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몰랐던 비밀 (2)
방송국 내에 위치한 작은 커피 가게 안.
나와 마주 앉은 우준이가 머쓱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형한테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네.”
“뭐가.”
“뭐긴. 실장님한테 이런저런 소리 들었던 거 말이야.”
나에게 보여 주기에는 확실히 민망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준이를 위해서 이렇게 답하기로 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야.”
“그럴 리가. 형 바로 근처에서…….”
“직접 못 봤으니까 모르는 거지.”
“…….”
우준이도 나 못지않게 자존심이 굉장히 센 녀석이다.
그런 애가 지금, 이런 입장이 되었다는 게 형으로서 안타까웠다.
우준이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네. TV에서 가끔 형 보면, 뭐라고 해야 되나. 예전의 어리숙한 면은 전혀 안 보이고, 완벽한 사람처럼 느껴지던데.”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라는 게 어디 있냐. 하나씩 하자 있는 건 다 똑같지, 뭐.”
“하긴. 나도 그렇지.”
그렇게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지금은 내 이야기보다는 우준이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쪽 회사로 언제 이적한 거야?”
“이적한 지는…… 좀 됐어. 3년 전일까.”
3년 전.
내가 한창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생긴 던전들을 없애고 다녔을 때다.
“사실 형 앞에선 별로 티 내진 않았었지만, 솔직히 우리 데뷔조 떨어지고 난 다음에 현타가 엄청 심하게 오더라고. 이대로 계속 소속사에 남아서 데뷔조를 노리고 연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그래서. 중간에 한번 포기한 거야?”
우준이는 내 직설적인 질문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준이가 이런 선택을 일전에 한번 했다고 한들, 딱히 비난할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인생이니 본인이 선택하는 거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우준이는 지금, 다시 마이크를 잡고 있다.
“중간에 관두고 이런저런 일을 해 봤거든. 아르바이트하다가 회사에 취직도 해 보고. 그런데 자꾸만 무대가 생각이 나더라고. 야근하면서 내가 지금 뭐 하나 싶어서 책상 앞에서 울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도전해 보기로 한 거야.”
“그럼 지금, 솔로로 활동 중인 거야?”
“엄밀히 말하면 솔로는 아니야. ‘디페시즈’라는 6인조 보이 그룹에 속해 있는데, 잘 안 됐어.”
아이돌 그룹이 모두가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100 중 90 이상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리지도 못한 채 무명으로 가수의 삶을 마감한다.
연습생으로 활동하던 시절, 나는 이러한 그룹들을 수차례 봐 왔다.
“참 웃기지? 예전에 형하고 나하고 이런 이야기 했었잖아.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하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무명으로 남지 말고 어떻게든 앨범 내고, 단독 콘서트도 열고. 빌보드에도 우리 노래 한번 올려 보자고 야심 차게 다짐하곤 했잖아. 그런데 그게 상상 이상으로 힘든 일이더라고.”
연예계가 심어 주는 환상은 달콤하면서 한편으론 위험하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한번 관뒀을 때의 연예계는 차가웠고.
다시 돌아온 연예계 역시 여전히 차갑다.
나야 이미 헌터로 정점을 찍었고, 그 덕분에 방송을 편하게 하는 게 가능하지만.
우준이는 나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두 번째는 쉬울 줄 알았는데, 두 번째가 더 어려운 거 같아.”
쓴 미소가 안 지어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실장 나부랭이가 그렇게 지랄을 하는데도 자존심 다 굽히고 남아 있는 거야?”
“그렇지, 뭐.”
우준이의 선택이니까.
내가 딱히 뭐라고 할 만한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우준이를 계속 보고 있기에는 너무 안타깝고, 그리고 미안하다.
“우준아, 너, 가수 생활 계속할 거지?”
“그래야지.”
나도 우준이가 이렇게 답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실 우준이와 연락이 닿고 난 뒤, 나는 일부러 우준이의 무대를 찾아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우준이는 여전히 잘한다.
노래면 노래, 댄스면 댄스. 그리고 비주얼도 웬만큼 되는 편이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소속사가 우준이를 너무 안 챙겨 준다는 거겠지.
그래서 내가 우준이에게 직접 이런 제안을 하기로 했다.
“실은 너하고 약속한 날에 이야기할까 했었는데.”
슬쩍.
우준이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우준이의 시선이 명함에 고정되었다.
[HT 엔터테인먼트]
[이사 강태오]
“HT 엔터테인먼트? 연예 기획사야? 아니, 그것보다 형, 여기서 이사직으로 일하고 있어?”
“야야, 질문하려면 하나만 해. 대답하기 어렵잖아.”
내가 TV에 본격적으로 데뷔하고 방송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가수 데뷔를 목전에 두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같이 추진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HT 엔터테인먼트’라는 업체의 출범이다.
“내가 헌터로 일할 때, 어느 매니지먼트 업체에 소속되어 있었는지 너도 잘 알지?”
“BOO잖아?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BOO에서 이번에 연예계 일을 전담으로 맡아서 진행할 자회사를 따로 차리기로 했어. 거기가 HT야.”
원래 연 대표는 BOO를 통째로 연예 기획사 쪽으로 업종을 변경시키려고 했었다.
그러나 며칠 전에 벌어졌던 몬스터 사건으로 인해서 잠시 휴업했던 헌터 매니지먼트와 헌터들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었고. 이로 인해 BOO도 몇 마리나 있을지 모르는 잔여 몬스터들의 씨를 완전히 말릴 때까지 본업을 그대로 이어 가기로 정했다.
이와 동시에 잔여 몬스터들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를 대비해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것도 같이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HT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을 따로 세웠다.
“HT가 무슨 약잔데?”
