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32화 (32/250)

제9장. 버프 받아라! (5)

촬영이 끝나자마자 나는 이철민 소장이 있는 협회 산하의 연구소로 향했다.

승훈이 형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갔는데, 문제는 나 혼자만 온 게 아니었다는 거였다.

“니들은 왜 온 거냐?”

내가 탄 차에 예정에 없던 일행이 두 명 늘었다.

한 명은 나빈이.

그리고 또 한 명은 방금 전 스튜디오에서 나와 에피소드 대전을 벌였던 데이브였다.

데이브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하려고 왔다, 왜!”

“그러면 나빈이는?”

“저는 선배님들 또 싸우실까 봐 말리려고 온 거죠. 예전부터 그랬지만, 선배님들이 이렇게 딱 붙어 다니실 때가 저는 몬스터들 나타났다는 소식 들었을 때보다 더 무서워요.”

현역 때에도 우리 둘의 싸움을 말리는 역할은 늘 나빈이의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데이브가 나를 따라나서는 모습을 보고 가만 놔두면 안 될 거 같다는 예감이 든 것인지 스리슬쩍 우리 차에 같이 올라탔다.

“집에 갈 때에는 다들 알아서 가라.”

데이브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거라고 답했다.

사람들한테 따로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승훈이 형과 함께 둘을 데리고 이철민 소장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작은 미팅룸.

그곳에서 젊은 연구원과 함께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이 소장의 첫마디는 이러했다.

“못 본 사이에 일행이 많이 느셨군요.”

“한 명은 괜찮은데, 한 명은 금색 깍두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데이브의 이마에 ‘혈관 마크’가 떠올랐다

“누구보고 금색 깍두기라는 거냐!”

깍두기라는 단어도 알고, 한국말 많이 연습하긴 했나 보다.

뭐, 데이브의 한국어 실력은 별로 관심없고.

중요한 이야기는 따로 있다.

“저번에 제 노래가 헌터들한테 버프를 줄 수 있다는 거, 입증되었습니까?”

내 말을 듣자마자 데이브와 나빈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예? 서, 선배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저번 회의 때에는 그런 이야기 일절 없었잖아.”

데이브는 금시초문이라며 금방이라도 나에게 따지듯 물어볼 기세를 보였다.

그 전에 이철민 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확인했습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데이브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나도 가만히 앉아 있어서 티가 안 났을 뿐이지, 속은 데이브와 똑같은 심정이었다.

진짜냐고, 이거.

내 일이지만 나도 놀랐다.

“단, 치명적인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효과가 있는 건 확실한데, 태오 씨의 팬이 아니면 노래를 통해서 버프 효과를 받을 수가 없는 거 같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정보가 연달아 흘러나왔다.

덕분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승훈이 형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나섰다.

“그러니까 태오 노래가 버프 효과가 있는 건 맞는데, 태오에게 팬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이 버프 효과를 못 받는다. 이거죠?”

“예, 그렇습니다.”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들이 하늘에서 우수수 쏟아지는 걸 보면서 내 인생에 놀랄 일은 다 겪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놀랄 거리가 남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버프를 걸 수 있으면 있는 거지, 왜 하필이면 내 팬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걸까?

“이유가 뭡니까?”

내가 물었지만, 이 소장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저도 모릅니다.”

뭐…… 모를 만도 하지.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이런 사례가 드물게 있던 것도 아니고, 아예 없었으니까.

이철민 소장이 같이 온 젊은 연구원들에게 눈짓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접어 둔 노트북을 펼쳤다.

“이쪽을 봐 주세요.”

화면에 그대로 재생되는 하나의 영상.

테스트에 임한 여성 헌터는 나도 처음 보는 사람이다.

데이브 역시 ‘누구야, 이 여자?’라고 물었다.

우리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빈이만이 알은척을 했다.

“혜미네요. 저하고 비슷한 시기에 각성해서 헌터가 된 친구인데, 요즘은 저도 연락을 안 해 봐서……. 그런데 설마 이런 식으로 혜미 근황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는 사이였구만.”

나는 헌터들끼리 교류가 활발한 편이 아니었기에 웬만하면 모르는 관계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훈련용 더미를 앞에 둔 윤혜미 헌터가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노래 가사.

데이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녀석 노래군.”

“뭐야. 너, 싫은 척하면서 내 노래 평소에도 듣고 다니냐?”

“베를린 때 지겹도록 들어서 알고 있는 거다. 나한테 이상한 프레임 씌우지 마, 빌어먹을 녀석.”

나빈이가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그만 좀 싸우세요, 선배님들. 애들도 아니고…… 영상에 집중하세요.”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완전히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다.

그걸 잘 아는지, 나빈이가 우리 둘의 관심을 억지로 모니터 화면에 고정시켰다.

내 노래를 듣고 난 뒤.

윤혜미가 크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콰직! 소리와 함께 훈련용 더미가 망가져 버렸다.

데이브의 인상이 구겨졌다.

“저 모델은 S랭크 이상이 아니면 파괴하기 힘들 텐데?”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 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참고로 윤혜미 헌터의 랭크는 B입니다.”

“B? 말이 안 되는데.”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겁니다.”

“…….”

말문이 막혀 버린 데이브.

