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버프 받아라! (3)
요즘 이철민 소장에겐 한 가지 커다란 고민거리가 생겼다.
강태오의 노래가 헌터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해서였다.
“이상한데. 왜 안 되지?”
테스트에 지원한 헌터들에게 헤드셋을 착용하게 만들고 강태오의 데뷔곡인 ‘나의 길’ 한 곡만을 계속 듣게 한 시간만 자그마치 2시간째다.
이쯤 되니, 헌터들에게는 고문이 따로 없었다.
결국 참다못한 헌터 한 명이 헤드셋을 벗고서 밖에 있는 이철민 소장과 연구원들에게 버럭 외쳤다.
“이거,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합니까! 이러다가 정신 나갈 거 같아요!”
“네? 점심 나가서 먹을 거 같다고요?”
“정. 신. 나. 갈 거. 같. 다. 고. 요!!!”
방음이 잘되는 곳이라 그런지, 안에서 외치는 헌터의 항의가 연구원들한테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하기야, 연구원들도 헌터들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일반 가요들을 여러 개씩 세트 리스트에 담아서 2시간 동안 듣고만 있으라고 하면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한 노래만 들으라고 하면 멘탈에 금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쯤 되니 연구원들도 테스트에 참가한 헌터들이 불쌍해서라도 그들의 편을 들어 줘야 했다.
“저기, 소장님,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쉬었다가 하면 안 될까요?”
“저러다가 우리 테스트에 참여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떡해요?”
“…….”
입을 꾹 닫은 채 말을 아끼던 이 소장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헌터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아니, 될 뻔했다.
“대신에, 하나만 더 테스트해 봅시다.”
“또 뭡니까?”
다섯 명의 헌터들이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소장이 이들에게 제안한 내용은 이러했다.
“눈앞에 훈련용 더미가 있을 겁니다. 저걸로 간단한 전투력 측정만 하면 됩니다.”
그래도 2시간 동안 같은 노래를 들으라고 지시하는 것보단 훨씬 나은 제안이었다.
헌터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들끼리 알아서 순서를 정하기로 했다.
한 명씩 더미 앞에 섰다.
그런 뒤, 힘을 끌어모아 더미를 향해 강하게 주먹과 발을 내질렀다.
퍼억! 퍽!
스트레스 풀이라도 하듯, 헌터들의 주먹질과 발길질에 약간의 감정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이 소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순수하게 모니터 화면에 올라오는 이들의 능력치에만 집중했다.
테스트에 참여한 다섯 한터들의 랭크는 각각 B, B, B+, C, 그리고 A.
실험 결과.
이들의 전투력은 각자의 랭크에 맞게 적당하게 나왔다.
“쯧.”
결과를 확인한 이 소장이 자신도 모르게 짧게 혀를 찼다.
“이유를 모르겠군.”
이 소장의 이론에 따르면, 저 헌터들의 전투력 측정 결과는 최소 2단계 이상의 랭크업 상태로 나왔어야 한다.
이론상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 소장과 같이 결과를 응시한 다른 연구원들도 실망한 기색을 쉽게 감추지 못했다.
“윤혜미 헌터가 특이한 케이스인 걸까요?”
“아니, 윤혜미 씨에 대한 개인 정보를 샅샅이 조사해 봤는데, 다른 헌터들과 확연하게 구별될 정도로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헌터였다.
물론 헌터라는 존재 자체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건 아니다.
그저 이 소장이 헌터들과 워낙 밀접하게 지내야만 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이렇게 생각한 것뿐이다.
특별하다고 볼 게 아무것도 없었던 평범한 헌터, 윤혜미.
그런 그녀를 일시적으로나마 강하게 만들어 준 게 과연 무엇일까?
정말로 강태오의 노래와 관련이 없는 걸까?
여러 가지 의구심들이 마치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해양 생물들처럼 이 소장의 의식 속을 배회했다.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는 걸까……?”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서현 씨.”
“네, 소장님.”
“윤혜미 헌터한테 연락해 보세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시 이곳으로 불러 주세요.”
이철민에게 이런 고민을 안겨 준 주체를 다시 소환하는 수밖에 없다.
* * *
약속 시간은 3시까지.
그러나 윤혜미가 연구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15분이었다.
그녀가 삐질 땀을 흘리면서 말했다.
“저기, 그러니까요. 오늘은 왜 늦었냐 하면…… 사정이 좀 길어요. 설명을 드리자면…….”
질질 끄는 윤혜미를 향해 이철민 소장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딱 잘라 말했다.
“늦잠이겠죠. 이제는 여기에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핑곗거리 안 떠올리려고 해도 괜찮습니다.”
“아, 아하하…….”
뼈를 때리는 이철민 소장의 말에 윤혜미는 할 말이 없어졌다.
틀린 말도 아니고,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늦어도 이철민 소장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말이다.
“저번에 강태오 씨 노래를 듣고 일시적으로 전투력이 상승했다고 한 거, 기억나시죠?”
“네. 소장님이 아무래도 태오 씨의 노래가 저에게 버프 효과를 준 거 같다고 당시에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그 후에도 제 가설이 맞는지 직접 테스트를 해 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요. 테스트는 딱히 안 했어요. 레이드 시대도 아니고, 게이트도 안 열리고. 그래서인지 요즘은 집에 있어도 자체적으로 훈련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안 들더라고요.”
“몬스터는 그래도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전에 비해선 빈도가 엄청 낮잖아요.”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베를린 사건 이후, 여태껏 몬스터가 출몰해서 사람들을 괴롭힌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으니까.
