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9화 (29/250)

제9장. 버프 받아라! (2)

“그러니까…… 제 노래가 헌터들한테 ‘버프’를 줄 수 있다, 이겁니까?”

“네. 물론 어디까지나 제 가설일 뿐이지만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나는 그저 내 노래를 몬스터들을 교란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윤…… 뭐시기라는 헌터, 제 노래를 듣고 전투력이 실제로 올랐습니까?”

“다시 측정했을 때에는 그랬습니다. 본인은 B랭크 수준이었다고 하던데, 저희가 자체적으로 다시 측정을 해 보니까 근력 스텟 부문만 따져 봤을 때에는 S랭크 헌터를 웃도는 수치가 나왔습니다.”

“대박이네요.”

B랭크에서 S랭크라니.

자그마치 2단계를 건너뛰었다.

단순히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A랭크와 S랭크에는 큰 벽이 존재한다.

헌터끼리 가장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구간이 바로 A와 S다.

실질적으로 윤혜미라는 헌터는 3, 4단계의 전투력 상승 효과를 본 셈이었다.

프리스트라 불리는 헌터들이 줄 수 있는 버프 효과는 기껏해야 1, 2단계 상승에서 그친다.

이걸 고려한다면, 내 노래는 효율성 측면에 있어서도 굉장히 탁월한 면모를 보인 셈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존재했다.

이건 방금 전 이 소장이 직접 말한 것과 연결된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정확하게 입증된 게 아직은 없습니다. 저희도 윤혜미 헌터를 대상으로 실험한 것뿐이었고요. 그리고 버프 지속 효과도 금세 사라진 탓에 더 이상 테스트를 이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헌터들은요? 추가로 더 실험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문제는…….”

말끝을 흐리던 이 소장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윤혜미 씨 말고 다른 헌터들한테선 버프 효과가 없었다는 거죠.”

“…….”

희소식이 될 뻔했는데.

이건 안 좋은 소식이다.

그래서 이 소장도 나에게만 이렇게 은밀하게 이야기를 해 주는 거였다.

하기야, 효과가 이미 입증이 되었다면, 이미 난리가 나고도 남았겠지.

몬스터와의 전투 판도를 아예 바꿔 버릴 수도 있는 획기적인 발견이 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철민 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추가로 테스트를 계속해 볼까 합니다만.”

이 소장이 내게 양손을 내밀었다.

순간 ‘간식 달라고 조르는 반려동물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저한테 받아야 할 거라도 있습니까?”

“예, 태오 씨의 음반이 필요합니다.”

“음반이요? 노래는 디지털 음원으로도 충분하잖아요.”

“형태가 있는 음반으로 들을 때와 디지털 음원으로 들을 때의 차이점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만약에 대비해서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동원해서 테스트할 겁니다.”

지독하다, 참말로.

뭐, 그래도 꼼꼼한 건 좋은 거니까.

“알겠습니다. 승훈이 형, CD 챙겨 둔 거 있지?”

“어, 가수분들한테 나눠 주려고 가져왔던 거 몇 개 남았어. 소장님, 얼마나 드릴까요?”

이 소장의 대답은 굉장히 심플했다.

“가지고 있는 거 전부 다요.”

“그렇게나 많이 필요합니까?”

“예.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이 중에서 몇 개는 태오 씨 사인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사인이야 어렵진 않은데.

“혹시 제 사인도 연구에 도움이 됩니까?”

“아니요.”

“그럼 왜…….”

“…….”

뜸을 들이던 이 소장이 겨우 입을 열었다.

“헌터들 중에서 몇 명이 저한테 대신 태오 씨 사인 좀 받아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저희 테스트에 열심히 임해 준다고 하더군요.”

그런 이유라면야.

무조건 협력해야겠지.

펜을 들고 사인을 하려고 하던 찰나.

갑자기 이 소장이 추가로 내게 이런 부탁을 해 왔다.

“그…… 하나는 신경 좀 많이 써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간단한 메시지 같은 것도 들어가 있으면 좋겠고요.”

“받을 사람 중에서 제 광팬이 한 명 있나 보군요.”

지금까지 여러 팬들을 접했지만, 그중에서 헌터이면서 내 팬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제가 가져가려고 합니다.”

“……이 소장님 거였습니까?”

“예.”

‘제 팬이었습니까?’라고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뭐…… 다른 이유가 있겠지.

이유가.

* *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로 라디오 녹음에 참가하고, 오후에는 토크 예능에 출연해서 6시간 가까이 녹화를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늦은 저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승훈이 형이 짐들을 차 안에 실으면서 내게 말했다.

“어서 타라, 태오야. 대표님 배고프시다고 난리도 아니다.”

오후 2시쯤이었나. 내가 한창 녹화할 때에 연 대표로부터 식사를 같이하자는 전화가 왔었다.

“가는 데 얼마나 걸려?”

“차로 한…… 30분, 40분? 그래도 퇴근 시간대하고 아예 겹치진 않으니까 엄청 늦게 도착할 거 같진 않은데. 그래도 밀리긴 하겠지. 서울이니까.”

서울의 교통체증은 레이드 시대 이전이나, 이후나 항상 유명하다.

“아무튼 큰일이야. 대표님한테 늦어도 8시 안에는 가겠다고 했었는데.”

“연 대표님, 약속 늦는 거 엄청 싫어하시잖아.”

“그래서 걱정이라고 말하는 거야.”

