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인기 스타로 향하는 길 (3)
나빈이라면.
내가 아는 그 나빈이가 맞나?
홍나빈. 얼마 전까지 데이브, 나하고 같이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헌터 후배 말이다.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놀라서일까, 이빈 씨가 작게 웃으면서 진행자의 멘트에 방해되지 않게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만 속삭였다.
“사실 제 본명이 ‘홍이빈’이거든요. 나빈이가 저랑 두 살 터울이에요.”
“나빈이하고 자매였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매 느낌이 나긴 한다.
나빈이도 헌터들 중에서 빼어난 미모 덕분에 팬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으니까.
그나저나 설마 나빈이 언니가 이빈 씨일 줄은 몰랐다.
“나빈이는 왜 이런 중요한 걸 이야기 안 해 줬나 모르겠네요.”
“원래 나빈이가 저에 대해서 주변에 말하고 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게 자랑거리도 아니고. 그리고 오히려 저하고 자기하고 자매라는 걸 여기저기 밝히고 다니면, 괜히 언니 활동하는 데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친한 사람들한테도 말 안 해 줬대요.”
그래도 나한테는 말해 줄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섭섭한 마음이 조금은 들었다.
이빈 씨가 내 쇼케이스 MC 맡아 줬다는 걸 나빈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뭐, 이건 개인 사정이니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데이브도 나처럼 전혀 몰랐던 모양인지,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카메라로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웃는 얼굴로 표정을 전환했다.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프로그램 녹화 중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하여간 데이브, 저 녀석도 방송인 다 됐네.’
쟤도 나처럼 헌터로 각성하기 전에 연예인이 되기를 희망했던 적이 있었나?
이런 의심이 들 정도였다.
* * *
야외로 나온 우리.
특별히 마련되어 있는 스튜디오가 있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내 거리 한복판에 그대로 자리 잡고서 녹화를 진행해야 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우리의 방청객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대신, 그만큼 좀 어수선한 느낌도 있었다.
그럼에도 왜 이런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여기서 토크와 함께 라이브 무대를 진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무대엔 역시 관객의 호응을 빼놓을 수 없는 법이다.
여기 PD가 시끌벅적한 느낌의 무대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래도 나름 현장을 잘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였다.
녹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우리를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로 북적였다.
내가 살짝 손을 흔들어 보이자, 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함성을 질렀다.
‘호응 장난 아니네.’
여기서 노래 부를 맛이 나겠는데?
사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지 말지 고민했었는데.
막상 나오고 나니까 출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PD가 와서 직접 우리에게 라이브 무대 순서를 알려 줬다.
“용태 씨가 먼저 부르시고, 그다음에 이빈 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오 씨. 이런 순번대로 갈게요.”
“용태 씨도 노래 부르세요?”
배우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다.
내 물음에 용태 씨가 어색한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앨범을 낸 건 아니고요. 영화 OST를 부른 적이 있거든요. 그거 부를 겁니다.”
“아, 그렇군요.”
영화에 들어가는 OST를 직접 부를 정도면, 그래도 나름 한가락 하는 실력인가 보다.
하기야, 이빈 씨도 가수와 배우를 겸직하고 있으니까. 배우가 노래 못 불러야 한다는 법도 없고.
노래하는 헌터도 있는 마당에, 이 이상의 편견은 무의미해 보였다.
“야, 데이브, 너도 한 곡 뽑지 그러냐?”
나는 나름 데이브의 방송 분량을 챙겨 주기 위해서 한 말이었는데.
정작 데이브는 늘 그렇듯 내 말에 짜증부터 낸다.
“난 노래 못 부른다.”
“불러 본 적도 없잖아.”
“네 앞에서 노래 부를 일이 뭐가 있겠냐.”
하긴,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우리 헌터가 하는 일은 몬스터와 싸우는 거지, 나처럼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니까.
물론 그 노래에 특별한 힘이 담겨 있다는 게 밝혀진 이상은 예외겠지만 말이다.
PD에게 전체적인 프로그램 진행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을 한 뒤, 메인 진행자와 추가로 대본을 맞춘 다음에 바로 슛에 들어갔다.
“자! 저희가 자리를 옮겨서 야외로 나왔습니다. 지금 여기에 많은 시민 여러분들이 모여 계신데요. 인사 한번 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진행자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시민들이 아까보다도 더 뜨거운 반응을 보이면서 우리를 맞이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기기를 이용해서 누구누구, 힘내세요! 같은 메시지도 적어서 보여 주고 있었다.
스태프들이 특별히 제지를 안 하는 걸 봐선 저런 응원 방식은 허용인가 보다.
뭐, 녹화에 큰 방해가 되는 건 아니니까 놔두는 거겠지.
진행자가 우리, 그중에서 나와 이빈 씨, 용태 씨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이 노래를 잘하신다는 건 이미 정평이 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토크 좀 하고. 그리고 여기서 즉석으로 노래도 한번 들어 보고. 그러기 위해서 자리를 옮겨 봤습니다. 어때요, 불러 주실 거죠?”
“네, 그래야죠.”
이빈 씨와 마찬가지로 나도, 그리고 용태 씨도 언제든 Yes라며 긍정적으로 답했다.
토크를 이어 가면서 중간중간마다 여기 있는 시민들에게도 즉석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래도 헌터 랭킹 1, 2위를 달리는 사람이 한자리에 있다 보니 질문도 그쪽으로 주로 쏠렸다.
“몬스터와 싸울 때 겁이 나거나 그런 적은 없나요?”