목격담만 몇 개 있을 뿐. 실제로 헌터와 몬스터 들이 전투를 벌인 적은 최근엔 없다.
레이드 시대였더라면, 하루에 두세 번씩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헌터들 입장에선 평화의 시대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래도 몬스터가 위협적인 존재라는 건 여전하다.
게다가.
“어떤 괴물 같은 녀석이 세이렌, 머들린 무리처럼 인간의 눈을 피해 몰래 숨어 있을지 모르는 법이니까요. 그때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윤혜미 헌터 역시 꾸준히 훈련을 해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네.”
입이 삐쭉 튀어나온 윤혜미.
기껏 귀찮은 마음을 접고 여기까지 다시 왔는데, 들은 거라곤 잔소리뿐이니 그녀 입장에선 삐칠 만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철민 소장이 봐줄 인물은 절대로 아니다.
“여기서 다시 테스트를 해 보죠.”
“저번에 했던 것처럼요?”
“예. 강태오 씨 노래를 듣고, 훈련용 더미를 이용해서 전투력 측정을 하시면 됩니다.”
“귀찮은데…….”
“만약 협조해 주신다면, 소정의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윤혜미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테스트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받은 돈은 이미 넉넉하고.
상품이라는 걸 받아 봤자 그녀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될 만한 물건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하지만 이철민 소장이 준비한 상품은 윤혜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거였다.
“상품은 이겁니다.”
슬쩍 내용물을 공개했다.
강태오의 사인이 담겨 있는 음반.
이것을 보자마자 윤혜미의 눈빛이 180도 달라졌다.
“그, 그걸 어떻게 구하셨어요? 네?”
“본인한테 직접 가서 받아 왔습니다.”
“진짜로요? 소, 소장님, 태오 씨하고 아는 사이예요?”
“절친까지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협력 관계 정도는 됩니다.”
“세상에, 세상에! 어쩜 좋아!”
방방 뛰기까지 했다.
윤혜미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철민 소장은 그녀가 강태오의 열혈 팬이라는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강태오가 헌터로 활동할 때부터 그를 쭉 동경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가수로 데뷔했을 때에도 스스로 강태오의 팬임을 자처하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이철민은 윤혜미에게 단지 선의로 사인이 담긴 음반을 건넬 생각이 없었다.
“대신에 제가 원하는 만큼의 테스트 결과가 나오게끔 최선을 다해 주셔야 합니다.”
조건은 단지 이것뿐.
그러자 윤혜미가 지레 겁을 먹으며 말했다.
“호, 혹시…… 제 몸을 막 개조하거나 그러시진 않을 거죠? 네? 그, 영화에 나오는 사이보그 같은 거 말이에요!”
“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보셨네요. 이상한 망상 그만하시고, 빨리 들어가기나 하세요.”
이철민은 윤혜미와 농담 따먹기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세운 가설이 맞는지.
당장에라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윤혜미 씨, 잘 들립니까?”
유리벽 너머로 마이크를 통해 윤혜미에게 말을 거는 이 소장.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준비운동에 돌입한 윤혜미가 오케이 사인을 만들어 보였다.
실험에 시작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이제부터 태오 씨 노래 계속 틀 겁니다. 기본적으로 한 열 번만 반복해서 듣고, 그리고 바로 실험 시작해 보죠.”
열 번.
노래 한 곡이 대략 4분대라 치면, 총 40분을 같은 곡만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틀어 주세요.”
윤혜미는 어제 이곳에서 테스트에 참가했던 헌터들과 다르게 밝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강태오가 부른 ‘나의 길’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연구원들은 어제부터 거의 하루 종일 듣다시피 한 노래였기 때문에 어느 타이밍에 어떤 가사가 나올지, 이런 것들을 전부 다 외운 상태였다.
그렇게 지루한 40여 분간의 노래가 끝나고.
“이제 시작해 볼까요.”
이 소장의 지시에 따라 윤혜미가 바로 자세를 잡았다.
훈련용 더미를 향해 자신의 주특기인 정권 지르기를 날렸다.
그러자.
퍼어어엉-!
저번과 마찬가지로 훈련용 더미가 아예 박살이 나 버렸다.
이철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이번이 두 번째 기물 파손이어서 당황하는 윤혜미와 달리.
“그래, 이거였어!”
이철민 소장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였다.
* * *
스튜디오 앞에서 PD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승훈이 형이 전화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PD님. 이철민 소장한테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요.”
“그 이철민 소장님 말씀하시는 거죠? 뉴스에도 몇 번 나왔던 그분.”
“예. 태오가 개인적으로 부탁한 게 있었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뭔가 또 발견한 모양인가 봐요.”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힘들다.
왜냐하면…….
“3분 뒤에 바로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출연진분들은 슬슬 준비해 주세요!”
바로 이거 때문이다.
오늘은 ‘잡(Job)다한 녀석들’이라는 제목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가수 태오가 아닌 헌터 강태오로 섭외되었다.
게이트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몬스터들이 조금씩 남아 있다는 게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헌터의 필요성과 국민적 관심이 다시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 혼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었느냐.
그건 아니었다.
나하고 몇 차례 호흡을 맞췄던 헌터, 홍나빈이 같이 출연하기로 했고.
여기에 한 명 더 있다.
짧은 금발을 쓸어내리면서 스태프들을 뚫고 스튜디오에 등장한 남자.
데이브가 나를 보자마자 절로 인상을 구겼다.
하여간 이 녀석하고는 악연이다, 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