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7화 (27/250)

제8장. 후배가 인사드리겠습니다 (2)

후배가 인사드리러 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커스티 멤버들에게 오히려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사실 어딜 가든 사람들이 내게 호감을 보이는 일은 익숙하다.

목숨을 걸고 몬스터와 싸우면서 세계를 지켜 냈으니까.

물론 나 혼자만 해낸 일은 아니다.

나 말고도 전 세계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각성자 자격을 얻고 헌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 활약이 유독 사람들에게 두드러지게 보인 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헌터 랭킹 1위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그만큼 많은 활약을 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마트에 가서 직접 장을 봐 오는데, 가게 사장님이 이 정도는 자기가 서비스로 주겠다고 하고선 계산도 안 해 주고 나를 보냈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연예계에서도 이런 비슷한 케이스가 종종 있었다.

지금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멤버들 중에서도 특히 리더인 용하 씨가 나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저희 아버지가 공사 현장에서 일하셨거든요. 소위 노가다 일로 돈을 버셨는데…… 예전에 강북에서 게이트가 크게 한번 열린 적 있지 않습니까.”

‘GATE-2981’이라는 코드로 불리는 녀석이다.

한국에서 발생한 게이트 현상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컸었다.

그만큼 인명, 재산 피해도 막대했다.

“그 현장에 저희 아버지도 계셨거든요. 현장에 있다가 갑자기 몬스터들이 튀어나와서 자칫 잘못했다간 돌아가실 뻔했는데, 태오 씨가 오셔서 괴물 놈들을 싹 쓸어버린 덕분에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때군요.”

나도 얼추 기억이 난다.

원래는 그날, 쉬는 날이었는데.

게이트 규모가 워낙 컸던 탓에 협회장이 쉬고 있던 나에게 다이렉트로 연락해서 미안한데 출동 좀 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트렁크에 실었던 케이스를 놔두고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만약에 내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피해는 더 컸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데, 아무리 내가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라 할지라도 못 본 척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당시에는 헌터 랭킹 1위라는 이름값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기도 했었고.

그래서 출동했는데, 설마 내가 했던 일이 이런 형태의 보답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날 이후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태오 씨한테 꼭 보답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출연하신다는 말 듣고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먼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후배가 선배님한테 인사드리러 오는 게 당연하니까요.”

“아휴! 저희끼리 선후배를 어떻게 따집니까. 나라를 구한 분이신데, 편하게 있으셔도 됩니다.”

내 계산과는 다른 일이 벌어졌지만.

뭐, 이것도 나쁘지 않다.

* * *

선배 가수들에게 인사를 하러 갈 때에는 내심 이런 생각도 들었다.

텃세 부리면 어떻게 하나?

그러나 커스티를 시작으로 그 누구도 나에게 텃세를 부리는 가수가 없었다.

오히려 용하 씨가 그랬던 것처럼 다 나와 한 번쯤은 인연이 있었던 모양인지, 최대한 잘 대해 주려고 노력했다.

어떤 걸 그룹은 스케줄 때문에 지방 출장을 가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와이번들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처했다가 내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고.

또 어떤 솔로 가수는 몬스터 관련 특집 예능을 촬영하다가 진짜로 살아 있는 몬스터가 튀어나와서 위험할 뻔했는데 내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다고 그러고.

제각각 그들의 사정이 있었다.

물론 나는 전혀 모르던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대접만 받다가 다시 대기실로 오게 되었다.

나와 함께 순회공연을 돌았던 승훈이 형도 우리에게 벌어진 지금의 이 상황이 기가 막힌 모양인지 짧게 소감을 토로했다.

“오히려 선배 가수들한테 대접받으려고 한 바퀴 뺑 돈 기분이네.”

“실제로 그랬는데.”

오히려 인사를 받고 다니는 내가 역으로 부담스러웠다.

의도와는 다른 형태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선배 가수들한테 인사를 하긴 했으니까.