우준이의 물음에 나는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헌터(Hunter)의 줄임말인데.”
“그렇게 대충 지어도 돼?”
“이름보다는 어떤 일을 어떻게 잘하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지. 아무튼 그렇게 해서 그나마 연예계 경험이 많은 내가 이사직을 맡기로 한 거다.”
연 대표도, 승훈이 형도 다방면으로 경험이 많지만, 유독 연예계에 대한 경험이 없다.
물론 나도 있다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긴 하다.
그래 봤자 연습생 시절이 다였으니까.
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접한 것도 굉장히 크지 않은가.
그리고 나 본인도 요즘은 헌터 일보다 연예계 쪽 일에 더 욕심을 많이 내고 있었기에 연 대표가 이사직 한번 맡아 보라고 한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준이가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근데 나한테 명함은 왜 주는 거야?”
“왜긴, 짜식아.”
이쯤이면 알아서 눈치를 채야지, 녀석.
“너, 우리 회사로 스카웃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 * *
내가 헌터로 각성하기 전.
그러니까 연습생 시절 당시, 나와 우준이는 나란히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우준이의 경우에는 컨디션 난조로 인해 평소에 보여 주지도 않던 음이탈을 수차례 반복했다.
아무리 잘해도, 데뷔조 평가라는 중요한 무대에서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의 실수를 하면 좋게 보일 수가 없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결국 우준이는 데뷔라는 문턱에서 나와 사이좋게 한 차례 고꾸라지게 되었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평상시에 잘하던 애들이었으니까.
그래서 회사 관계자들 역시 훗날을 기약하면서 계속 우리들에게 여러 기회를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도중에 나는 헌터로 각성하게 되어서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우준이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가수로 데뷔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꿈을 한번 접은 것이다.
하지만 포기는 미련으로 남아 다시금 우준이를 연예계로 이끌었다.
지금까지는 그것이 우준이에게 안 좋은 결과로 작용하고 있지만.
나와 재회하게 된 이상, 그건 이제부터 옛날이야기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HT 엔터테인먼트’라고 적혀 있는 건물 로비를 통과해 내 사무실로 향했다.
나를 보자마자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이사님!”
“오늘 일찍 출근하셨네요?”
“스케줄이 없어서. 아, 30분 뒤에 팀장 회의할 테니까 다들 모이라고 해. 승훈이 형도 연락되면 오라고 하고.”
안 그래도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알겠다고 답하는 직원들의 반응을 뒤로하고 홀로 내 개인 사무실을 찾았다.
현재 HT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은 나 혼자뿐이다.
애초에 나 하나만 바라보고 창설된 업체이기에 당연한 결과다.
욕심 안 부리고 그냥 마음 편히 방송 활동하면 편하긴 한데.
‘내 성격상, 그렇게 못 하지.’
기왕 일을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 한다.
이런 승부욕 덕분에 나는 헌터들 사이에서 랭크 1위를 사수할 수 있었다.
방송도 마찬가지.
그냥 대충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인터넷 기사들을 쭉 훑어보면서 간밤에 있었던 뉴스들을 체크했다.
주로 보는 건 연예계 소식.
그리고 또 하나 더.
몬스터와 관련된 뉴스다.
‘확실히 게이트가 여기저기서 오픈될 때보다는 소식들이 훨씬 덜해지긴 했네.’
예전에는 눈만 감았다 뜨면 어느 지역에 레벨 몇의 게이트가 열렸다느니 뭐니 하는 소식이 다발로 들려왔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거의 없다.
며칠 전에 내가 데이브와 현장으로 던전 감식을 나갔다가 몬스터를 마주친 건수를 포함해서 오늘까지 총 다섯 건.
이게 몬스터와 관련된 사건 사고의 전부다.
‘연예인 하랴, 헌터 하랴. 바쁘네, 바빠.’
그래도 잔여 몬스터의 존재 덕분에 섭외 요청이 쇄도하게 되었다.
내 입장에선 반사이익을 본 셈이다.
오늘도 어느 뉴스 채널의 패널로 참가해서 몬스터 출연에 대한 소식을 분석하고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그러면서 가수 데뷔도 준비해야 하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동안, 팀장급들이 하나둘씩 내 사무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A&R(Artists and Repertoire)를 총괄하고 있는 양석정 팀장이 자리를 잡았다.
“양 팀장님, 팬 매니저 맡을 직원들은 언제쯤 다 채용할 거 같나요?”
“일단은 이사님의 팬클럽 인원수를 보고 나서, 거기에 따라서 사람 수를 맞출 생각입니다. 오늘도 보니까 만 명 단위로 계속 늘어나고 있더라고요. 제가 조만간 정리해서 이사님하고 연 대표님께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네. 그리고 보컬, 댄스 트레이닝 맡아 줄 트레이너들도 빠르게 섭외해 주세요. 돈이 필요하면, 달라는 대로 줘요. 우리가 경험이 없지, 돈이 없는 회사는 아니잖아요?”
레이드 시대로 인해 나와 BOO는 많은 부를 축적했다.
어디 가서 돈 때문에 꿀릴 일은 없다.
“하하. 예, 알겠습니다.”
양석정 팀장을 시작으로 캐스팅 매니저, 마케터, 비주얼 디렉터 업무 담당자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이제 막 출범한 회사이기 때문에 내용은 많지 않았다.
애초에 소속 연예인은 나 혼자뿐이니까.
회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갈 때쯤.
양석정 팀장이 궁금했던 것을 내게 물었다.
“그런데 이사님, 저희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네. 중요한 거 잊을 뻔했네요.”
오늘 회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를 꺼냈다.
“우리 회사에 두 번째 연예인이 생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