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계획 수정 (2)
사실은 연예계에 데뷔해서 그동안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또다시 열심히 노력해 볼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헌터가 아닌, 연예인으로서.
그렇게 할 작정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계획을 수정해야겠어.’
헌터라는 직함을 떼어 버리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다.
그래서 헌터와 가수, 두 마리의 토끼를 다 거머쥘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난 어제 출연한 방송을 통해서 대중에게 내 노래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결과는?
당연히 뜨거웠다.
한여름의 무더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후끈 달아오른 대중의 반응에 BOO뿐만 아니라 우리 HT 엔터테인먼트도 하루 종일 바빴다.
나도, 그리고 연수하 대표도.
모두가 다 앞으로 바빠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훨씬 많이 바빴다.
사방에서 연락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그걸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방금 전까지 연수하 대표에게 불려 가 이런저런 지시 사항들을 듣고 온 승훈이 형이 지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
“앞으로 정신없이 바빠질 거 같으니까, 대표님께서 인력을 추가로 더 확충하자고 그러시더라.”
레이드 시대가 종결되고 난 이후에는 회사 규모를 점점 축소해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었는데.
완전히 반대 상황이 되어 버렸다.
“거의 형태만 남아 있는 헌터 매니지먼트들을 다수 인수해서 합병하는 형태로 갈 거 같다. 그렇게 하면, 인력 충원 문제는 단숨에 해결되니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업체가 꽤 많이 될 텐데.”
“우리가 돈이 없는 업체는 아니니까. 네 덕분에 많이 벌기도 했고.”
하긴, 내가 가져다 바친 게 어마어마하니까.
게다가 연수하 대표는 수완도 좋은 편이라서 다방면으로 자본을 축적시켜 둘 수 있었다.
협회도 우리 BOO와 HT 엔터테인먼트를 적극 후원하기로 약속했으니까.
나랏돈까지 등에 업으니까 무서울 게 없어졌다.
“그리고 또?”
“네 데뷔 프로젝트, 빨리 추진하자고 하시더라.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아니, 근데 나한테 계속 물어볼 거면, 그냥 네가 대표님 회의에 같이 들어갔으면 됐잖아. 한가한 주제에 왜 나만 보낸 거냐.”
“연 대표님은 사설이 너무 기니까.”
“이 녀석…….”
헌터 생활을 할 때에도 가끔씩 귀찮은 일이 생기면 이런 식으로 형을 대신 내보내곤 했었다.
“아무튼 데뷔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냐?”
“레코딩은 다 끝났어. 이제 믹싱하고, 그러면 된대.”
원래는 여유를 두고 데뷔 무대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한번 흐름을 탄 이상, 계속 이어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래서 좀 더 속도를 내기로 했다.
대신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원래는 정규 앨범식으로 해서, 15에서 20곡 정도 빵빵하게 넣고 싶었는데.
데뷔 시기를 앞당기다 보니까 싱글 앨범 형태로 바꿔야만 했다.
아무래도 싱글 앨범 쪽이 훨씬 제작에 대한 부담이 덜한 편이니까.
뭐, 1집은 나중에 작업하면 되고, 우선은 데뷔가 먼저다.
“디지털로만 나오는 거였나?”
“지금은 그렇고, 나중에 CD 형태로도 나올 거야.”
“그러면 나중에라도 좋으니까 사인해서 나 몇 장 주면 안 되겠냐?”
“왜?”
“내 지인들이 가지고 싶어 해서. 이럴 때 형 기 좀 세워 줘라.”
나 대신해서 연수하 대표의 말상대도 되어 주고 그랬으니까.
“알았어, 걱정하지 마. 넉넉하게 준비할게.”
“땡큐.”
주변에서 하도 내 데뷔를 기대해서일까.
벌써부터 데뷔 무대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 * *
최용하 프로듀서의 작업실.
믹싱이 끝났다고 해서, 한번 들어 보기 위해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회사를 찾았다.
맨손으로 오긴 좀 그래서.
최 프로듀서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 들고 작업실을 방문했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잘 마실게요.”
작업에 커피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방금 전까지 지친 기색을 보이던 최 프로듀서의 눈빛에 잠깐이나마 생기가 돌았다.
“맛있네요.”
“요 옆에 새로 카페가 생겼더라고요. 거기서 사 온 겁니다.”
“그래요? 나중에 저도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평화가 다시 찾아오자, 도심에도 점점 생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가게도 많이 들어서고 다시 활기를 되찾는가 싶었는데.
“이사님, 최근에 몬스터들이 다시 등장해서 많이 피곤하시죠?”
설마 누가 알았으랴.
인류의 감시망을 피해 숨어 있는 몬스터들이 존재할 줄.
“괜찮습니다. 그래도 백수처럼 지내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에이, 백수 아니지 않습니까. 곧 있으면 가수로 데뷔하실 텐데요.”
머쓱해진 나머지 머리를 긁적였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커피도 어느 정도 마셨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노래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죠.”
최 프로듀서가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버튼을 누르는 딸깍딸깍 소리가 몇 번 들린 뒤.
통기타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데뷔곡이면서 몬스터들을 교란시켰던 바로 그 노래, ‘나의 길’.
전주가 나오자마자 나는 모든 신경을 청각에 집중시켰다.
지금까지는 막연하게 가수가 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렇게 처음으로 내 노래가 될 곡을 들으니까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감회가 새롭다고 표현하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4분 21초. 단 1초조차도 내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떻습니까, 이사님?”
“좋네요. 이렇게 들으니까 확실히 믹싱이 중요하군요.”