여기서 만족하기로 했다.

이제 슬슬 오늘의 본론이기도 한 무대 준비에 들어갈 차례다.

마침 스태프가 내 대기실을 찾아왔다.

“리허설 준비 다 끝났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쇼케이스 당시에는 나 혼자만 무대에 서는 거였기 때문에 다른 가수들은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오늘은 가요 프로그램 녹화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팀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리허설을 가지기 위해 댄서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선 나는 자연스럽게 관중석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까 내가 인사를 건넸던 가수들이 전부 다 와서 자리를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팀의 리허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기 위해 저런 식으로 앉아 있는다는 말은 듣긴 했는데.

직접 경험해 보니까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들은 일반 관객이 아닌, 현직 가수들이니까.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일단 내 목적은 하나다.

‘내가 장난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게 아니라는 걸 먼저 보여 줘야겠지.’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인 건 아니다.

나도 한 명의 가수로서.

저들에게 동료로 인식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땀 좀 빼 볼까?’

리허설이지만 본무대 못지않게 열심히 뛰어 보기로 했다.

* * *

내가 오늘 녹화에 참여할 가요 프로그램, ‘뮤직 홀릭’은 공개 녹화로 진행된다.

아무리 생방송이 아닌 녹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할지라도, 객석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야 노래 부르는 맛이 나지 않겠나.

아무리 조명이 휘황찬란해도, 아무리 음향이 빵빵해도, 아무리 화려한 연출 효과가 들어가도.

팬들의 환호성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다.

어느새 굳어진 내 컬러, 그레이톤으로 칠해진 응원 도구들을 들고 등장한 팬들이 녹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내 이름을 연호하면서 응원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무대 바로 뒤에 있어서 그런지 팬들의 목소리가 아주 생생하게 들렸다.

욕심 같아선 나도 화답을 해 주고 싶지만,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여긴 내 단독 쇼케이스가 아니니까.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나서면 안 된다.

다른 가수들과 그들의 팬들도 생각을 해 줘야 한다.

신인 가수든, 짬이 찬 선배 가수든 무대에 오르는 이상, 모두가 주인공이니까.

내 잘난 맛에 모든 것을 다 독점하려고 하면, 그만큼 적이 늘어나는 법이다.

그래서 오늘은 적당히 몸을 사릴 생각이다.

어디 보자, 내 차례가…….

‘맨 마지막인가?’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마지막 순번.

화제성만 놓고 본다면, 당연한 배치라고 생각한다.

여기 음악 프로그램 PD가 뭘 좀 알긴 아네.

신호에 따라서 마침내 녹화가 시작되고.

첫 무대를 장식할 팀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대기실에서 편하게 타 팀의 무대를 지켜볼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봐야 현장감을 느낄 수 있지.’

그래서 일부러 무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중이다.

멀리 있어서 잘 안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일반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걱정에 불과하다.

각성 능력을 가진 우리 헌터들은 필요에 따라 시력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지금이 그 능력이 필요할 때다.

첫 번째 무대가 끝나자마자 젊은 남녀 MC들이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뮤직 홀릭! 진행을 맡은 현수.”

“소해입니다. 반가워요!”

상큼함이 묻어 나오는 MC의 멘트에 사람들이 환호했다.

둘 다 인기 그룹의 멤버로 속해 있기에 MC라 할지라도 객석의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다.

오죽하면 다른 가수들의 무대를 보러 온 게 아닌, MC만 보러 온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두 번째, 세 번째 무대가 계속 이어지는 동안 스태프들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상당히 오래 걸릴 줄 알았던 가요 프로그램 녹화도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마침내 내 차례가 도래했다.

“태오 씨, 올라갈 준비 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이미 쇼케이스 무대를 경험한 덕분일까.

크게 긴장이 되거나 그러진 않았다.

전주가 흘러나오자마자 팬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꿈속의 너에게 사로잡혔어.(강태오!)

사랑이란 이름의 속박 아래에.(빠졌어!)

