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8화 (28/250)

제9장. 버프 받아라! (1)

1위 수상의 이력 덕분일까.

방송국을 나서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한테서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일일이 감사하다는 말을 다 전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철민 소장한테서 새로운 내용의 보고를 들어야 했기에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카페로 갈까요?”

내가 묻자, 이철민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국 근처에 있는 카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방금 전에 공개 녹화가 끝나서 팬들이 카페들을 모조리 점령해 버린 탓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들의 눈에 덜 띄는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카페로 향했다.

작은 동네 카페 간판을 보면서 이철민 소장이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 꽤 마음에 드네요.”

이철민 소장은 크고 화려한 것보다 작고 소박한 것을 좋아한다.

머무는 공간이 너무 크면 부담스럽다나 어쨌다나.

기술 특허 같은 걸로 돈도 꽤 모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철민 소장은 돈 쓰는 데엔 취미가 영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 소장의 영혼의 파트너라 할 수 있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포함해서 나와 승훈이 형이 마실 음료들까지 추가해 총 세 잔을 주문했다.

음료가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이 소장이 나와 승훈이 형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먼저 꺼냈다.

“헌터들 중에서 ‘프리스트’라고 불리던 존재를 아십니까?”

“알죠.”

나도, 승훈이 형도 헌터인데, 그걸 모를 리가 있나.

프리스트.

헌터처럼 별개의 존재로 분류되어 있는 건 아니고, 그들 역시 각성자이면서 헌터라고 할 수 있다.

전투적인 능력이 극대화된 나 같은 헌터들과 달리, 프리스트들은 헌터들을 보조해 줄 수 있는 이동속도 증가나 근력 강화, 시력 강화, 대미지 증감 등 특수 스킬들을 구사하는 이들이다.

주로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이 프리스트로 각성하곤 했다.

그러나 그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

매우 희귀한 케이스였기에 대부분은 프리스트라는 존재 없이 몬스터와 전투를 치러야 했다.

그런데 왜 여기서 프리스트가 거론되는 걸까?

이 소장이 던진 이 말은 소위 말해서 떡밥이었다.

“어쩌면 태오 씨도 프리스트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종교인이 되나요?”

“아니요. 그거 말고요.”

내가 애먼 곳을 두드려서 그런 걸까, 이 소장의 목소리에서 살짝 짜증이 묻어났다.

“헌터들한테 버프 주는 일 말입니다. 이거, 태오 씨 노래라면 가능할 수도 있을 거 같다고 말한 겁니다.”

“……?”

아니, 이것까진 바라지 않았는데.

진짜냐, 이거?

* * *

강태오가 한창 데뷔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을 무렵.

이철민 소장 역시 나름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국과 베를린에서 벌어졌던 세이렌, 머들린 무리와의 전투들을 좀 더 구체화시켜 만든 데이터들을 보고 또 분석하는 이철민 소장.

그와 같은 연구팀에 소속되어 있는 다른 연구진은 거의 3주 내내 쉬지도 못하고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 소장의 눈은 여전히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오히려 소장님은 쉴 때가 더 힘없어 보이는 거 같아요.”

연구원 중 한 명이 자신의 생각을 슬쩍 흘렸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또 다른 연구원이 이 말에 힘을 보탰다.

“‘같아요’가 아니라 실제로 그래. 우리 소장님은 일하고 있을 때가 쉬는 거라고 말하고 다니실 정도니까.”

“대단하시네요.”

“저러시니까 학계 권위자로 불리시는 거겠지.”

엄청난 탐구열. 이것이 이 소장을 널리 알리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영상 속 소리를 수십 번도 넘게 들어 보던 이 소장은 짧게 기지개를 켜고서 몰래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연구원들에게 물었다.

“오늘 오기로 한 헌터들은 언제쯤 도착한다고 합니까?”

“예? 자, 잠시만요. 그게 그러니까…… 아, 1시 20분쯤에 온다고 합니다. 오다가 앞에서 사고가 났나 봐요. 그거 때문에 길이 좀 막힌다고 하네요.”

“그래요? 너무 늦지 않게 와 달라고 연락하세요. 이다음 실험 일정도 있으니까.”

“네, 소장님.”

흰색 가운을 걸친 채 자리에서 일어난 이 소장.

화장실에 가려는 걸까?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찰나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두 연구원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권위자라고 불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편하게 소장님이라고 불러 주세요.”

“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안 들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소장은 다 듣고 있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연구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연구원들은 처음엔 이 소장이 다시 복귀한 줄 알았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해요!”

탄탄한 팔근육을 자랑하는 단발의 젊은 여성이 연구원들을 보자마자 곧장 사과했다.

“윤혜미 씨?”

“네, 제가 윤혜미입니다. 여기, 임시 출입증도 있어요.”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기에 출입 허가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없으면, 이곳까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헌터로 활동 중인 윤혜미임을 확인하자마자 연구원 한 명이 그녀를 빈 공간으로 안내했다.

“소장님은 잠깐 어디 가셔서요. 아마 곧 오실 거예요.”

“네. 근데 저거는 뭔가요?”

한가운데에 위치한 인간형 더미.

연구원이 윤혜미의 물음에 미소로 답했다.

“아, 저거는 곧 치울 거예요. 불편하시다면 바로 치워 드릴까요?”

“아니요. 소장님 오실 때까지 잠깐 저걸로 몸이나 풀고 싶어서요. 그래도 되죠?”

