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6화 (26/250)

제8장. 후배가 인사드리겠습니다 (1)

한때는 내가 가수라는 꿈을 다시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곤 했었다.

그러나 이 걱정은 어제 이후로 말끔히 사라졌다.

화려했던 데뷔 쇼케이스 무대.

동 시간대뿐만 아니라 근래 들어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내 단독 데뷔 프로그램은 방송이 끝난 이후에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직도 인터넷에 들어가면 내 데뷔를 앞다투어 다루는 기사, 영상 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올렸다 하면 무조건 조회 수가 보장되니까.

그래서 다들 나와 관련된 소식이라면 하나라도 어떻게든 건져 내려고 노력 중이었다.

나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최재현 국장도 아침부터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축하드립니다, 태오 씨. 원래는 어제 바로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무대 끝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그래서 정신없으실 거 같아서 일부러 오늘 전화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미리 사과를 드려야겠네요.”

-예? 왜요?

“당분간 소속사에서 너무 정보를 많이 흘리고 다니지 말라고 해서요. 그래서 이렇게 연락 주셔도 뭐라 슬쩍 흘려 주기 힘듭니다.”

나는 이리저리 빙빙 돌려 가며 말하는 성격이 아니다.

할 말이 뚜렷하게 있으면, 그냥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더 귀찮은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 국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바라고 연락드린 건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순수하게 데뷔를 축하해 드리고 싶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본인이 그렇다면야, 그런 거겠지.

몬스터라는 공공의 적이 있는 상황에서 타인을 의심하는 습관은 좋지 않으니까.

-대신에 좋은 소식 하나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만.

“좋은 소식이요?”

-예. 혹시 소속사에서 음원 순위 들으셨습니까?

“아니요. 오늘 출근해서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미리 스포일러 해 드릴까요?

영화 스포였다면 바로 끊어 버렸을 테지만, 이런 스포는 괜찮지 않을까.

“뭔가 알고 계신가 보군요.”

-예, 미리 말씀드리자면…… 태오 씨 노래가 벌써 일간 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대형 음원 플랫폼 3사 전부 다요.

그랬군.

높은 순위가 나올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벌써부터 음원 차트 ‘기강 잡기’에 들어갔을 줄은 몰랐다.

최 국장은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는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이 기세라면, 해외 차트에서의 성적도 기대해 볼 법하네요. 지인들을 통해서 각국 소식도 슬쩍 들어 봤는데, 그쪽 반응도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K-POP 역사상 최단기 1위가 탄생할 거 같다는 전망도 있더군요.

몬스터들과의 싸움이 내 노래 홍보에 지대한 효과를 불러일으켰으니까.

하지만 이에 대해서 최근에 내 고민거리가 생겼다.

‘계속 세이렌하고 머들린만 나오란 법은 없으니까.’

만약에 세이렌처럼 음파 스킬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가 아닌 일반 몬스터라면, 내 노래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전장에서 노래를 틀면, 헌터들의 집중만 흐트러뜨린다는 비판이 쏟아질 게 뻔하니까.

그러면 ‘세계를 구할 노래’에서 ‘그냥 유명한 헌터가 부르는 노래’로 타이틀이 바뀌게 될 것이다.

이게 내 요즘 고민거리의 정체다.

나는 내 노래를, 내 데뷔를, 내 연예계 활동을 일회성 반짝임으로 끝낼 생각이 없다.

이대로 쭉, 계속해서 내 인지도와 영향력을 키워 가고 싶다.

이런 복잡한 생각 때문에 최 국장이 전해 준 희소식을 마냥 기쁘게 받아들이진 못했다.

그래도 좋은 소식 알려 주려고 일부러 이 시간에 나한테 전화까지 해 준 사람이니까.

“감사합니다. 나중에 제가 밥이라도 한번 살게요.”

-그래 주신다면야 영광이죠. 연예계에서 조사가 필요한 일이라든지, 그런 게 있으면 언제든 저나 남 기자한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마당발 매체로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알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장님.”

-천만에요. 나라를 구하신 분인데, 이 정도 편의는 당연히 봐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아직은 나라를 구했다고 단정하기 이르다.

여전히 몬스터들이 남아 있으니까.

* * *

데뷔 이후에 당연하게도 내 스케줄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꽉 차게 되었다.

빈틈이 없이 빽빽한 스케줄 표를 보고 있을 때, 잠시 HT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건너온 연수하 대표가 내게 물었다.

“안 피곤해? 헌터 활동할 때보다도 더 바빠 보이는데.”

“피곤하다기보다는 재미있습니다. 제가 안 했던 걸 하려니까 그런 거 같아요.”

“너 헌터 생활 막 시작했을 때도 그렇게 말했는데. 기억나?”

“제가 그랬나요?”

아무것도 모르던 햇병아리 헌터 시절, 여러모로 나를 챙겨 줬던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는 연수하 대표다.

이런 고마움 때문에 연수하 대표가 나중에 헌터를 은퇴하고 헌터 매니지먼트를 차린다고 했을 때, 조건 따지지 않고 바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오랫동안 나를 봐 왔던 사람이라 그런지, 재미있다는 내 말에 더 이상 반론을 늘어놓지 않았다.

“하긴, 너는 예전부터 네 마음에 들어야 행동으로 임하는 성격이었으니까. 연예계 일도 부담 가지지 말고 재미있게, 마음껏 해 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연 대표님.”

“어, 왜?”

“이철민 소장한텐 아직 연락 없습니까?”

