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홍보의 기회 (1)
몬스터의 등장.
오랜만에 울리는 긴급재난문자 소리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의 어깨가 동시에 크게 움찔했다.
게이트가 닫히고, 이제는 더 이상 차원의 틈새 때문에 고통받을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아직 사람들은 당시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양석정 팀장이 재난문자 내용을 먼저 확인했다.
“동대문 근처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하는군요.”
“하필이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몬스터란 녀석들은 눈치코치도 없네요.”
“원래부터 몬스터 놈들은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추가로 문자 하나를 더 받았다.
재난본부에서 보낸 긴급문자가 아닌, 헌터협회에서 보내온 문자였다.
승훈이 형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협회에서 온 거야?”
헌터로 일했던 경력은 역시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어. 나도 같이 출동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는데?”
잔여 몬스터의 존재가 확인된 후.
헌터협회가 정식으로 내게 SOS를 요청한 적은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SSS랭크인 내가 나서야 하는 위급 상황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협회가 내게 이런 연락을 해 왔다는 건.
“아무래도 이번 녀석은 많이 까다로운가 봐.”
의자를 뒤로 밀면서 바로 일어섰다.
협회한테 해 둔 말도 있고.
그리고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것도 있는데,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방송 여기저기에 얼굴을 비치는 것보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헌터로서 활약하는 내 모습에 더 열광하는 중이다.
“가려고?”
승훈이 형의 물음에 나는 당연하다는 어조로 답했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게 스타의 일이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 *
서울을 가로지르는 도로 여러 개가 동시에 폐쇄되었다.
꽤 큰 규모의 몬스터 무리가 등장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급하게 차를 버리고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대피 시설로 빠르게 도망쳤다.
덕분에 이 이상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차에서 내린 나는 운전대를 잡고 이곳까지 동행한 승훈이 형에게 물었다.
“형까지 굳이 올 필요 없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헌터 직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승훈이 형은 다르다.
이미 현장에서 물러난 승훈이 형.
그래서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승훈이 형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강하게 주먹을 움켜쥐어 보였다.
“야야, 이 형이 이래 봬도 왕년에 많이 날리지 않았냐. 이제 와서 뒷방 늙다리 취급하면 나, 많이 섭섭하다?”
“형 실력이야 내가 진짜 잘 알지. 그냥 오랜만이기도 하고. 걱정되니까 해 본 말이야.”
현역 시절 당시, 승훈이 형이 이름깨나 날렸던 헌터였다는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잘 안다.
하지만 방심은 절대 금물이다.
아무리 게이트가 닫혔다고 해도, 남은 몬스터들의 숫자가 얼마 없다고 해도.
협회가 구태여 나까지 호출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대체 얼마나 까다로운 놈이길래 그러는 거지?’
저 멀리 솟구치는 시커먼 연기들이 보였다.
현장으로 다가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건물의 잔해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꺄아악!!”
“위, 위험해! 어서 도망쳐!”
“아빠, 아빠아!”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머리통만 한 콘크리트 조각 하나를 주먹으로 퍽! 하고 쳐 내 버렸다.
승훈이 형 역시 마찬가지로 마나로 오른팔을 감싸면서 스스로를 보호했다.
“태오야!”
작은 크기의 건물 잔해들은 약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 거대한 그림자가 땅을 검게 물들였다.
전원주택 하나가 뿌리째 뽑혀 나와 도망치는 사람들을 덮치려고 했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흡!”
주변에 있는 마나를 끌어 들였다.
빠르게 몰아치는 마나 돌풍을 그대로 전원주택을 향해 날려 보냈다.
휘이이이익!
사람들의 머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멈춘 건물.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대형 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손을 크게 휘저으면서 전원주택을 비어 있는 공간으로 냅다 던져 버렸다.
굉음에 이어서 사방으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제야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고 고마움을 표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강태오 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좋을지…….”
“그런 건 나중에 하셔도 괜찮으니까, 일단은 대피소로 가세요. 언제 괴물들이 몰려올지 모르니까요.”
여기도 안전 지역은 아니다.
몬스터가 등장한 순간부터 이미 안전과는 거리가 멀어져 버리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작은 통신 장비를를 왼쪽 귀에 착용했다.
헌터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에게만 지급되는 특수한 통신기로, 몬스터와 전투할 때에는 이것보다 더 좋은 통신기기가 없다.
“형은 이거 있어?”
“나를 뭐라고 생각하냐.”
승훈이 형이 주머니에서 슬쩍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그건 또 어디서 훔쳐 온 거야?”
“훔쳐 왔다니. 협회에서 정식으로 받아 온 거야. 헌역들만으로 감당이 안 될 때가 발생하면, 은퇴한 헌터들의 도움도 필요할 테니까 말이야.”
보험 같은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통신기기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B-3 지역 온라인 둘 확인. 신원을 밝히세요.
“SSS001. 강태오입니다.”
“ABA203. 이승훈. 현재 SSS001과 같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불러 보는 나의 코드네임.
승훈이 형 역시 이런 위치 보고가 굉장히 낯선 모양인지, 말하고도 입을 여러 차례 푸는 모습을 보였다.
-확인했습니다. 지금 현장에 도착하셨습니까?
“예. 상황 브리핑 자료 전송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등록된 번호로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몬스터와 싸우려면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정보다.
