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36화 (36/250)

제10장. 인기 스타로 향하는 길 (4)

박살이 난 훈련용 더미를 내려다보면서 데이브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반면, 놀랐던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 아이리스가 버럭 오빠에게 외쳤다.

“아무리 내가 연락도 없이 왔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화풀이할 필요 없잖아! 차라리 말로 하라고, 말로!”

“아니,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데이브답지 않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평소 연습용으로 사용하던 이 더미는 SSS랭크 헌터용으로 맞춰진 샌드백용 더미였기 때문이다.

즉, 강태오가 와도 파괴하기 힘든 더미란 뜻이다.

그런데 데이브가 이걸 박살 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자존심 높은 데이브마저 자신이 강태오보다 전투력이 낮다는 건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제품이 불량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왜냐하면 6개월 전부터 계속 샌드백으로 사용하던 더미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불량이라는 이유 때문에 박살이 났다면, 지금이 아니라 한참 전에 망가졌어야 한다.

이때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데이브의 귀에 강제로 파고들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오늘 프로그램 녹화할 때도 들었던 노래다.

태오의 ‘나의 길’.

데이브의 얼굴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내가 녀석하고……!”

“응?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오빠?”

설명할 틈도 없이, 데이브는 다시 겉옷을 챙겨 들면서 집 밖으로 나섰다.

“나갔다 온다.”

“잠깐만! 어디 가려고! 오빠!”

마치 뭔가에 쫓기듯 사라지는 데이브.

아이리스는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이면서 말했다.

“왜 저래, 대체?”

* * *

데이브가 향한 곳은 바로 이철민 소장이 있는 연구소였다.

원래는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지만, 지금의 데이브는 그런 정신머리가 없었다.

무작정 들여보내 달라고 하는 그를 보면서 출입구를 지키고 있던 가드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헌터 랭킹 2위가 와서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라 이들도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때마침 소란을 듣고 찾아온 이철민 소장이 연구소 입구 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입니까?”

“소장님!”

“데이브 씨께서 자꾸만 소장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하셔서…….”

이철민을 보자마자 데이브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세요!”

데이브가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자신을 찾았던 적은 여태껏 없었다.

뭔가 촉이 온 이철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드들에게 들여보내 달라고 손짓했다.

가드들의 제지에서 벗어난 데이브는 다짜고짜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그 녀석의 노래에 관해서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 녀석이라면, 강태오 씨 말씀하시는 겁니까?”

끄덕끄덕.

두말하면 잔소리라는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데이브.

여기서 노래 이야기가 나올 사람은 강태오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이철민은 그가 하는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장소를 옮기시죠.”

아직은 숨겨야 할 단계였기에 듣는 귀가 많은 곳은 피해야 했다.

데이브도 같은 생각인지 이 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걸음을 옮겼다.

* * *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를 보이는 데이브를 지그시 응시하는 이철민 소장.

“죄라도 지으셨습니까?”

“제가 그렇게 보입니까?”

“예.”

이철민 소장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이 오늘따라 데이브의 아픈 마음을 후벼팠다.

하아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데이브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이 소장님이 주장했던 가설 있지 않습니까. 강태오, 그 녀석의 노래가 버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거요.”

“가설이 아니라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만.”

“아무튼 그거요. 그거, 분명 저번에 ‘강태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만 누릴 수 있는 효과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었죠.”

“그런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요?”

강태오에게 팬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버프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이철민 소장이라면 분명 그동안 여러 차례 실험을 실행했을 것이다.

그사이에 새로운 데이터가 갱신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소장의 대답은 데이브 입장에서 봤을 때 매우 냉정했다.

“아니요, 그때 말씀드렸던 그 법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즉, 여전히 강태오의 팬이 아니면 버프 효과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걸 왜 물으십니까?”

데이브가 이미 다 아는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건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

이번에는 이 소장이 역으로 물었다.

그의 역질문에 데이브의 다부진 어깨가 한 차례 움찔했다.

“아니, 뭐…… 그냥…….”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데이브를 보면서 이철민 소장이 툭 내던진 한마디.

“데이브 씨도 노래 버프 효과를 받을 수 있습니까?”

뜨끔!

데이브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왜 그 녀석 노래 따위에 반응을 해야 합니까? 예?”

이철민 소장은 눈썰미가 꽤 있는 편이다.

방금의 반응을 통해서 그는 확실히 감을 잡았다.

자신이 데이브의 정곡을 찔렀음을 말이다.

데이브도 그걸 어렴풋이 느낀 건지, 이 소장에게 누차 강조했다.

“제가 와서 이런 말 했다는 거, 강태오 그 녀석한테는 비밀로 해야 합니다. 아셨습니까?”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지금도 입이 근질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데이브를 위해서 참아 볼 생각이었다.

이 결심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방송 출연 요청 못지않게 광고 섭외도 장난 아니게 들어오고 있었다.

덕분에 요즘 나는 정신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몬스터들이 안 나오니까 이제는 일들이 나를 덮치는 기분이네.’

그래도 차라리 이게 낫다.

이전처럼 몬스터들이 다시 활개를 치면 더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오늘은 새벽부터 광고 촬영이 있는 터라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승훈이 형이 우리 집 앞까지 차를 몰고 왔다.

막 차에 올라타자, 승훈이 형이 내게 몰랐던 소식 하나를 전하려 했다.