“마스터링까지 거치면, 좀 더 듣기 좋은 노래로 포장될 겁니다.”
아직 후반 작업이 남아 있긴 하지만, 나는 지금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내 노래라서 그런지 벌써부터 콩깍지가 씌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떻게 하라고.
“예전에는 이런 순간이 오긴 할까 궁금했었는데, 하면 되긴 하네요.”
“이사님이 헌터로 각성하기 전 시절 말씀하시는 거죠?”
“예. 가수 지망생이었을 때요.”
꿈을 포기하기에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내 열망이 너무나도 깊고 컸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최 프로듀서도 어느 정도 내 사정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잔뜩 흥분한 나를 보면서 짙은 미소를 유지했다.
“이사님께서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나 봅니다. 아니지, 현생에 나라를 구하신 분이라고 말해야겠네요.”
나와 최 프로듀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크게 웃었다.
그러나 이 웃음도 잠시뿐이었다.
올려놓은 스마트폰에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태오야! 방금 연락받았냐?
승훈이 형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영문 모를 질문을 꺼냈다.
“아니, 무슨 연락인데?”
-베를린에 몬스터들 떴다고 하더라!
게이트가 사라지고 몬스터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게 이번이 네 번째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첫 번째다.
하지만 이미 잔여 몬스터들이 있음이 증명되었으니까.
다시 몬스터가 나타났다 할지라도 새삼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다음이었다.
-방금 협회에서 확인한 건데, 이번에도 세이렌하고 머들린 녀석들이래.
그렇다.
우리에겐 ‘어떤’ 몬스터인지가 중요했다.
승훈이 형과의 통화를 잠시 뒤로 미룬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어 있는 최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프로듀서님, 제 노래, 독일로 좀 보내 주시겠어요?”
“네?”
“필요한 곳이 생겨서요.”
이건 위기가 아니다.
내게 있어선 기회다.
내 노래가 몬스터들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
* * *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들, 지구 반대편까지 단숨에 날아갈 수 있는 순간 이동 기술은 아직까지 없었다.
아이템의 힘을 빌려도 순간 이동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비행기나 배, 기차나 차 같은 이동 수단을 통해서 가야 하는데.
그러기엔 이 지구는 너무 크고 광활하다.
헌터협회에 가서 이미 말했던 거지만, 독일에 몬스터 떼가 나타났다 해도 한국에 있는 내가 베를린으로 당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신에 내 노래는 보내 줄 수 있다.
헌터협회 상황실을 찾은 나와 승훈이 형.
협회장이 굳은 얼굴로 우리를 반겼다.
“왔군. 그건 가져왔어?”
“여기 있습니다.”
나한테서 USB를 건네받은 협회장이 컴퓨터 앞을 지키고 있던 이 소장에게 그것을 건넸다.
여기에 최 프로듀서가 옮겨 준 내 노래가 저장되어 있었다.
“아직 마스터링 작업은 안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번처럼 놈들에게 효과적일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소장이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저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닥치는 대로 다 실험해 보는 수밖에요.”
노래의 완성도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는지 어떤지, 이 소장이 말한 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레이드 시대 초창기 때에도 이와 비슷했다.
각성자, 아이템 그리고 몬스터.
자료라고 부를 만한 게 아예 없다 보니, 인류는 맨땅에 헤딩하듯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알아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협회장과 우리는 대형 모니터를 응시했다.
“독일 쪽 헌터들은 실력이 좋으니까. 여차하면 그냥 무력으로 밀어붙여도 되겠지. 그리고 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다행히도 마침 데이브 씨가 베를린에 머물고 있다더군.”
“데이브가요?”
협회장의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아니, 그 녀석은 계속 한국에만 머물고 있다가 뜬금없이 독일엔 왜 갔대?
내 머릿속 생각이 협회장에게 그대로 전달되기라도 한 걸까.
직접 물은 적도 없는데 알아서 술술 답을 해 줬다.
“지인들 만나러 간 거라고 하더군.”
“그래도 녀석이 있으니까 안심이 되긴 하네요. 성격은 까칠해도, 실력은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독일 현지에 위치한 작전 본부와 끊임없이 교신이 이어졌다.
뒤이어 현장 상황을 다룬 영상이 우리 쪽 화면에 그대로 비쳤다.
전방에 앉아 있던 상황병이 협회장에게 추가 보고 사항을 전달했다.
“노래 재생 준비, 완료했다고 합니다.”
독일 현지에 울려 퍼지는 K-POP이라.
아마 이런 식으로 한국 노래를 활용한 적은 한 번도 없었겠지.
아니,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노래를 통틀어 봐도 역사상 유례가 없을 것이다.
통신기를 한쪽 귀에 낀 데이브가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한국말로 말했다.
-아아. 강태오, 거기 있냐? 내 말 들리고 있겠지?
“너무 잘 들려서 탈이다.”
내 말을 들은 데이브가 혀를 찼다.
-네가 보내 준 노래, 언제 틀면 되냐?
이 소장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미지의 싸움을 해야 한다.
그나마 내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독일 작전 본부는 노래를 틀어야 하는 타이밍을 아예 내게 맡기려고 했다.
협회장이 데이브가 원하는 대로 해 달라고 내게 신호를 보냈다.
어디 보자.
세이렌과 머들린 무리는 이미 모습을 드러낸 상태다.
헌터들과 충돌하기 일보 직전.
세이렌이 입을 열려고 하는 모습이 내 눈에 포착했다.
“지금!”
내 외침과 동시에.
바람이 거칠게 불던 날.
모든 것이 너의 기억과 함께 사라져 버렸어.
No way!
다시 한번 내 노래가 전장에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