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몰랐던 비밀 (3)
우준이를 우리 회사로 데려오겠다.
이것이 내가 HT 엔터테인먼트의 이사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추진하는 업무다.
양 팀장을 비롯해서 다른 팀장들 역시 내 깜짝 발표에 살짝 당황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여태껏 누군가를 우리 회사로 영입하겠다는 말을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는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무명 가수를 데려오겠다고 하면, 놀라는 게 당연할 것이다.
“황우준 씨가 누군가요?”
“저는 처음 들어 보는데.”
반응이 굉장히 미미하다.
들어 본 적 없는 가수.
여기서부터 이미 마이너스 요소가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우준이의 경우에는 그냥 무명 가수가 아니다.
“소속사에서 제대로 푸시 못 받고 강제로 무명이 되어 버린 가수입니다. 성격도 좋고, 재능도 있어 보여서 이번에 정식으로 스카웃을 하려고요.”
그럼에도 직원들은 내 결정에 약간 의아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현재 잘나가고 유명한 연예인들 많은데, 굳이 왜 그런 캐스팅을…….”
“최근에 소속사와 계약을 종료하고 FA로 나오는 연예인들도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히려 그쪽을 노리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물음표를 띄울 때.
나는 우리 회사에서 캐스팅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홍수홍 실장에게 턴을 넘겼다.
“홍 실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캐스팅 매니저의 생각도 과연 일치할까?
홍수홍 실장은 그렇지 않음을 내게 알리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우준 씨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까 이사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분명 실력은 있거든요. 게다가 비주얼도 좋고. 하지만 연예계라는 게 실력과 비주얼, 둘 다 갖추고 있다고 무조건 뜬다는 보장이 없는 곳이거든요. 결국은 마케팅, 즉 홍보 싸움으로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법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나도 크게 공감한다.
아무리 값어치가 있는 보석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홍보가 되질 않으면 그 가치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안 그래도 저도 황우준 씨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이사님께서 먼저 말씀을 하시는 걸 보니, 사람 보시는 눈이 범상치 않으신 거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칭찬을 하니까, 우준이하고 예전에 아는 사이라서 그랬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뭐, 인맥도 실력이니까.
원래 세상일이란 그런 것이다.
* * *
홍 실장의 지원 덕분에 우준이를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해 오자는 안건은 쉽게 통과되었다.
사실 홍 실장이 적극적으로 나를 두둔하고 나서지 않았어도, 어차피 우준이를 데려오겠다고 내가 마음먹은 이상 이 결정이 쉽게 뒤집힐 일은 없었을 것이다.
회사 내에서 나보다 영향력이 큰 사람은 연 대표 정도니까 말이다.
이 와중에 연 대표가 연예계 사업에 대해선 전적으로 내게 맡긴다는 식으로 말을 했으니, 실질적으로 HT 엔터테인먼트는 내 의사에 따라 좌지우지된다고 볼 수 있었다.
우준이를 데리고 오기로 결정한 이상.
시간을 질질 끌 필요는 없다.
HT 엔터테인먼트 본사를 찾은 우준이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마주 앉은 나를 응시했다.
“여기가 정말로 형이 차린 회사야?”
“뭐, 그렇지.”
내 자금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물론 내가 가진 자본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건물만 따지면, 웬만한 강소 엔터테인먼트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인 거 같은데.”
“당연하지. HT 엔터테인먼트는 대한민국 톱을 노리고 있는 기획사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냐?”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나를 보며 우준이는 힘없이 웃었다.
“형은 여전하네.”
“내가?”
“어. 연습생 같이할 때에도 형은 이렇게 항상 자신감이 차 있었으니까. 내가 아는 그 태오 형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헌터로 각성했어도 여전히 나는 나다.
소파에 착석한 후, 우준이에게 전화로 미리 이야기했던 내용을 반복해 들려줬다.
“너 우리 쪽으로 스카웃하고 싶다고 했던 거, 어제 내부적으로 결정되었어. 이제 계약서만 쓰면 되는데, 우리 회사로 올 거지?”
“나도 그러고 싶은데…….”
“왜,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어?”
우물쭈물하는 우준이의 모습 덕분에 나는 강하게 확신했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나, 아직 지금 소속사하고 계약 기간 한참 남아 있어.”
“얼마나?”
“1년 정도. 그거 끝나야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1년.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기간이지만.
지금 내게는 너무 길게 느껴진다.
“거기서 1년 허비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냐. 내일 당장 우리 쪽으로 넘어와.”
“위약금이 꽤 세서 그건 좀 힘들어. 나, 지금 수중에 돈도 없고.”
“위약금 때문에 그런 거면 걱정 마. 내가 다 대 줄 테니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오히려 땡큐다.
내가 이래 봬도 가진 게 돈밖에 없는 헌터 출신의 연예인이니까.
그럼에도 우준이는 꽤 부담감을 느끼는 모양인가 보다.
“형한테 그렇게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어.”
“신세 져도 돼. 대신에 여기 와서 나중에 네가 크게 성공하면 되니까. 그러면 이 빚은 다 갚는 거야.”
가장 달콤한 보상이 바로 성공이다.
우준이가 고개를 깊숙이 떨궜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설마 우는 거 아니지?”
“아, 아니야. 그냥…… 잠깐 생각 좀 하고 싶어서.”
거짓말이다.
눈시울이 붉어진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여간 우준이 녀석, 눈물 많은 건 예전이랑 똑같네.