“겁이야 항상 나죠. 하지만 저희가 물러선다면, 인류는 그대로 멸망하지 않습니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다면, 싸우다가 죽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늘 전투에 임하고 있습니다. 아니죠. ‘임했었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네요.”
아직 남은 몬스터들이 있긴 하지만, 레이드 시대와 비교했을 때 그 수치가 절대적으로 낮다.
독일 베를린 전투 이후 아직도 몬스터가 인류를 공격했다는 소식이 없을 정도니까 말이다.
헌터에 관한 질문 말고, 가수 활동에 관련된 질문도 슬슬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나와 텔레파시라도 통한 모양인지, 맨 앞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혹시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태오 님 가수 활동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이런 걱정을 하는 팬들도 꽤 된다.
내 데뷔가 마지막 가수 활동일지도 모른다는 걱정 말이다.
“계속해야죠. 앨범도 꾸준히 낼 거고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내 데뷔곡인 ‘나의 길’ 말고도 내가 부르는 다른 곡도 버프 효과가 있을까?
나중에 이 소장한테 물어봐야겠다.
* * *
토크 타임이 끝나고.
드디어 라이브 차례가 왔다.
먼저 마이크를 든 용태 씨가 스타트를 끊었다.
영화 OST를 불렀다고 해서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부르네.’
저 정도면 가수로 데뷔해도 손색이 없을 거 같다.
잔잔한 발라드로 사람들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은 용태 씨의 뒤를 이어.
여기 출연자들 중에서 가장 가수 경력이 오래된 이빈 씨가 나섰다.
그녀가 마이크를 쥐자마자 사람들은 벌써부터 기대감이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반주에 따라 본인의 허벅지에 올려놓은 이빈 씨의 손이 까딱까딱 리듬을 타듯 움직였다.
이후, 그녀의 고운 음성이 이 넓은 시내 광장을 빠르게 채워 가기 시작했다.
내게서 떠난 너를 그리며.
오늘도 슬픔으로 밤을 지새워.
연락이라도 올까 봐.
미련이 자꾸만 나를 옭아매.
헤어짐에 슬퍼하는 여성의 마음을 노래하는 이빈 씨.
야외임에도 불구하고 이빈 씨는 이 시끄러운 환경을 자신만의 색깔로 물들여 가고 있었다.
역시 노래로 뜬 톱 가수의 위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나도 이빈 씨의 노래를 평소에도 즐겨 듣곤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라이브로 들은 적은 없었다.
내가 말만 걸었다 하면 칭얼대는 데이브조차도 어느새 온순한 양이 되어 이빈 씨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이빈 씨의 목소리가 외국인들의 취향에도 맞나 보다.
그렇게 이빈 씨의 짧은 공연이 끝나고.
내가 마지막 바통을 이어받았다.
노래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원래 ‘나의 길’은 비트가 빠른 댄스곡인데, 오늘은 다른 버전을 준비했습니다.”
앞서 부른 두 사람처럼, 나도 발라드 버전을 준비해 봤다.
느릿느릿한 템포로 불러 보는 내 데뷔곡.
하지만 가사가 가사라서 그런지, 앞서 불렀던 두 곡과는 다르게 힘이 느껴졌다.
‘확실히 버전을 바꿔도 원곡의 느낌까지 완전히 지우진 못하는구나.’
최 프로듀서와 같이 편곡 작업을 하면서 나도 어렴풋이 느꼈던 거지만, 이렇게 직접 라이브로 불러 보니까 그게 확실하게 와닿았다.
그래도 새로운 형태로 부르는 노래라 그런지, 사람들의 반응은 새로웠다.
2절까지 전부 완곡을 하고 사람들에게 짧게 마무리 인사까지 건넸다.
짝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앵콜 요청이 쇄도했다.
‘이건 예정에 없던 건데.’
가요 프로그램에선 가수별로 무대와 시간이 각각 할당되어 있었기 때문에 앵콜을 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라이브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PD가 이런 내 고민을 말끔하게 날려 줬다.
입을 뻥긋거리면서 하는 말.
하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한 곡 더 뽑아 보겠습니다.”
데뷔 앨범에 수록되어 있던 두 번째 곡을 꺼낼 차례다.
* * *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데이브는 불이 켜져 있음을 감지했다.
그는 혼자 한국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자신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올 사람은 딱 한 명뿐이다.
“왔으면 왔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 거 아니냐.”
데이브의 여동생, 아이리스가 거실에 앉은 채 긴 금발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전화했는데 안 받았으면서.”
“녹화 중이었다고. 왜 전화했는지 메시지라도 남겼어야 할 거 아니냐.”
“뭐 어때, 가족인데.”
“…….”
할 말이 없는 모양인지, 데이브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데이브는 거실에 놓여 있는 훈련용 더미 앞에 선 채 아이리스에게 눈치를 줬다.
“오빠 훈련할 거니까 방에 들어가 있어.”
“왜, 여기가 채광도 좋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크게 틀었다.
마침 흘러나오는 노래는 태오의 ‘나의 길’.
집에 와서도 강태오의 노래를 들어야 해서 그런지 데이브는 치솟아 오르는 짜증을 간신히 억눌렀다.
“네 마음대로 해라.”
데이브도 포기했는지, 훈련용 더미를 향해 강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퍼엉-!
“어, 어……?”
눈앞에 벌어진 상황 때문에 데이브도, 아이리스도 모두가 다 크게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거실 한쪽에 당당히 고정되어 있던 데이브 전용 샌드백이…….
그의 주먹 한 방에 폭발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