“네, 어차피 훈련용이니까요. 마음껏 하세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장시간 운전해서 그런지 너무 찌뿌둥하더라고요.”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운동을 마친 윤혜미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훈련 더미는 외부 충격에 웬만하면 파괴되지 않도록 제작되어 있다.

그래서 연구원은 별다른 생각 없이 마음껏 두들겨도 좋다고 말을 했던 거였지만.

이들의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압!”

윤혜미가 크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녀의 맨주먹이 훈련 더미의 가슴팍에 정확히 꽂혔다.

그 순간, 주먹과 맞닿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커다란 균열이 생성되었다.

“어어……?”

윤혜미 본인도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쩌적!’ 하며 뭐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훈련 더미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아, 아니, 이게 왜……?”

윤혜미뿐만 아니라 연구원들도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다시 자리로 복귀한 이 소장.

“무슨 일입니까? 아까 뭔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던 거 같은데?”

“소, 소장님, 그게 말이죠…….”

연구원들이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윤혜미 역시 이철민 소장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제야 완전히 조각조각으로 박살이 나 버린 훈련 더미를 확인한 이 소장.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거, 누가 저렇게 만든 겁니까?”

윤혜미와 연구원들은 이철민 소장의 낮은 톤에 잔뜩 위축되었다.

본인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연구소의 소중한 자원을 망가뜨렸으니까 배상을 요구할 거라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역시.

“죄송합니다. 제가 저질렀습니다!”

자백이다.

윤혜미가 방금 전 자신이 했던 일을 이철민 소장에게 스스로 일러바쳤다.

그냥 몸 좀 풀려고 가볍게 주먹을 휘둘러 본 것뿐인데.

“설마 이렇게 쉽게 박살 날 줄은 몰랐어요. 정말로 죄송해요!”

“…….”

훈련 더미 조각을 손으로 집어 들어 면밀히 살피기 시작하는 이철민 소장.

“이거, 어떤 더미인지 알고 있습니까?”

“예?”

“더미 스펙 말입니다.”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S랭크 이하의 헌터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절대로 파괴되지 않을 방어력과 내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장의 시선이 윤혜미에게 고정되었다.

“윤혜미 씨의 랭크는 B로 알고 있습니다만.”

“네…… 그렇죠.”

그녀가 받은 임시 출입 허가증에도 ‘헌터(B)’라고 옆에 랭크가 명확하게 새겨져 있었다.

“최근에 승급했는데, 갱신이 안 된 겁니까?”

“아니요. 전투력 측정이 바로 저번 주였어요. 그때도 여전히 B랭크가 나왔었는데…… 이상하네요. 근데 정말로 저거, 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제가 절대로 파괴 못 시킬 더미 아닙니까?”

“그렇게 되겠죠.”

“근데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건가요?”

“그걸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이철민 소장의 눈빛이 더욱 반짝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모르는 이상 현상을 접했을 때, 그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 소장이 손을 내밀자, 연구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수첩과 볼펜을 그의 손에 직접 들려 줬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뭐 하셨습니까?”

“네?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진 못했고요. 점심때쯤에 느지막하게 일어났습니다.”

“점심쯤에 일어났다면, 아무리 빨리 준비한다고 해도 집에서 대충 12시 반쯤에 나올 수 있었을 테고. 혜미 씨 집에서 여기까지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니까,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원인이 교통체증이 아니라 늦잠 때문이었다는 뜻이겠네요.”

“아하하…….”

마치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윤혜미의 거짓말을 척척 밝혀내는 이 소장의 모습에 그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럼 여기까지 오는 동안 뭐 했습니까?”

“특별히 뭘 한 건 없어요. 운전에 집중해야 했으니까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온 게 아니라 자기 차를 끌고 왔기에 다른 짓을 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차 안에서 평소와 다른 걸 했습니까?”

“아니요.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

“그럼 차에서 했던 모든 행위들을 저한테 말해 보세요.”

소거법으로 접근하기로 작전을 바꾼 것이다.

“안전벨트 매고, 차에 시동을 걸고, 그리고 핸들을 잡고. 올림픽대로 타고 쭉 달려서…… 그리고 여기에 도착했어요.”

“그게 다입니까?”

“아, 오다가 심심하니까 노래 들으면서 오긴 했는데, 이건 별 상관 없겠죠?”

“무슨 노래를 들었습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 소장은 말 그대로 윤혜미의 행적을 100퍼센트 전부 다 기록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윤혜미의 입에서 굉장히 신경 쓰일 만한 말이 흘러나왔다.

“최근에 유행하는 곡들 다 들었어요. 제가 원래 최신곡에 굉장히 민감하거든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일간 순위에 올라온 노래는 한 번씩 싹 정주행하곤 해요.”

“음원 플랫폼이 어디입니까?”

“코코넛이요. 리스트 보여 드릴까요?”

“네, 가급적이면 오면서 들었던 노래 목록 전부 다요.”

지난주 차트 순위에 올라온 곡들과 오늘 순위에 랭크된 곡들을 쭉 비교했다.

윤혜미가 저번 전투력 측정 때 똑같이 B랭크가 나왔다고 했으니까.

노래 때문이라면 지난주 이전에는 없다가 이번 주에 새로 랭크인한 노래를 들어서 윤혜미의 전투력이 급격하게 올라왔다는 뜻이 된다.

비교를 해 본 결과.

이 소장이 생각한 조건에 부합되는 노래가 딱 한 곡 존재했다.

노래 제목은 ‘나의 길’.

부른 가수는…….

“강태오 씨네요.”

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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