HT 엔터테인먼트로 새롭게 이적하기로 했으니.
이제 우준이가 희망하는 활동 방향에 대해 들을 일만 남았다.
“웬만하면 네 입맛에 맞게끔 다 맞춰 줄 테니까, 우리들한테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봐.”
우준이의 고민이 깊어졌다.
오래 생각에 잠긴 끝에 내게 들려준 말은 꽤 의외였다.
“혹시 그룹으로 활동할 수 있을까?”
“그룹이라고? 솔로가 아니라?”
“응.”
“예전 멤버들 다시 불러서 하게?”
“아니, 어차피 각자 길을 가고 있는데, 굳이 다시 이곳으로 부르긴 좀 그래. 그래도 나는 역시 혼자 하는 것보다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멤버들하고 같이 무대에 서는 게 더 좋더라고.”
우준이는 예전부터 그룹 활동을 동경했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어차피 우준이가 원하는 대로 방향성을 맞춰 주기로 결정했으니, 그룹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계약서를 쓰고 난 뒤에 양석정 팀장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나저나 나는 네가 그룹 활동 하고 싶다고 해서, 괜히 ‘얘가 나하고 같이 무대에 서고 싶어서 그러나?’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내 이야기는 없었다.
애초에 나는 그룹 활동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었다.
방송인이긴 하지만, 여전히 헌터라는 직함은 유지하고 있으니까.
방송 도중에라도 혹여나 고레벨의 몬스터가 등장하면, 내가 바로 출동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그룹보다는 솔로가 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볍게 농담조로 해 본 말인데도 불구하고 우준이는 크게 놀란 얼굴이 되었다.
“형, 가수 데뷔하려고?”
“어, 방송에 나와서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었는데, 몰랐냐?”
“그, 그랬었나? 미안. 나, 인터넷은 웬만하면 잘 안 들어가려고 하거든. 악플 테러도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서 몰랐어.”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요즘은 인터넷이 워낙 활성화가 잘되어 있으니까. 웬만한 정보는 마우스, 키보드만 조금 움직여 봐도 금세 구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연예인들은 이 인터넷이 독이 되기도 한다.
방금 우준이가 말했듯이 무분별한 악플 테러가 그 원인이기도 하다.
나는 우준이에게 어쩌다가 가수로 데뷔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 알려 줬다.
“이대로 계속 방송 활동만 하는 건 뭐라고 해야 할까, 재미가 없는 거 같고. 그리고 원래 나는 가수가 되고 싶었거든. 헌터 활동 때문에 잠시 접어 뒀으니까, 이제는 다시 꺼내도 될 거 같아서 데뷔를 결정하게 된 거야.”
“그……렇구나.”
하지만 우준이의 반응은 영 미적지근했다.
마치 내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처럼.
“형, 모르는 거야?”
“뭐가?”
“형이 데뷔조에서 떨어진 이유 말이야.”
생각을 해 보니, 막상 내가 데뷔조 들지 못한 이유가 뭔지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떨어졌다는 통보만 받고 바로 헌터로 각성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 결과를 받게 되었는지, 상세한 내용을 미처 듣기도 전에 말이다.
“잘 모르겠는데. 넌 들은 거 있어?”
“어. 안 그래도 형한테 따로 연락하려고 했었는데, 그때는 몬스터들 때문에 이래저래 바쁠 거 같아서 못했지.”
마침 잘됐다.
기왕 우준이하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으니,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내 탈락 이유에 대해 듣기로 했다.
그런데.
“형…… 보컬 때문에 불합격 판정받았잖아.”
탈락 이유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꽤 치명적이었다.
* * *
보컬 능력 부족.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노래를 못해서 탈락했었다고?”
승훈이 형이 마침 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표현을 그대로 입 밖으로 꺼냈다.
우준이와 이야기를 마친 뒤, 나는 연 대표, 승훈이 형과 셋이서 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아까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승훈이 형 못지않게 연 대표도 꽤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잠깐만. 이미 방송에서 솔로 가수로 데뷔할 거라고 다 공개했는데. 기사들도 많이 뿌렸고. 그런데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할 수는 없잖아.”
“아니…… 태오야,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왜 이제야 하는 거냐.”
이 사람들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한 거 아니야?
“나, 연습생만 2년 했던 사람이야. 노래를 못한다는 기준이 음치 수준이 아니라, 가수로 데뷔하기에 약간, 아주 약~간 못 미친다는 거지.”
“그거, 진짜냐?”
승훈이 형이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왜, 그러면 여기서 노래라도 불러 줄까?”
그냥 장난으로 해 본 말이었는데.
형은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 짧은 노래라도 좋으니까, 한번 들려줘 봐.”
“…….”
갑자기 시작된 노래자랑.
밥 먹다가 노래를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노래 못하는 강태오로 낙인찍히고 싶진 않았기에 짤막하게 한 곡 뽑기로 했다.
노래 제목은 정운의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에게로 향하는 마음
거짓의 유혹 앞에서도
너 하나만을 바라볼게.
평생을 약속할게.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노래를 처음 들은 연 대표와 승훈이 형은 서로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태오 말대로…….”
“잘 부르기는 하는데, 2퍼센트가 부족한 느낌이긴 하네.”
냉수로 목을 축인 내가 직접 두 사람의 말을 이었다.
“보컬트레이너들도 똑같은 평가를 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데뷔는 이미 물릴 수 없게 되었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가야지. 직진으로.”
내 사전에 후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