확실한 영상 증거를 보여 주니까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철민 소장이 손으로 볼펜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동작을 취하면서 계속 설명을 들려줬다.

“혹시 몰라서 태오 씨의 팬임을 자처하는 헌터들에게 추가로 테스트를 실행했습니다. 그 결과, 헌터들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랭크가 최소 2~3단계 상승하는 버프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그러자 데이브는 눈앞의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조작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러면 직접 해 보시겠습니까?”

“저는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이 녀석하고는 철천지원수인데.”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소장도 우리 둘의 관계를 잘 아는지, 갑자기 나빈이를 가리켰다.

“그러면 홍나빈 씨가 해 보시면 되겠군요.”

“제가요? 하지만 전…….”

“태오 씨 팬클럽에 가입하셨을 정도면, 팬심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심지어 꽤 앞 번호 아닙니까?”

뭐야, 이거.

나빈이가 내 팬이라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나빈이에 대한 신원조사까지 전부 다 하고 오기라도 했는지, 이 소장의 목소리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한편, 나빈이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진작 말하지 그랬어.”

남들에게 말 못 할 비밀을 들켜 버려서 그런지, 나빈이는 굉장히 쑥스러워했다.

내가 아끼는 후배여서 그럴까, 이런 모습도 참 귀엽다.

이왕 들켜 버린 거.

“한번 해 보자, 나빈아. 너도 궁금하잖아. 안 그래?”

“…….”

한동안 부끄러움과 싸움을 벌이던 나빈이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역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후배다.

* * *

윤혜미 헌터가 그대로 거쳤던 과정을 반복한 나빈이.

현재 나빈이의 랭크는 S다.

그러나 훈련용 더미로는 나빈이의 전투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우리는 급하게 대체제를 투입하기로 했다.

데이브라는 이름의 대체제를 말이다.

“왜 내가…….”

안에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데이브를 향해 내가 일침을 가했다.

“니가 가장 못 믿겠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네가 직접 판단해 보라고.”

“알고 있어, 짜샤.”

한편, 헤드셋을 벗은 나빈이가 곧바로 자세를 취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님!”

“마음껏 덤벼 봐라. 그래 봤자 나한테 안 되겠지만.”

데이브와 나빈이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존재한다.

A 이하의 랭크는 사실 승급이 어렵지 않지만, S 이상부터는 하늘과 땅 차이라 불릴 정도로 큰 격차가 있다.

나빈이가 데이브를 몰아붙인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다.

하지만.

이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추진력을 이용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데이브의 바로 앞까지 접근한 나빈이.

“……!”

나도, 그리고 데이브도. 모두가 다 놀랐다.

“빨라……!”

데이브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나빈이의 일격이 펼쳐졌다.

후웅!

오른 주먹을 힘 있게 휘두르는 나빈이.

오늘따라 저 주먹이 굉장히 날카롭게 느껴지는 건 내 착각 때문은 아니겠지.

그러나 데이브도 몇 없는 SS랭크답게 몸을 뒤로 빼면서 간신히 회피 동작에 들어갔다.

방금 데이브가 조금만 늦게 피했더라면, 녀석은 후배한테 죽빵 한 대 거하게 얻어맞았을지도 모른다.

주륵.

데이브의 얼굴에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진짜로 노래 듣고 강해진 거냐?”

“저도 모르겠어요.”

당사자인 나빈이도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었다.

데이브는 그럴 리가 없다면서 눈앞에 펼쳐진 일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간다.”

파박!

데이브의 몸이 일순간 눈앞에서 사라졌다.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른 움직임.

하지만 나빈이는 몸을 옆으로 빼면서 데이브의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회피했다.

“이런!”

바로 빈틈이 생겼다.

“하압!”

나빈이가 어깨를 이용해서 데이브의 몸을 밀쳐 냈다.

투웅-!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데이브의 몸이 붕 뜨면서 테스트장 벽면에 부딪쳤다.

선배에게 처음으로 유효타를 먹인 나빈이는 본인이 하고도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건 아마 데이브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다시 자세를 잡은 데이브가 계속해서 나빈이와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았다.

지금 저 모습만 보자면.

“대등하게 싸우네요.”

이철민 소장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꺼냈다.

그렇다. 대등하다.

하지만 저 둘이 SS랭크와 S랭크 헌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아주 큰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소장님 말이 사실인가 보군요.”

내 눈으로 직접 본 건데.

이제는 안 믿는 게 더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기뻐하는 나와 달리, 이철민 소장은 무덤덤했다.

아니, 오히려 아쉬워하는 입장을 보였다.

“다 좋은데, 태오 씨의 노래를 좋게 들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좀 아쉽습니다. 만약에 이런 제약이 없다면, 언제 어디서 몬스터가 나와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상태로 쉽게 몬스터들을 제압할 수 있을 텐데.”

모두에게 버프를 걸어 줄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소장은 이 점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소장님은 제 노래, 좋아하십니까?”

“좋다, 싫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의한다면…… 저는 좋다는 쪽이긴 합니다.”

“그렇군요.”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십니까?”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라서요.”

“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정답.

그것이 내 머리를 거쳐 입 밖으로 표현되었다.

“사람들을 전부 제 팬으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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