“어제 협회 쪽에서 연락 왔는데…….”

그 전에 내 스마트폰이 울렸다.

“잠깐만, 형. 누나한테서 전화 왔어.”

“어, 그래? 받아 봐.”

“미안.”

이 새벽에 누나가 전화를 다 하고.

별일이었다.

“여보세요.”

-어머, 일어났네? 나는 또, 혹시나 네가 아직까지 자고 있을까 봐 걱정돼서 모닝콜 한 건데.

누나도 오늘 내가 광고 촬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누나한테 말했으니까.

“누나가 모닝콜 안 해 줘도 승훈이 형이 해 줬을 거야.”

-승훈 씨도 같이 있어?

“어, 인사라도 나눌래?”

조용히 나와 누나가 통화하는 것을 듣고 있던 승훈이 형이 크게 당황했다.

“지, 지금?”

“뭐 어때. 누나, 잠깐만.”

스피커 모드로 전환한 뒤에 누나에게 물었다.

“아아. 누나, 들리지?”

-어, 잘 들려.

“형, 누나한테 인사해.”

승훈이 형이 갑자기 물을 몇 모금 마시더니, 헛기침으로 목까지 가다듬기 시작했다.

“어흠! 아, 안녕하세요, 아송 씨.”

-안녕하세요. 목소리 오랜만에 듣네요, 승훈 씨. 잘 지내시죠?

“저야 항상 잘 지냅니다. 아송 씨야말로 최근에 프로그램 진행하시는 거 많이 느셨던데. 일정은 괜찮으신 거죠? 늘 건강 생각하시면서 일하셔야 합니다.”

승훈이 형이 누나가 진행하는 프로그램들까지 다 꿰차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하호호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마친 두 사람.

나중에 촬영 끝나고 연락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누나와의 통화를 종료했다.

“형, 우리 누나하고 통화할 때 목소리가 완전히 딴사람처럼 바뀌더라?”

“인마, 그러면 평소에 너하고 대화하는 것처럼 하랴? 아송 씨한테 실례라고.”

뭔가 우리 누나한테 다른 마음을 먹고 있어서 그런 거 같은데.

새벽부터 차 안에 핑크빛 기류가 흐르는 기분이 든다.

* * *

내게 광고를 의뢰한 곳은 스포츠웨어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는 업체였다.

자신들이 만든 옷을 헌터들에게 입혀서 아무리 격한 움직임에도 찢어지는 일 없는 내구성을 보여 주고 싶다고 했던 말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래서 광고 콘셉트도 상당히 역동적인 장면들로 꾸며질 예정이다.

나와 같이 광고를 받은 나빈이가 트레이닝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서 몸을 풀었다.

“선배님, 원래는 이 광고, 저 말고 데이브 선배님한테 먼저 갔었다고 하던데요.”

“그래?”

“근데 선배님이 갑자기 거절했대요.”

“계약서 작성까지 했는데도?”

“네. 이유는 안 알려 줬다고 하더라고요.”

나와 같이 여기에 출연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계약서를 확인하고 사인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출연을 취소했다고 하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나 때문은 아닌 거 같고. 뭐지?”

“글쎄요. 저도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연락했었는데, 제 전화도 안 받으시더라고요.”

“뭐야,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이기라도 했나?”

“설마요. 데이브 선배님 정도면, 웬만한 여자들은 다 좋다고 할걸요. 잘생기신 데다 능력도 좋으시잖아요. 성격이 많이 까탈스러운 것만 빼면 괜찮죠.”

“선배 없다고 뒷담화 열심히 하는 거 봐라.”

“그런 거 아니에요.”

나빈이가 내 주장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데이브 녀석은 예전부터 이따금씩 내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할 때가 있었다.

그것하고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하고 넘기기로 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감독이 먼저 나와 나빈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오늘 촬영이 어떻게 진행될지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스튜디오에서 먼저 촬영하시고, 밖에서 건물들 사이로 이동할 때에는 드론 캠으로 촬영할 겁니다. 동선은 아까 말씀해 드린 대로 움직이시면 되고요. 일단 1차적으로 촬영해 본 다음에 부족하다 싶은 부분이 보이면 그때 추가로 촬영 이어 가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움직이는 신이 많아서 멘트는 주로 내레이션 녹음으로 처리될 겁니다. 그러니까 실시간으로 대사를 읊어야 할 부담은 적으실 거예요.”

나는 그래도 딱히 상관은 없다.

가사에 안무까지 다 숙지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이 정도는 암기력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리딩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시간 드릴 테니까 끝나면 저희 스태프한테 말씀해 주세요.”

“저는 바로 슛 들어가도 상관없습니다. 나빈이는?”

“저도요, 선배님.”

우리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

감독도 촬영을 바로 시작하고 싶어 했던 모양인지 곧장 알겠다고 말하고선 준비를 서둘렀다.

스튜디오에서의 촬영은 예상대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포즈 몇 번 취하고, 광고 문구 느낌이 물씬 풍기는 대사 몇 번 읊고.

그게 끝이었다.

핵심은 야외 촬영이다.

“나빈아, 준비 다 끝났어?”

“네, 선배님.”

“그럼 가 볼까?”

몬스터가 없어서 그동안 많이 찌뿌둥했는데.

오래간만에 몸 좀 제대로 풀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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