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몰랐던 비밀 (1)
오전부터 라디오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새벽 시간대에 샵에 들렀다.
이제는 직원들과도 많이 친해진 모양인지, 내가 샵에 들어서자마자 날 반기는 인사가 쏟아졌다.
“어머, 강태오 씨!”
“안녕하세요! 오늘은 무슨 일정 때문에 오셨어요?”
외투를 맡기면서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라디오 녹화 때문에요.”
“라디오면, 굳이 메이크업하고 헤어 안 받으셔도 되지 않나요?”
“‘보이는 라디오’ 형태라서, 인터넷에 생방송으로 영상이 송출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기왕이면 좀 더 잘생겨 보이게 꾸미고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농담조로 말하자, 여직원들이 작게 웃으면서 입을 모아 말했다.
“태오 씨는 지금으로도 충분히 멋있어요.”
“맞아요. 헌터로 일하실 때도 멋지셨는데, 요즘 카메라 마사지 자주 받으셔서 그런지 더 멋있어진 거 같아요.”
“그거 아세요? 태오 씨 팬 카페 생긴 거.”
처음 듣는 이야기다.
헌터로 몇 년을 굴러도 팬클럽 하나 생긴 적이 없는 나인데.
그래서인지 여직원이 가져온 소식이 뜬금없다 느껴졌다.
내가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이자, 여직원 중 한 명이 직접 내게 확인을 시켜 주기 위해 본인의 스마트폰을 가져왔다.
“여기, 보세요. 저도 얼마 전에 가입했거든요.”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강태오 팬클럽.
창설된 지 며칠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공식 회원 수가 10만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많기도 하네.’
잠시 화장실 갔다 온 승훈이 형에게 이쪽으로 와 보라고 손짓했다.
“형, 나 팬클럽 생긴 거, 형도 알고 있었어?”
“아니, 전혀. 회사에서 공식 팬클럽 만들어 달라고 요청은 많이 받고 있다는 건 아는데, 벌써 생겼다는 건 나도 처음 알았어. 그나저나 벌써 회원 수가 이렇게나 돼?”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상당히 많이 가입한 모양인가 보다.
정확한 비율은 모르겠지만, 영어나 다른 나라의 언어가 꽤 보이는 걸로 봐선 팬클럽의 규모가 상당한 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연 대표한테 말해서 팬클럽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인력 붙여 달라고 해 줘. 이런 건 초반부터 관리해야 나중에 구설수가 안 터지거든.”
“오케이, 알았어.”
연습생 시절 당시, 연예인 본인이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팬클럽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슈가 되었던 경우를 꽤 봤었다.
상황에 따라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팬클럽의 존재.
이런 것까지 생각을 해야 하다니.
‘나도 이제는 진짜 연예인이 다 되었나 보네.’
괜히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 * *
이제는 내 집처럼 익숙해진 방송국을 찾아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나와 승훈이 형.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스태프들과 빠르게 인사를 나눈 후, 오늘 내가 출연할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있는 부스를 찾았다.
나를 보자마자 그레이색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 아나운서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태오야! 어머머, 못 본 사이에 듬직해진 거 봐. 세상에!”
“안녕하세요, 누나.”
신서예. 내 친누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창생으로, 아나운서 준비도 같이했었던 절친이다.
내가 헌터로 각성하기 전까지는 정말 친하게 지냈던 누나인데, 헌터 활동이 워낙 바쁘다 보니 이렇게 누나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지. 실제로 오래되었다.
“우리, 한 6년 만인가?”
“그 정도 될걸요.”
“얼굴 까먹겠다, 얘.”
내 팔을 가볍게 툭툭 치면서 반가운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는 서예 누나.
“누나는 전보다 더 예뻐지신 거 같은데요?”
“사탕발림하지 마. 이제 나도 30대라고. 아무리 예뻐도 10대, 20대 꽃다운 나이 때만 하겠니? 하…… 그나저나 아송이나 나나, 이제 결혼 생각해야 할 나이인데, 큰일이야.”
누나가 결혼이라.
본인은 아직 생각이 없는 거 같지만, 그래도 나는 내심 누나가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뭐, 이건 본인 일이니까.
누나의 의사에 따라 달라지겠지.
“아무튼 오늘 녹화 잘 부탁해.”
“걱정하지 마세요.”
방송에 대한 자신감이 절정에 달한 지금.
이런 걱정은 무의미할 것이다.
* * *
“신서예와 함께하는 오전의 데이트. 오늘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멋진 남성 게스트분을 모셨습니다. 강태오 씨, 나와 주세요!”
“안녕하세요. 강태오입니다.”
옆에 달려 있는 캠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테이블에 따로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에 무수히 많은 채팅들이 갱신되었다.
서예 누나가 잔뜩 흥이 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라디오 진행하면서 가장 많은 채팅 수가 올라오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실시간 채팅방에 들어오신 분들도 굉장히 많으시고요. 강태오 씨를 고생해서 이곳에 모신 보람이 있네요.”
고생이라.
사실 그렇게까지 고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 누나가 ‘서예 방송에도 한번 나가 줘.’라고 말해서 바로 ‘응’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오늘 태오 씨에 관해서 크게 화제가 된 게 있어요. 팬클럽 소식인데요. 알고 계셨나요?”
“네. 제 팬들께서 따로 팬클럽을 만드셨는데, 모를 리가 있나요.”
비록 오늘 아침에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사실은 저도 이번에 강태오 씨 팬클럽 가입했거든요.”
수줍게 고백을 하는 서예 누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열심히 활동해 주세요, 아나운서님.”
