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31화 (31/250)

제9장. 버프 받아라! (4)

나와 홍나빈 그리고 데이브. 이렇게 셋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토크 예능 프로그램, ‘잡(Job)다한 녀석들’은 타이틀 그대로 각양각색의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이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토크 방식으로 풀어내는 식으로 진행된다.

진행은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유명 프로그램들의 MC 역할을 맡고 있는 서황민 씨.

그를 제외하고 고정으로 나오는 패널들이 총 세 명 있다.

PD의 신호에 맞춰서 황민 씨가 큐시트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분들을 모시는 자리! ‘잡(Job)다한 녀석들’이 돌아왔습니다. 진행을 맡은 서황민입니다. 반갑습니다!”

방청객들이 황민 씨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TV에서만 듣던 이 멘트를 바로 눈앞에서 들으니까 상당히 신기했다.

“오늘은 장안의 화제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을 모셨습니다. 요즘 이분들을 모르면 간첩 소리 듣죠? 소개하겠습니다! 강태오 씨, 데이브 씨, 그리고 홍나빈 씨입니다!”

진행자의 멘트에 맞춰서 우리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차례로 돌아가면서 좀 더 자세히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내 차례가 왔다.

“안녕하세요. 요즘 가수로도 열심히 활동 중인 강태오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방청객으로 온 사람들의 뜨거운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녹화 들어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앞에서 얼굴을 잔뜩 구기기만 했던 데이브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소를 선보였다.

“데이브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까 역시 좋네요.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다음은 나빈이의 차례다.

“안녕하세요, 홍나빈입니다. 선배님들과 함께 이런 자리에 참가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무쪼록 예쁘게 봐주세요.”

나와 데이브 못지않게 나빈이에 대한 반응도 굉장히 뜨거웠다.

외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한정으로만 놓고 본다면 나빈이는 아마 유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런 헌터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몇 명 찾아보기 힘든 S랭크 헌터이면서 동시에 험한 일을 하는 것치곤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남성 팬들이 특히 더 많은 편이었다.

아마 방청객들 중에서 남자들의 과반수는 나와 데이브가 아닌 나빈이를 보기 위해서 왔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자리에 앉자마자 황민 씨가 앞서 했던 멘트를 여러 번 강조했다.

“제가 감히 장담컨대, 요즘 가장 섭외하기 힘든 분을 딱 세 명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여기 있는 이 세 분을 정답으로 언급할 겁니다. 세상 어느 프로그램에서 이 쓰리샷을 볼 수 있을까요?”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데이브가 나와 같은 방송에 나오는 걸 싫어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성사되었느냐?

데이브가 정신이 없었는지, 출연자 명단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나는 뭐, 데이브처럼 누군가가 나올 예정이니까 나는 싫다고 거절할 일은 없었다.

나빈이는 우리를 선배로서 잘 따르는 편이고.

그래서 이런 장면이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청자들에게 털어놓기 힘든 비하인드 스토리다.

그걸 잘 아는 모양인지, 황민 씨의 말에 대해 데이브가 먼저 이렇게 답했다.

“대한민국에서 유명하신 헌터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인데, 제가 빠질 수 없죠. 그래서 섭외 요청 들어오자마자 바로 출연하겠다고 작가님한테 말했습니다. 하하!”

저기 저 가식적인 웃음을 봐라.

데이브의 본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저 웃음소리를 듣고 소름이 안 끼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은 카메라 앞이니까.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좋겠지.’

연예인이기 때문에 이미지 관리라는 게 필요하다.

나도 데이브를 따라서 웃었다.

“데이브가 헌터로 같이 활동할 때부터 저를 굉장히 좋아했었거든요. 그렇지, 데이브?”

자연스럽게 데이브의 목에 팔을 걸면서 물었다.

그러자 데이브가 이를 악물고서 억지로 웃으면서 답했다.

“응, 그르치…… 우리, 긍장히 친흐지.”

……라고 말을 하면서 마이크를 살짝 가리고 내게 ‘하지 마라, X발’이라는 걸쭉한 욕도 한 사발 선물해 줬다.

뭐 이런 것까지.

한편, 억지로 친한 척을 하는 우리 둘을 보면서 나빈이의 얼굴에 어색함이 한가득 담긴 미소꽃이 피었다.

나빈이도 우리 둘 관계에 대해 굉장히 잘 안다.

아니, 헌터라면 아마 대부분은 나와 데이브가 어떤 사이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대중만 모를 뿐.

사이가 나빠도, 그때 당시에는 괴물들을 잘 쓰러뜨리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그래서 딱히 이런 관계가 우리에게 손해를 가져다주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데이브는 내가 노골적으로 신경을 툭툭 건드리는 행동을 해도 웃으면서 넘겼다.

짜식, 인내심 많이 늘었네.

이건 칭찬해 줄 수밖에 없었다.

데이브도 이제는 헌터 생활보다는 연예계 쪽에 자주 얼굴을 비치다 보니 이런 건 재빨리 눈치채고 행동하는 편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하하호호 웃는 우리 둘.

MC가 나와 데이브를 가리키면서 흐뭇한 미소를 흘려보냈다.

“두 분이 정말 사이가 좋으신 거 같습니다. 하기사, 몬스터들이 한창 날뛸 때에 이 두 분이 활약해 주신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마음 편히 방송 녹화도 하고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방청객에서도 동의한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패널들 역시 나라를 구한 훌륭한 분들이라면서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상황을 정리한 서 MC가 자연스럽게 다음 멘트를 꺼내면서 프로그램 진행을 이끌어 가기 시작했다.

