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일하는 헌터님 (3)
“스탠바이. 레디…… 큐!”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BLT 9시 뉴스 오프닝 화면이 펼쳐졌다.
남성 앵커와 함께 카메라를 정면에 두고 자리를 잡은 누나가 몸을 숙이면서 시청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BLT 9시 테이블, 시작하겠습니다.”
레이드 시대가 계속되었을 때, 나는 예능이나 가요 프로그램보다 뉴스를 더 많이 챙겨 보곤 했었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시청했던 것이 바로 누나가 메인 앵커로 자리를 잡은 이 BLT 9시 뉴스 테이블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전파만 닿으면 언제든 누나를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다른 뉴스 프로그램보다 이 뉴스를 더 많이 챙겨 보곤 했었다.
늘 시청자 입장이었던 내가 오늘은 참가자 자격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것도 누나와 같은 화면에 서게 된 것이다.
기분이 묘하다.
오늘의 소식을 빠르게 전하는 동안, 뒤에서 스태프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사이, 승훈이 형과 나는 내 차례가 올 때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잠시 뒤.
스태프가 내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태오 씨, 5분 뒤에 올라가실게요.”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면서 흐트러진 넥타이를 정갈하게 정돈했다.
이것으로 준비 완료.
화면이 전환되자, 누나가 본격적으로 오늘의 초대 손님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뉴스 초대석. 오늘은 ‘장안의 화제’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분을 모셨습니다. 대한민국 최초를 넘어서 전 세계 최초로 SSS등급 헌터로 활약하신 강태오 씨를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누나가 나를 향해 활짝 미소를 보이며 반갑게 맞이했다.
나 역시 방송용 미소를 얼굴에 본격적으로 장착을 했다.
“안녕하세요. 강태오입니다.”
“한동안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시던데, 저희 같은 뉴스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건 처음이신가요?”
“아니요. 한창 게이트 문제가 발발할 때 가끔씩 요청을 받아서 뉴스에 출연한 적이 있었습니다. 국내보다는 해외 쪽에 많이 출연했었을 거예요.”
누나가 소개 멘트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헌터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지위에 오른 사람이다.
유일무이한 SSS등급 헌터.
상금 랭킹뿐만 아니라 몬스터들을 쓰러뜨린 횟수 등등. 거의 모든 기록들을 내가 다 보유하고 있다.
누나가 내게 살짝 눈웃음을 보냈다.
“아까 저희도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린 바 있는데, 최근에 몬스터가 다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혹시 알고 계신 게 있나요?”
“네, 안 그래도 그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헌터협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몬스터 때문에 이래저래 불안하실 겁니다. 혹시나 게이트가 다시 열리는 게 아닐까. 레이드 시대가 다시 시작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드리자면, 게이트가 다시 열려서 몬스터가 나오게 된 건 아닙니다.”
내가 나서서 사람들을 안심시켜 달라고.
이것이 부탁의 내용이다.
산업, 경제, 그리고 각종 분야 등. 몬스터의 등장 이후로 기나긴 침체기를 겪어야만 했다.
이제야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몬스터의 존재가 재등장하면서 초를 치니, 사람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협회의 부탁을 받고 내가 직접 나서서 최근에 있었던 몬스터 사건에 대한 모든 진실을 공개하기로 했다.
“게이트가 닫히고 아직 퇴치되지 않은 잔여 몬스터들이 날뛰는 것뿐이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지우셔도 됩니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저희 헌터들이 여러분들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걱정 마시고 생업에 종사하시기 바랍니다.”
카메라가 내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이 진심이 얼마나 통할지.
그건 이제부터 두고 볼 일이다.
내가 하는 말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누나의 미소가 짙어졌다.
“헌터 랭킹 1위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믿음이 가는 거 같네요. 태오 씨는 앞으로 더 바빠지시겠어요? 방송 출연에, 헌터 일까지 겸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시지 않을까요. 듣자 하니 가수 데뷔까지 준비하고 계시다던데.”
가수 데뷔에 대한 정보는 이곳에서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아마 지금쯤 인터넷은 난리도 아닐 것이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원래 가수 지망생 출신이거든요. 레이드 시대도 끝났고. 그래서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아마 가수로 데뷔하시게 되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신인 가수가 되실 거 같네요.”
“하하, 그런가요?”
세상에 나 강태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누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 * *
내 차례가 끝나자 승훈이 형이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오더니 보고 아닌 보고를 했다.
“지금 너, 트렌드 순위 1위다. 볼래?”
형이 말한 대로, 내 이름과 함께 ‘#강태오가수데뷔’라는 태그가 나란히 순위권에 올라 있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트렌드 순위에도 벌써 나와 연관되어 있는 태그가 얼굴을 비쳤다.
“사람들 참 빠르네.”
“빠를 수밖에. 그 ‘강태오’가 가수로 데뷔하겠다는데, 관심을 안 가질 사람이 있겠냐.”
노래하는 헌터라.
생각해 보니, 내가 아는 선에서는 그런 헌터가 없었던 거 같다.
만약에 성공적으로 가수 데뷔가 이루어지면, 내가 최초가 되는 건가?
‘나쁘지 않네.’
이왕 이렇게 된 거, 또 기록 하나 세워야지 뭐.
그렇게 승훈이 형하고 짧은 사담을 나누는 사이.