내 고민거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확실한 돌파구가 바로 이철민 소장이다.

그런데도 여태껏 이 소장은 침묵하고 있었다.

연 대표는 혹시나 연락받은 게 있나 싶어서 물어본 건데.

“어, 협회장님한테 듣자 하니, 벌써 한 달 가까이 연구소에 틀어박혀 있다고 하던데. 찾아가도 맨날 뭐 때문에 그리 바쁜지 도통 만날 수가 없다고 그러고.”

“이 소장답네요.”

하나에 몰두하면 아예 주변을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다.

연 대표가 내 어깨를 토닥여 줬다.

“뭐, 예전처럼 몬스터가 막 미친 듯이 나오거나 하는 시대는 아니니까, 너도 너무 그쪽에 부담 가지지는 마라.”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 연예계 생활이랑 연결이 되니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건데.

그럼에도 연 대표는 현 상황이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모양인지 조급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방송 잘하고 오고. 너 관련 기사에 악플 같은 거 달리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라.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당연하게도 성격에 모난 사람들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한다.

헌터 일이나 열심히 하지, 굳이 왜 가수로 데뷔까지 했냐면서 주기적으로 악플을 다는 녀석도 몇 명 보인다.

딱 봐도 아이디 여러 개 돌려 가면서 쓰는 티가 난다.

‘몇 놈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말해야겠네.’

출발 준비가 끝났다는 승훈이 형의 톡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승훈이 형의 차를 타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방송국에 들어선 순간, 승훈이 형이 기겁을 했다.

“어이구, 야. 사람들 엄청 몰렸네.”

“왜?”

“왜긴, 너 출근길 사진 찍으려고 그러는 거지.”

아, 그거군.

가수로 정식 데뷔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이런 게 낯설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이 내게 포토 타임을 가질 장소와 걸어갈 방향 등을 상세하게 알려 줬다.

기자, 팬 들이 와글와글 몰려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이라도 잘 챙겨 입고 올 걸 그랬네.’

어차피 스튜디오로 가서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을 거니까. 그래서 일부러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온 거였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내가 연예인이라는 걸 좀 더 인지했어야 했는데.’

뭐, 그래도 어쩌랴.

다시 차에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환호하는 팬들을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어 주자, 다시 한번 환호성이 방송국 앞을 가득 채웠다.

“태오 오빠아-!”

“오늘 무대 힘내세요!”

“저희가 응원하고 있을게요!”

팬들이 ‘LO태오VE’라고 적혀 있는 풍선을 흔들면서 나를 향해 열띤 응원을 보냈다.

헌터 시절 때에는 매번 몬스터 피를 뒤집어쓴 모습을 하고 있어서 이렇게 산뜻하게 응원해 주는 팬들이 없었는데.

이런 걸 볼 때마다 역시 가수로 데뷔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 *

출근길 촬영을 마치고, 본촬영을 위해 방송국 안으로 향했다.

오늘은 다른 가수들도 같이 무대에 오르는 가요 프로그램 녹화가 예정되어 있었다.

승훈이 형이 대기실에 있는 나를 향해 어떠한 사실 하나를 알려 줬다.

“알고 있냐, 태오야?”

“뭐를?”

“가요 프로그램 촬영 들어가기 전에 후배 가수들이 선배 가수한테 가서 인사해야 하는 관습이 있다더라.”

“아, 그거요?”

이래 봬도 내가 각성하기 전에 가수 지망생이었지 않나.

승훈이 형이 말해 준 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단지, 깜빡하고 있었을 뿐이다.

“인사, 정말로 할 거야?”

“네, 해야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잖아요?”

헌터 세계에서 연예계로 건너온 나니까, 암묵적으로 내려오는 연예계 룰에 맞춰서 생활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한 명 한 명씩 내 팬을 늘려 가는 것도 좋지만, 좋은 동료들을 사귀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니까.

소파에서 일어난 나는 무대 의상을 입은 채로 대기실을 나섰다.

어디 보자.

“가장 선배 되는 분한테 먼저 인사드리고 오는 게 좋겠죠?”

“아무래도 그렇겠지?”

오늘 나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출연자 목록을 다시 확인했다.

이 중에서 제일 데뷔 시기가 빠른 가수는…….

‘커스티겠지?’

2011년도 초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계속 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4인조 보이 그룹이다.

원래는 잘나가던 7인조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젊고 잘생긴 남자 아이돌 그룹에 밀려서 예전만큼의 인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한 번 겨우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다른 그룹에 비하면, 커스티의 경우에는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커스티 대기실이…… 저기군.’

나 혼자만 선배 가수들에게 인사를 보내는 게 좀 거시기 했는지, 승훈이 형이 먼저 동행을 자처했다.

똑똑.

대기실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커스티 멤버로 추정되는 미성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자, 예상대로 편하게 앉아서 쉬고 있던 커스티 멤버들이 가장 먼저 보였다.

나를 본 순간, 커스티 멤버들의 자세가 갑자기 경직되었다.

“가, 강태오 씨!”

“어이쿠, 이 누추한 곳에 귀하신 분이 어떻게……!”

“여, 여기 앉으세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하게 나를 반기는 커스티 멤버들을 보면서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선배님들한테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러 온 거라서요.”

내 말에 멤버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선배님이라니요! 저희가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전 세계를 구하신 분인데, 저희가 어떻게 먼저 인사를 받습니까.”

“후배니 뭐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태오 씨가 없었다면 저희가 이렇게 계속 가수 생활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이건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다.

왜들 이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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