선명한 느낌.(Feeling!)

아찔한 네 향기.

네 눈동자를 닮은 Blue.(Blue!)

팬들한테 따로 콜 넣는 방법 같은 걸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두 번째 무대밖에 안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팬들이 내 노래에 따라 콜을 넣고 있었다.

승훈이 형도, 그리고 음악 프로그램 관계자들도 벌써 이런 열띤 응원법이 펼쳐질 거라곤 예상 못 했던 모양인지 얼굴 표정에 놀라움이 스쳤다.

2절 후렴구에 들어서면서 적절한 타이밍에 펑! 소리와 함께 꽃가루가 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엔딩요정’ 포즈까지.

헉, 헉…….

들숨 날숨을 반복하면서 시선은 끝까지 카메라를 응시했다.

살짝 흐트러진 머리와 흘러내리는 몇 방울의 땀까지.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엔딩이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다 끝난 건 아니었다.

이번 주 인기 순위 1위를 가리는 시간.

음반 판매와 디지털 음원, 그리고 소셜 미디어 점수와 시청자 인기투표를 합산해서 한 주 동안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트렌드를 이끌었다고 판단되는 팀이 가려진다.

가수라면 모두가 다 원하는 영광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오늘 출연했던 가수들이 전부 무대 위로 올랐다.

긴장되는 순간.

오프닝을 장식했던 두 MC가 큐시트를 들고 카메라 정면에 나섰다.

“오늘의 뮤직 홀릭, 어떠셨나요?”

“재미있게 보셨나요?”

MC들의 말에 맞춰서 관객들이 크게 호응했다.

“자, 그럼 이번 주 뮤직 홀릭 1위 후보 팀들부터 공개해 볼까요?”

“보여 주시죠!”

후보로 거론될 두 팀이 공개되었다.

한 팀은 내가 오늘 여기에 와서 가장 처음으로 인사를 하러 갔던 선배 가수 그룹인 커스티였다.

그리고 다른 한 팀의 정체는…….

‘나네.’

얼추 예상은 했었다.

실제로 여전히 내 노래가 음원 차트 1위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음원이 공개된 기간이 너무 짧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 주는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내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각 부문별로 빠르게 점수가 매겨지기 시작했다.

음반 판매, 디지털 음원에선 최근 기하급수적인 상승세를 보였던 나의 승리.

소셜 미디어 점수 역시 내 승리다.

시청자 인기에선 근소한 차이로 커스티에게 밀렸지만, 그렇다고 커스티가 이겼다고 보긴 힘들다.

긴장되는 순간.

“이번 주 뮤직 홀릭! 영예의 1위는 바로……!”

“태오 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펑! 퍼벙! 펑!

다시 한번 꽃가루가 휘날리면서 내 1위 수상을 축하했다.

커스티 멤버들도 진심으로 내 1위 수상을 축하해 줬다.

우승 소감을 빼놓을 수 없지.

마이크를 넘겨받은 나는 팬들을 향해 짧은 소감을 전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하는 ‘가수’ 태오가 되겠습니다! 팬 여러분, 사랑해요!”

유독 ‘가수’라는 단어를 강조해 말한 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헌터가 아니라 가수 태오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 * *

큰일을 치르고 대기실에 왔을 때.

승훈이 형이 내게 말했다.

“손님이 왔다.”

“손님?”

승훈이 형의 뒤에 가려져 있던 이철민 소장이 스윽 모습을 드러냈다.

“1위 축하드립니다, 태오 씨.”

“감사합니다.”

근데 설마 이거 축하해 주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건가?

이 소장의 성격상, 그렇진 않을 텐데.

내 예상대로, 이 소장이 나를 찾아온 본론을 바로 언급했다.

“아주 재미있는 실험 결과가 나와서요. 이야기, 들어 보시겠습니까?”

솔직히 좀 피곤하긴 하지만.

“물론이죠.”

안 들어 볼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