차를 타고 연 대표가 있는 곳까지 8시 안에 가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형, 차는 여기 놔두고, 대리 불러서 대신 운전해서 가져가라고 할까?”

“가져가라고? 그러면 우리는 뭐 타고 가는데? 택시?”

“아니.”

주섬주섬.

오늘 내가 집에서 챙겨 온 커다란 가방 안을 뒤적였다.

토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 내가 직접 챙겨 온 게 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 쓰던 아이템들.

아이템은 몬스터를 없애면 확률적으로 드랍되는 경우가 있고, 이철민 소장처럼 몬스터나 아이템, 헌터들의 각성 능력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제작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꺼낸 팔찌 아이템은 후자의 경우에 속했다.

“이걸로 가자는 거지.”

다른 연예인들이 차를 타고 바삐 움직일 때.

우리는 우리만의 수단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동속도와 도약력을 비약적으로 올려 주는 버프 아이템, 헤이스트 브레슬릿.

몬스터와 전투를 펼칠 때, 내가 자주 애용했던 꿀템이기도 하다.

승훈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내가 건넨 헤이스트 브레슬릿 팔찌를 왼쪽 손목에 착용했다.

“그러자. 일단은 대리운전부터 부르고. 기사 오면, 바로 출발하자고.”

“오케이.”

전화를 걸고 나서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바로 우리가 있는 주차장으로 도착한 대리운전 기사.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는 얼굴로 우리들 앞에 섰다.

평상시의 나였더라면 팬 서비스를 진득하게 해 줬을 텐데.

오늘은 많이 바빠서 그럴 수가 없었다.

승훈이 형이 대리운전 기사에게 차 키를 맡기고서 회사까지 알아서 운전해 달라고 말을 건넸다.

그사이, 나는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준비 완료.

승훈이 형이 내 옆에 나란히 섰다.

“가 볼까?”

“그러자.”

이야기할 시간조차 없다.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바로 시작해야 한다.

“레디…….”

“고!”

퍼어엉-!

공기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우리 두 사람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대리운전 기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하늘로 날아오르다시피 하는 우리 둘을 바라봤다.

뭐, 레이드 시대 때에는 이게 일상이었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 * *

모 히어로 영화를 보면, 고층 빌딩 사이로 거미줄을 내뿜으면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헤이스트 브레슬릿을 착용한 나와 승훈이 형이라면 그거 비슷한 액션을 재연하는 게 가능하다.

건물 옥상 위를 마치 돌다리처럼 디디면서 앞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는 우리.

시원한 도시 공기가 우리들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오랜만에 이렇게 이동하니까 기분이 좋다.

‘레이드 시대가 막 끝났을 때에는 이러지도 못했었는데.’

게이트가 닫히고, 괴물들이 사라지면서 세계 각국들은 헌터들의 능력 사용 자제와 아이템 사용 금지를 법안으로 추진했다.

괴물들과 싸울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닌 헌터들을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아이템도 이와 비슷한 논리에서 사용이 금지되었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훨씬 우월한 힘을 지닌 존재를 늘 두려워하니까.

헌터들을 통제하면서 이들이 어긋난 생각을 하지 않도록 각종 배려책을 내놓았다.

물론 몇몇 헌터들은 불만을 가졌다.

이런 이상한 분위기가 조장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몬스터들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고.

규제 법안을 이미 시행하고 있거나 아니면 논의 중에 있던 국가들은 어쩔 수 없이 이것들을 없던 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즉, 아이템 사용 제한도 풀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승훈이 형과 펄쩍펄쩍 점프를 하면서 도심을 가로지르는 것도 가능해졌다.

승훈이 형도 아이템을 사용해 이렇게 이동하는 게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좋네, 이거! 태오야, 앞으로 우리, 방송 스케줄 있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움직일까?”

“메이크업하고 헤어 다 망가지잖아. 형, 운전하기 싫어서 그런 말 하는 건 아니지?”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저기, 우리 회사 보인다.”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회사 로비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연 대표의 모습이 보였다.

쿵! 쿠웅!

연 대표 바로 앞에 착지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들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연 대표는 헌터 출신이라서 그런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이런 식으로 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안 늦었으니까 봐주세요, 대표님.”

내가 헤헤 웃으면서 말하자, 연 대표가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아이템 사용 제한이 풀렸다고 해도,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말고는 웬만하면 사용하지 마. 사람들이 불안해하니까.”

“알겠습니다.”

연 대표의 말도 틀린 게 없다.

나와 승훈이 형이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으면 괜히 사람들이 ‘또 몬스터 나온 거 아니야?’ 하고 불안해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뭐, 그때는 훈련 명목이라는 핑계로 적당히 둘러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연 대표와의 약속 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우리는 미리 예약을 잡아 둔 식당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연 대표가 우리를 보자고 한 이유에 대해 먼저 물었다.

“이 소장이 너희한테 한 말 들었다. 태오 노래가 헌터들에게 버프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게 발견되었다고 하던데, 진짜냐?”

기대감이 넘치는 저 표정을 보고 있자니,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어차피 연 대표도 알고 있어야 하니까.

승훈이 형 대신 내가 대답했다.

“네. 그런데 아직은 잘 모르겠대요.”

“모른다고?”

“윤혜미라는 헌터가 일시적으로 강해진 이유가 정말로 제 노래와 연관이 있는지 추가로 밝혀내야 하는데…… 지지부진하다고 그러더라고요.”

바로 어제, 이 소장한테서 받은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연 대표에게도 그간의 사정을 알려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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