“오늘 이런 귀한 분들을 모셨으니, 평소에 들어 볼 수 없는 특이한 에피소드들도 많이 풀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네, 그래야죠.”

시청률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PD의 속마음을 MC가 대신 말한 셈이었다.

비싼 출연료 들여 가면서 우리를 겨우 여기에 앉혔으니, 본전은 뽑고 싶겠지.

일단은 데이브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그러고 나서 나도 시동 좀 걸어야겠다.

* * *

레이드 시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람들은 몬스터에 대해서, 그리고 헌터라는 직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

국가 기밀급 정보들이 다수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고. 협회 측에서도 민감한 사항들을 제외하곤 어느 정도 썰을 풀고 다녀도 된다고 직접 허락했기에 나도 적당히 줄을 타면서 토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우리 셋 중에 먼저 선을 넘은 이가 있었다.

바로 데이브였다.

“부산에서 발생했던 GATE-1021, 이에 대해 정확히 모르실 겁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해운대 바다 아래에 던전으로 추정되는 잔해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거 말입니다.”

“저, 정말입니까?”

“예. 아무래도 바닷속에 있는 거라서 철거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물속에 던전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하면, 인근 주민들이 많이 불안해할 테고. 그리고 해운대가 관광 명소다 보니까 이런 소문이 퍼지면 안 좋은 영향도 끼칠 걸 우려해서 그동안 협회 측에서 비밀로 삼고 있었습니다.”

어이, 그거 말해도 되는 거냐?

물론 협회 쪽에서 어떤 건 말해도 되고, 어떤 건 말하면 안 되고 이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 공개 안 되었던 걸 말하니, 사람들 입장에선 당연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자기 쪽으로 싹 쓸어 오는 데에 성공한 데이브가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만큼 카메라 비중이 더 커질 테니까.

이해는 한다.

하지만 내 앞에서 그러면 안 되지.

“이거, 방송에서 안 풀려고 했는데.”

슬슬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려는 나를 보면서 데이브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나빈이가 옆에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런 뒤, 옷깃에 걸려 있는 마이크를 손으로 살짝 가리고서 내게 속삭였다.

“선배님까지 이상한 말 흘리시려는 건 아니시죠?”

“걱정하지 마. 나는 데이브하고 달라.”

우리 걱정 넘치는 후배를 먼저 안심시켜 주고 나서야 다시 말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제가 그러고 보니 드래곤을 어떻게 발견하고, 또 어떻게 싸우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썰을 푼 기억이 없는 거 같아서요.”

드래곤 이야기가 나오자, PD가 ‘됐어!’ 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듯 두 주먹을 힘 있게 불끈 쥐었다.

게이트를 소환하는 주체이자 원흉이었던 드래곤.

한마디로 말해서, 녀석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최종 보스 격인 존재였다.

다른 몬스터들은 몰라도,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 것이다.

왜냐하면 녀석 때문에 평화를 잃어버렸으니까 말이다.

다른 헌터들은 감히 드래곤 앞에 서 본 적도 없었다.

녀석이 브레스를 한번 뿜으면, 일반 헌터들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그대로 소멸되기 일쑤였다.

최소 SSS랭크 이상.

이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헌터는 나 말곤 없다.

옆에 있는 나빈이조차도 그 현장에 없었다.

물론 데이브도 강하긴 하지만, 1위와 2위 헌터의 실력 격차가 너무 크다 보니 데이브도 드래곤을 가까이서 상대해 본 적은 없었다.

오직 나뿐이다.

나만이 알고 있는 썰.

그리고 모든 인류가 궁금해하는 썰.

“타 방송에서는 수박 겉 핥기 식으로만 말씀드렸으니까, 이번 기회에 시원하게 한번 풀어 드리겠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서 MC도 기대가 되는 모양인지, 어느새 본인이 진행자 역할임을 망각하고 시청자 모드가 되어 버렸다.

반면, 데이브는 망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뭐, 물론 여기서 모든 썰들을 풀 생각은 없다.

나중에도 이런 식으로 자주 써먹어야 하니까.

* * *

그 덩치 큰 도마뱀과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가면서 싸운 보람을 설마 토크 예능 프로그램에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덕분에 한 가지는 확실히 얻어 간다.

이 토크쇼의 주인공은 나라는 확신을 말이다.

녹화가 끝나자마자 PD가 내게 다가와 연신 허리를 굽신 숙였다.

“감사합니다, 태오 씨! 말씀해 주신 에피소드들, 제가 편집 잘해서 방송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귀한 이야기 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어디 사는 누가 먼저 나를 도발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

PD가 고마워해야 할 상대는 그 ‘어디 사는 누군가’지만, 그걸 몰랐기에 나한테 와서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였다.

“나중에 또 게스트로 불러 주세요. 녹화 한번 해 보니까 현장 분위기도 좋고, 재미있는 거 같아서요.”

“그럼요! 제가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PD와 훈훈한 대화를 마친 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던 데이브에게 다가갔다.

데이브는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 방송에서 해도 되냐?”

“그거,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말인데.”

우리의 티격태격이 시작할 징조를 보이자, 나빈이가 먼저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선배님들, 보는 눈이 많으니까 여기선 그냥 넘어들 가세요. 그리고 강 선배님, 아까 이 소장님한테 전화로 들어야 할 거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아, 그랬지.”

내 정신 좀 봐.

촬영에 열중하느라 완전히 깜빡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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