에서 해결책이 될 만한 수단을 챙겨 오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아이템, 활성화하겠습니다.”
나빈이가 자세를 낮춘 뒤, 자신이 가져온 버프 액세서리 아이템을 가동시켰다.
그러자 나빈이 주변에 강한 바람이 한차례 몰아쳤다.
아이템에 깃든 기능을 활성화시키면, 방금처럼 어느 정도의 여파가 발생한다.
아이템 중 종종 이 여파가 말도 안 되게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에는 해당 헌터의 능력치가 부족해서 아이템을 제대로 통제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나나 나빈이는 그런 일이 벌어질 우려는 없었다.
현역 시절에 우리가 실제로 사용했던 아이템들이니까.
손에 익을 대로 익은 장비였기에 아이템이 멋대로 폭주를 일으키진 않았다.
나빈이의 뒤를 이어서 나도 바지 아랫단에 숨긴 발찌 아이템을 가동시켰다.
“아이템 활성화합니다. 다들 잠시만 물러나 계세요.”
휘웅! 소리와 함께 나빈이 때보다도 더 큰 열풍이 몰아쳤다.
아까도 말했듯이 아이템을 발동시키면 여파가 발생하기 때문에 헌터들은 이렇게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주변에 미리 경고를 주게끔 되어 있다.
군대에 있을 때 사격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사이렌을 몇 차례 울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보면 된다.
은은하게 빛나는 아이템.
뒤이어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 세 대가 우리 주변에 떠올랐다.
스태프가 슬레이트를 들고서 건물 옥상에 서 있는 우리 앞에 섰다.
“슛 들어가겠습니다!”
탁!
슬레이트 신호와 함께 나와 나빈이가 옥상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미칠 듯한 낙하 속도.
안전 장비라고는 아이템 몇 개 두른 게 다일 뿐인 우리였지만, 그래도 이 상태가 일반적인 안전 장비들을 몸에 둘둘 두른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
“…….”
떨어지는 와중에 나는 나빈이와 시선을 교차했다.
이미 여러 차례 리허설을 해 봤기 때문에 어느 타이밍에서 어떻게 앞으로 치고 나가면 되는지 다 알고 있었다.
선두는 내가 서기로 했다.
아스팔트 지면이 바로 코앞에 도달하기 직전.
후우우웅……!
내 주변에 강한 소용돌이가 몰아치면서 몸을 떠받들었다.
낙하에서 상승으로.
옆 건물 옥상까지 도약한 나는 드론 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음은 저 건물이라고 했지?’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각 건물 관리인들에게 미리 허가를 받은 덕분인지 우리가 밟고 넘어갈 옥상들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덕분에 우리가 착지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빈이가 내 바로 옆으로 뛰어들었다.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이는 후배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칭찬의 말이 흘러나왔다.
“잘하네. 홍나빈, 아직 안 죽었구만.”
“레이드 시대 끝나고 나서도 혼자서 훈련은 계속했어요.”
“왜? 지금이야 몬스터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당시에는 괴물 놈들 때려잡을 일도 없었을 텐데.”
“그냥…… 훈련이 습관처럼 굳어져서 그런가 봐요. 안 하니까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촬영도 수락했던 거야?”
“그것도 있고. 돈도 많이 주니까요.”
역시 돈이지.
나빈이도 참 솔직한 후배다.
아주 짧은 수다를 나눈 우리는 다시 감독의 지시에 따라 몸을 날렸다.
옥상 난간을 딛고서 공중으로 크게 도약했다.
그러자 도착지를 뜻하는 표식이 있는 건물 옥상 하나가 눈에 띄었다.
“선배님, 저쪽으로 가면 되는 거죠?”
“어.”
우리한텐 전혀 어려울 일이 없었다.
마지막 착지 지점을 향해 점프!
……를 하려고 한 순간.
퍼어엉-!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우리 귀를 강타했다.
* * *
처음엔 왜 갑자기 폭발음이 들리나 했다.
‘혹시 제작진 측에서 광고 효과를 더하기 위해 폭약이라도 설치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공중에서 다시 자세를 잡은 나는 폭발음이 들려온 방향이 잘 보이게끔 예정과 다른 건물 옥상 난간에 착지해 매달렸다.
나빈이도 내 바로 근처에 안착했다.
“선배님! 방금 그거, 뭐예요?”
“나도 몰라. 이제부터 무슨 일인지 확인해 봐야지.”
제작진도 드론 카메라를 통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듯했다.
-아아. 태오 씨, 들리십니까?
“예. 잘 들립니다, 감독님.”
-혹시 사고라도 나신 건 아니죠?
“저희는 멀쩡합니다. 중간에 문제 생긴 것도 없었고. 보니까…… 근처에 화재 사고라도 난 거 같습니다.”
빌딩 중간층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길.
길거리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저 멀리서 소방차들이 출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교통체증 탓에 현장까지 출동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선배님!”
나빈이가 내 쪽을 응시하면서 외쳤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나도 알고 있었다.
“감독님, 촬영은 잠깐 중단하죠.”
-예? 갑자기요?
“저희가 사고 현장으로 가 봐야 할 거 같습니다.”
-태, 태오 씨! 잠깐만요!