정보가 없으면, 제아무리 나라 할지라도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헌터협회 상황실에서 보내 준 자료를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검토했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바로 몬스터들의 정보였다.
승훈이 형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B029378. 머들린. 이 녀석들, 바다에 숨어 사는 놈들 아니야? 저번에 인천 항구에서 머들린 상대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네, 맞아요.”
승훈이 형의 기억이 정확하다.
머리와 두 팔, 그리고 아래는 물고기의 꼬리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중형 몬스터들.
한 마리씩 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녀석들은 아니다.
그걸 본인들도 잘 아는 모양인지, 항상 집단으로 행동하곤 한다.
“보니까 한강을 타고 서울 내부로 쭉 올라온 거 같아요.”
“미친…….”
때로는 인간을 위한 지형과 편의 시설이 이렇게 몬스터들의 침입에 도움을 줄 때가 있다.
그래도 게이트가 열렸을 때만큼의 큰 소란은 벌어지지 않는 듯하지만.
저 멀리서 몰려오는 머들린 무리.
지상으로 나온 녀석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정도로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면서 한강 둔치로부터 이곳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형은 먼저 사람들부터 대피시켜 줘. 저 녀석들은 내가 맡을 테니까.”
“오케이, 알았어.”
머들린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무리 한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쿠웅!
착지하자마자 머들린들이 나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녀석들의 날카로운 손톱이 정확히 내 목을 노렸다.
하지만 이런 걸로 당할 내가 아니다.
몸을 살짝 뒤로 빼는 단순한 동작만으로 놈들의 공격을 흘려 버렸다.
“니들이 나한테 상처라도 하나 입힐 수 있을 것 같아? 한참 멀었어!”
이쪽은 드래곤과 밤낮없이 싸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구린내를 풍기는 인어 몇 마리 정도는 웃으면서 상대할 수 있다.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 선두에 서 있던 머들린 한 마리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쇠막대를 들었다.
마나를 불어 넣자, 쇠막대가 푸른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것을 이용해 머들린의 머리를 그대로 꿰뚫어 버렸다.
푸욱-!
별로 좋지 않은 촉감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쇠막대를 뽑아 들자, 머들린의 푸른 피가 사방에 흩어졌다.
언제 봐도 역겨운 장면이다.
내가 먼저 나서서 머들린들을 한 마리, 한 마리씩 제거해 나가는 동안, 호출을 받고 출동한 헌터들이 하나둘씩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내가 아는 인물도 있었다.
“태오야!”
대검 아이템을 휘두르면서 머들린 두 마리를 동시에 도륙 내 버린 교관이 내 이름을 크게 외쳤다.
나 역시 교관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교관님, 현역으로 복귀하신 겁니까?”
“어차피 헌터들 가르칠 일도 없어졌는데, 나와서 일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냐?”
틀린 말은 아니다.
승훈이 형이나 고설중 교관처럼 잠시 현장에서 물러나 다른 길을 택했던 사람들도 출동해 오랜만에 무기를 들었다.
현역 헌터들 역시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모양인지 의욕을 드러내면서 머들린들을 격파해 나갔다.
녀석들 중에서 유독 덩치 큰 머들린 한 마리가 보였다.
쿵, 쿵, 쿵!
두 팔로 비대한 몸집을 지탱하면서 다가오는 몬스터.
‘이 녀석이 우두머리인가?’
일반 몬스터들 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능력을 지닌 우세종이 있다.
우리는 그런 놈들을 ‘엘리트 몬스터’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 몬스터에 비해 훨씬 강하지만.
‘반대로 잡으면 보상도 세게 받을 수 있지!’
나 같은 헌터들은 무조건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
덩치 큰 머들린을 사냥하기 위해 도움닫기를 이용해 크게 점프했다.
헌터들과 머들린들이 뒤섞여 싸우는 전장을 순식간에 건너뛴 나는 엘리트 머들린 바로 앞에 착지했다.
머들린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어그로가 나에게 튄 것이다.
내 손에는 여전히 쇠막대가 들려 있었다.
‘아이템이라도 챙겨 올걸.’
뭐, 그래도 딱히 상관은 없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쇠막대를 이용해서 녀석의 숨통을 끊으려고 하던 찰나.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창 하나가 떨어지면서 엘리트 머들린의 정수리를 꿰뚫어 버렸다.
푸우욱!
덩치가 큰 만큼, 흘러내리는 피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물론, 그만큼 구린내 역시 끔찍하다.
녀석의 피를 꼼짝없이 뒤집어쓰기 전에 재빨리 뒤로 여러 걸음 물러섰다.
순식간에 엘리트 머들린을 없애 버린 범인, 데이브가 몬스터 사체 위에 착지하면서 나를 내려다봤다.
“이번에는 선수 안 뺏겼다, 강태오.”
데이브가 현역 시절 때 사용하던 기다란 창 아이템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서 멀리서 우리들의 활약상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기자들과 시민들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 접니다, 저! 데이브 리가 이놈들의 우두머리를 쓰러뜨렸습니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녀석을 향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가운뎃손가락을 피면서 ‘F’로 시작하는 제스처를 날려 주려고 했는데.
쏴아아아!
갈라진 도로 사이로 커다란 물줄기가 분수 형태로 뿜어져 나왔다.
그 사이로 등장하는 또 다른 몬스터.
“저 녀석은…….”
코드명 S279382.
통칭, 세이렌.
숨어 있던 진짜 우두머리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