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0화 (20/250)

제6장. 홍보의 기회 (3)

세이렌과 머들린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공포가 지속된 지 3일째.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충 나갈 채비를 갖추고 지하에 있는 개인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승훈이 형한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일어났냐?

“어, 지금 차 타고 회사 가는 중이야.”

방송 일정이 잡혀 있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상당히 이른 아침을 맞이했다.

중요한 일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최 프로듀서한테 들었어. 곡 작업 얼추 마무리되었다면서?”

-어, 다 작업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이렌 유도 작전에 써먹을 정도까지는 다 완성했다고 하더라. 데모 파일은 받아 봤지?

“응, 딱 기본 멜로디에 코드만 몇 개 붙어 있는 상태더라고.”

-오늘 얼추 가사까지 완성했다고 하니까, 처음 들었을 때하고는 느낌이 많이 다를 거다.

내가 데뷔할 때 어떤 타이틀곡을 들고 무대에 설지, 그 윤곽을 대충 알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그나저나 정말로 이 노래를 세이렌 유인 작전에 써먹을 거야?

“응, 어차피 전국적으로 다 주목하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딱 내 노래를 틀면 이만한 홍보도 없을 거 아니야. 형도 동의했잖아?”

-그렇긴 한데…….

말끝을 흐린 승훈이 형이 내심 걱정되는 부분을 언급했다.

-협회 측에서 괜히 태클을 걸까 봐. 나는 그게 좀 신경이 쓰이더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실 굳이 내 노래를 쓸 필요도 없다.

세이렌을 끌어 들일 수 있게 만드는 음파만 스피커를 통해서 퍼뜨리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기왕이면 이 기회를 내 데뷔곡 홍보에 활용하는 편이 더 좋지 않겠나.

그래서 데뷔 앨범 타이틀곡만이라도 최대한 빠르게 작업을 해 두기로 했다.

헌터협회가 우리들의 이런 시도를 과연 받아 줄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승훈이 형과 달리 크게 걱정이 들지 않았다.

“오늘 오후에 내가 협회장하고 만나서 협조를 구할 거야.”

-네 노래 사용하게끔 만들려고?

“응, 차 회장이 나한테 예전에 진 빚이 몇 개 있거든. 그리고 협회장 자리에 올려 준 장본인이 나이기도 하니까. 내 말이라면 무조건 들어줄 거야.”

차지후 협회장은 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받은 게 있으면 돌려주는 도리를 아는 남자다.

-협회 갈 때 나도 같이 갈까?

“아니, 괜찮아. 나 혼자 가도 충분해. 형은 나 대신 회사에 남아서 앨범 작업 진행되는 거 최대한 도와줘.”

시간과의 싸움.

승훈이 형은 알겠다고 하고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때맞춰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가 볼까.’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 * *

최용하 프로듀서의 작업실.

대형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모든 신경을 기울였다.

“전화상으로도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곡 자체가 다 완성된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데모 버전이고요. 부랴부랴 가사 붙이는 것까지 끝내 두긴 했는데, 이사님 데뷔하실 때에는 바뀌는 부분도 있을 거 같습니다.”

“크게 바뀌나요? 저는 이대로도 괜찮을 거 같은데.”

“디테일한 부분에서만 잡고 갈 예정이라서 문장 전체가 달라지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왜, 랩에서 보면 라임(Rhyme)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쪽으로 살짝 다듬는 작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곡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가던 최 프로듀서가 내게 궁금한 게 있는 모양인지 이런 질문을 꺼냈다.

“그런데 이 노래로 정말 그 괴물들을 유인해 낼 수 있는 겁니까?”

“헌터협회 미국지사 쪽에서 세이렌을 오랫동안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제 노래를 틀어 놓고, 미국지사 쪽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만든 특정 음파를 같이 흘려보내면 됩니다.”

“그러면 굳이 노래를 틀을 필요까진 없지 않나요? 그 음파라는 것만 흘려보내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면 제 노래 홍보가 안 되잖아요.”

최 프로듀서가 ‘아’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홍보는 해야 하지 않겠나.

이런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대한민국 언론 전체가 지금 이 사건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것만큼 제 노래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을 겁니다.”

물론 세이렌과 머들린을 사냥하는 일에도 충실할 것이다.

노래 홍보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슬슬 갈 시간이 되었다.

겉옷을 챙기면서 최 프로듀서에게 앞으로의 진행 상황에 대해 말했다.

“협회장한테 잘 말하고 올 테니까, 프로듀서님은 그동안 타이틀곡 다듬는 작업에만 매진하시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사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협회장과의 담판이 남았다.

* * *

차지후 협회장과의 만남.

나는 대놓고 차 회장에게 내 노래를 세이렌 유인 작전에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아니, 제안이 아니라 요구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그래서인지 차 회장의 고민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네가 가수로 데뷔할 거라는 건 나도 들어서 알긴 했는데, 흐음…….”

“부담스러우시면, 바로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내가 말해 봤자 어차피 할 거잖아.”

“네, 물론이죠.”

차 회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미 차 회장도 내 성격이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언론들한테는 뭐라고 설명할 건데? 하필이면 왜 너의 노래를 트는지, 납득은 시켜야 할 거 아니냐. 그것까지 생각해 뒀겠지?”

“그럼요. 당연하죠.”

홍보라는 이유를 대놓고 내세우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 노래를 틀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야 한다.

“세이렌을 유인하는 음파를 노래 형태로 만들어서 흘려보내야 더 효과가 있다고 설명을 해 주면 됩니다. 그리고 그 노래가…….”