제작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저렇게 눈에 빤히 보이는 화재 현장을 나 몰라라 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양심의 가책을 매우 심하게 느낄 터.
‘나도 그렇게까지 모진 사람은 아니니까.’
나와 감독이 나눈 통신을 들은 모양인지 나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죠, 선배님.”
“오케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너는 내 뒤만 따라와.”
“혹시 모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저 화재가 단순히 부주의에 의해서 발생한 건지, 아니면 몬스터의 의해서 발생한 건지 모르잖아.”
몬스터라는 말에 나빈이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
남은 몬스터가 몇 마리나 되는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몬스터가 모습을 감춘 채 숨어 있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아이템 가져오길 잘했네요, 선배님.”
운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뭐, 나는 굳이 아이템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잡몹 정도는 맨손으로 쓰러뜨릴 수 있지만 말이다.
손가락을 펼쳐서 나빈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쓰리, 투, 원.
“Go!”
내 신호에 맞춰서 나빈이도 화재 현장을 향해 힘껏 점프했다.
차로 이동하는 것보다 이렇게 직접 뛰어서 공중으로 이동하는 게 당연히 빨랐다.
게다가 화재 현장은 지상 11층이고.
오른 주먹에 마력을 집중시키며 앞으로 크게 내질렀다.
단단했던 콘크리트 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충격을 가한 덕분에 건물 잔해들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머리 위로 쏟아질 일은 없었다.
뚫린 건물 통로 안쪽으로 몸을 날린 나는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스프링클러만으로는 불길을 제압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내가 벽에 커다란 구멍 하나를 뚫은 덕분일까, 안에 자욱하게 깔려 있던 검은 연기가 밖으로 새어 나갔다.
연기가 옅어지면서 복도에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의식은 아직 있어.’
뒤따라온 나빈이에게 이 사람들을 맡기기로 했다.
“내가 안쪽으로 들어가 볼 테니까, 넌 사람들부터 지켜.”
“네, 선배님!”
건물 바로 밑쪽에서 들려오는 소방차 소리.
구급대원들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이쪽으로 진입하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연기 방향을 따라 복도 안쪽으로 계속해서 이동했다.
1105호.
‘이 사무실인 거 같은데.’
안쪽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유리 벽 너머로 보였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불길 속으로 뛰어들고 싶진 않다.
우선은.
‘불부터 꺼 볼까.’
박살 난 1105호 사무실 한가운데를 향해 마력탄을 날렸다.
마력탄을 조종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타오르던 불길이 내가 던진 자그마한 마력탄으로 흡수되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불길을 전부 흡수한 마력탄은 어느새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작은 태양처럼 타오르는 마력탄을 바깥쪽으로 냅다 던졌다.
이후에.
퍼엉! 소리가 나면서 공중에서 그대로 폭발했다.
밑에 있던 사람들은 추가 폭발이 벌어지자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질러 댔다.
폭탄처럼 파편이 여기저기에 쏟아질 일도 없고.
그냥 소리만 큰 무의미한 폭발이었기에 안전에 대해 걱정 안 해도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화를 찾은 사무실.
불길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까지 사라지진 않았다.
책상, 컴퓨터, 의자, 기타 사무용품 등등. 고온에 의해 여기저기 녹아내린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스프링클러가 작동이 안 되어 있네.’
소방 점검도 제대로 안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천장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신경이 쓰이는 걸 하나 발견했다.
스프링클러 근처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마력의 흔적.
‘왜 여기서 이런 게 느껴지는 거지?’
게이트가 열리고, 각성자들이 등장하면서 우리가 살던 세계에 존재하던 새로운 물질, 마나의 정체도 같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우리는 각성자라고 부른다.
마나는 각성자가 아니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조종할 수 없다.
천장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흔적들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마나를 사용했음을 나타냈다.
‘여기 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 중에 각성자가 있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좀 이상했다.
내가 본 마력의 흔적은.
소화 장치가 작동하는 걸 일부러 방해하려 한 티가 났기 때문이었다.
* * *
광고 촬영 도중에 화재 현장과 마주친 나와 나빈이의 활약 덕분에 현장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람들의 목숨을 무사히 구해 내는 데에 성공했다.
기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떤 식으로 화재를 제압했는지.
그리고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내게 요구하는 기자들을 향해서 짧게 답했다.
“나중에 소방서 측에서 공식 발표가 있을 겁니다. 그때 들어 주세요.”
화재 진압은 엄밀히 말하면 내 일이 아니다.
소방 관계자들이 여럿 있는데, 여기서 나 혼자 주목받고 싶다고 기자들에게 협의도 안 된 사항들을 주저리주저리 떠들 수는 없었다.
게이트가 등장하고 난 직후에 정식으로 설립된 긴급재난본부 쪽에서도 사람이 파견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마침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태오 씨!”
조우천 팀장이 나를 보면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조 팀장님.”
“그러게요. 그나저나 덕분에 살았습니다. 안 그래도 이 부근은 교통이 혼잡한 곳이라서 소방차 진입도 굉장히 어려웠는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그것보다 조 팀장님한테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네? 저한테요?”
혹시 몰라서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말했다.
“이 사건, 방화범이 따로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