“누구보다도 열심히 할 테니까 기대해 주세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가 보도록 할까요.”
친누나의 아는 누나가 내 팬이라고 하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상당히 복잡한 기분이다.
* * *
라디오 녹음을 마치고 나오는 동안, 승훈이 형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팬클럽 회원 수를 바라보면서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했다.
“그새 5천 명이 늘었네. 이거 봐라, 태오야. 아니, 아직 제대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것도 아닌데, 벌써 이렇게 많은 팬들이 생기냐.”
요즘 나를 두고 생긴 별명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 연습생.
여기저기에 얼굴을 비친 게 효과를 본 거 같다.
“이제 앨범 작업하고, 발표만 하면 되겠다. 그러면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겠지. 안 그러냐?”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뭘. 벌써 김칫국 마시지 마. 연예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니까.”
연습생 시절 때 워낙 별의별 일을 다 목격했었기 때문에 쉽게 방심할 생각은 없다.
승훈이 형의 말대로, 내가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수로서, 그리고 방송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건 미지수다.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차 시동 걸어 둘 테니까 바로 주차장으로 와라.”
“어, 알았어.”
승훈이 형을 먼저 보낸 뒤.
나는 잠시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막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하던 때에.
안에서 들려오는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야, 황우준. 너, 미쳤냐?”
황우준이라는 이름이 내 귀에 날아와 박혔다.
안 그래도 우준이하고는 내일 만나기로 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서 기척을 죽인 채 화장실 쪽으로 접근했다.
‘투명 스킬 아이템이 있었더라면 완벽하게 은신했을 텐데.’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일반인을 상대로 존재감을 지우는 일 정도는 굉장히 쉽다.
“내가 뭐라고 했었냐. 너, 지금 우리 소속사에 와서 스케줄 잡고 무대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라고 했었지.”
“……네.”
“그런데 뭐? 연습실 사용해도 되나요? 니 무대 연습 같은 건 집에서 해. 주제도 모르고. 오늘부터 일주일간, GIP 멤버들이 연습실 쓰기로 한 거 기억 안 나냐? 엉?”
GIP는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인기 있는 7인조 보이 그룹이다.
‘출발 스타팀’에 출연했을 때, 나와 같은 팀을 이뤘던 멤버 중에서 GIP에 소속된 아이돌 가수가 한 명 있었다.
‘그때 관중 함성 소리가 엄청났었지.’
황조운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GIP가 속한 소속사라고 한다면.
‘지금은 기르 엔터테인먼트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준이도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거 같다.
알아주는 소속사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GIP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소속사라는 단점도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소속사의 잘못된 운영 방침이 톡톡히 한몫을 했다.
다른 가수들을 키울 생각도 안 하고, 계속 잘나가는 GIP만 밀어주니까.
GIP 원톱 회사가 될 수밖에 없다.
우준이도 그것 때문에 피해 아닌 피해를 보는 거 같다.
“그치만 실장님, 저, 바로 이번 주에 무대 있는데…….”
“네 무대를 누가 관심 있게 보겠냐? 그냥 어쩌다가 자리 하나 펑크 나서 운 좋게 들어간 것뿐이잖아. 주제를 알아라, 주제를.”
“…….”
“그리고 그날 매니저들 다 모여서 GIP 멤버들 서포트 나설 거니까, 너는 그냥 네 차 끌고 가라. 불만 없지?”
있어도 말 못 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아니오.’라고 말하겠나.
문득 연습생 시절 때의 기억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같은 연습생 신분이라고 해도 나름대로 등급이 나뉘었다.
회사로부터 우수한 평가를 받는 연습생들. 아니면 어느 정도 화려한 뒷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속칭 ‘유망주’들만 항상 괜찮은 연습실과 연습 시간을 차지하곤 했다.
우준이나 나 같은 열등생은 남는 자투리 시간과 공간을 활용해서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터 벌써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나와 우준이는 데뷔조 탈락이라는 아픔을 똑같이 겪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똑똑.
일부러 화장실 입구 문을 노크했다.
그제야 기르 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가 나를 알아보곤 화들짝 놀랐다.
“가, 강태오 씨 아닙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중년 남자의 입가에 아주 짙은 미소가 새겨졌다.
“기르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두용 실장이라고 합니다. 세계를 구하신 헌터님을 이렇게 실물로 뵙게 되다니, 정말로 영광입니다!”
가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괜히 화를 내면 지는 거다.
나는 일부러 우준이의 어깨에 손을 걸치며 친근함을 과시했다.
“우준이가 뭔가 큰 실수라도 한 모양인가 보네요. 화장실에서 크게 화를 내실 정도니까.”
“아…… 혹시 우준이하고 아시는 사이인가요?”
“네, 예전에 저하고 같이 연습생 시절을 보낸 친한 동생이거든요.”
김 실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레이드 시대가 끝났지만, 아직 몬스터들은 남아 있는 상태.
인류는 내게 큰 빚을 졌다.
내가 드래곤을 쓰러뜨리지 않았더라면, 세계 전체가 몬스터들에게 먹혔을지도 모르니까.
이런 특수한 상황 때문일까.
어딜 가든 나는 항상 대접을 받는다.
심지어 최근에 다시 몬스터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니, 내 가치가 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김 실장도 내게 함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뭐, 나도 이걸 알고 일부러 이렇게 행동한 거지만 말이다.
“실장님, 잠깐 우준이하고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요 근처에 제가 잘 아는 카페가 있는데, 안내해 드릴까요?”
“부탁 좀 할게요.”
당황하는 우준이를 향해 나는 한쪽 눈을 감으며 살짝 윙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