“네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이거지?”

“예.”

약간의 과대 포장은 우리가 자주 사 먹는 과자 봉지에도 적용되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

“회장님이 이렇게 저희하고 말을 맞춰 준다면, 세이렌 문제는 제가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차 회장 입장에선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조건일 것이다.

헌터협회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랭크 헌터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차 회장은 내가 내건 조건에 한 가지를 더했다.

“시간을 너무 지체하면 안 돼. 최대한 빠르게. 가능하겠지?”

“네, 그렇게 해야죠.”

최 프로듀서를 좀 더 재촉해야겠다.

* * *

세이렌 유인 작전 당일.

동이 트자마자 나는 한강 둔치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저번처럼 도심 한가운데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면, 인명과 재산 피해가 너무 막대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일부러 싸우기 좋은 공터를 고르다 보니 이곳이 선정되었다.

작전이 시작되기까지 30분 정도 남은 상황.

몸을 푸는 동안, 데이브가 잔뜩 굳어진 얼굴로 내가 있는 쪽을 향해 다가왔다.

“야, 강태오.”

퉁명스러운 데이브의 어조 때문에 그냥 무시해 버릴까 말까 살짝 고민했지만, 그랬다간 나중에 더 귀찮게 할 거 같아서 그냥 반응해 주기로 했다.

“왜?”

“저건 또 뭐냐?”

데이브가 곧 전장이 될 이곳에 설치되어 있는 다수의 대형 스피커들을 가리켰다.

방송국에서 현직으로 일하는 음향 쪽 스태프들이 헌터들보다도 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또 무슨 꿍꿍이가 있길래 저런 걸 준비한 거냐.”

“나? 협회가 준비하라고 했는데.”

“네가 협회장하고 따로 자리 가졌던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하여간 이 녀석, 머리는 나쁘면서 눈치 하나는 겁나 빠르다.

대외적으로는 세이렌 유인 작전에 내가 깊게 관여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내 노래를 홍보용으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다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밀로 했던 건데. 데이브는 이게 영 아니꼬워 보였나 보다.

하긴, 굳이 이게 아니더라도 데이브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녀석이지만 말이다.

“궁금하면 나중에 협회장한테 네가 직접 물어봐.”

“망할 녀석.”

혀를 차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데이브.

귀찮은 녀석 하나 물리쳤으니.

이제 슬슬 지하로 숨어든 괴물 녀석들을 물리칠 차례다.

오전 10시. 정각이 되자마자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전주에 헌터들, 그리고 기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지?”

“처음 듣는 노래인데.”

“이런 노래가 있었나?”

빠른 템포의 전주가 끝나고.

마침내 노래의 첫 소절이 흘러나왔다.

바람이 거칠게 불던 날.

모든 것이 너의 기억과 함께 사라져 버렸어.

No way.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데이브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설마 이거…… 네 녀석이 불렀냐?”

“왜, 내가 부르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냐?”

“미친.”

세이렌 유인 작전에 특정 가요가 쓰일 거라는 정보는 이미 알음알음 유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래가 내가 직접 부른 신곡일 줄은 몰랐는지, 기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메라 돌려, 어서!”

“마이크 어디 있어!”

“이거 강태오 데뷔곡일지도 모르잖아! 빨리 연락 안 하고 뭐 해!”

나에 대한 관심이 아주 쏟아진다, 쏟아져.

노래 속에 담겨 있는 특정 음파가 넓은 한강 전경에 울려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우우웅……!

지면이 울리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거친 물줄기가 솟아오르면서, 지난번에 봤던 머들린들이 한 마리씩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이 와중에 내 노래는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 실시간 중계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여과 없이 내 데뷔곡이 들리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겠지.’

나는 안무 대신 칼춤을 추면서 머들린들의 머리를 서걱서걱 썰어 갔다.

머들린을 거의 절반 가까이 해치웠을 때.

-끼에에에엑!

세이렌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걸려들었어!’

저 녀석만 해치우면, 나머지 잡몹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세이렌을 노리기 위해 곧장 달려들었다.

그러나 내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세이렌의 등에서 다수의 가시가 돋아났다.

푸슈슉! 슈슉!

녀석이 사방으로 가시를 흩뿌렸다.

목표는 나도, 헌터들도 아니었다.

내 노래가 흘러나오는 대형 스피커들이었다.

콰직, 퍼엉!

스피커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박살 나 버렸다.

음향 스태프들이 기절하기 일보 직전의 반응을 보였다.

“저, 저게 얼마짜린데……!”

그러게 말이다.

아무래도 세이렌은 내가 준비한 노래 선물이 마음에 매우 안 드는 모양인가 보다.

통신기를 이용해서 지휘통제실에서 지금 이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을 차 회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회장님, 혹시 여분의 음향 장비는 없죠?”

-하나 있긴 한데. 음파만 흘려보낼 수 있어. 하지만 이걸 틀면, 네 노래를 굳이 왜 틀었는지 뒷말이 나올 텐데.

“상관없습니다. 노래는 제가 여기서 직접 부르면 되니까요.”

-부른다고?

“네.”

아카데미에서 수련했던 경험을 활용할 때가 되었다.

“야, 이 버러지 괴물 녀석들아아아아-!!!”

쩌렁쩌렁 울리는 내 목소리.

스피커를 틀 때보다도 더 큰 볼륨을 자랑했다.

“지금부터 내 노래를 똑바로 들어라!”

전장의 아이돌이라도 된 기분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