대본을 정리하고 나온 누나가 내 어깨를 터치하듯 가볍게 쳤다.
“고생했어, 동생.”
“벌써 끝난 거야?”
촬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중간에 잠시 자리를 비운 누나가 다른 스튜디오를 가리켰다.
“기상 뉴스 끝나고, 바로 클로징 멘트 들어가야지. 그러면 오늘 촬영 다 끝이야.”
“아직 남았구나.”
1시간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것도 오랜만이다.
그래도 누나의 얼굴에는 피곤함보다 생기가 더 감돌았다.
“우리 동생 덕분에 PD님한테 간만에 소고기 얻어먹을 수 있겠네.”
“시청률 잘 나왔나 보네?”
“우리가 동 시간대 공중파 뉴스 채널들 중에서 가장 시청률이 안 나왔거든. 그런데 오늘은 압도적이었나 봐. PD님 입꼬리가 귀에 걸려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있더라고. 그거 보면서 몇 번이나 웃음이 터질 뻔했는지 모르겠어.”
생방송 도중에 웃어 버리면, 그건 방송사고다.
누나가 흐뭇해하는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요즘 방송가에서 왜 네가 시청률 치트키라고 불리는지 알 거 같아.”
시청률 치트키라.
나쁘지 않은 별명이다.
“아 참. 얼마 전에 우준이 봤는데.”
“우준이? 황우준 말하는 거야?”
“맞아. 너하고 예전에 데뷔조 최종 선발까지 올라갔다가 같이 떨어졌던 그 애. 며칠 전에 어디였더라…… 다른 스튜디오에서 얼핏 봤었어.”
나와 같이 비슷한 시기에 소속사에 들어가서인지 유독 친하게 지냈던 동생, 황우준.
오랜만에 우준이의 이름을 들으니 반가움이라는 감정이 먼저 솟구쳤다.
“어디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것까진 나도 잘 모르겠어. 진짜 아주 잠깐 본 게 다거든. 바빠 보여서 제대로 인사도 못 했어.”
누나의 증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확실한 정보는 우준이가 여전히 이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거였다.
‘간만에 연락이나 해 볼까.’
게이트가 한창 발발하던 때처럼 정신없이 바쁜 시기도 이제 지났으니까.
오래간만에 사람들도 좀 만나고 다녀야겠다.
* * *
내가 헌터로 각성하고 나서 우준이와 한 번도 사적인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나와 우준이가 서먹서먹한 관계여서 그런 건 아니다.
헌터가 된 순간부터 거의 대부분의 연락들을 협회로부터 통제를 받기 시작해서였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연락하는 것까지 간섭을 하려고 하나 싶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몬스터, 게이트에 관한 정보 통제를 위해서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물론 좋다.
하지만 때로는 알아선 안 되는 불편한 진실도 있는 법이다.
정보를 악용하고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또 이런 것들로 인해서 지금처럼 의미 없는 불안감이 가중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사사건건 협회로부터의 간섭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습생 시절 때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우준이도 그중 한 명이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소파에 던져 놓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서 우준이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원래는 어제 방송이 끝난 저녁에 연락을 하려 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기에 어쩔 수 없이 오늘로 미루게 되었다.
전화를 할지, 문자를 할지 잠깐 고민한 결과.
‘문자부터 먼저 보내 보자.’
방송 일을 하면, 부득이하게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들이 연달아 벌어진다.
괜히 내가 전화를 걸었다가 방송 중에 NG라도 나면, 오히려 우준이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다.
문자 내용은 간단하다.
[오랜만이다, 우준아. 혹시 시간 되면 잠깐 통화할 수 있을까?]
이 정도면 되겠지.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준이한테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형! 어쩐 일이에요? 먼저 문자를 다 보내시고.
“왜. 내가 문자 보내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냐.”
-하하, 그럴 리가요!
오랜만에 듣는 우준이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 누나가 방송국에서 너 봤다고 해서. 그래서 연락해 본 거야.”
-아송이 누나요? 그러면…… 저번에 제가 가요 프로그램 출연하기로 했을 때 보신 건가 보네요.
“가요 프로그램? 너, 가수 됐어?”
-네, 일단은요.
아는 동생이 꿈을 이뤘다는 말에 괜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만나서 밥이라도 한 끼 할까? 내가 살 테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
-저야 좋죠.
빠르게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바로 다음 녹화 들어가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짜식, 많이 바쁜가 보네.”
하긴, 연예인은 바쁠 수밖에 없지.
나도 요즘 방송 일을 주로 하다 보니, 우준이의 상황이 어떨지 십분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우준이가 언제 데뷔한 거지?”
데뷔조에 떨어지고서 한동안 계속 연습생으로 남았을 텐데.
우준이한테 바로 물어보기도 좀 그렇고.
인터넷으로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검색어에 ‘황우준’이라고 입력을 해도 우준이의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다.
“이상하네.”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활동한다 해도, 웬만하면 기사 한두 개 정도는 검색될 텐데.
혹시 몰라서 우준이가 예전에 가수로 데뷔하면 사용하겠다고 했던 예명인 ‘준우’로 검색을 해 봤다.
“딱 하나 나오네.”
그러나 이마저도 우준이에 대한 단독 기사가 아니다.
어느 가수들과 같이 합동 공연을 했다가 우연히 이름이 언급된 것에 불과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우준이를 만나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네.’
느낌이 좋지 않다.